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보호처분을 아시나요?

소년 보호 처분을 받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by 뚝이샘

보호처분을 아시나요?

특별한 학교에서 근무하는 저는 교사입니다.

대한민국 수학 교사로 살고 싶었습니다. 큰 욕심 없이 교사되서 평교사로 아이들과 함께 있다가 정년퇴임하는 것이 목표였던 사람입니다.


그냥 그렇게 평범한 교사이고 싶었어요.

그런 제가, 지금은 완전히 다른 곳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상담실에서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어 옵니다.

“야, 너 몇 호야?”

“나, 7호.”

“그러는 넌?”

“나, 3호.”

가만히 듣고 있던 내가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얘들아, 몇 호가 무슨 말이야? 립스틱 호수를 말하는 거니?”


아이들이 단체로 나의 질문에 웃음을 터뜨립니다.

“아, 씨발~

쌤~~쌤 바보예요? 우리가 무슨 립스틱 호수를 따져요.

쌤~ 보호 처분을 말하는 거잖아요.“

내가 묻는다.

“보호 처분? 그게 뭐야?”

아이들이 친절할리 없다.

“쌤 됐어요. 쌤은 아무리 말해도 몰라요.”

그렇게 나는 교무실로 와서 열심히 찾아봅니다.

보호처분에 대해 말이죠.


보호처분, 아이들 말처럼 처음 들어본 단어였다.

화장도 잘 하지 않는 나는, 사실 립스틱 호수도 잘 모른다.

그런 내가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겠다고 던진 말,

“립스틱 호수야?”

다시 생각해도 이불킥을 하고 싶다.

아이들이 보았을 때 내가 얼마나 멍청해 보였을지...

그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우리 학교에 오는 적령기학생들(우리 학교에서는 10대 청소년을 일컫는다.)은 보편적으로 일반학교에 적응이 어려운 아이들이 온다. 아이들이 적응을 못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학교폭력 피해자, 우울증, 조울증, 보호처분을 받고 있는 아이들~ 정말 다양한 이유로 우리 학교를 택한다.


감사하게도 나는 아이들을 아이들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은 중, 고등을 뜻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유초등은 나와 맞지 않는다. 중,고등 아이들은 마냥 예쁘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 꼭 되고 싶었다.


내가 자신들을 좋아하한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 스스로도 느낀다. 내가 본인들을 다른 어떤 선생님 보다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이 직감적으로 느낀다. 이는 좋아한다는 말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아니다.

그렇기에 사실 위와 같은 대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어는 날, 갑자기 온 몸의 문신을 과시하듯 보여주는 아이가 있었다.

나도 사실 무서웠다. 아이들은 예쁘지만 문신한 아이, 그것도 등 전체가 용으로 꿈틀대고 있는 아이의 등판을 보는데,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아이들 기에 눌릴 수 없다.

학생인권이고, 나발이고 나는 오늘 이 아이에게 관심이 있음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등짝을 후려치며,

“이 자식아, 등에 용있다고 사람들이 너 무서워 하지 않아. 얼른 옷입어. 이런 것도 때와 장소를 봐가며 과시해야지. 여기서 너가 용있다고 해 봤자. 아무도 안무서워해. 네 문신은 학교에서는 안보일수록 멋진거야. 꽁꽁 숨기고 다녀. 다른 학생들 기죽이지 말고.”


우리 아이들 그래도 착하다.

“아, 쌤. 이거 그리느라 얼마나 아팠는데요.”

“그러게 이놈아, 이거 참을 요량이면 넌 정말 성공할거야. 쌤은 참지도 못해. 넌 그 무서운걸 참았으니, 꼭 성공할거야. 너 꼭 성공해서 쌤 찾아와야 한다. 모른 척 하면 혼나.”

그렇게 우리의 대화가 마무리 된다.


나는 이렇게 팔, 다리는 기본이고, 등 전체에 문신이 있는 아이들, 서로 자기가 더 높은 처분을 받았다며 자랑하는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사실 내가 생각한 범위의 아이들은 아니지만, 나는 이 아이들이 사랑이 고프다는 것을 알기에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을 나눠주고 있다.


경력 많은 선배교사는 나에게 말한다.

“선생님, 이 아이들 밖에서 생활하는 거 보면 선생님 엄청 놀라실거예요. 아주 가관도 아니예요. 나쁜 일을 하는 아이들도 많아요.” 라고 말이다.

그러나 아직 저경력 교사인 나는, 그 아이들의 학교 밖 생활에 놀라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학교 안에서 이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을 뿐이다. 학교 안에서만이라도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그 힘으로 학교를 잠깐 나오든, 오래 나오든, 어떻게든 나와서 졸업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 마음을 우리 아이들이 알아줄 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