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왜 혼자 절에 다녔을까?
어디에 계신 것인가?
상가 2층으로 고개를 돌리니 무거운 다리를 끌고 내려오는 아버지가 보였다. 계단을 오르내리기엔 힘에 부칠 것 같았다.
돌아가신 엄마는 아버지의 다방 출입을 극도로 꺼렸다. 그녀는 싸울 때마다 내게 전화를 하고는 했다.
너희 아버지가 바람이 난 모양이다. 이젠 어쩌면 좋으냐?
우는 소리로 한참을 하소연했다.
그냥 내버려 두세요. 돈 없는 아버지를 좋아할 리가 있겠어요.
네 아버지가 인물은 좋지 않니?
그래봤자 노인이에요.
그렇더라도 네가 아버지를 좀 말리려무나.
엄마를 위해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나는 한 번도 아버지에게 다방 출입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다. 엄마의 유난스러운 성격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엄마를 찾는 시간이 줄어들자 점차 부아가 났다. 엄마가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그녀 곁에 오래 머물러주길 바랐다.
아버지, 양복점에서 뭘 하세요?
기다린단다, 손님을. 그들은 아무 때고 불쑥 찾아오지 않니?
하, 왜 그곳에서. 엄마가 많이 기다리실 거예요. 모르는 것 같지만 다 알고 있대요.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아버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정말 오가다방 때문일까? 의심이 생기기도 했으나 직접 물을 수도 없었다.
간신히 마지막 계단을 내려온 아버지가 나를 보았고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일찍 나왔구나. 잠깐만 기다려라.
양복점 안으로 들어간 아버지가 종이백을 들고나왔다. 그리고는 양복점 셔터를 내렸는데 녹이 슨 셔터가 잘 내려가지 않아 한참 애를 먹었다.
겨우 셔터를 내린 아버지가 앞서서 자동차 쪽으로 걸었다. 곧 문을 열고 차에 엉덩이를 밀어 넣었다. 통증이 심한지 왼쪽 다리를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들고 온 종이백을 뒷좌석에 내려놓았다.
일기예보는 봤냐?
눈이 오지는 않을 거예요.
일기예보 아주 믿을 것은 못 된다. 기억나지 않니? 네 엄마 장례식 때도 말이야. 갑자기 비바람이 치는 바람에 애를 먹지 않았느냐?
믿지도 않으면서 왜 맨날 일기예보 타령이에요?
그래도 참고를 해야지. 간혹 맞추기도 하거든.
요즘은 대부분 정확해요.
원래 세상일이 정확하게 돌아가질 않는 법이야. 예상이 적중하기는 어려운 법이지. 나처럼 좋은 기술자도 말이야, 새로 만든 양복을 손님이 입을 때마다 온몸에 땀이 난단다. 자로 정확히 재도 희한하게 옷이 안 맞을 때가 있어.
날씨 이야기가 양복 일로 튀었다. 아버지의 세상은 리갈양복점뿐이었다. 나는 양복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추억에 젖은 듯 아련한 눈빛이 되어 과거로 향하는 아버지를 보면 뭔지 모를 울화통이 터졌다. 그의 삶은 완전히 실패였다. 나는 건성으로 들으며 내비게이션에 아버지가 가고 싶다던 사찰을 찍었다. 시동을 켜고 출발하려는데 그가 거칠고 푸석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우선 이거 먹고 출발해라. 홍삼 젤리다. 달고 맛있더구나.
손 위에 놓인 홍삼 젤리. 초등학교 운동회 이후 처음 느껴본 손길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삶은 달걀을 내게 건넸다. 점심시간이 끝난 시간에 부랴부랴 자전거를 타고 온 아버지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손님이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늦었구나. 어서 먹어라. 바람이 강하게 불어 달걀을 씹을 때마다 모래가 함께 씹혔다. 뱉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달걀을 삼켰다. 그때 그의 손은 참 따뜻했다.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길은 꽉 막혔다. 다들 어디로 떠나는 걸까?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자 괜히 주눅이 들었다. 어서 복잡한 길을 벗어나고 싶었다.
동광주 톨게이트를 지나서야 길이 뻥 뚫렸다. 추월산 꼭대기에는 이틀 전 내린 눈이 쌓여 있었다. 산들은 물결을 이루듯 다정하게 어깨를 맞대었고, 구름이 산꼭대기에 머물렀다. 산과 맞닿은 구름 계단이 산과 하늘의 길목이 되었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한 달만의 외출이었다. 속도를 내며 달리니 답답한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최근 마음이 더욱 가라앉는 이유는 아들 때문인 것 같았다. 주원은 어릴 때부터 영리했다. 그때는 남들보다 빠르게 영어를 습득하는 아들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지금은 무리하게 유학을 보낸 것이 후회가 되기도 했다. 주원이 마음을 잡지 못할까 염려스러웠다. 빚을 내서라도 대학원 진학을 도와야 했을까.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주원을 볼 때면 초조해졌다. 삶이 엉킬까 불안했다. 하지만……아내의 말대로 결국 제 길을 찾겠지. 그저 한국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조수석에 앉은 아버지는 홍삼 젤리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원래 주전부리를 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나이가 드니 바뀌는 것이 많았다.
너는 별일 없느냐?
갑작스러운 질문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저 그렇죠. 대충 말을 돌렸다.
그런데 갑자기 의령은 왜 가시려고요?
유명한 곳이기도 하고 기도할 일도 있단다. 법당에 들어서는 것만으로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
어디 아프세요?
건강은 이만하면 됐다.
다른 걱정거리라도…….
사는 것이 다 걱정이지. 너도 알지 않니? 편안할 때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너도 얼굴이 까칠하구나, 복잡한 일이 많을 테지.
나는 백미러로 얼굴을 살폈다. 면도를 하지 않아 더욱 그렇게 느낀 모양이었다.
너희 엄마 49재를 절에서 했잖니? 현모가 그냥 보내기 너무 아쉽다고 꼭 하자고 했지. 그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했다. 그런데 재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편하더구나. 그 이후로 종종 절에 간단다.
아버지가 혼자 사찰을 찾아다녔다는 것은 몰랐다.
너도 마음이 심란할 때 가까운 절에 가거라. 좀 나아질 게다.
…….
화장실에 가야겠다.
벌써요? 출발한 지 겨우 삼십 분 지났어요.
아주 급해.
아침부터 커피를 드시니…….
커피를 마신 것이 아니라 화장실에 간 것이다. 요즘은 소변을 참을 수가 없더구나.
나는 난감한 표정의 아버지를 보며 강천산 휴게소로 진입했다. 전립선에도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전립선이라면 나도 문제다. 밤새 화장실을 두 번 이상 가고는 했다. 아버지가 급한 걸음으로 화장실로 달려간 사이 나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물었다. 요즘은 담배 필 곳이 마땅치 않다.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도 눈치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