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강의 타자
베이브 루스는 1914-1935년 동안 선수로써 활약하면서
위와 같은 통산기록을 남겼습니다.
특히 통산 714 홈런은 1974년 또 다른 명예의 전당 타자인 행크 애런이 깨기 전까지 무려 50년이 넘는 동안 통산 1위 자리를 유지했죠.
또한 통산 2214타점도 1975년 마찬가지로 행크 애런이 꺠기전까지 1위를 유지했습니다.
이렇게 클래식 스탯으로만 보아도 역대급인 베이브 루스 더 자세히 보면 어떨까요?
먼저 베이브 루스의 통산 WAR(승리기여도)는 베이스볼레퍼런스기준으로 182.6 팬그래프기준으로 179.4로 두 곳에서 다 역대 1위입니다 보통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기준을 60쯤으로 잡는다는 것을 보면 약 3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값이죠.
또한 통산 wRC+(조정득점생산력)은 194인데 현역 선수 중 단 한 시즌이라도 194를 넘긴 선수는 애런 저지(2022,2024,2025), 브라이스 하퍼(2015), 후안 소토(2020) 단 3명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소토는 단축시즌에 기록한 것이죠. 즉 다시 말해 거의 모든 선수는 단 한 번이라도 베이브 루스의 통산 wRC+를 넘겨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통산으로 봐도 압도적인 베이브 루스 단일시즌으로 보면 어떨까요?
베이브 루스의 커리어하이 시즌은 1923년인데
해당시즌 타율/출루율/장타율 0.393/0.545/0.764과 함께 BWAR 14.1 FWAR14.7을 기록했죠.
이 역시 역대 1위 기록입니다. 또한 커리어동안 베이스볼레퍼런스기준 시즌 WAR1위를 11번이나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세이버 스탯만으로도 베이브 루스를 온전히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시대적 배경 때문이죠.
메이저리그의 시대는 크게 데드볼시대와 라이브볼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 베이브 루스이죠. 왜일까요?
데드볼시대는 극심한 투고타저 시대였습니다. 특히 타자들의 홈런이 없었죠. 1909년 타이 콥은 단 7개의 홈런을 기록하고도 홈 헌 왕을 기록하기도 했죠. 이때 베이브 루스가 홈런을 알아보고 홈런을 치기 위한 플레이를 하죠. 1920년 29 홈런을 기록하더니 1921년 54개 1922년 59개를 치면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죠.
특히 1921년 기록한 54 홈런은 무려 15개 구단들보다 많은 수치이고 양키스 홈런 비중에서 40%가 넘는 정도였죠. 이렇게 베이브 루스가 압도적인 홈런쇼를 보여주자 다른 구단, 선수들도 홈런의 가치에 대해 알아보고 리그의 전반적인 판도가 바뀌면서 더 장타위주의 오늘날 같은 야구로 바뀌게 되었죠.
많은 분들은 아마 오타니 덕분에 먼저 접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오타니이전 이도류로 이름을 날렸던 선수가 베이브 루스이기 때문이죠.
심지어 투수로도 잘했습니다. 통산 163경기 94승을 거두었죠.
1916년에는 ERA 1.75로 리그 1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아쉽게도 양키스이적 후에는 타자에 온전히 집중을 하면서 투수 등판을 거의 하지 않게 되지만 그럼에도 당시 뛰어난 투수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죠.
베이브 루스가 남긴 기록은 화려합니다. 아직까지도 홈런, 타점, 볼넷 같은 클래식 스탯은 탑 5안에 들고
세이버매트릭스로 보면 요즘시대 선수들과 격이다를 정도로 압도적이었죠.
심지어 루스의 대단한 점은 메이저리그의 인기를 되살렸다는 점입니다.
19010년대 메이저리그에 블랙삭스스캔들 같은 여러 악재가 터지면서 큰 위기를 맞았지만 베이브 루스라는 압도적인 스타의 탄생이 메이저리그가 다시 부흥하는 원동력이 되었죠.
하지만 베이브루스가 가장 고평가를 받아야 할 부분은 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점입니다.
홈런이 없던 시대 홈런을 치고 결국에는 리그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현대야구에까지 크나큰 영향을 미친 베이브루스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 불림에 부족함이 없다 생각합니다.
베이브 루스는 1926년 월드시리즈에서 끝내기 도루사를 기록했습니다.
베이브 루스는 역사상 최고의 대도인 리키 핸더슨보다 홈스틸이 많습니다.
베이브 루스는 라이브볼시대 최고의 투수중하나인 페드로 마르티네즈보다 완봉이 많습니다.
베이브 루스는 MVP가 1번밖에 없습니다. 당시의 독특한 규정 때문이죠.
출처:베이스볼레퍼런스,팬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