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내 꽃' 피우기: 1편

왜 AI 앞에서 우리는 멈칫하는가?

by design it better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김춘수, '꽃'


솔직히 처음 AI를 접했을때는 그저 좀 신기한 장난감이었어요. 하지만 최근에 여러 AI서비스를 실생활과 업무에 적극적으로 활용해보면서 놀라움과 두려움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까지 뭐든지 다 잘해주면 나는 어떻게 하지?" 처음엔 그저 놀랍기만 하던 AI 기술들이, 어느 순간부터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AI에 환호하던 필사적으로 거부하던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것은 분명해보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아직까지는 AI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의지'입니다. 우리의 요청에 답하는 AI에게는 특별한 의도나 의지는 없습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서 요청에 답할뿐이죠. 그래서 AI에게 "그냥 알아서 해줘"라고 막연히 요청하는 건, 어쩌면 아직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꽃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왜 그것을 하려는지 분명한 목표 의지가 없다면, AI가 아무리 많은 일을 해줘도 결국 의미 없는 몸짓에 머물러 버릴 테니까요.




정보의 바다, 그런데 내 건 어디 있지?


예전에는 정보가 곧 힘이라고 했습니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앞서가는 시대였죠.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AI가 클릭 몇 번으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쏟아내는데, 과연 그 많은 정보가 정말 다 '내 것'일까요? 저는 여기서 한 가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단순히 정보량이 많다고 경쟁력이 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면, 우리는 뭘 해야 할까?


제가 내린 답은 이렇습니다. AI 시대의 정보는 마치 거대한 원석 덩어리 같아요. 우리는 그 원석 속에서 어떤 보석을 찾을지, 그리고 그 보석을 어떻게 깎아낼지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깊이 있는 이해와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AI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는 거죠.


여기서 더 나아가, '무엇을 정확히 알고 있느냐'가 AI의 결과물을 전혀 다르게 만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마치 명장이 좋은 재료를 알아보듯, 우리는 AI의 잠재력을 끌어낼 '정보의 본질'을 꿰뚫어 봐야 해요.


예를 들어볼까요?

AI로 이미지를 만들 때: 머릿속에 '차가운 금속 질감과 기계적인 디테일이 살아있는 미래 도시 풍경'을 상상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이것을 단순히 '사이버펑크 스타일로 그려줘'라고 요청하는 것과, '미래학자 시드 미드(Syd Mead)가 그린 것처럼 차갑고 기계적인 디테일이 살아있는 사이버펑크 도시 풍경을 만들어줘'라고 요청하는 건 결과물의 질과 디테일에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특정 작가나 장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지식이 AI에게 훨씬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주기 때문이죠.


AI가 똑똑해질수록, 우리가 얼마나 '정확하게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해지는 겁니다.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무엇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에 대한 통찰이 필요한 시대가 온 거죠.


다음 편에서는 이렇게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의지를 어떻게 AI와 소통하고 '나만의 꽃'으로 피워낼지 이야기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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