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로 미라클 모닝
여행을 가면 꼭 하는 나의 리츄얼은 새벽 산책이다. 서서히 해가 떠오르며 여행지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을 마음으로 훑으며 나도 그곳의 일부가 되어가는 느낌이 좋다. 새벽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시면 그곳의 찹찹한 새벽공기와 함께 마음에 오래 남게 되는 새벽 산책.
스위스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초초미라클 모닝이 되었다. 눈뜨니 2시, 더더더 자도 아직 새벽이었다. 남편도 잠꾸러기 딸도 미라클 모닝이다.
이른 아침, 집을 나와 근처를 구경했다. 그곳의 일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작은 골목길에 세워진 자전거도, 길 옆에 안전망도 없이 바짝 붙어 지나는 기찻길과 건널목도, 이르게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아침 운동하는 현지인, 일찍부터 서두르는 관광객들 모두 내 여행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새벽 산책 후 쿱(스위스 대표마켓)에 들러 나와 남편의 아침인 과일을 샀다. 한국에서도 여행지에서도 아침 식사는 과일과 야채다. 사과와 포도, 납작 복숭아 등등.
오늘은 체르마트로 가는 날이다. 출근 시간을 피해 느지막이 출발했다. 우린 11박 13일 코스라 15일짜리 스위스 패스 2등석으로 미리 샀다. 여긴 기차를 탈 때 표를 사고파는 곳이 없는 것이 생소했다. 표를 찍거나 검사하거나 하지 않아 기차역이 서울의 여느 지하철 역보다 훨씬 작고 소박했고, 안전시설도 거의 없었다. 둘째 날까지 아무도 검표도 하지 않아 많이 느슨하구나 생각했는데 삼일째부터는 하루에 두어 번씩 검표원을 만났다.
체르마트는 베른(bern)과 피스프(visp)프에서 두 번 갈아타고 3시간 이상 걸렸다. 체르마트는 스위스의 아래쪽 이탈리아와 가까운 곳, 해발 1608m에 위치하고 있어 산악열차는 서서히 위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협곡과 산 옆구리를 따라 돌고 돌고 돌아 오르막을 올랐다. 주위산들이 해발 4000m가 넘는 산이 많아 골짜기 안에 포근하게 자리한 작은 마을, 체르마트. 빙하가 녹은 물이 힘차게 요동치며 흐르는 냇물과 샬레 풍경에 벌써 이것이 스위스로구나 취해 들고 있을 때 남편의 호기심 천국도 시작되었다. 청회색을 띠며 힘차게 흐르는 물을 보며 설명과 질문이 시작했다.
“저 물 색깔 좀 봐라. 저건 만년설이 녹은 거네. “
“이 기차는 어떤 원리로 올라가냐?”
이 정도는 아무 문제가 없다.
“저 집은 왜 산비틀에 집을 지었을까? 비 많이 오면 저 집 산사태 나겠는데..,”
“왜 저렇게 강가에 저렇게 가깝게 지었냐?”
가파르고 경사진 언덕에 지어진 집은 산사태 걱정, 강옆에 지은 풍광 좋은 집은 홍수 걱정, 끝없이 질문이 이어진다.
그의 질문엔 잘못이 없다. 다만 질문 속에 숨은 걱정과 근심, 부정적인 시각이 옆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뿐.
그냥 혼잣말이면 좋을 텐데..... 설명과 질문을 번갈아 가며 물었다. 대답을 해주기엔 아는 것이 없고, 안 하기엔 왠지 미안하다.
“…….”
이번 여행을 위해 유튜브를 몇 편 보았는데 그중 지구마블 세계여행도 있었다. 빠니보틀이 탤런트 노홍철 샬레에 가서 황금마테호른을 거실에서 보는 장면을 보았는데 그 멋진 곳에 나도 도착했다.
역은 크고 복잡했으나 역을 벗어나자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산으로 둘러싸인 언덕배기에 샬레가 옹기종이 모여 있는 작은 시골마을, 정겨운 이방의 마을이 눈앞에 있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시냇물과 바쁘게 오가는 전기차와 마차와 자전거가 교통수단의 전부인 마을, 창가에 작은 등이 불을 밝힌 목조주택들은 눈 내리면 크리스마스 카드가 될 것 같았다. 호텔도 주택도 모두 창가에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그림책 같은 풍경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풍경엔 들뜬 흥분이 가라앉을 틈도 없이 간단히 먹은 점심 식사 가격은 또 다른 차원으로 우리를 흥분시켰다. 간단한 점심과 맥주 3잔에 20만 원이 넘었다.
딸이 예약한 숙소는 거실에 소파 겸 2인용 침대와 방에 2인용 침대가 있고 거실 앞에 넓은 잔디 마당으로 시야가 탁 트인 소박한 숙소였으나 바로 눈앞에 마테호른이 보이는 최고의 방이었다. 방에서 뷰에 감탄하며 침대에 누워 창밖의 마테호른을 보다가 그만 저녁도 먹기 전에 잠이 들어버렸다. 밤에 맥주를 마시자며 사 온 술과 안주는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마테호른뷰의 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