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갈양복점5

국수는 삼천원이었고, 안부는 공짜였다.

by 용작가



화장실에서 나온 그가 나를 향해 걸어온다.


멀리서 보이는 아버지는 내가 아는 아버지가 아닌 것 같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단발머리를 단정히 빗고, 의식을 치르듯 옷을 갖춰 입은 후 바느질을 시작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아버지는 어디를 가든 잘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은…등이 굽은 데다 다리까지 절뚝였다. 여느 노인보다 더 초라해 보였다. 손에는 커피가 들려 있었다. 넘어지지는 않을지, 불안했다. 나는 얼른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식으면 먹어라. 너무 뜨겁구나.


걸어오면서 커피를 조금씩 쏟은 모양이다. 뜨거운 커피가 그의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뜨겁지도 않은지 표정은 변화가 없다. 아버지는 손에 묻은 커피를 털어내고, 검은색 점퍼에 닦았다.


다리도 불편하시면서. 제가 알아서 마실 텐데요.


너 커피 좋아하잖니. 아침에 일찍 나오느라 못 마셨을 텐데 어서 먹어라. 바람이 차니 금방 식을 거다. 뜨거운 것은 식도에 좋지 않아.


아버지가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었다. 매일 아침, 진한 아메리카노를 즐긴다는 것을 말이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속이 쓰렸다. 빈속이라 그런 것 같았다.


다리를 절며 뜨거운 커피를 들고 오던 아버지의 모습이 이상하게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차에 오르자 아버지는 뒷좌석의 종이백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소중한 물건이라도 되는 듯 종이백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만날 때마다 아버지는 비슷한 색감의 바지를 만들어 왔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다.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는 성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아버지, 전 안 입어요.


그가 무슨 말이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만들어 주신 바지도 그대로 있어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양복바지가 왜 필요하겠어요?


출근복이 아니다. 외출복으로 입어라.


출근이고 외출이고 갈 데가 없다니까요.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장롱에 걸려있는 바지를 보면 괜히 부아가 올랐다. 싫다는 데도 굳이 새 바지를 만드는 이유를 모르겠다. 선모나 현모라면 모를까. 둘 다 공무원이므로 깔끔하게 출근할 필요가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이제 아주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 회사에서 퇴직을 종용하자 서운함과 함께 분노가 쌓였다. 하지만 문제는 감정이 아니었다. 돈이었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 주원의 말처럼 직장 생활만으로 가정을 꾸리고 노후 대비를 하는 것은 어려웠다. 아무리 절약해도 집 한 채 마련도 힘든 세상이다.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집값과 증시를 볼 때면, 대출이라도 받아서 투자할 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회사가 경영 악화를 이유로 퇴직을 권했을 때 재테크에 성공한 이들은 미련 없이 떠났다. 나는 끈질기게 남으려 했다. 구차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남고 싶었다.


실직을 통보하자 아내는 왜 버티지 못 했느냐고 화를 냈다. 세상에 어쩔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다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맑았던 하늘이 점차 흐려졌다. 그래도 눈은 오지 않을 것이다. 함양 IC 출구로 나와 국도로 접어들었다. 의령에 가까워질수록 산의 경사가 급해졌다. 삼각형을 펼쳐 놓은 듯한 산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부르르 휴대폰 벨이 울렸다. 점퍼 이곳저곳을 뒤적이며 휴대폰을 찾고 있는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지금 의령 가는 길이네. 여행이지. 아들은 운전 중이네. 점심, 벌써 점심때인가? 고맙네. 이제 먹어야지.

누구예요?


오가다방 김 마담이다.


점심 식사도 그곳에서 하세요?


커피로는 수지가 맞지 않으니 국수를 말아 판단다. 단돈 삼천 원이다. 오는 이들은 빤하지. 단골은 정해져 있으니까. 오늘 내가 올 것인지 묻는 전화야. 그래야 적당한 양의 국수를 삶을 수 있잖니.


밥을 드셔야지요.


밥이든 국수든 혼자 먹는 것보다는 낫다. 매일 내 안부를 묻는 사람은 김 마담뿐이다. 물론 돈 벌려고 그러겠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껄껄 웃었다.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혼자 있는 시간은 견디기 어려웠다.

오후 4시가 되면 무력감으로 하염없이 가라앉았다.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셨다. 소주를 한 병을 비우고 나면, 잠시나마 마음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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