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사

by 황호

두 달의 방학을 마치고 제주로 돌아왔다.

중간에 한번 아내와 한 열흘 제주에

다녀온 거 빼고는

4년여 만에 제일 오래 육지에 있었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익숙해지는 기분에 살짝 불편? 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속초와 지리산의 짧은 여행의 색다른 느낌은

육지에 적응하는데 한몫했다.

두 달 쉬기 직전 작년 11월의 기분은

심란하다 못해 깊은 심연에 가라앉아있는 듯했는데.


올레길 다시 걸어 마음을 다잡기로 하고

우선 육지로 갔었다.

여러 가지 검진 등 미루어왔던 일을 마치고 어서 다시 제주로 오고자 하는 심산이었다.

검사 중에 우연히 갑상선에 혹이 있다는 결과를 받았다.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다시 검사를 하자는 의사의 말에 근 일주일이 더 걸렸다.

두 번의 검사에도 다른 방법의 검사를 해보라 한다.

제주에 거주한다 하니 그럼 제주대병원에 가서 해보라며 진료의뢰서를 만들어준다.

뭐 수술 이런 거 해야 하나? 물어보니

혹시 몰라서 하는 거니 걱정 말란다.

젠장 자꾸 검사하라면서 걱정 말라니..

양성반응이 안 나와도 검사 결과가 두세 번 확실치 않으면 수술하란다.

"갑상선 결절 비정형"이 의심된단다.

온라인으로 제주대병원에 예약 문의하니 4월 말에나 가능하단다. 그게 지난 1월 초 이야기다.

일찍 검사가 가능하면 바로 내려오려 했는데

그냥 1월 말까지 두 달 꽉 채워 육지에 있기로 했다.


잘 쉬고 1월 말에 내려왔다.

제주에 내려올 때의 김포공항은 항상 살짝 설렘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다르다.

제대 말년에 휴가 마치고 귀대하는 마음이다.

좀 여러 가지 등등으로 뒤숭숭했다.


웬걸!

제주의 하늘과 바다를 접하고

오래 비워둔 대평리 집에 들어가는 순간

육지에서의 긴 시간이 순식간에 지워진다.

다음날 국숫집 가서 다시 장사할 준비하고 며칠 이것저것 동분서주했다.


그동안 제일 아쉬웠던 수영장엘 근 두 달 만에 찾았다. 매표소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는다.

차가운 느낌의 pool에 한참 숨을 참고

몸을 물에 맡긴다.

이 기분을 즐긴다.

생명이 물에서 시작됐듯이

인간의 첫 태동은 어머니의 양수 속이다.

그래서 그런가,

물에 들어가면 평안함을 느낀다.

살며 다행스럽게 여기는 취미이자

오래된 습관이다.


아! 여기가 내가 살아가는 곳이구나...

제주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렇듯 평온함을 되찾는데 사흘이 채 안 걸렸다.


가게에 붙여놓은 그동안 방학이라는 안내문을 내리고 정확히 두 달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비워뒀지만 신기하게 찾아온 손님이

반갑고 귀하다.

그래선지 며칠 전 작고한 전직 총리의 평생 좌우명인 삼실, "성실 진실 절실"이란 말이

가슴 깊이 와닿는다.

뜻하는 의미가 좋아서가 아니다.

젊어서는 이 말이 한낮 교훈으로, 맹세로,

지켜 내야 하는 결의에 찬 인생의 지침으로 받아들였던 거다.


그러나 지금의 의미는 다르다.

꼭 지켜야 하는 "절대 선"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공감되고, 각인되는,

말 그대로 "절실" 하게 다가온다.

나 스스로가 다행스럽고

흐뭇하다 하면 지나친 자랑질인가...?


비슷한 이야기 하나 하겠다

황석영 작가 일생의 서사는 격동기의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한다.

해방, 자퇴, 두 번(월남전 참전)의 전쟁, 망명,

월북, 투옥, 방랑, 이혼...

"임을 위한 행진곡"을 그가 작사한 것이라는 거

잘 들 모른다. 우리나라 "삼대 구라"라는 것도.

하여간 이 양반 참 버라이어티하게 사셨다.


그는 평생 여러 세계적인 작가와 교류했다. 하나같이 너는 격동의 소용돌이에서, 다양한 체험을 한, 서사 많은 나라에서 태어나 좋겠다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하더란다.

서사는 작가 글의 모티브가 되기 때문이다.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당신은 그런 격동의 시대, 격정의 나라에 태어나서 서사가 많은 네가 부럽다 했을 때, 물론 작가적 욕심이었겠지만.

잘 사는 나라에서 태어나 최빈국에서 태어난 자신을 빈정대는 것처럼 들려 일순간 기분 나빴단다.


그러나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면서 작가가 겪었던 깊은 삶의 심연이 그의 문학으로 승화시키고 작가의식을 유지하는 힘이었고, 인간의 삶을 관찰하고 이해하는데 평생의 화두였다는 말을 듣고 감명받았단다.


체험의 깊이는 삶에서 겪는 큰 사건이나 전쟁 같은 극적인 일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도 깊이 들어가면 얼마든지 서사가 된다는,

결국은 자신의 의지로써 서사로 승화? 시키는 것에 삶의 의미가 있다고 나름 해석한다.

프랑스 작가 "르 끌레지오." 둘 다 노벨상 작가다.

그와의 대담에서 "코리아 작가들이 부럽다"라는 겐자부로와 비슷한 말에 "나는 자유스러운 나라에서 태어난 네가 부럽다"라고 답한다.


여기서 자유란

역사의 무게로부터의 자유이다.

황 작가는 최소한 이런 주제로는 써야 작가지(그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현실참여 작가다)라는 관념에서 평생 자유롭지 못했다.


이런 속박이 없었던 너의 자유가 부럽다.

어떠한 주제의 글도 부담 없이 다룰 수 있었던

너의 자유가 부럽다 했다.(르 끌레지오에게)

노 작가가 평생을 견지한 의식의 일단을 보여준다.



나에게 제주는 나만의 서사다.

만일 이곳에서의 지난 시간이 없었다면 내 삶의 스토리는 어찌 쓰여질까?

간 안 맞는 싱거운 국이 아닐까?

내 삶을 변화시킨 나의 서사에,

이곳에서의 일상을 서사로 만든

스스로에게 말한다.

대견하고, 축복하고, 고맙다 라고.



....삶의 서사는 '거창한 게"아니다....

...."성실 진실 절실"은 교훈이

아니라 덕목이다....

두 현인의 말에서 깊이 공감하고 위안받는다.


내 삶의 서사는 현재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궁금하고 매일이 설렌다.

그래서 최소한 지난 몇 달 동안처럼 심란하고

좌절스럽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나에겐 육지도 있고 섬도 있기에 그렇다.


그날 팔리는 국수 그릇 수에

내 삶의 질의 편차는 없다.


서사는 황 작가의 말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 일상에 공기처럼,

내 안에서 나를 숨 쉬게 만들 것이고


내 삶의 서사는 계속 쓰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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