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닮은 사람
2024년 연말 결산을 위해 올해 썼던 일기를 꺼내 읽었다.
2024년 2월
어제 A가 해준 말들이 맴돈다. A가 나에게 연애 안 하냐고 물었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연애 같다면서.
연애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은 티가 난다고 한다. 나를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에게 사랑받아 본 사람은 또 다르다면서.. 20대 초반에 연애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부재가 느껴진다고 한다. 감정의 결핍, 공감능력 같은 것.
나도 어쩌면 그런 사람이 돼 있을 수도 있겠다. 감정소모 없는 연애 같지 않은 연애만 반복하고 있으니. 물론 모든 연애가 그렇지는 않았지만 점점 더 에너지를 아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감정의 절제가 아니라 무뎌지는 느낌. 나를 열 수 있는 연애를 하고 싶다면서 나도 모르게 결국 다 똑같다고 생각하고 점점 더 닫았던 것 같다. 그래서 좋은 사람도 놓친 것 같다.
연애를 필요에 의해서 하면 평생 연애를 하겠냐만은.. 그것보다 연애가 장애물이 된다는 생각이 큰 것 같다. 내가 필요로 하는 능력을 키우는 건 혼자일 때가 항상 유리했고, 남에게 얻을 수 있는 건 안정감이 유일한데 결국 그건 나를 솔직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뭔가를 숨기는 건 아니지만 ‘굳이’ 얘기하지 않는 것들이 많은데 그런 걸 말하게 만드는 사람. 연애를 할수록 그 ‘굳이’가 늘어서 전 남자 친구에게 “너는 나 없이도 잘 살 것 같아”하는 말까지 들었던 것 같다.
이런 내가 잘못된 걸까? 그냥 맞는 사람을 못 찾은 걸까? 사실 맞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아는데. 책을 더 많이 읽으면, 사람을 더 많이 만나면, 몇 년 더 살면 알게 될 줄 알았는데. 똑같다. 여전히 내가 누굴 찾는지 모르겠다.
나는 연인사이에도 나의 목표나 계획을 굳이 공유하지 않는, 오히려 숨기는 사람이었다. 분명 상대방은 나를 응원하고 도와줄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이렇게 볼품없고 작은 나를 들키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너무 못난 사람을 만나도, 너무 잘난 사람을 만나도 결국 이별하게 되는 실패뿐인 연애를 반복했고, ‘나를 열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다.
그런 나에게 올해 찾아온 S와의 연애는 나에게 가장 이상적인 연애였다. 함께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함께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같이 성장하는 그런 연애. 이런 내가 신기하고 S에게만 이럴 수 있는 이유는 뭘까 궁금해졌다.
S는 나와 닮은 점이 많다. S의 말로는 나이도 비슷하고 같은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하고 있는 게 우리의 경계를 허물게 했던 것 같다고 한다.
나보다 잘난 사람을 만나서 닮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그런 그릇이 안 되는 것 같다. 나를 사랑한다면서 작은 나를 들키기 싫어서 숨어버리고, 상처받기 싫어서 그전에 도망가버리는 게 정말 나를 위한 일이었을까?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별을 해왔었는데, 사실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할 자신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부족한 모습까지 닮은, 그렇지만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두려움이 없는 S를 보면서 나에게 세워놨던 높은 기준, 완성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욕심이 그 애 앞에서 만큼은 사라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