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맞은 거 아님?
“엄마, 여행 갈래요?.”
둘째 딸에게 톡이 왔다.
다시는 엄마랑 여행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 두어 달이 지났을 때였다. 여행 가자길래 엄만 막내랑 4~5년 전에 약속했던 유럽 여행만 가고 이제 해외여행 안 간다고 했다가 울고 불고 “왜 나랑은 안 가냐”며 화를 내다가 지쳐 내뱉은 말 “엄마랑 이제 여행 안 갈 거야.”였다.
남편이 여행 가는 것을 마뜩잖아 여기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인데, 왜 비싼 달러를 흥청망청 쓰냐는 애국자다운 발언부터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생활의 무게에서 나오는 ‘여행 갈 돈 없다’까지 남편의 여러 이유가 내 이유도 된다는 것을 딸은 도통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 딸이 여행을 가자니, 가까운 일본쯤이려니 했다. 직장인이 휴가를 쓰기도 쉽지 않을 테지.
“엄마, 만년설 녹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가야 한대. 그리고 엄마아빠 하루라도 젊을 때 트레킹하러 가야 해. 더 늦기 전에 스위스 가자. “
“응?? 스위스?!?!?”
그 비싼 곳에 가자고??
돈 벌면(로또?) 엄마랑 아빠 스위스 여행시켜 드릴게라고 입에 달고 살았지만, 아직 돈은 못 벌었을 텐데.
우리나라도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데 비싼 스위스까지 가냐는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오히려 해외여행 싫어하는 남편이 먼저 대답했다. ‘그러자.’ 웬일이래???
막내에게 엄마랑 아빠가 둘째(언니)랑 스위스 간다고, 여행 경비는 둘째(언니)가 다 댄다는 내 말에 ‘언니, 로또 됐어? 달라고 안 할게, 사실대로 말해봐.‘ (ㅋㅋㅋ)
그렇게 못 이기는 척 집순이인 내가 여행을 가기로 했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딸이 퇴근 후에 잠도 못 자고 핸드폰에 코 박고 스위스 여행 계획을 세우고 비행기표를 사고 숙박할 곳을 정하느라 정신이 없다. 세상 미안하다.
나도 거들어 보지만, 별 도움이 안 된다. 캐리어를 싸는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둘째 따님(돈을 댔으니 호칭 승격해 주고) 검열이 들어온다.
아빠가 트레킹화를 동대문시장에 가서 사 왔다고 구시렁구시렁. 아빠의 단골 패션인 아웃도어룩은 절대 안 된다며 아빠 모시고 백화점 중저가 매장으로 갔다. 이 옷 저 옷 입혀가며 편안 면바지와 티셔츠 몇 장을 사 왔다. “아빠 돈 많이 벌면 더 비싼 거 사드릴게.”도 잊지 않고 날린다.
여행의 시작은 가방 싸기부터이다. 남편의 여행가방은 다다익선이고 나는 꼭 필요한 것만 준비하는 죽장망혜. 시작부터 안 맞는다. 신발을 트래킹화와 운동화, 샌들까지 가져가겠다고 한다. 가져가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무겁고 큰 캐리어 끌고 다닐 생각에, 부피 큰 신발을세 켤레나 가져가야 하나 싶어 한숨이 먼저 나왔다.
둘째는 패션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아빠와 둘째 딸이 부딪칠까 봐 나만 안절부절이다. “나중에 엄마 아빠 추억할 때 아빠 멋지게 입고 있었으면… 하나 봐. 당신이 이해해~” 다행히 화 안 내고 적당히 딸내미 장단에 맞춰 쿵하면 짝해주었다. 의상은 있는 옷과 새로 산 옷을 최소한으로 적당히 돌려 막기 코디를 완성시켜 가방을 쌌다.
셋의 패션이 어울리도록 맞춰서 싼다고 쌌는데, 관건은 날씨였다. 서울은 아직 열대야가 가시지 않은 9월이지만 스위스의 만년설을 보려면 얇은 패딩까지 준비해야했다. 걱정이 많은 남편은 자꾸 이건? 이건? 하며 패딩을 들고 나오는데 안된다고는 못하고 살짝 밑장 빼기로 다시 옷장에 돌려보내는 스킬을 발휘했다.
물가도 비싸고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니 햇반도 조금 준비했다. 마트에 가서 참치캔, 김자반, 깻잎이랑 볶은 김치, 느끼한 속을 달래 줄 반찬을 낱개로 진공포장된 것 위주로 샀다. 카레를 레토르트인 줄 알고 장바구니에 담아왔는데 나중에 보니 카레가루라 한 봉지만 챙겼다.
빠질 수 없는 간편식 비빔면과 라면도 몇 개 넣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싶은 순간에 트레킹에 진심인 남편이 스틱과 배낭을 챙긴다. 배낭에 기내용 슬리퍼와 책, 패드, 목베개를 넣었다.(난 목베개는 필요없었다) 둘째는 피크닉을 해야 한다며 비옷, 피크닉 용품들, 깔고 앉을 매트, 도시락까지 챙기니 가방이 가쁜 숨과 함께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대형 캐리어 2, 기내용 캐리어 1, 배낭과 각자 가벼운 가방. 드디어 가방 싸기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