비가 오래 내린다.
멈출 듯, 멈추지 않고.
이런 날은 차분하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나는 이런 날이 좋다.
3월의 초입, 대평리는 이미 봄이다.
유채가 피기 시작했고, 목련은 몽우리를 틔웠다.
갯무도 곧 따라올 것이다.
해마다 같은 시기, 같은 순서로.
나는 그 반복을 안다.
그래서 기다릴 수 있다.
기다림이 있다는 건,
삶이 견딜 만하다는 뜻이다.
유채밭을 지나 바다로 나간다.
짙은 바다 냄새가 먼저 닿고,
해가 떠오르면
빛이 부서진다.
반짝이는 윤슬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 형제섬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인데,
행복이고 축복이다.
나는 이것을 특별한 여행이 아니라
일상으로 누린다.
..........
열 평 남짓한 가게 문을 연다.
가스 레버를 올리고,
테이블 오더기를 켜고,
앞치마를 맨다.
커피를 내
주방 옆자리에 앉는다.
비 오는 날, 창밖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오늘 국수가 한 그릇도 팔리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
이 작은 가게에서 얻는 이 감정 하나로
나는 이미 값을 치른 셈이다.
행복은 생각보다 단순한 계산으로 유지된다.
가볍게 사는 사람을 떠올린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그리고 법정 스님.
그들이 말한 건 결국 하나다.
덜어내라.
법정 스님은 떠나기 전
자신의 책을 더 이상 찍지 말라 했다.
남기지 않음으로써 남기는 삶.
무소유.
그건 물건이 아니라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중요한 건 감정이다.
욕심과 욕망의 경계,
그걸 알아차리는 힘.
감정을 다룰 수 있으면
삶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더 분명해진다.
건강,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재물,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
그게 전부다.
그런데도 나는 가끔 괴롭다.
아직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나 자신으로부터.
“삶은 괴로움이다.
그 원인은 집착과 탐욕이다.”
누군가의 말이다.
이 말은 틀리지 않다.
결국 문제는 밖이 아니라 안이다.
전부 내 몫이다.
이걸 다룰 수 있으면
삶은 안정된다.
나이가 들수록
타인을 바꾸는 힘은 옅어진다.
대신 하나가 남는다.
나를 다루는 힘.
...........
출근길 아침마다 편의점에 들른다.
천 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
행사 중이란다.
“이거 언제까지 해요?”
“잘 모르겠어요.”
“오래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거 한 잔이 제 하루 시작이라서요.”
편의점 아주머니와 짧은 대화.
나는 그 안에서 이상할 만큼 편안해진다.
삶은 이런 것들로 이어진다.
어떤 이는 여전히
세상의 중심에 서 있기를 원한다.
관계와 평판,
타인의 시선.
나는 그에게 말했다.
“덜어내면서 사십시오.”
그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말은 짧았고
침묵은 길었다.
장 자크 루소의 말이다.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될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말은 결
마음의 상태에 대한 이야기다.
어디에 있느냐보다
어떤 상태로 있느냐.
외로움도 마찬가지다.
그걸 불행으로 해석하면
삶은 무너진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그건 하나의 공간이다.
나를 채울 수 있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생각보다 큰 힘이다.
기준이 없는 삶은 흔들린다.
남의 기준으로 살다 보면
나는 사라진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기준은 더 또렷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결국 남는 건 하나다.
내가 나를 다루는 힘.
돈이 되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지금 하는 일이 괜찮다면.
오늘 해가 떴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하다면.
그걸로 됐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이다.
"머지않아 너는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이고,
모두가 너를 잊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산다..
이 글은 남기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었음을 확인하기 위해 쓴다.
지금이, 전부다.



해 뜨는 대평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