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밍 덕후세요?
연구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Qualitative 연구 방법으로 인터뷰 등이 포함되고 다른 하나는 Quantitative 즉 통계학적 연구방법으로 설문지 등이 포함된다. 간단히 말하면 Qualitative는 언어로 표현된 정보를 읽고 의미를 찾는 방법이고 Quantitative는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결과를 말한다. 요즘에 자주 사용되는 빅데이터 연구 중에서는 Qulitative 데이터 그러니까 SNS 나 블로그 글 등 언어로 적힌 데이터들을 긁어모아서 통계학적으로 연구하는 방법, Natural Language Processing,이 있다. SNS나 블로그가 워낙 방대한 양의 정보를 제공하니까 사람이 하나하나씩 읽어가며 해석하고 분류하는 방법으로는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기에 사람이 했던 일을 컴퓨터에 적용해서 패턴이나 특정한 단어들이 몇 번 정도 사용되었는지 등을 알아보는 것이다.
아무튼, 내가 코딩에 발을 들이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아니지, 발을 들인 게 아니라 끌려 들어갔다고 봐야겠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박사과정 1년 동은 주로 논문을 읽으면서 어떤 주제로 연구할 것인지 계획하는 것이다. 살아남으려고 스페인어도 배웠다. 배우면 배울수록 자신의 무지를 깨달아 가는 것이 배움이라고 했던가. 그렇다 배우면 배울수록 스페인어는 나날이 어려워졌고 인터뷰를 진행하기는커녕 해석하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롭게 "그렇담 설문지나 실험으로 연구하겠어요" 했지만 사실 설문지를 제작하고 또 적절한 수의 설문지를 회수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실제로 지금 유럽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9명의 대학 총 20여 명의 연구원들이 모여서 6개월이 넘게 설문지를 제작하고 있다. 그때 나에게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온라인에 이미 있는 정보들을 긁어모아서 컴퓨터로 자동 분석하는 것. 내가 기계치라는 큰 변수는 덮어두고 무작정 프로그래밍까지 배우게 되었다.
프로그래밍은 호불호가 아주 극명하다. 프로그래밍을 할 사람과 아닐 사람이 명확히 보이는데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는 사람은 게임처럼 중독되고 프로그래밍을 싫어하는 사람은 알레르기 반응처럼 나타난다. 실제로 프로그래밍을 가르쳤을 때 에러가 나도 덤덤한 사람이 있는 반면 에러가 날 때마다 눈물이 터지는 사람도 있었다. 문제는 프로그래밍에 중독이 됐을 때이다. 게임은 끝판왕이라는 것이 있지만 프로그래밍 에러는 끝판왕이 없다. 그래서 한번 시작하면 계속 다음 판 에러들을 깨고 있다. 컴퓨터를 침대 옆에 두고 자기 직전까지 에러를 풀고 잠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에러를 또 떴는지 확인하며 좀비가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한창 프로그래밍을 해야 했을 때는 코드 속으로 들어가는 꿈도 많이 꿨는데 항상 코드 사이에 끼여서 버둥대는 꿈이었다.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주로 '귀찮은 걸 싫어해서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한다', '분류하고 정리하는 것을 아주 즐긴다', '생각보다 꼼꼼하지는 않다'라는 성향을 공유하고 있었다. 코딩을 가르쳐준 이도 입버릇처럼 '난 귀찮은 것을 아주 싫어하기 때문에...' 라며 반복적인 일을 코딩으로 항상 간단하게 했다. 지금 같이 일하는 프로그래머들도 누구 할 것 없이 분류를 아주 철저히 해서 폴더 안에 폴더 안에 폴더를 만드는 것을 즐긴다. 간단하게 쉽게 하려는 성격 때문에 꼼꼼하게 잘 보지 못해서 항상 에러가 나고 다행히 그런 에러들이 오히려 더 업그레이드 된 코딩을 만든다.
박사 과정이 끝난 지금은 내가 연구했던 주제보다 프로그래밍이 더 큰 자산이 되었다. 연구보다는 프로그래밍이 더 적성에 맞다. 의사인 내 친구는 수술을 할 때 최고의 몰입을 경험한다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온전히 집중하게 되는 무아지경 상태. 프로그래밍을 하는 나도 무아지경이 된다. 복잡하고 긴 것을 간단하고 명확하게 줄이고 분류하는 것에서 오는 희열이 있다. 그렇다고 인생의 에러에 그렇게 집착하는 편은 아니다. 아무래도 인생의 에러들은 분류가 불명확하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코딩의 세계에서 여전히 푸드덕 거리며 언젠가 날아오를 수 있는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