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회 쇳물백일장 차상 (글제 : 기록)
친정아버지의 방은 오늘 밤에도 환히 밝을 것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그 연세에도 매일 무엇을 그리도 끄적이시는지 책상에 앉아 계신다.
청송군 부남면 중기리는 나의 본적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자 업마와 아버지가 살고 계신 고향집이 있다. 평생을 땅만 보고 그것이 전부라 여기시며 땀을 흘리신다.
가끔 아버지 방에 가서 책상을 정리해 드릴 때가 있었다. 사과와 복숭아 농사를 지으시는 분의 책상답게 택배 송장과 메모지가 널려졌다. 족히 십 년은 된 듯한 종이부터 장갑과 마스크에 이르기까지 폭탄을 맞은 듯 엉망이다. 그 사이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는지 아버지는 청소를 한 것이 마뜩잖아 하신다.
서랍을 열어보면 더욱 가관이다. 엄마 몰래 샀다는 이름 모를 관절 영양제와 사진첩에 들어가지 못한 추억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또 기능을 다한 통장 뭉치와 삼십 년 전 팩시밀리의 리필지까지 그대로 세월이 멈춰져 있는 듯하다.
손길이 멈춘 곳은 가장 아래 칸에서였다. '농민일지'라고 쓰인 짙은 초록색의 다이어리가 보였다. 나는 무슨 비밀 수첩이라도 넘기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꺼내 보았다. 한 권을 빼내자 그 아래에 여러 권이 더 있었다. 'TV쇼 진품명품'이나 박물관의 유물을 만질 때처럼 흰 장갑을 끼고 예우를 해 줘야 할 것만 같았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첫 장을 넘겼다. 오른쪽 상단에 2011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대체로 농사에 관한 내용이었다. 모내기, 지원이네서 트랙터 빌려 밭 갈기, 콩 타작, 사과밭 가지정리 등 짧은 메모로 되어 있었다. 다른 일지도 열어보니 거의 내용과 날짜가 비슷했다. 고추 심기는 작년과 그해가 신기할 만큼 같은 날이어서 놀라있다. 대여섯 권이 모두 농사와 관련된 아버지만의 기록이라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많은 날들을 매일 또는 며칠에 한 번씩 적어 놓으신 것에 세월이 헛되지 않음이 증명되었다.
다시 2011년의 일지를 펼쳤다. 내가 결혼한 4월을 넘겨보았다. 짧은 메모로 가득하던 페이지와는 달리 긴 글이 쓰여 있었다. 나는 그제야 자리를 잡고 방바닥에 앉았다. 아버지의 일기를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 나갔다.
'수정이가 시집을 간다. 4월. 초등학교 6학년 때 포항으로 전학을 보내고 동생들까지 돌봐준 맏딸. 사춘기도 없이 연년생 수미, 영탁이까지 다 책임을 졌다. 할머니가 계셨다면 수정이가 고생을 안 해도 되었을 텐데 미안하다. 커서 살림을 꾸린다는데 기특하고도 아깝다. 신부 입장을 할 때 손을 잘 잡고 들어가야 할 텐데,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의료원에 가서 다리에 힘들어 가는 주사를 한 대 맞고 가야겠다.'
대체로 이런 내용이었다. 아버지의 정갈한 글씨체가 아닌 감정대로 휘갈겨 쓴 듯한 일기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그 당시가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말 그대로 코끝이 시큰하고 심장이 요동쳤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늘 메모와 기록을 일상처럼 하셨다. 신문이나 우편물, 심지어 택배 송장에도 떠오르는 글귀를 적으신다. 그래서 아버지 책상을 정리해 드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남들이 보기에는 엉망진창일지 몰라도 아버지께는 보물창고인 것이다.
나는 농민일지를 본 것에 대해 아버지는 물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냥 내 마음 깊숙이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글로 쓰니 이 또한 나의 기록이 되고 있다.
지난가을에 추석 대목을 준비하며 농장에 사과를 따러 간 적이 있었다. 아버지께 조심스레 여쭈었다. 혹시 그간 써 놓으신 메모나 일기 같은 기록이 있으면 편집을 해서 책으로 보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부끄러워하셨지만 한번 생각해 보겠다며 긍정적으로 답변을 주셨다.
일기 하나가 한 사람의 기록이 된다. 아버지의 책상 서랍 안에는 우체국에서 받으신 2025년 다이어리가 있다. 이제 4월 어느 날에 볼펜이 꽂혀서 아버지의 오늘이 기록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