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

손길은 깊이 남는다.

by 뽀득여사
“이불을 왜 이렇게 다 차버리고 자니. 그러다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잠결에 시린 발끝으로 느껴지는 온기. 어깨를 감싸는 이불의 무게, 그리고 토닥토닥.

어릴 적 엄마는 그렇게 수시로 내 이부자리를 다시 챙겨주셨다. 여름이면 배탈이 날까 봐 배를 덮어주시고, 겨울이면 감기에 잘 걸린다며 온몸을 솜이불로 꼭꼭 감싸주셨다.


나는 추위도 더위도 잘 참지 못하는 아이였다. 조금만 더워도 “덥다, 덥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춥다, 춥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면서도 잠이 들면 나도 모르게 이불을 걷어차는 습관이 있었다.
결혼 전까지, 엄마는 딸의 이부자리에 얼마나 많은 손길을 건네셨을까.



“이불을 잘 덮고 자야지. 그래야 감기에 안 걸리지.”


지난밤에도 잠결에 손길이 느껴졌다. 어깨 위로 포근한 이불이 다시 덮인다. 아마 남편은 또 잠결에 내 이불을 덮어주었나 보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에어컨도, 난방도 누구보다 먼저 켜는 사람이다. 반면 남편은 나와 정반대다. 더위도 추위도 별로 타지 않는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에어컨이나 난방 없이도 잘 지낼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틀 것 다 틀고 잔다. 그리고 잠이 들면, 또다시 이불을 차버린다.


언제부턴가 남편은 밤마다 내가 차버린 이불을 여러 번 다시 덮어준다. 환절기 비염이 있는 나 때문에, 간혹 그는 나의 코 고는 소리까지 감당해야 한다. 잠귀가 밝은 남편은 그럴 때면 종종 잠을 설치곤 한다.


“아이, 내가 코 골면 머리를 옆으로 돌려놓으라니까.”

“그러면 네가 잠이 깰까 봐.”


여러 번 말해도 남편은 자는 내 고개를 돌려본 적이 없다. 깨울까 봐, 놀랄까 봐, 잠에서 멀어질까 봐. 대신 그는 조용히, 또 어느새 차버린 내 이불을 덮어준다.




고마운 손길. 사랑의 손길.
사랑하는 사람에게 손길은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마음이다. 괜찮냐고 묻기 전, 설명이나 위로가 필요하기 전, 상대의 몸과 리듬을 기억하고 그 자리에 조용히 머무는 방식의 사랑. 조용하지만 깊고 따뜻한 사랑의 손길.


아이를 키우는데는 늘 손길이 필요했다. 잠들기 전 등을 토닥이고, 아픈 밤에는 이마에 손을 얹어보고, 울음을 멈추지 않을 때는 아무 말 없이 곁에 앉아 손을 놓지 않는 일. 딸아이가 다 큰 성인이 된 지금까지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손길을 아이에게 건넸을까.그렇게 손길로 사랑을 건네는 동안, 어느새 나는 받기만 하던 사람이 아니라 내미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손길은 깊이 남는다. 기억보다 먼저 남는다. 어떤 말이나 상황은 잊혀도, 손길은 몸이 먼저 기억한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 나를 사랑했는지를, 누가 나를 살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사랑이란, 오래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따뜻한 손길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밤에도 남편은 또 조용히 내 이불을 덮어줄 것이다. 잠결이라도 그 따뜻한 손을 꼭 잡아주고 싶다.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소담히 담아 그 손길 위에 내 손을 포개고 싶다.

어릴 적에는 엄마의 손이 나를 지켜주었고, 엄마가 된 나는 그 손길을 우리 아이에게 보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느새 나는 중년이 되었고, 내 옆에는 중년이 된 남편이 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해 왔고, 또 함께해 갈 두 사람. 서로의 곤한 잠을 깨우지 않으려 애쓰는, 말 대신 손으로 안부를 묻는 두 사람의 따뜻한 밤이 있다.


나는 오늘도 이불을 차버리고, 그는 다시 덮어주고, 나는 그의 손을 살며시 잡는다.





P/S <월간 에세이>에서 감사한 손길을 제게 건네주셔서 3월호에 '손길' 글을 실어주셨습니다.

따뜻한 손길을 건네고 건네받는 행복한 봄 날 되시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