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연간 14억 톤의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한다는데, 14억 톤은 너무 큰 수치여서 그 크기가 아예 감이 안 온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의 약 1/3이 버려진다니 오히려 이해가 쉽다. 만약 바나나가 3개가 있다면 1개는 먹지 않고 쓰레기가 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나 음식물 쓰레기가 많다고요?
전 세계에 배고픔에 허덕이는 인구가 약 10억 명인데, 만들어진 식량의 3분의 1은 그저 버려진다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먹지도 않을 식량을 위해 농부가 농사를 짓고, 누군가는 운반했다는 말이다. 이렇게나 비효율적일 수도 있구나. 그 상황을 우리는 지켜보고만 있다. 식량문제는 세상의 불평등 문제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누군가는 영양 과다 섭취로 비만이고, 누군가는 하루 권장 섭취량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기아 상태이다.
같은 지구라는 공간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이렇게나 극단적인 차이가 날 수 있을까.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가 있는 것처럼 최소한(?)의 배고픔에서 자유로울 권리도 있다. 모두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다. 배고픔을 자주 느끼는 나로서는 배고픈 걸 참는 게 얼마나 고통일지 아주 조금은 상상이 된다.
현재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식량을 제대로 나눈다면 누구도 절대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북반구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을 비롯해서 점점 육류를 과하게 먹는 인구가 늘어났다. 투입량 대비 18%의 효율 밖에 내지 못하는 육류를 생산하기 위해서, 가축을 먹이느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돌아갈 몫이 줄고 있다.
가축에 이어 요즘 관심이 쏠리는 바이오연료가 있다. 1kg의 바이오연료를 만들려면 20kg의 사탕수수가 필요하다.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곡류의 20퍼센트가 바이오 연료에 사용된다. 효율도 효율이지만 바이오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곡류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든다. 바이오 연료 대신 배고픔을 해소하는 일부터 해야 하지 않습니까라는.
식량이 제대로 식량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쓰레기가 된다 하니 어디에서부터 잘못되고 있는 걸까.
1. '산지폐기'라는 용어가 자주 뉴스에서 들린다. 무, 양파, 배추 종류 가리지 않는다. 1년을 힘겹게 농사지었는데, 수확해서 판매해야 할 단계에서 농작물을 트랙터로 갈아엎는다. 수확 시 필요한 인건비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이쑤시개 하나의 가격도 공장 사장님이 정할 수 있는데, 왜 농산물만큼은 농부의 의지가 1도 반영되지 않은 채 가격이 형성되는지 농민분이 답답해하셨다. 생산 기간은 1년, 그에 비해 변동폭이 심한 농산물 가격에 대해 농민은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다.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단 몇 초 만에 경매로 정해지는 가격으로 1년 농사의 수익이 결정 난다. 재배지에서는 폭락이라고 수확조차 하지 않는데, 도시에 사는 우리는 전혀 폭락이 체감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익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중간 유통 구조가 문제라는 얘기가 늘 들려온다. 농사를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판로를 찾아야 하는데 둘다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약 판로를 찾지 못하면 안 되니 경매시장에 가야 하고, 거기에서는 제대로 가격을 보상받지도 못한다.
곡물자급률 20% 정도인 우리나라는 식량안보 문제가 시급하다. 하지만 농민에 대한 보호나 식량생산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도 없다. 이런 것들이 쌓여 점점 농사짓기를 기피하는 상황을 만들어진다. 내가 농부여도 자식에게는 농사를 짓지 말고 도시로 나가 일자리를 얻으라고 할 테다. 1년 공들인 고생에 비해 전혀 보상이 없는 이 상황을 정부는 방관하고 있다.
2. '슈퍼마켓'이 등장하면서 먹음직스러운 과일, 채소를 진열하기 위해서 단호한 기준이 생겼다. 과일이나 채소가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생산물이 아님에도 흠집 하나 용서(?) 하지 못한다. 완벽한 외양의 과일, 채소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흠집이 없는 것이 당연해 보일 지경이다.
한 국내 슈퍼마켓 지점에서는 1년간 5천 톤의 음식을 폐기하고, 폐기비용이 자그마치 11억 원이라 했다. 유통기한이 남아있어도 과감하게 버린다. 항상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신뢰를 주기 위해서이다. 마감 세일 시간을 당겨서 시행하고 있지만, 많은 양이 남겨진다(그렇다면 애초에 많은 양을 가득 쌓아놓은 건 아닌지요?). 먹을 수 있는 식량을 버리는 것도 아깝거니와 폐기 처리를 하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한다. 2중, 3중의 비용이 드는 셈이다.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임에도 버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니, 분명 문제가 있다. 그저 여태껏 해왔던 관행으로 받아들이고 폐기를 줄이려고 아무도 애쓰고 있지 않은 건 아닐까.
못난이 농산물이 담긴 채소 박스를 정기구독 중이다. 이름과 달리 절대 못생기지 않았다. 3주에 한 번씩 박스가 배달되는데, 거기에는 각 농산물의 사연이 적혀있다. 모양이 개성 있어서, 잎에 벌레 자국이 있어서라는 이유가 가장 많다. 소비자가 유기농 농산물을 많이 찾을수록 화학비료 사용도 줄 것이고, 탄소 배출도 줄이게 된다. 사람 건강에도 좋고, 환경에도 좋다. 판로가 막힌 농산물을 구출하는데 일조한다는 생각에 내 기분도 좋다.
경매시장에서 유기농 농산물이 큰 의미가 없다. 유기농이라서 점수를 더 주는 것도 아니고, 크기가 크고 균일한 것이 기준이라고 했다. 왜 이리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첫 번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인지 답답하다. 요리를 하려고 다듬는 순간부터 농산물의 외양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데 말이다.
3. <Just Eat It!>이라는 음식물 쓰레기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버려지는 음식물 중에서 그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6개월간 챌린지를 시작했다. 영상 속 커플은 식재료를 돈을 주고 사지 않는다.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친구가 버린 것을 가져와 식사를 준비하고 친구들을 초대한다. 슈퍼마켓 쓰레기통에서는 포장지도 뜯지 않은 유통기한이 한참 남은 음식물도 버려졌다. 6개월 동안 사용한 식료품 구입비는 채 $200달러도 되지 않았다. 물론 그 과정이 마트나 슈퍼마켓에서 장 보는 것만큼 쉬울 리 없었지만 그들은 해 냈다. 이 커플의 성공은 우리가 일상에서 이렇게 많은 식재료를 거리낌 없이 버리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통기한이 사람들이 음식물을 폐기하는 주요 이유 중의 하나이고 그래서 얼마 전부터 우리도 소비기한을 표시한다. 일상에서 식재료는 너무 많이 샀거나, 제때 요리하지 않아 시들어 버려지기 일쑤이다. 계획된 장 보기가 필요한 이유이다. 길 가다 쓰레기를 한 봉지 버렸다면 나쁜 행동으로 인지하고, 죄책감을 가지지만 음식물을 남기는 것에는 당연(?) 하게 받아들이는 모순을 보인다.
며칠 전 지인의 집에서 집밥을 먹게 되었다. 배달용기에 담긴 음식이 아니어서 더 반가웠다. 우리가 모든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다는 사실이 정말 뿌듯했다. 음식물 쓰레기가 만드는 온실가스 배출(8~10% 차지)과 환경오염 문제도 심각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버린 음식물 쓰레기는 분명 퇴비나 가축의 사료, 또는 바이오 가스가 된다고 알고 있다. 사실이다. 그래서 음식물 쓰레기를 더 만들어낸다는 것에 크게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다. 음식물 쓰레기로 버렸지만 나름 자원으로 활용되니 다행이다 싶다.
이는 우리가 의류 수거함에 입지 않는 옷을 넣을 때와 꼭 같은 상황이다. 의류 쓰레기가 누군가의 필요한 옷이 되어주는 것은 아주 일부일 뿐, 제3세계 다른 나라에 엄청난 환경피해를 주고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로 퇴비를 만들어 공짜로 나누어준다 해도 별 호응이 없다. 동물에게 먹일 사료로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사료를 먹이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을 일반적으로 퍼져 있다. 또 먹여보았더니 고기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나서 상품성이 떨어져 사료로서의 수요가 없었다. 음식물 쓰레기가 퇴비, 사료가 되는 동안 필요한 물과 에너지, 그리고 배출한 온실가스 등을 생각하면 괜한 행동을 한 셈이 된다. 요즘 부쩍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과 재활용에 대해 극찬을 하고, 배우러 오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재활용률과 실제로 사용되는 수치가 다르다.
이쯤 되면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결론은 '무조건' 줄여야 한다. '무조건'이다.
산지폐기 같은 일도 자꾸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유통구조를 합리적으로 바꾸던지 정부에서는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슈퍼마켓도 최대한 음식물 폐기를 줄여야 한다. 가정에서도 음식을 필요한 양만큼만 만들고 온갖 핑계로 남겨 버리는 것을 없애야 한다. 예전에야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린 음식에 융숭한 대접을 받는 의미로 해석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래서는 안된다. 반찬이 여러 개여서 다양한 맛을 보니 먹는 입장에서는 좋을 수 있지만 그만큼 낭비가 된다. '잘 먹는다, 잘 대접한다'라는 의미를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음식물 쓰레기는 한 나라의 국가 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국가끼리도 영향을 준다. 농부가 씨앗을 심는 순간부터 폐기될 때까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 우리의 환경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너도 하고 나도 하자! 음식물 쓰레기를 최대한 덜 만드는 것이 얼마나 큰 환경에 도움이 되는 행동인지 알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