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을 낳았다

환장하는 ADHD 아들 육아기

by 썸머

* ADHD는 병원에서 검사(CAT)를 통해 진단받는 것이 가장 정확하며, 가장 좋은 치료방법은 약물입니다. (정말이에요!) 저의 글은 그 어떤 전문가의 진단과 치료 방법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거실에는 동요가 잔잔하게 흐르고, 나는 이제 막 걸음을 걷기 시작한 아들과 도란도란 그림책을 읽고, 클레이로 만들기를 하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게 내가 생각하고 꿈꾸던 육아였다. 나는 평생동안 안정적이고 사랑이 많은 엄마와의 다정한 모녀 관계를 꿈꾸었다. 하지만 비로소 나의 엄마는 이기적이고 착취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나는 그 관계를 내 아이를 통해서 이루고 싶었다. 아이에게 충분한 스킨십을 해주었고, 아이가 울면 3초 안에 달려가 안아주었고, 애정표현을 많이 해주었다.


아이는 화가 많았다.


하지만 늘 웃고 있어야할 아기가 이상했다. 화가 많고, 분노가 많았고, 짜증이 심했다. 나이차이 많이 나는 사촌 동생들의 유아기 시절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왜 아기가 웃지를 않지?'


그나마 아이를 키우면서 평화로웠던 시절을 꼽자면 9개월 무렵이었다. 한창 기어다니는 시기의 아이는 하루종일 집안을 탐색하며 시간을 보냈다. 요리를 하려고 잠시 꺼내놓은 마른 멸치 봉지를 뜯어 거실에 죄다 뿌리기도 하고, 부엌 서랍 속에서 비닐봉투 상자를 꺼내 100장에 가까운 비닐 봉투를 뽑기도 했다. 벽에 그림을 그리고, 내 가방 속에서 립스틱을 꺼내 조그만한 손가락으로 립스틱을 다 쑤신 후 가방에 빨간 칠을 하기도 했다. 냉장고에 씻어놓은 포도를 바닥에 늘어놓은 뒤, 맨발로 밟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이를 별로 제제하지 않았다. 왜냐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새로운 흥미거리가 없으면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나는 그저 아이가 집안을 어지르며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게 내버려두었다.


그나마도 몇 개월이 지나, 더이상 집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자 별 소용이 없었고 말이다.


눈 뜨자마자 화를 냈다.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눈을 뜨자마자 화를 냈다. 집에서 엄마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1분 1초도 견디지 못했다. 방법은 하나 뿐. 무작정 밖으로 나가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 뿐이었다.


아이의 짜증에 뻐근한 골반을 일으켜 서둘러 아침밥을 준비하고, '익, 익, 익, 익-' 익룡 소리를 내는 아이의 눈치를 보며 이를 닦았다. 유모차나 푸쉬카에 아이를 태우고 밖으로 나가 하염없이 온동네 놀이터를 돌았고, 겨울에는 딱히 살 것도 없지만 마트를 쏘다녔다. 하지만 그 때가 천국이었다.


문제는 아이가 걸을 수 있으면서였다.


걷기를 시작하자마자, 뛰어다녔다.


아이는 걷기가 빠른 편은 아니었다. 돌잔치에서도 걷지를 못했었으니까. 키와 몸무게가 90%인 우량아를 두 팔에 안고 돌잔치를 치뤘고, 아이는 14개월 무렵이 되어서야 걷기 시작했다.


한번 걷기 시작하자 문제가 생겼다.


아이는 곧바로 뛰는 법을 익혔고, 걷는 법 따위는 금방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마치 티라노사우르스가 먹잇감을 찾아 뛰어다니듯, 아이는 새로운 자극을 찾아다녔고, 시야에서 아이를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갑자기 아이는 무언가에 꽂히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진하며 앞으로 뛰어나갔고, 나는 유모차나 자전거, 기저귀 가방 등을 챙겨 그 뒤를 쫓아갔다.


다행히 미국 시골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사방이 탁 트여있었고, 자동차도 거의 다니지 않을뿐더러 오리나 칠면조 등 동물들이 다니는 탓에 매우 느린 속도로 다니는 곳이어서 큰 사고가 없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누나들을 쫓아다니기도 했고, (다행히 초등학생이었던 누나들은 아기가 계속 쫓아오자 잠시 멈추고, 엄마인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잔디밭에서 축구하는 대학생들을 사이를 뛰어다니기도 했고, 마트에서 전동 휠체어를 탄 할머니를 보며 흥분하기도 했다. (다행히 할머니는 "나 멋지지?"하면서 아이의 신기한 시선을 웃으며 받아주었다.)


물론, 내가 보호자 노릇을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아이와 집근처 쇼핑몰까지 걸어왔던 나는 남편에게 짧게 [지금 쇼핑몰이니 차를 가지고...] 라고 카톡을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문장을 완성하지 않았다. 느닷없이 한 할머니가 내게 다가와 화를 내며 "Watch your baby!"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뿔싸! 아이는 어느새 유모차를 탈출해서 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있는 자동차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어둑어둑해진 저녁이었고, 자동차 불빛이 연이어 들어오는 모습이 신기했을 아이는 인도에 서서 자동차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그 모습은 누가 보아도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나라고 이런 식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익숙한 공간에 가만히 있으면 아이는 화를 냈고, 짜증을 심하게 냈기 때문에 방법이 없었다. (아이에게 뽀로로를 보고 있으라며 TV를 틀어주고 저녁 식사를 준비했던 어느 날. 아이는 화가 나 소리를 지르며 뛰었고, 설소대가 찢어져 얼굴이 피범벅이 되었다. 제 화에 제가 주체하지 못했다.)


몇 시간 동안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망둥이처럼 뛰어다니는 아이의 뒤꽁무늬를 쫓아다니는게 나의 육아였다. 스트레스가 많아 매일 얼큰한 라면을 끓여먹거나, 탄산음료를 들이키고, 맥주를 마셨고, 틈틈이 과자를 입에 쑤셔넣다보니 살은 자꾸 쪘다.


그 당시 내가 자주 들었던 말들이다.


"얘는 커서 운동을 해야겠어요."


"어디 좋은데 다녀오셨나봐요. 호호." (하루종일 밖을 쏘다녀 겨울에도 온 몸이 새카맣게 탄 아이를 보고)


이때까지 나의 고민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이가 화를 너무 많이 낸 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가 자꾸만 혼자 어디론가 뛰쳐나간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잡고 통제하면 자꾸 소리를 지르고 짜증내고 익룡 소리를 내니, 그저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마구 발산하도록 시켰다.


그러다 우연히 아이의 어디론가 튀어나가는 버릇을 고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