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우구스티노 Jul 18. 2023

방황만 하다가 결국 패배하는 줄 알았다

공감 17 | 방황하는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당신이 방황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왜 방황을 하게 되었을까. 왜 갈피를 못 잡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체 방황하고 있을까.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는 말을 처음 접한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특히 몇 장면은 눈에 선하다.


대학교 4학년 때, 나는 1학기 5월에 이미 입사가 결정되었다. 굳이 자랑 같은 얘기를 하는 이유는 그때 당시 나의 상황을 말해야 더욱 저 위의 말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5월에 입사가 결정되었고, 입사일은 12월 말이었다. 그러니까, 약 7개월 동안 학교를 다니기만 하면서 이수학점을 채우고 졸업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일찍 취업이 되었지만 결국 회사원 되는 건가 라는 생각에 그저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고시 같은 공부를 할걸 그랬나. 물론 고시를 패스할만한 깜냥은 안되었겠지만 시도도 안 해본 것은 후회가 되었다.


2학기가 되고, 11월 말인가에 '경제사'라는 과목의 기말고사 전 마지막 수업시간이었다. 학교를 열심히 다니니 않았기에, 학교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 그날도 제일 뒤에서 마치 고등학생처럼 책상 밑에 만화책을 두고 여유 있게 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여유가, 참 한심한 자만심이었던 듯하다.


경제사 과목의 교수님은 독일에서 박사를 받은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었는데, 노교수님의 수업답게 책 한 권 들고 들어와서 판서를 실컷 하다가 시간이 다 되면 책을 딱 덮으시면서 '이상!' 하고 퇴장하시곤 했다.  


그날도 으레 그러려니 하면서 수업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시간이 다 되어 책을 딱 덮으시길래 '끝났다~'라고 생각하는데, '이상!'이라는 말을 안 하시는 것이다.


'뭐지?'

그리고서는 이어지는 교수님 말씀.


"여기 4학년 학생들이 많은데, 여러분들 중에 취업이 된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취업이 되었던 안되었던 여전히 앞날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겠지. 불안한 마음에 어찌할지 몰라 더욱더 방황하고 그럴 텐데.."

그때 정도였다. 나 역시 만화책을 덮고, 교수님이 무슨 말을 하시나 새겨듣게 된 것은.


"Es irrt der Mensch, solange er strebt. 괴테의 말이다."

'무슨 말이지?'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인간은 방황하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다.”

“여러분들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방황하는 거야. ”

“너무 불안해하지 말도록. 노력하는 자신을 더 귀하게 여기도록."


그 말을 마치고 역시 '이상!' 하면서 나가버리셨다.


그때 기준으로 같은 과 친구들의 취업 성적은 좋은 편이었으나, 그게 더욱더 취업 못한 친구들에게는 부담이 되었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대기업에 취업이 된 친구들조차 내가 진정 원하는 회사인가.. 나아가 나는 정말 ‘취업’을 원하는 것이었나..라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은 같았을 것이다.


노교수님은 그런 4학년들의 눈빛에서 불안감을 느끼셨던 듯하다. 그래서 우리 보고 '인간은 다 방황하는 것이다. 방황도 노력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라는 깨달음을 주셨다.  


매우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학교에서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수업이 없는데, 그때 그 노교수님의 마지막 수업의 마지막 5분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머리에 돌을 한 대 맞은 듯한 띵함이 있었다. 그 말 한마디로 이수학점이나 채우면 된다는 생각의 4학년 2학기 등록금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파우스트].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의 영혼을 홀리겠다며 내기를 하자고 했더니, 신이 이렇게 말했다. “Es irrt der Mensch, solange er strebt.(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이렇게, 신은 파우스트가 방황하면서도 결국 올바른 방향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이야기의 끝은 그의 죽음이지만 우리는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희로애락을 확인한다.


26세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82세에 사망하기 직전 완성된 [파우스트]는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가져오는 비극적 상황 등을 풀어낸 작품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를 내놓은 괴테에 대한 사랑은 독일에서 어마어마하다. 그 사랑은 아마도 그의 글에서 엄청난 공감이 되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말하려고 하는 것은 괜히 어렵게, 괴테에 대해서도 [파우스트]라는 작품에 대해서도 아니다.


인간이 삶을 살면서 노력하는 한 실패는 거듭된다. 인생에 있어서의 방황은 生의 다채로움이고, 진정한 자아를 찾는 필연적인 미로이다. 그래서 파우스트는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으려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라고 말했다.


취업을 준비하다 보면, 회사를 다니다 보면, 부서가 맘에 안 들다 보면, 경제적으로 자꾸 힘들게 되면,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

‘나는 뭘 위해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스스로에 대한 의문과 고민이다. 이러한 의문과 고민이 계속되다 보면 슬럼프와 방황이 찾아온다. 이러한 방황은 자기 의문과 고민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나타난다.


고민 없이.. 그러니까 노력 없이 살면 방황하지 않는 것인데, 다시 말해 방황은 노력의 반증이 된다. 이 방황은 나이, 경제력, 외모, 성격에 상관없이 나타난다. 인간이 노력을 하는 한 말이다.




20대와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즐기기보다는 먹고사는 일에 올인하면서, 퇴사하거나 이직하거나 N잡을 갖는 MZ 세대를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 잘 살고 싶기에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지향점으로 나아가겠다는 그들의 방황은 노력에서 파생된다.


40대의 직장인들도 회사를 욕하고 싫어하지만, 다른 뾰족한 수단이 없기에 그 안에서 어떻게든 잘되어보겠다고 노력한다. 또는 어디 더 좋은 곳은 없는지.. 심지어 다시 수능을 보는 노력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냥 포기하고 조용히 살아'라는 조언은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방황이라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 견디기가 더 어렵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노력한 것 중에 쓸데없는 경험은 없었다. 그러니 지금 이 방황하는 순간은 무의미한 게 아니다. 상당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은 스스로 열정을 다해 살아 내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니까, 방황하고 있다고 해서 패배자가 된 듯 움츠러들거나, 우울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다시, 서두에 쓴 말을 다시 꺼내보면서 정리해 본다.

 

왜 방황을 하게 되었을까. 왜 갈피를 못 잡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체 방황하고 있을까.

그것은 당신이 달라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안주하고 있다면, 특별히 변화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저 그 자리에 머물면서 별다른 시도 없이 지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자리가 또는 지금의 상황이 뭔가 못마땅하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데 방법은 모르겠으니, 불안한 마음에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 그 교수님의 말씀처럼 방법을 모른다에 방점을 두면서 스스로를 못났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보다는 방법을 모름에도 불구하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당신에게 박수를 보내길 바란다.


당신은 노력하고 있다. 어제보다 나은 당신을 위해.






[표지 : '파우스트의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는 글귀에 맞는 그림을 그려줘'에 반응한 AI 작품]

매거진의 이전글 Z세대 회사원은 '성장'하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