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있는 도시는 대학교를 중심으로 유명한 곳이다. 학생들의 커뮤니티와 대학에서 지원하는 각종 운동 동아리 외에는 별로 볼 것도, 놀 것도 없는 도시이다.
나는 그 학교를 졸업한 한국계 청년들이 여기 문화에 대해 촌스럽고 심심하다는 말을 종종 들을 때마다 아쉽다고 생각했다. 이국의 문화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높은 물가와 개인주의적 성향의 사람들 때문에 고립되어 강의와 과제 이외에는 교류가 없이 지냈던 그들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인구가 아주 적은 나라이기에 인맥과 지연이 없을 때는 여러 정보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었고, 어린 그들은 당연히 막막함과 외로움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그들의 사연들을 들으며 나는 내 딸이 그들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풍부한 재정적 지원과 많은 기회를 누리며 정서적으로도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이 학교를 선택할 때 우리는 이 학교를 딸의 비전을 완성하는 중간과정으로 계획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딸이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방법을 찾도록 독려했었다.
얼마 전 딸은 댄스 동아리에 가입신청을 해서 두서너 개의 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이니 세 개의 레슨은 받아야 이틀에 한 번 운동하는 기회가 될 터였다. 힙합과 발레와 k-pop댄스를 동시에 신청했다는 딸의 말에 축하해 주었다. 하다 보면 재미있는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정리될 것이 분명하기에 하나 보다는 여러 개를 시도해 보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 엄마, 발레에서 내가 제일 키가 커. 그래서 그런가 다른 애들보다 나는 팔을 뻗는데도 오래 걸리나 봐. 자꾸 애들하고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 ㅋㅋㅋ"
" 흐흐흐... 허우적거리는 네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그렇지? 힙합도 그래. 내가 움직이면 왠지 흐느적거리는 것 같아."
"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네가 자랑스럽다. "
" 뭐? 그런가? 그럼 미안하지는 않네."
딸은 수줍음이 많은 편이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집단에 대한 긴장감도 높다. 나도 그런 편이라 딸의 입장에서 느껴질 부담감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바꾸는 경험을 하도록 도와주고 싶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말로 교훈을 주고자 한다면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선생님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내면의 친구일 것이다. 어색한 나의 모습이 타인에게 귀엽게 보인다고 말해주는 것은 거울에 비친 귀여운 한 소녀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그다음 레슨에서 또 실수를 하게 될 때 그런 자신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면 수치심으로 위축되지는 않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