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갈양복점8

아버지의 길

by 용작가

오후 세 시가 넘은 시간에 사찰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암절벽이 아버지와 나를 내려다보았다.


저게 저절로 생긴 바위란다. 이런 곳에 사찰이 있다니 신기하구나.


아버지는 바위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오르막길을 걸어갔다. 잰걸음으로 바삐 걷는 아버지가 넘어지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일주문 앞에서 나는 아버지를 불렀다.

사진 찍어 드릴까요?


사진 말이냐?


아버지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세웠다. 사진 한 장 부탁합시다. 그들은 부부로 보였는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웃으셔야죠. 좀 더 가까이요. 네, 좋아요. 찍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내가 사진으로 남았다. 사진 속 그와 나의 거리는 멀었다.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사찰에 들어서자마자 아버지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대웅전으로 들어서자 아버지가 텔레비전에서 봤다던 거대한 동굴이 펼쳐졌다. 신발을 벗기 전 아버지가 입구에서 판매하는 공양미를 샀다. 쌀을 담은 비닐 팩 위에는 소원을 쓸 수 있는 칸이 있었다. 아버지가 볼펜을 들어 글을 썼다.


김근모, 만사형통. 김근모라니? 김남식이라는 이름을 잘못 쓴 것은 아닐까. 혹시 현재의 내 상황을 알고 있는 것인가.

나는 왜 내 이름을 썼는지 묻지도 못하고 아버지가 하는 양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동행을 제안했을 때 뭔가 미심쩍었다. 그토록 의령 땅을 밟고 싶었던 이유가 나 때문이었던가. 우물쭈물 서 있던 나도 공양미를 샀다. 그리고 김남식, 건강 기원이라고 썼다. 신발을 벗고 법당에 오르니 발이 시렸다. 발꿈치를 들고 석불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를 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합장을 한 채 차가운 바닥에 앉아 있었다. 나는 기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일어나는 아버지의 다리가 휘청했다.


대웅전에서 나온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발길이 닿는 대로 사찰을 둘러보았다. 바람이 강해지자 아버지의 좁은 어깨가 더욱 움츠러들었다.


아버지, 장갑도 끼시고 옷도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


아버지의 옷차림은 여행자의 차림이 아니다. 아버지는 오늘도 양복바지를 입고 있다. 동복도 아닌 춘추복이었다. 게다가 무릎 쪽은 보풀이 일었고 바짓단도 헤져 있었다. 자신을 위해 바느질을 하면 좋으련만.

자동차에 오르자 피곤에 지친 아버지가 낮게 코를 골며 잠들었다. 꿈속에서도 옷을 만드는지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바느질을 하듯이 말이다. 오늘 밤은 아버지와 함께 집에 가면 어떨까 싶었다. 아니지. 우선 리갈양복점에 들러야 할 것이다.


아버지는 아무도 찾지 않는, 누구의 손길도 필요하지 않은 양복점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광주에 도착하기 무섭게 곤란한 표정으로 양복점 근처에 내려줄 수 있겠느냐고 묻겠지.

나도 오랜만에 아버지를 도와 쓸 일 없는 재봉틀에 기름칠을 하고 먼지 없는 바닥을 청소하고 뜨거워질 리 없는 다리미를 점검해야겠다. 정리가 끝나면 주원과 함께 망개떡을 먹어야겠다. 어릴 때 주원은 떡을 참 좋아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 같이 막걸리를 한 잔 할 수도 있겠지. 술기운을 빌어 주원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곤히 잠든 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주름 깊은 얼굴에는 아버지의 삶이 있다. 양복장이의 삶, 어릴 적 바라던 꿈을 이루어 평생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 인생 말이다.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았으니 실패한 인생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단 한 번도 꿈을 꾸지 않았다. 상황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오십이 훌쩍 넘은 지금, 다시 꿈을 꿀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광주로 향하는 길, 뭔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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