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내뱉듯이 한 애드립,
"밥은 먹고 다니냐"? 는
한국 영화 명대사로 남는다.
그가 범인으로 단정하는 피의자에게
끼니는 제때 챙겨 먹는지 뜬금없이
묻는다.
여기서 '밥'은 관점에 따라 다르다.
당장 죽여버려도 시원찮은,
네가 밥이나 먹을 수 있는 인간이냐는
멸시 섞인 비아냥 이거나
아니면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를 지었어도
밥을 굶겨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한국적 관념의 '밥'이 의미하는,
'밥은 챙겨 먹고 다녀라'라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연민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 한국인에게 '밥'은,
먹는 곡식으로 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말 다양하고 풍부한, 철학적이고
풍자적 의미를 담는다.
"밥값도 못한다"
"제 밥도 못 찾아먹는구나!”
"누구누구의 밥이 되었다"
“그게 밥 먹여주니?”
“밥은 먹고 다녀?"
"밥이 넘어가냐?"
“밥이 안 넘어가”
“밥 먹을 시간도 없었어”
“밥은 먹고살 수 있겠지?”
“밥값은 해야지”
“언제 밥 한 번 먹자”
"밥심으로 산다"
"저녁 진지 드셨습니까?"(Good evening)
......
이렇게 풍자, 은유가 넘치는 언어 감성이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싶다!!!
'칼의 노래' 작가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책에서
'돈벌이는 밥벌이'라며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또 그가 표현한 밥벌이의 처절함엔
진저리가 처진다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 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한다.
밥 쪽으로만 끌려가야만 또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
어느 누군가 살아낸 삶의 질곡에서,
퍽퍽했을 시절의 귀퉁이 어디인가에서
한 끼의 '밥'을 벌기 위해 꾸역꾸역 일터로
향한 경험들이 우리 모두에겐 있다.
이런 애잔하고 먹먹한 감상을 주는 것으로
밥을 대체할 만한 단어는 없다.
그래서 '밥'에 대한 장광설을
길게 늘어놓았다.
그런데 제주에서 이'밥'이 나에게
그럴 때가 있다.
나 홀로 먹을 수밖에 없어서 밥을 차려놓고는
그 밥으로부터 연민과 멸시를
번갈아 가며 당하고 있었다.
'밥' 먹는 게 처량했다.
여기서 '밥'은 오로지
굶지 않으려는 생존의 '밥'을 말한다.
모든 노동의 종착역은 밥벌이지만
모든 노동이 밥벌이 때문에 하는 건 아니다.
밥벌이로의 노동은 제주에서의 나와는
별 관계없는 일이지만 이곳에서 내가 원하고
꿈꾸는 "시간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편이 된다 싶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먹기만 하는 "무위도식"말이다.
사람 일은 모른다.
어쩌다 보니 놀러 온 제주에서,
그것도 두 번에 걸쳐 1년 동안이나
일 할 줄(내 제주 생활의 삼분의 일이 된다) 몰랐다.
골프장 노동은 제주에서의 원동력이 된다.
근데 그것이 나중에는 '밥'을 먹기 위해
다닌다는 게 제일 중요하고
의미 있게 되어버렸다.
그곳에서 주는 점심 때문에라도
계약 연장해서 계속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라산과 색달바다와
그리고 "밥" 때문에 매일 행복했다.
골프장 직원식당에서 먹는
하루 한 끼의 '밥'은 힘의 원천이었고, 제주살이에서 희망의 빛이었다.
푸짐하게 차려진 그 맛에
고된 노동에서도 기꺼울 수 있었고
그곳에서의 점심 한 끼는
나에겐 황제의 '밥'이었다.
비록 스테인리스 식판의 밥이지만 최고의 밥이다
새하얀 쌀밥은 건강에 이롭다는 현미나 보리가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있다.
나는 하루 한 끼를 실천 중이다.
거의 삼 년째 이어지는 그 루틴을 될 수
있으면 지키려 한다.
이젠 하루 한 끼의 공복이 매번 힘들거나
하진 않게 되었다.
견딜만하다.
때론 그것을 즐길 수도 있게 됐다.
그래선지 무조건 하루 한 끼는 잘 먹어야 된다는 강박이 있다. 많이 먹었다.
때론 휴무날도 찾아가서 돈 내고 먹기도 했다.
한 끼 식 덕분에 삼 년 전에 10킬로 감량한
체중이 지금도 유지된다.
감량으로 개선된 이런저런
건강수치도 덤으로 얻었다.
하루 한 끼의 건강 이론은 나로부터 증명된다.
지금 일하는 올레길 지킴이 일의
큰 즐거움 중 하나는 그날의 점심은 항상 맛있고 푸짐한 식당을 찾아다닌다는 거다.
4명의 우리 조가 일하는,
일주일 두 번의 점심은 각별하다.
왜냐면 그 외의 5일은 대부분 홀로 집에서
먹기에 그렇다.
남자 혼자, 그것도 객지의 늘그막 한 사내가
먹는 집밥은 부실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있을 때 먹어라'가 지금 내 생존전략이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밥집들이 한 열 곳은
족히 되는 거 같다. 제주 서쪽 한림의 코다리 집에서부터 막국수, 낚지, 동태탕, 돈가스 등등, 그중에서도 만 원짜리 조수리의 한식뷔페는 압권이다!(제주도엔 이런 뷔페가 유난히 많다).
넉넉하고 맛있는 제주도민 인증 밥집들이다.
쉬는 날엔 가끔씩 혼자 밥 먹으러 찾아간다.
지인들과 술잔이라도 기울일 땐
고등어회의 호사를 누리기도 하고
제주 명물 흑돼지구이 집을 찾기도 한다.
대정 오일장과 서귀포 올레시장의 호떡과 모닥치기(모둠튀김)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제주에서의 지금이 '너의 삶 중에 최고의 시간이야'라고 자기 최면 중이다.
최면에 걸리면 시간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된다.
밥 한 끼 먹으러 오가는데 5시간을 투자해도 된다.
물론 대부분을 걸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하여간
'밥'을 먹는다는 것 자체는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게 기본적인
일이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여태 말핬다.
따뜻한 '밥'을 먹는다는 것은,
가장 간단하지만,
가장 효과적으로,
나 자신을 돌보고 품어준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자기 사랑은
여러 형태의 사랑 중에
으뜸이다.
신도 인간을 어찌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 "시기, 질투"라 한다.
신이 인간에게만 부여한
최고, 최선의 감정은 "감사"라 한다.
미래를 알 수 없을 때는 현재에
감사하는 것이 답이다.
"밥벌이의 지겨움"이
"밥벌이의 감사함"으로...
... 기대한다.
첨가의 말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게
제일 기쁘다 하시던,
돌아가신 울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운,
세찬 비가 내리는 대평리 돌담집
깊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