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갈양복점6

겨울 점심, 아버지의 늦은 고백

by 용작가

나는 아버지에게 오가다방 김 마담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만이 아버지의 하루 안부를 묻고, 식사를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아침은 드셨어요?


뜨거운 물에 밥을 말아 먹었다. 겨울엔 그게 좋아.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정오가 넘었다. 점심 이야기를 꺼내자 갑자기 식욕이 생겼다. 오랜만에 느낀 배고픔이었다. 아침부터 몸을 부지런히 움직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도 배가 고팠는지 사찰에 가기 전 식당을 가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군청 주변 공영주차장에 주차했다. 천천히 걸어 식당을 찾아볼 요량이었다. 소바 전문점과 국밥집이 많았다. 소바가 별미일 것 같았지만 아침을 먹지 않은 상태라 국밥집을 선택했다.


고기 냄새를 맡자 군침이 돌았다. 따로국밥을 주문하고 한 숟가락 뜨니, 연한 소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았다. 새콤달콤한 무생채는 진한 국물과 잘 어울렸다. 아버지도 시장했는지 숟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무작정 들어온 식당이었지만 맛집이 틀림없었다.


개운하구나.


술을 주문할까요?


아니다. 이제 술은 많이 안 마신다. 술을 마셔도 취하지도 않더구나. 게다가 절에도 가야하고.


술을 끊으셨어요?


아주 안 먹는 것은 아니고. 예전처럼 매일 먹지는 않아. 주량도 많이 줄었다. 너도 많이 마시지는 마라.


젊었을 때 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빛나는 자신의 삶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자신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말할 때면 의아했다. 삶 어느 부분이 성공한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술에 의지해 양복점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었다. 술은 실패를 잊게 해줄 것이다. 내가 그런 것처럼.


국물도 다 드세요. 속이 확 풀리는 것 같아요.


네 엄마가 살아있을 때 같이 여행도 다니고 했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양복점을 지키느라 그러질 못했어. 너도 알지 않니? 맞춤옷이 좋을 때도 있었다는 것을 말이야. 나는 다시 그런 날이 오리라 믿었다. 기성복은 옷맵시를 살리지 못하니까 결국 맞춤옷의 시대가 돌아올 것이라 믿었단다. 그렇게 기다린 거야. 잘못 생각한 거지. 그런데 말이다. 양복점을 떠날 수가 없구나.


아버지가 처음으로 자신의 실패를 인정했다.


맞춤옷의 영광이 재현되리라는 예측이 빗나갔음을 이제 알게 된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깨달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내 인생은 틀려먹었어. 양복점을 놓지 못한 것이 후회되네. 당신이 고생 많았어. 참회하듯 그렇게 말했더라면 그리고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더라면 그녀의 마지막이 조금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가 순순히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있는데도 통쾌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다만 알면서도 떠날 수 없다는 심정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울적해졌다.


입을 닦아라.


아버지가 티슈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그와 함께 있으니,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물을 마신 아버지가 점퍼 안을 뒤적이더니 하얀 봉투를 꺼내 식탁에 놓았다.


기름값에 보태라.


됐어요. 아버지가 무슨 돈이 있다고.


겨울에는 일이 좀 있단다. 여행 경비는 내야지.


나는 아버지가 건넨 봉투를 거절하지 못했다. 통장 잔고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겨우내 한 땀, 한 땀, 부지런히 바느질한 돈이 봉투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나는 봉투를 주머니에 넣은 후 식당을 나섰다.


식당 밖으로 나오니 눈이 내렸다. 눈 소식은 없을 거라더니. 괜히 무안해져 아버지를 바라보았는데 어린아이처럼 양손을 펼치며 눈을 맞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어깨에 쌓인 눈을 털었다. 쌓인 눈을 털어내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 속에 웃고 있는 아버지가 아주 낯설었다.

웃음이 많은 편이셨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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