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간⌟ 공부 (1)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존재론에 대한 이해

by 잠좀자자

개요


탁월한 공부는 단지 받아들임이 아니다. 무엇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어떤 의미에서 구성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인것은 물론 옳으나, 그럼에도 좋은 공부를 위해서는 그렇게 축적된 무엇을 내보일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갖고 있던 것을 명료히 하고 새로운 인식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본고는 그러한 공부의 일환으로써 적어나가는 것이며, 결코 올바른 해나 답이 아니다.




존재론의 문제와 실마리(§1~§2)


우선 존재와 시간이 겨냥하는 목표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 그것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는 바, 우선 그것은 존재를 겨냥하고 있다. 함께 병기되어 있는 시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도록 하자. 그러므로 하이데거가 하고자 한 바는 존재론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것" 혹은 "저것"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존재론은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기 위한 근거인 "존재 자체"를 다루고자 한다. 즉, "무엇이 있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서 존재론에서 주의해야 할 첫 지점을 만나게 된다: 존재자(Seiende)와 존재(Sein)는 다르다. 존재는 존재자가 아니다. 다시 말해, 존재자를 존재해주도록 해주는 존재 자체는 존재자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존재자라면, 다시 그 존재자인 그것의 근거로의 존재를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종적 근거로의 존재 자체, 즉 "존재"는 존재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 이러한 사유 자체를 했던 안했던, 하이데거 이전의 서양철학사에서 다루는 존재론은 엄밀하게 존재자와 존재를 구분해내지 못했다. 여전히 존재를 존재자의 최종 근거로의 존재자로만 사유했기 때문이다. 예컨데 이데아는 결국 어떤 것이다. 즉 이데아는 여전히 있는 대상처럼 다뤄진다.


우리는 그러므로 존재론의 까다로움 또한 만나게 된다. 만약, 우리가 "Was ist X?" 즉 "X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에 대한 답은 "X는 어떠어떠하다"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이 X의 자리에 존재를 넣어 사유할 수 있을까? 즉, 이미 그것이 물음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순간, 그것은 대상으로서 존재자로 다뤄지기에, 순전한 존재를 다룰 수 없다. 이것이 우리의 언어의 한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존재물음의 가능성 또한 엿본다. 우리 인간은 존재가 무엇인지 의문가질 수 있는, 즉 존재물음(Seinsfrage)을 수행할 수 있는 존재자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해 물음던질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의 물음의 대상으로 가져와지지 않는다. 즉, 다시말해 우리는 존재물음을 할 수 있는 만큼, 어떠한 방식으로든 애매모호하게 존재를 이해하고 있다. 이를 "어렴풋하고 평균적인 존재이해"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존재물음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알기 위해선, 그 물음이 걸리는, 다시말해 물음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을 선택할 수 있다. 즉 존재의 의미를 해명하는 데 도움을 줄 "범례적인 존재자"는 바로 인간인 것이다. 평균적인 존재이해가 있는 인간을 분석한다면, 그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존재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존재자, 즉 인간을 하이데거는 현존재[Dasein, 거기에-있음]라 일컫는다.


존재물음의 존재적, 존재론적 우위(§3~§4)


앞서 논한 것처럼, 존재물음은 결국 현존재의 가능성인데, 이 존재물음 자체가 존재로 이끈다는 점에서 특유한 위상을 갖는다. 그것을 하이데거는 존재론적, 존재적 우위라 명명하고 논한다. 이에서 논해지는 것은 결국 학문 일반에 대한 철학의 우위성이다. 철학이 존재를 겨냥한다는 점에서, 존재자들 중 어떤 대상들을 한정지어 탐구하는, 대상영역을 선제한 분과 학문에 앞서 그것들의 존재론적 기초를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세계에는 다양한 사태가 있다. 이러한 사태들 중, 철학이 아닌 학문들은 어떤 사태의 분야에 대해서 탐구를 수행한다. 사태분야 즉 탐구의 한정된 대상들인 영역 위에서 탐구가 수행된다. 그러나 이 영역을 구성하는 것은 그 영역 위에서 이뤄지는 학문이 스스로 정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대상 영역을 구성해주는 개념을 하이데거는 근본개념이라 한다. 철학은 이 근본개념을 해당 학문에 제공해준다. 이러한 근본개념들이 가능하게 해주는 최후의 근거, 존재의 탐구는 바로 존재자들의 탐구를 가능하게 해주는 논리적으로 앞서는 것이라는 점에서 존재물음은 우선 존재론적 우위를 갖는다.


그렇다면 존재물음의 존재적 우위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존재물음의 가능성을 갖는 현존재에게 현존재의 존재함은 문제가 된다. 이렇게 현존재에게 존재의 의미는 일단은 평균적이지만 우선 열어밝혀져 있다. 그러므로 현존재는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를 이해하며 존재한다. 이것을 현존재의 존재론적-존재함이라 일컫는다. 결국 현존재는 그 존재에서 존재와 관계맺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말이 어려운데, 풀어 쓰자면, 현존재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를 이해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즉 현존재의 존재에는 존재를 이해하며 존재함이 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현존재가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와 관계맺음을 실존(Existenz)이라 일컫는다. 현존재는 늘 실존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실존은 장악되거나 놓쳐지는데, 자신의 고유한 존재가 아니라 일상적 세계 속에 몰입해 빠져 있다면, 그것은 실존을 놓친 것이다.


이러한 식으로 자기 자신의 고유한 존재와 관계하는 것을 현존재의 실존적 이해라 한다. 이때 실존에 앞선 존재와 그 실존이 관계맺는 구조를 실존성이라 한다. 현존재는 세계 안에 있다. 즉 현존재는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다. 그는 세계 속에서 현존재가 아닌 존재자의 존재를 만난다. 그러므로 학문 즉 다른 존재자의 존재에 대한 현존재의 이해는 그 현존재의 세계-안에-있음에 속한다. 결국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은 존재론의 바탕의, 존재론을 위한 기초존재론이 된다. 그러므로 이 현존재를 분석하는 실존론적 분석은 존재론적 우위를 갖는다.


그러나 동시에, 실존론적 분석은 다시 실존적이다. 즉 존재와 관계맺어 현존재의 고유한 존재를 탐색하는 것이므로, 그 실존론적 분석이 실존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존론적 분석은 존재적 우위 또한 갖는다. 그러므로 이 실존론적 분석 혹은 기초존재론의 방향을 앞서 잡아끄는 것 즉 존재물음은 존재적 우위를 지닌다. 우리는 이제 현존재를 분석함으로서,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기 위한 예비적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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