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출발 취리히 도착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준비한 여행, 드디어 출국일이 다가왔다.
우리 집에서 5분 거리, 길만 건너면 인천공항 가는 리무진을 탈 수 있다. 시간은 2시간. 비용은 3인 51,000원. 하지만 남편은 지공(지하철공짜)이고 딸은 기후동행카드 사용하니 나만 지하철+공항철도=5,000원, 시간 1시간 30분. 나와 남편은 지하철로 가기로 결정했다.
출국일이 다가오자 딸이 여행 계획서를 메일로 보내왔다. 펼친 첫 장에 교통은 리무진이다. 캐리어 세 개 끌고 지하철을 탄다고라?? 딸이 기암을 했다. 택시 타려다가 이리보고 저리보고 누가봐도 자린고비인 아빠 놀랠까 봐 한껏 양보해서 리무진이란다. 출발부터 삐걱거린다.
둘째는 사실 쌈닭이다. 세 딸 중 아빠(나의 남편)와 제일 많이 싸웠고 지금도 가끔 위태롭다. 아빠를 어찌나 이겨 먹으려고 하는지 화를 잘 안내는 남편이지만 애 키우면서 둘째랑은 많이도 싸웠다. 여행 잘 다녀올 수 있을까? 안 싸우면 다행이지. (어디서 많이 봤던 말인데…)
새벽에 드르륵 굴러가는 캐리어소리는 어찌나 크던지, 이웃이 깰까 봐 신경이 쓰였다. 딸이 리무진을 기어이 타겠다고 하면 못 이기는 척 탈 생각이었는데 지하철 엘리베이터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여행 첫날부터 아빠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의지가 상당했다.
2시간 일찍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을 마치고 보딩을 기다리며 오고 가는 비행기를 바라보았다. 제일 흥분되고 설레는 시간이다. 끊임없이 떠나고 돌아오는 공간인 공항, 기다리기 지루하기는 커녕 떠나는 시간에서 더 오래 머물러 있고 싶었다. 쓸데없이 여러 국적기들을 프레임에 담았다. 소풍 가기 전날의 행복감 같은, 가장 간직하고 싶은 시간이다.
9월 3일 10시, 드디어 스위스 취리히공항으로 날아갔다. 서쪽으로 가는 동안 내내 낮이 계속되었다.
비행기에서 뒷좌석에 한국인부부가 타고 있었다. 내 옆(나이가 지긋한 한국인승객)좌석의 뒤에 앉은 한국인부부는 탬플릿 보는데 방해가 된다며 좌석을 뒤로 젖히지 말라고 했다. 남편과 딸 좌석은 물론 내 앞 좌석(모두 외국인)도 뒤로 최대한 젖히고 있었는데 왜 유독 같은 한국인이 그렇게 유난스러운지 13시간동안 꽂꽂이 앉아가던옆 승객이 안쓰러웠다.
드디어 한국시간으로 늦은 밤 11:30, 스위스 시각 오후 4:30. 나는 내가 취리히에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어떤 곳이 펼쳐질지,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와 여행에 대한 흥분으로 몸은 바로 시차에 적응한 것 같았다.
도착하자마자 캐리어 3개 중 두 개를 세 번째 목적지 그린델발트로 보낸 후 여행에 필요한 앱(meteo swiss와 sbb mobile)을 다운로드하였다.
지하철을 타고 취리히 외곽에 있는 숙소로 갔다. 숙소는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거리에 있었다. 레스토랑, 카페, 공용주방까지 갖춘 단출한 숙소에 체크인하고 다시 취리히 중앙역으로 나갔다.
취리히가 스위스의 최대도시임에도 마천루 같은 현대식 빌딩은 전혀 없었다. 모든 건물은 중세시대 느낌의 견고해 보이는 돌벽돌의 건물들이었다. 리덴호프공원으로 가기 위해 천천히 골목을 산책하며 하나라도 놓칠세라 눈과 카메라에 정성껏 담았다.
리덴호프공원에서 바라 보이는 리마트강과 강 양쪽에 있는 중세건물들은 시간이 멈춘 듯, 우리를 상상과 동화의 세계로 데려갔다. 스위스에 있는 내내 우린 현실감 없이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을 대책없이 받아들였다.
리덴호프공원에서 본 리마트강 건너편, 관광객들은 이렇게 난간에 앉아서 강과 전망을 감상한다.
그로스뮌스터는 데칼코마니 같은 웅장한 두 개의 종탑을 가진 대성당으로 프라 우뮌스터 성 피터 교회와 함께 취리히의 3대 교회로 꼽힌다. 그로스뮌스터 안에 자코메티가 제작안 스테인드그라스 작품도 있다고 한다.
광장의 테라스에 앉아 한가롭게 맥주와 음식을 먹는 사람들, 먼 이국의 골목을 걷는 동안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나도 그 안의 풍경이 되는 착각에 빠졌다. 그 순간을 마음껏 즐겼다. 여행 싫다고 했던 나는 거기에 없었다.
시장기는 전혀 없었으나 스위스 시간으로 저녁을 먹는 시각이었으므로 뭔가를 먹어야 했다.
딸과 둘이 가는 여행과 남편이 같이 가는 여행의 차이점은 ‘밥은 배고플 때가 아니라 때가 되면 먹어야하는 것’이다. 딸과의 여행은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먹어도 되지만 남편과 함께인 여행은 매 끼니를 챙겨줘야 하는 주부의 사명감이 항상 앞선다.
제일 만만해 보이는 메뉴, 골목 안에서 만난 튀르키에 음식점에서 케밥과 버거를 주문했는데 사이즈가 커서 놀랬고 짜서 또 놀랬다. 결국 얼마 먹지 못하고 포장을 해서 왔는데 다음 날 쿱에서 사 온 사과를 듬뿍 넣고서야 간이 맞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스위스에서의 첫날밤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