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므스므 Feb 14. 2023

[NZ 14] 그가 있었다 (1)

기억 혹은 추억(4)

[전 세계 고양이와 집사들을 만나보겠다고 혼자 떠난 세계여행은, <고양이를 여행하다>라는 매거진으로 발행해 하루 1개의 일기와 그림일기로 정리했다. 그 요약본은 <고양이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브런치북으로 발행했고. 마지막 나라인 뉴질랜드는 더 이상 고양이를 만나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기에 <두 번째 뉴질랜드>라는 새로운 매거진으로 정리 중]




M은 학교에서 최고의 인기남이었다.


키가 190이 넘었고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스위스 남자였는데 수업이 끝나고 하교할 때면 1층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롤러 블레이드를 갈아 신곤 했었다. 그러면 지나가던 일본 여자애들이 그의 주변으로 삼삼오오 모여 말을 걸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관종인가' 정도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날 M이 내가 있던 반에 배치되었고 자기소개를 통해 그가 미술을 공부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미국에 본교가 있는 아트 스쿨이, 스위스에 분교를 내었고 그곳에 입학하려면 TOEFL 점수가 필요해서 이곳에 왔다고 했다.


그래서 오전에는 나와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1:1 개인 수업을 통해 시험 준비를 했다. 영어를 거의 원어민 수준으로 했던 친구라 그의 뉴질랜드 체류는 길지 않았다.


그러다 다음 주면 스위스로 돌아간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런 그가 내게 부탁을 하나 했다. 내 사진을 찍고 싶다고.


기념으로 꼭 찍어야 하는 사진이 아니면 셀카도 찍지 않는 나에게 사진이라니. 나는 기겁을 하며 단호하게 그의 부탁을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업 도중 혼잣말로 '와~ 오늘 사진 찍기 너무 좋은 날씬데?' 같은 말로 나를 압박하더니 쉬는 시간마다 나를 졸졸 따라다니기에 이르렀다. 나는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쳐다본다는 게 얼마나 어색한 일인지 구구절절 설명했지만, 그는 카메라를 쳐다볼 필요 전혀 없다며 내가 들이대는 핑계를 모조리 차단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게 되자 급기야 나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일본인 여자 친구 T에게서 'M이 너 좋아하는 듯'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갑자기 기분이 묘해졌다.


같은 반에 있던, 싸가지가 바가지던 다른 유럽애들과 달리 예의도 발랐고 토론을 하다 보면 서로의 가치관을 조금은 알게 되는데 그동안 내가 가진 서양애들에 대한 편견을 깨 준 것도 그였다.


그의 송별 파티가 있던 금요일 저녁, 나는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3일 뒤면 떠날 사람이고 우리가 언제 또 보겠으며 사진 몇 장 찍어주는 대가로 밥도 사주겠다는데 눈 한번 질끈 감아보지 뭐. 어쩌면 T의 말 때문에 그에 대한 호기심이 커진 건지도 모른다.


다음 날 우리는 페리를 타고 '데본포트'로 향했다. 그가 미리 점찍어 둔 곳이기도 했고 오클랜드에서 페리로 10분 정도만 가면 되는 곳이라 시간을 많이 뺏지 않겠다고 한 그의 약속대로였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내가 기숙사로 돌아간 시간이 다음 날 새벽 6시였기 때문이다...      


나는 죽었다 깨나도 못하는, 카메라 앞에서 포즈 잡기 [출처 pixabay.com]


매거진의 이전글 [NZ 11] 여행 베테랑들의 멘탈 붕괴 사건(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