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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삶(봄 여름 가을 & 겨울)

벤베누토 첼리니 & 얀 스테인

6월의  세 번째 일요일, 어제는 미국의 Father's Day였습니다. Mother's Day처럼 이날 하루 만이라도 아버지를 기리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날이지요.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카드나 선물을 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손으로 뚝딱거리기 좋아하시는 아버지들 이곳에 많으십니다. 평소에 눈여겨봐 두었던 공구(tool box) 박스라도 받게 되시면 센스 있다며  흐뭇하시겠지요. 




한국에서 손님이 잠시 들렀다 갔습니다. 갓 졸업한  둘째 아들과 은퇴한 선배가 다녀갔어요. 예전 같으면 귀찮다고 궁시렁거릴 텐데, 제 태도가 그새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 사람의 역사가 걸어 들어온다고 했던가요? 제 삶 안으로 선배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잠시 쉼을 하고 갔습니다.




덩달아 제 흐트러졌던 일상에 긴장 한 방울 떨어 뜨립니다. 온갖 흩어져 있던 것들을 수렴이라도 하듯 치우고 버리고 갈무리하면서 의외의 득템도 합니다. 낡은 지갑 하나를 발견했거든요. 큰 아이 고등학교 시절 학년마다 찍은 학생증 사진이 겹겹이 붙어있질 않겠어요. 지금보다 반 절 사이즈의 갸름한 'V'형 얼굴이 낯섭니다. '얘가 언제 이런 적이 있었나!' 싶어서요. 지금은 동글동글 돌아갈 수 없는 소년의 얼굴입니다.  기분도 덩달아 묘해지고요. 시간이란 녀석이 내 허락도 없이 떠나버린 느낌입니다. 이렇게 외부로부터 누군가 와야 몸이 비상사태임을 알고 부산을 떱니다. 오며 가며 적당히 못 본 척, 아닌 척했던 살림살이를 이제야 제 위쳐에 옮겨  놓습니다.




이제 몇 번을 서로 보고 살 지 장담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그 쓸모를 알아가기 위해 남은 시간을 공들여 살아가겠지요. 30년 넘게 '아비'노릇 하느라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엄지 척해드렸습니다. 버텨온 시간은 영광일 수도 상처일 수도 있는 흔적들을 남기죠. 선배 역시 억지로 채식주의자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좋아하던 술친구들 남겨두고 이제 혼자 등산을 한다고 합니다. 술이라는 매개체가 없으니  인간관계의 가지치기가 저절로 되었다고 합니다.  허연 눈을 맞은 것 마냥 염색 없이 온 그를 보며 , "선배, 염색 좀 하고 오지 그랬어." 했더니 "이제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없어." 하며 그냥 웃습니다.





몇 년 전 왔을 때 보다 훨씬 여윈 모습입니다. 선배의  키를 훌쩍 넘은 둥그스런 작은 아들 얼굴에서 사진기 들고 나름 세련됐던 선배의 젊은 시절을 찾습니다. 통통 튀던 그의 에너지가 아들 녀석 어딘가에 있을 듯싶어 쓰윽 훑어보고요.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선배 뒤통수에 대고 말없이 눈길로 쏘아 주었습니다.  


' 선배, 우리 가끔씩 오래 보자.'



 오늘은 16세기 르네상스 시절 잘 나가던 이탈리아 조각가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 1500-1571)와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가로 유명한 얀 스테인(Jan Steen 1626-1679)의 작품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는 꽃의 도시 피렌체 태생입니다. 피렌체는 르네상스 시대 건축과 예술로 유명한 곳이죠. 피렌체라는 인류의 문화 콘테츠가 탄생하게 된 것은 정복자 줄리어스 시저 덕분입니다. 그는 기원전 59년 이곳 피렌체를 점령하고 식민지로 만들면서 아르노 강가의 이 작은 마을을 "꽃 피는 마을"이란 뜻의 "플로렌티아"라고 명명했습니다. 




그 후로 플로렌스는 변방의 마을로 지속되어 오다가 14-15세기에 이르러 도시국가 피렌체 공화국으로 탄생합니다. 피렌체 공화국에는 강력한 메디치 가문이 있었습니다. 메디치가의 정예군 검은 군단은 일대를 휩쓸며 이 일대를 코스카나 공국으로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피렌체는 그 수도가 되었습니다.




 3명의 교황을 탄생시켰을 뿐 아니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탄생과 발전을 이끌어내는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귀에 딱지 앉을 정도로 들어온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iserPiero da Vanci, 1452-1519),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를 선두로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이 모두 메디치가의 후원 아래 수많은 작품을 피렌체에 남겼습니다. 





사진1. Cellini Salt Cellar, 1543/wikipedia  그림 2.<The Happy Family>, 1668/wikipedi





<사진 1>. 1543년 프랑수아 1세를 위해 만들어진 황금 소금통입니다.  "조각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리고요. 금, 유리 에나멜, 나무로 제작된 26cm * 33.5cm 크기의 조각상입니다. 삼지창을 든 바다의 신 넵툰과 대지의 여신 텔루스를 주제로 한 알레고리 작품입니다. 넵튠은 배 모양의 소금통을 , 텔루스는 사원 모양의 후추통을 옆에 두고 있습니다.  밑받침에는 하루 4분(밤, 낮, 새벽, 황혼)과 인물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프랑수아 1세의 문장과 상징물이 새겨져 있어 왕실 작품임을 나타냅니다. 프랑수아 1세에 대한 찬사로 , 자연계와 인간 세계를 아우르는 미니어처 세계를 통해 왕의 절대 권력을  미화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벤베누토 첼리니 (Benveuto Cellini)의 금세공 기술의 끝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꼽힙니다. 프랑수아 1세 사후 작품은 스웨덴 왕 샤를 9세에게 갔고,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에 전해져 현재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2003년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Kunsthistorishes Museum)에서 도난을 당했고 2006년 다시 찾게 됩니다. 당시 받은 흠집은 작품의 역사로 남겨두기로 했다고 하네요. 




 소금 그릇의 제작동기와 디자인의 상징적인 의미, 그리고 완성하는 과정 등의 설명이 자세하게 그의 자서전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의 프랑스 체류는 왕의 애첩의 질투와 갈등으로 1545년 퐁텐블로의 작업을 미완성 한 채 피렌체로 다시 돌아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Y8ymP-1Eck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지도/프레시안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hllini, 1500-1571)는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던 아버지 조반니 첼리니(Giovanni Celini)로부터 음악을 배웠습니다. 실제로 그는 유명한 플루트 연주자이기도 했습니다. 로마에서 활동할 때에는 플룻으로 유명해져 교황 직할 연주단에서 플룻을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그는 금세공사인 안토니오 마르코네 디 산드로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피렌체인들은 첼리니를 그들의 자랑스러운 금세공의 원조로 모시고 있습니다. 피렌체의 오래된 다리 양쪽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금은방들이 들어선 폰테 베키오(Poner Vecchio)에는 첼리니(Cellini)를 기념하는 그의 흉상이 세워져 있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0B_efFEuF1o




15살 때 금세공술을 배웠습니다. 단 1년 만에 벤베누토 첼리니는 피렌체에서 유명해집니다. 작품이 아니라 친구들과 난동을 부리다가 잡혀서 유명해졌습니다. 그렇게 약 6개월간 시에나(Siena)로 도망을 갔습니다. 프란체스코 카스트로 밑에서 도제생활을 했고요. 프라카스트로 (Fracastoro)라는 가명으로 금세공 일을 했습니다. 벤베누토 첼리니는 볼로냐 (Bologna)로 옮겨 활동했고 그곳에서 풀룻과 금세공사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피사(Pisa)로 옮겼다가 다시 로마로 옮겼습니다. 이 모든 일이 그가 20살이 되기 전의 일입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이탈리아 북부를 다 쓸고 다녔다는 얘기죠.




지금으로 따지면 좋은 직장을 찾아 로마로, 페라라로 만투아로 베네치아로 프랑스의 퐁텐블로로 옮겨 다녔다는 얘기입니다. 교황 클레멘테 7세와 바오로 3세, 프랑스의  프랑수와 1세와 추기경들, 그리고 군주들을 찾아 57세가 되기까지 끊임없이 타향살이를 했던 예술가입니다. 







<그림2>. 얀 스텐(Jan Steen: 1626-1679)의 작품 <즐거운 가족 The happy family>(1668)입니다. 온 가족이 왁자지껄 음악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격식을 갖춘 공연은 아니지만, 세상 그 어느 공연보다 흥이 납니다. 할아버지는 술잔을 높이 치켜든 채 노래를 부릅니다. 보고 있던 강아지도 장단을 마쳐주네요. 할머니와 어머니는 함께 다정하게 악보를 보며 합창을 합니다.  팔에 안긴 아가도 덩달아 흥겨운 모양입니다. 아빠와 아들도 백파이프와 피리를 불며 흥을 돋우고 있네요. 




 그런데 꼬맹이들 손에 금기스런 물건들이 들려있습니다. 어른들 흥겨운 틈을 타 곤란한 행동들을 하고 있네요. 장난스레 어른 행동을 하며  담뱃대를 빠는 아이도 있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술 따르는 시늉을 하고 한 잔 받아먹는 소꿉놀이 중인가요? 쟁반과 숟갈 등 부엌 가재도구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즐겁고 유쾌한 것도 좋지만 문제는 아무도 신경 쓰는 가족이 없다는 얘기죠. 노래를 부르고 장단을 맞추는 이 시간이 그저 즐겁고 행복할 뿐입니다. 팔꿈치로 옆을 쿡 찌르는 것처럼  자세히 보면 그림 오른쪽 상단에 덜렁거리는 종이쪽지가 보입니다. 






어른이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도 재잘댄다
-네덜란드 속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한국 속담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 네덜란드 속담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어른이 먼저 본을 보이는 게 중요하지요. 그림에서 어른들이 저렇게 인생을 즐겁게 사니 아이들도 장차 삶을 유쾌하게 살아갈 것 같습니다. 그러나 먼저 즐겁게 놀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우선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지 않으려면, 삶을 낭비하는 잘못된 습관이 들지 않게 하려면 어른이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사진1. Nymph of Fontaineblau, bronze , 1542-1543/wikipedia  그림2.<Beware of luxury>,1663/ wikipedia





<사진 1> 벤베누토 첼리니의 <퐁텐블로 요정 > 청동 부조입니다. 침대에 누워있는 다른 거장들의 비너스와 비슷한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긴 팔다리를 가진 나체의 님프와 사슴, 멧돼지, 개 등의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첼리니의 첫 대형 브론즈 주조 작품이고요. 프랑수아 1세의 상징인 사슴과 불의 정령 등 왕실 문장이 사용되어 알레고리적 의미를 지닙니다. 배경 아치 중앙 상단의 뿔이 아주 인상적이죠. 1540년 , 프랑수아 1세의 왕실로 초청되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만든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Long view showing its location on the Mollien Stairs of the Louvre





하지만 ,'프랑수아 1세'의 아들 '앙리 2세 Henri II가 왕위에 오르자, 엉뚱하게도 왕의 정부이던 '디안느 드 뿌와띠에 Diane de Poitier'의 소유지 '아네성(Chateau d'Anet)'에 세워집니다. 왕궁에 있던 물건이 왕의 정부가 거주하던 성의 장식으로 쓰이게 된 거죠. 프랑스 대혁명이 진행되던, 1797년 '루브르 박물관'으로 들어오게 되고 현재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를 보고 계단을 올라가노라면 볼 수 있습니다.












17세기 화가 얀 스테인 (Jan Steen 1626-1679)은 렘브란트(1606-1669)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살다 간 화가입니다. 같은 고향 출신이고요( Leiden). 렘브란트보다 20년 뒤에 태어나 그보다 10년 뒤에 죽었으니까요. 그는 렘브란트처럼 무겁고 비장한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가정과 일상을 주제로 유머와 해학이 넘치는 친근한 그림을 많이 그렸지요. 인간의 심리에 대한 그의 통찰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아도 놀라울 정도입니다. 




 야심만만한 화가였습니다. 그는 풍속 주제뿐 아니라 종교, 역사, 신화, 풍경, 초상, 정물주제 등 회화의 거의 모든 주제와 장르에 관심을 갖고 그 모두를 넘나들었던 화가입니다. 그러나 그를 오늘날까지 유명하게 해 주고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남은 것은 대부분 당대 네덜란드의 일상풍속을 다룬 풍속화들입니다. 네덜란드 판 김홍도 같은 화가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16세기경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네덜란드 지도/ 오마이 뉴스






<그림2>. 얀 스텐(Jan Steen)은 세태를 꼬집는 당대의 속담에 재치 있는 그림을 남겼습니다. 1663년에 그린 <사치를 조심하라 Beware of luxury> 또한 네덜란드 속담에 근거를 둔 걸작 중 하나입니다. 일이 잘 풀릴 수록, 상황이 좋아질수록, 오히려 이를 경계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라는 말이죠.





아이쿠 저런, 아수라장이 따로 없네요. 안주인이 어디 갔길래 집안 꼴이 이모양입니까? 그림 속 안 주인부터 찾아 나섭니다. 척 봐도 안주인 같은 중년 부인,  비싼 반코트를 입은 여인이 보입니다. 그런데 깊은 잠에 빠져 있네요. 흔들어 깨우기 미안할 정도로 말이죠. 덕분에 개가 맛깔나게 차려 놓은 음식을 '이게 웬 떡이냐'하며 게갈스레 해 치우는 중입니다. 아기는 음식에 관심이 없나 봐요. 안주인 값비싼 목걸이를 가지고 놀고 있네요. 뒤쪽 남자아이는 곰방대를 입에 물고 어른 흉내를 내봅니다. 이 집 바깥 주인장은 한 다리 걸치고 화면 중앙을 똑바로 응시하는  하녀와  수작을 벌이는 중입니다.  동생으로 보이는 듯한 앳된 여인은 귀중한 식기를 슬쩍 가져갈 모양인가 봅니다. 낯선 두 남녀와 바닥에 떨어진 부엌자재들, 음식들, 그리고 토실한 핑크 돼지까지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된 집안의 형편을 생생히 드러낸 작품입니다. 이 그림을 그리며 얀 스텐(Jan Steen)은 염두에 둔 속담을 그림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놓인 석판에 써 놓았습니다.





 풍족할 때 조심하라. 그리고 회초리를 두려워하라.
-네덜란드 속담-








 졸고 있는 부인이나 하녀와 수작을 부리는 남편 둘 다 잘 차려입었습니다. 세간살이도 이만하면 잘 갖춰져 있고요. 그만큼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집이네요.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할 때는 건전한 삶을 삽니다. 성취하고 난 다음에는 패가망신하기 쉽지요.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이 말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수록 스스로 돌아보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어디 쉬워야 말이죠. 이 집은 바로 그 교훈을 잊고 있기에 이처럼 뿌리부터 허물어져 내리고 있는 중입니다.  얀 스텐(Jan Steen)은 그 속담을 강조하기 위해 천장에 매달린 바구니에 칼과 목발을 그려 넣었습니다. 칼과 목발은 징벌의 상징입니다. 집안이 이렇게 돌아가는데도 여인이 계속 졸고 있다면 징벌을 피할 수 없다는 메시지입니다. 물론 징벌은 여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집안사람에게 해당되지만요.  





이 그림에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 볼 부분이 있습니다.  그림의 중심이 '주부'라는 것이죠. 서양회화에서 주부들의 일상이 본격적으로 묘사되기 시작한 것은 시민사회의 부상과 더불어서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주부들이 중요한 소재로 조명받기 전, 유럽에서는 오로지 귀족 여성들의 화려한 이미지만이 캔버스를 수놓았습니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에서 애당초 귀부인 초상은 일반적인 주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평민 여성은 그려진다 해도 주부로서 보다는 농촌 일에 바쁜 농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그려지곤 했습니다.  가정 안에서 사랑으로 아이들을 기르고 부지런히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전형적인 가정주부의 모습은 도시 부르주아의 등장 없이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이미지입니다. 경제적 부를 배경으로 시민 공화국을 형성한 17세기의 네덜란드에서 서양 미술사상 처음으로 주부 주제가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자상한 어머니만큼 가정의 행복을 위해 중요한 존재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자연히 주부의 덕을 주제로 한 그림이 많이 그려졌지요. 물론 이런 의식은 당시의 네덜란드가 사회체제를 유지하는데 적지 않게 기여했습니다. 또한 그 안에 다소 가부장적인 편견이 자리하고 있음은 시대적 한계로 남습니다. 그 모든 원인이 아내에게만 있지는 않은 테니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3zJlu2Q4kSg








브론치노가 그린 무장한 코시모 1세 데 메디치/wikipedia   이탈리아 지도 (1494년)/wikipedia
메디치 가문 가계도/wikipedia








이후 그는 피렌체로 돌아와 메디치가의 코시모 1세를 위해 일합니다. 청동상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 Perseus with the head of Medusa > (1545-1554)를 제작하고요.




1&2.  Perseus with the head of Medusa, 1545, Broze/ wikipedia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Perseus with the Head of Medusa), 페르세우스는 사람을 돌로 변하게 만드는 뱀 머리를 가진 괴물 메두사를 퇴치한 영웅입니다. 조각들 사이에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페루세우스상'이 보입니다. 




1545년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 1500-1571)는 이탈리아 피렌체로 돌아와 코시모 메디치(Cosimo de' Nedici 1519-1574)아래서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의 조각상이 모여 있는 로자 데이 란치 (the Loggia dei Lanzi)에 코시모 메디치의 청동상과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는 그의 조각 실력 역시 거장 급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작품입니다. 




나체에 허리에 천을 두르고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있습니다. 한 손에는 메두사의 잘린 머리를,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죠. 메두사의 머리에서는 피가 솟구치고 있으며, 뱀으로 된 머리카락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공화국에 대한 공작의 권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또한 뒷면에 자신의 초상을 페르세우스 투구 뒤편에 새겼고요. 이 작품을 위해 직접 용광로를 건설하기도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1j-gPKAcDA




3. <Argunent over a card Game>,1664-1665/ Wikimedia Commons






3. 얀 스텐의 작품 < 카드 놀이가 끝난 뒤의 싸움 Argument over a card Game>(1664-1665)입니다.  카드놀이가 끝났지만 두 사람은 참지 못하고 서로의 무기를 빼 들었습니다. 바닥에 나뒹구는 카드와 그릇을 보니 누군가 놀이판을 뒤집은 모양입니다. 두 사람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가 됩니다. 왼쪽의 사내는 옷도 그럴듯하게 차려입고 칼을 찼습니다. 아이와 여인이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게 필사적으로 말리고 있고요. 반면에 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은  송곳 정도의 작은 칼을 들고 맞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습니다. 가운데 검정옷의 남성 역시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사태를 말리는 듯하고요. 분위기를 보아하니 앉아 있는 사람에게 서 있는 사내가 당한 모양입니다. 오른쪽 구경하는 사람들은 이런 광경이 한두 번이 아닌 듯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들입니다. 어느 시대나 도박이 있는 곳에 싸움은 기본인가 봅니다. 









사진1.Ganymede, 1547, Broze , Florence/Pinterest  그림 2. Celebrating the Birth,1664/ ART UK






<사진1>독수리를 탄 트로이의 미소년, 가니메데스(Ganymedes)입니다. 브론즈로 만들어진 높이 62cm 작품으로 피렌체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가니메데스가 독수리에 의해 하늘로 끌려가는 장면을 표현한 조각상입니다. 



가니메데스(Ganymedes)는 나체로 표현되었으며, 머리 위로 날개를 펴고 있는 독수리의 발에 붙잡혀 공중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의 자세와 표정은 놀람과 공포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첼리니는 이 작품을 통해 고전 신화 소재를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인체의 아름다움과 역동성을 잘 나타냈습니다. 




배경을 알면 작품이 더 잘 보이죠. 감상의 깊이도 다르고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가니메데스(Ganymedes)는 트로이의 왕 트로스 (Tros)와 칼리로에 (Calirrhoe)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들 중 한 명으로, 일로스(IIus)와 아사라코스(Assaracus)가 그의 나머지 형제들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Homeros)에 따르면 가니메데스는 필멸의 인간들 중에서 가장 빼어난 미남이었다고 합니다. 




신들이 가니메데스(Ganymedes)를 제일 잘 생겼다는 이유로 데려간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 12 신들에게는 그들의 먹는 음식 암브로시아 (Ambrosia)와 넥타르 (Nectar)를 시중 들어줄 이가 필요했습니다. 신들의 식생활을 담당하는 이 중요한 임무는 이전까지 젊음의 신 헤베(Hebe)가 맡고 있었죠. 그런데 헤베는 마침 불사의 몸이 되어 천상으로 올라온 헤라클레스(Heracles)와 결혼을 하면서 (혹은 발목을 다치게 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됩니다. 공석이 생긴 것이죠.





이에 신들은 이 임무를 맡길만한 이를 물색하던 차에 제우스의 강력 추천으로 가니메데스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제우스는 트로이 출신의 아름다운 왕자 가니메데스에게 일찌감치 매료되어 있었거든요. 신화 기록가들에 따라 제우스가 그를 데려온 과정은 조금씩 다르게 묘사됩니다. 신의 본모습으로 직접 내려가서 데려왔다는 설도 있고 또는 신조인 독수리를 보내서, 혹은 독수리로 변해서 이다 산에서 사냥을 하고 있던 가니메데스(Ganymedes)를 낚아채 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쨌든 천상에 올라와 헤베로부터 술잔을 넘겨받음으로써 신들의 , 그중에서도 특히 제우스의 음식 식사 시중을 든 이가 되었습니다.




가니메데우스(Ganymedes)는 제우스 옆에서 남은 일생 동안 그의 시중 역할을 다 하다가 밤하늘을 수놓는 '물병자리' 성좌가 되어 옆에 놓였습니다.





<Rembrandt<Rape of Ganymede>, 1635, wikipedia



렘브란트가 그린 <가니메데스 Gabtnede >랑 한번 비교해 볼까요? 너무 놀랐는지 오줌까지 찔끔한 모습으로 그려졌네요.













<그림 2>. 가정을 주제로 한 얀 스텐(Jan Steen)의 그림들 가운데 1664년 작품 <아기 탄생 축하 Celebrating the Birth>입니다. 방금 산모가 해산을 한 산실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당연히 대부분이 여성들이죠. 화면 왼편 뒤쪽으로 이 사건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젊은 산모가 침대에 누워 죽을 받아먹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눈에 잘 띄지 않게 귀퉁이에 표현되어 있어요.  그 앞으로 친척과 하녀로 보이는 여성들이 방금 전까지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려는 듯 식탁 주위로 모여들었습니다.  술과 음식을 나누려나 봅니다.  물론 이 축복의 자리에는 남성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아기를 안고 있는 아기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죠? 이런 그림에서는 보통 아기 엄마가 주인공일 텐데, 이 그림에서는 오히려 아기 아빠가 크게 부각되어 있습니다.  





그 열쇠를 쥐고 있는 이가 아기 아빠 왼쪽에 그려진 남성입니다. 지금 방에서 살금살금 밖으로 나가려 하는 그는 아기 머리 위에 특이한 제스처로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입니다. 언뜻 보면 'V' 자 같기도 하고요. 젊은 이의 이 손짓은 아기의 아버지가 오쟁이 진 남편, 곧 '부정한 아내'를 둔 남편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기의 탄생으로 누구보다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남자가 실은 진짜 아버지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어리석게도 그만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갓난아기의 아버지 치고 남자는 꽤 나이가 들어 보입니다. 그는 어린 여자와 결혼해 이렇게 노년에 손자 같은 아기를 품에 안게 되었지만, 실은 그가 성적으로 무능하다는 사실을 화가는 그림 여러 곳에 상징적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그림 왼편 바닥에 놓여 있는 온열 팬 보이시나요?  이 부부의 침대를 덥히는 게 두 사람의 뜨거운 육체가 아니라 바로 이 팬 뿐임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른편 벽난로에 소시지가 축 늘어진 형태로 매달려 있습니다. 이는  남자의 성적 무능력을 상징하는 이미지이고요. 이렇게 오쟁이 (자기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간통하다) 진 남편이 되었음에도 그는 그 '출생의 비밀'을 까맣게 모른 채 그에게 수고비를 달라는 산파와 요리하는 여인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돈을 꺼내 주려 합니다. 





이 그림이 이런 유머에 실어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이 무렵 나이 든 남자가 자기보다 한참 어린 여자와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대부분 정략결혼이죠. 이처럼 돈이나 욕심을 앞세운 결혼은 반드시 그 댓가를 지불하게 만든다는 거죠. 좋은 가정을 이루려면 먼저 헛 된 욕심을 버리고  여러 가지 면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짝을 찾는 게 우선이라고 충고합니다.  







1.The Village School, 1670/ Wikimedia Commons2.Cristo Crucificado, Benvenuto Cellini, 1562/pinterest





김홍도<서당>/우리문화신문




<그림 1>. 김홍도의 <서당> 그림이 떠오르는 작품입니다. 훈장님이 곰방대가 아닌 숟가락 같은 무기로 아이를 혼내시는 중입니다.


"고얀 놈, 손바닥 이리 내!"


선생님 말씀에 아이는 벌써  우는 시늉을 합니다. 녀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시험지에 이런 낙서만 잔뜩 해 놓았군요. 녀석은 아마도 상습범인가 봅니다. 엉엉 대고 우는 모습이 아니고 이것저것 생각하는 눈치거든요. 그걸 알고 있는지 옆에 소녀의 표정은 '아이 셈통이다.'뭐 이런 표정입니다. 보고 있던 꼬맹이 표정이 사뭇 심각합니다. 안쓰럽게 바라보는 걸 까요? 까만 눈에 통통한 볼살이 아주 귀엽습니다. 깨알 같은 글씨를 읽고 있는지 모자를 푹 눌러쓴 녀석 혼날까 봐 마음이 바쁩니다. 그 뒤로 머리 하나 큰 아이는 비상입니다. 친구 매 맞는 모습이 남일 같지 않거든요. 엎드려 답안지를 고치는 녀석도 있고 아무튼, 큰 시험이든 작은 시험이든 '시험'은 항상 불친절합니다.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니까요.








나는 조각상이 아니라
 살과 영혼이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





 <그림 2>.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는 젊어서  미켈란젤로가 만든 다비드상을 보고 반했습니다. 이후로 미켈란젤로를 존경하게 되지요. 그 역시 미켈란젤로만큼 성공한 예술가로 명성을 날리고 싶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조각가였기 때문에 그 역시 조각에 많은 노력을 들였습니다. 그렇게 나온 걸작으로 실물 크기의 십자가형은 실제 사람의 크기로 대리석을 깎아 만든 걸작입니다. 단지 예수의 성기까지 노출을 시켰다는 것과 근육질 몸매로 만들었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긴 합니다. 후에 수도원에서  민망한 부분이 천으로 가려지게 됩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걸린 예수의 팔 근육의 모양과 힘 빠진  얼굴 표정은 그가 몇 년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스케치한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Album Online





Dell'oreficeria("On the Goldsmith's Art",1811)/wikipedia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의 자서전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미켈란젤로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습니다. 유명해지고 싶은 그의 마음과 그의 종교관도 볼 수 있고요. 그리고 16세기 당시 로마, 피렌체, 밀라노, 나폴리 및 프랑스에서 미술계는 물론이고 주변 인물들의 이름과 활등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첼리니는 자신의 금세공 기술과 조각 기법에 대한 두 권의 논문도 남겼습니다. 이는 당시 금속 공예와 조각 기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또한 그의 자서전을 통해 당시 예술가들의 열정과 경쟁, 후원자들과의 관계 등 다양한 에피소드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다소 과장된 내용은 걸러서 본다고 합니다.




굴곡진 삶을 살았던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 그의  자서전을 이탈리아 여행 중 대문호 괴테가 발견하게 됩니다. 그의 손에 의해 가장 먼저 독일어로 출판되었고요. 또한 초현실주의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가  첼리니 자서전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달리는 초현실주의 아트북 벤베누토 첼리니의 일러스트북을 출판하기도 했고요. 이밖에도 이 자서전을 통해 작가, 화가, 음악가 등이 치명적인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별영상>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음악축제(Salzburg Festival) 때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rk)가 지휘한 오페라 무대입니다. 넉넉하게 3시간 여유시간 필요하고요.(2:43: 45)


이탈리아의 유명한 금속 세공사이자 조각가인 '벤베누토 첼리니(Benvneuto Cellini)'가 아름다운 여인 테레자를 사랑한 이야기를 엮은 오페라입니다. 


등장인물 : 


벤베누토 첼리니(조각가 겸 금 세공사) 

지아코모 발두치(교황청 회계책임자) 

피에라모스카(교황청의 조각가) 

교황 클레멘트 7세, 

폼페오(피에라코스카의 친구)

 테레자(발두치의 딸) 

아스카니오(첼리니의 조수)







https://www.youtube.com/watch?v=a82dmk0p5Rc&t=115s







예술가는 그 사회의 단면을 포착해 시대 감성을 담아내는 사람들입니다. 훌륭한 예술 작품이 꼭 훌륭한 인격자에 의해 완성된다는 보장은 없지요. 인격 기준으로 따지자면 아마도 세계 박물관이나 미술관 혹은 도서관이  텅텅 비게 될지도 모릅니다.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는 그의 자서전을 통해 16세 때 동료들과 싸움을 벌여 6개월간 추방을 당했다고 기록합니다.  자신의 형제 살해범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고요. 동료 화가를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후견인들이 그의 재능을 아껴 구해냅니다. 고비를 넘길 때마다 그의 작품은 한층 성숙해 갑니다.  



얀 스텐(Jan Steen)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기 때 문학과 연극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던 화가입니다. 종교화 역사화 등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남겼고요. 그의 다양한 작품들 중에 일상생활을 주제로 한 익살스럽고 해학적인 장면들이 우리 시선을 끌고 오랫동안 사랑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 제목 그림: <Peasants before an Inn, 1650s,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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