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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사항 Jan 16. 2024

부모님의 시간

동거인이 지인의 시부상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돌아가신 분은 향년 89세이셨다. 언젠가부터 결혼식보다 장례식에 가는 일이 잦다. 올해 여든이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부고 소식이 그저 남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수학 시간에 수직선을 그리고 그 위에 숫자를 표시했다. 수직선이 사람의 시간을 표현한 것 같다. 아주 촘촘한 점들의 시간이 연결되어 선을 만든다. 살아온 시간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나 사건은 수직선에 표현한 자연수처럼 굵은 점으로 표시된다.


부모님은 내가 수직선 위 0에서 시작할 때부터 쭉 함께였다.

언제나 나의 든든한 보호자이셨는데, 한 아이의 부모가 되고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었다. 노화는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지만 부모님이 점점 나이가 들면서 약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얼마 전 함께 식사하러 가는데, 아버지가 입은 겨울 점퍼가 낡아 보였다.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후로 옷은 깨끗하고 단정하고, 갈아입을 정도로만 있으면 된다는 원칙을 정했다. 그 원칙 덕분(?)인지 예전과 달리 한동안 부모님께 옷을 선물하지 않았다. 부모님께 당장 따뜻한 옷을 사드리고 싶은 마음에 집에 돌아와 폭풍 검색을 했다. 부모님이 좋아하실 디자인을 고르고, 네이비색과 아이보리색 옷을 주문했다. 옷이 도착한 후 통화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주 밝다. 맘에 쏙 드신 게다. 이럴 때 돈 쓴 보람을 느낀다. 옷이 필요 없다고 취소해 달라고 하신 엄마는 막상 옷을 보니 입고 싶다 하셔서 한참을 웃었다. 귀여운 우리 엄마.


예전 회사 동료들과의 연말 모임에 다녀오신 아버지께 어떠셨냐고 여쭈어보니 "다들 한 것도 없는 것 같고, 후회된다"라는 말씀을 하셨단다. 동료분들도 아버지도 몸이 약해지니 덩달아 마음도 약해지는 듯하다. 살아내느라 애쓰신 아버지, 어머니의 노년이 편안했으면, 큰 걱정 없이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아니에요. 아버지. 제가 어른이 되어보니 그 시절 살아내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짐작이 가요.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어려웠어요. 저희 둘 이만큼 키우셨고, 아버지께서 최선 다하신 거 누구보다 잘 알아요."


요 몇 년간 환경에 관심을 가지면서 '기후 위기 시계'나 '임계점 1.5도'까지 도달하는데 남은 시간에만 집중했다. 부모님은 항상 그 자리에 계신다는 익숙함 때문인지 모르다 알게 된 기후 위기 문제가 더 크고 중요하게 다가왔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이 1.5도에 도달하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더니 가장 최근 예상치는 2027년이다. 헉, 이렇게나 빨리라고요? 사람들이 기후 위기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함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더 이상 주저할 시간이 없다.


기후 위기 시계나 부모님의 시간의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시간을 절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아주 좋았거나 최악이거나 상관없이 시간은 그저 공평하게 흘러갈 뿐이다. 수직선 위에 굵은 점들이 더 촘촘히 표시될 수 있도록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 '그때 더 잘해 드릴걸, ' 하는 후회가 남지 않게. 후회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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