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 보다 중요한 어머니가 가르쳐 준 문학의 마음

제 52회 신라 한글 백일장 우수상 (글제 : 한글)

by 박수정

고3 국어영역 모의고사 풀이를 해 주다가 말고 나는 휴지부터 찾았다. 코를 풀고 다시 앉았지만 흔들리는 목소리는 쉽게 누그러지지 않았다. 앞에 앉은 학생들은 내가 왜 우는지 알 리가 없었다. 정일근 시인의 「어머니의 그륵」을 읽고 해설을 하다가 나는 갑자기 수업을 멈추었다.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어머니는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그랬다. 화자의 어머니는 한글 맞춤법을 잘 모르시는 분이다. 그에 반해 그는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시인’이다. 그런 자신이 어머니 앞에서는 부끄러워진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무엇이라고 정확히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이날 이후, 이 시는 나의 마음에 터를 잡고 함께 호흡하고 있다.


1999년에 발매된 가수 지오디의 ‘어머님께’라는 노래가 인기를 얻을 때의 일이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가사를 종이에 옮겨 놓은 적이 있었다. 나와 여동생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청송에서 포항으로 전학을 와서 살았다. 생각해보면 부모님과 함께 산 세월은 그리 길지 않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 하신 부모님은 배움이 짧아 농사만 짓고 사는 것을 한스러이 여기셨다. 전학을 가지 않으면 당신들처럼 촌에서 힘들게 땅만 파고 살아야 한다며 우리 자매를 고모가 계신 포항으로 유학을 보내신 것이다. 그마저도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고모와 떨어져 우리끼리 자취를 하기 시작했다. 겨울방학 때, 농한기가 되면서 자취방으로 나오신 어머니가 밥을 해 주셔서 며칠 머무르셨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대뜸 하신다는 말씀이,

“느그끼리 산다고 자장면도 제대로 못 사먹고 많이 힘들었제?’

하시며 눈물을 훔치시는 것이었다. 그때는 남동생도 전학을 온 뒤라서 방 2개짜리 작은 아파트에서 삼남매가 살고 있을 때였다.

“엄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고?”

“내가 느그 글 써 놓은 거 다 봤다. 부모가 되서 미안테이.”


우리가 학교를 간 틈에 어머니는 청소를 하셨단다. 책상을 정리하시다가 전날 밤에 내가 써 놓은 가사를 본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안도를 하셨지만 노랫말이라고 믿지 않으셨다. 그래서 뮤직비디오를 틀어서 보여드렸고 그제서야 눈물을 거두시며 웃으셨다.

“내 오늘 자장면 시켜 주꾸마. 먹고 싶은 거 다 시켜봐라.”

라며 목소리에 힘을 돋으셨다. 자장면과 짬뽕에 이어 평소에 못 먹던 탕수육까지 먹었던 기억이 난다. 기름값이 아까워 바깥 온도와 별반 차이가 없던 자취방이었지만 그날만큼은 봄날 햇살처럼 방 공기가 훈훈했다.


어린 시절, 면소재지에 있는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신문 귀퉁이에 적힌 메모가 밥상 위에 함께 올라왔다. ‘덴뿌라, 오덴, 뱁추씨, 무꾸씨’ 등의 메모가 그것이었는데 삐뚤빼뚤한 글자를 봐서는 어머니의 흔적이 틀림없었다. 글을 배우고 공부를 하기보다는 집에 와서 밭일 거들기에 하루를 보내셨을 것이다. 서툴은 한글만 보더라도 어머니의 짧았던 학교 생활이 그대로 그려진다. 그렇기에 맏이인 내가 부모님께는 희망이었다. 더욱이 국문학과에 진학한 나는 특히 어머니의 자랑이며 삶의 이유였다.


학생들에게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어 맞춤법도 세심히 봐 주고 있다. 받아쓰기는 물론이고 글자를 틀리지 않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시와 산문 등 문학의 감성은 맞춤법보다는 독자에게 전해지는 감동이 아닐까 생각된다. 정일근 시인의 ‘어머니의 그륵’처럼 그리고 내 어머니의 삶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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