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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우 Aug 07. 2023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여러분은 운명을 믿나요?

소설을 리뷰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 아니 독서 동아리를 참여하던 소싯적 시절까지만 해도 소설은 너무나 흔하게 읽던 장르였는데,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다보니 또 다른 세계에 눈독을 들일 시간마저 점차 사라지나봅니다.

 여하튼 이번에 리뷰할 책은 SF계의 신성이자 거장인 테드 창의 단편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 입니다. 흔한 SF 소설 같아보이지만, 저에게는 아주 큰 울림을 준 명작 그 자체인 소설집입니다.이 책의 ‘네 인생의 이야기’는 영화 컨택트로 각색되어 나왔을 만큼 개인적으로 저에게는 매력적이고 감명 깊은 단편 소설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여러분은 운명을 믿나요? 살다 보면 자유의지와 운명의 사이에 엇갈려 무엇이 맞는가를 고민하는 때가 있습니다. 내 눈앞에 닥친 일들은 필연적일까를 골몰하며, 어쩔 수 없이 맞이하는 그런 일들이 문득 생깁니다. 언뜻 보면 우리는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며 살아가기에 미래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상태로 예측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느끼곤 합니다. 그 이유가 어쩌면 언어적인 특성에서 기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접하기 전까지는요.


 인간의 언어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의 흘러가는 삶처럼 순차적이며, 순간의 맥락만을 담고 있죠. 그래서 우리는 현재밖에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소설 속 미지의 존재들은 인간과는 다른 언어의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규정합니다. 그래서 읽고 쓰는 언어에 따라 생각의 흐름도 필연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생각의 전반과 행동의 양식도 결정하며, 사회의 문화까지도 영향을 줍니다. 저는 한국인이고 한국어를 주로 사용합니다. 한국어는 문법적으로 따지면 ‘교착어’에 속하고 음운현상이 잦으며, 의성어와 의태어가 발달해 있고, 조사가 쓰이며, 어순의 교체가 자유롭고.. 뭐 이런 여러 가지 특징들이 있습니다. 일일이 따지자면 복잡하니, 간단히 예문으로 들어보자면 ‘아버지 가방에 들어갑니다.’라는 말을 봅시다. 띄어쓰기에 따라 말은 중의적으로 변합니다. 언어의 작은 표기 차이는 곧바로 우리의 사고 역시 바꾸게 됩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놓고 봤을 때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는 것’과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표기에 따라 상식에 어긋날 수도, 이치에 맞을 수 있는 상상으로 이어지는 것이 바로 언어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책을 읽다 보면 고작 언어 때문에 사고를 제한받는다는 게 이해가 잘 되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단순히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가 읽고 쓰는 글은 기본적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쓰거나 읽습니다. 다음 문장을 읽기 전까지는 우리는 여전히 어떤 문장이 올지 완벽히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언어는 시계열 속성을 가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볼 수 없습니다. 순차적으로 글을 읽어나가는 건 지금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과 비슷하죠.

영화 <컨택트> 중


책 속 외계인들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 체계와 상당히 다릅니다. 방사형으로 된 문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해석의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언어의 패러다임으로 해석하려 하면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주인공은 이들의 언어를 이해하면서 점차 자신에게 일어날 미래까지 예측하는 지혜를 가지게 됩니다.

중학교 과학 시간에 한 번쯤은 배웠을 빛의 굴절 실험을 기억하시나요? 빛은 최단 경로만으로 움직입니다. 공기와 물 사이에서 경로가 꺾입니다. 그런데 빛은 어떻게 최단 경로로 알고 가는 것일까요? 마치 처음부터 예측이라도 한 것 마냥 말입니다. 과학적으로 이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합니다.


빛의 굴절 실험으로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는 뉴턴의 역학 관점에서 바라보는 결과론적 이야기이고, 나머지 하나는 해밀턴의 역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원인론적 이야기입니다. 물체의 운동을 가지고 이야기해보면, 뉴턴의 법칙을 기조로 하는 고전역학에서는 물체의 움직임은 어떤 힘을 주는 어떤 원인에 의한 결과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밀턴의 역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면 물체의 움직임은 항상 최적화된 방향으로만 움직인다는 목적론적 결과에 의해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역학은 근본적으로 같습니다.


 주인공이 이 미지의 생명체들의 언어를 습득하는 서사가 전개될수록, 딸의 생사 마지막 순간으로 부터의 처음 낳는 순간까지 동시에 역으로 또 다른 서사가 진행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어도, 겪는 모든 과정에 거스르는 행동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거스를 수 없는 그럴 만한 이유와 원인이 계속해서 미래에서 과거로 하나씩 드러나기 때문이죠.


*관련 내용을 쉽게 설명한 부분을 https://www.youtube.com/watch?v=Hb40bSKSwUQ&ab_channel=디글%3ADiggle 여기서도 볼 수 있습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해밀턴의 원리’를 찾아보세요. 여기서의 설명은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화 하였습니다.


삶의 최단 경로

복잡한 것 없이 간단하게 생각해 봅시다. 불교에는 ‘생로병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나서 고통받고 병들고 그러다 죽습니다. 알다시피 정해진 운명이고 누구든 거스를 수 없으며 필연적입니다. 거시적으로 보자면, 당연한 생명의 섭리입니다. 하지만 미시적인 각 개인으로서 자각하는 인간은 이 커다란 게임의 룰을 언제나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누군가의 삶이 언제 어떻게 끝날 지를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죽음이라는 목적지 앞에 빛처럼 최단 시간 경로로 움직이는 것이라는 결론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그 끝을 가기 위해서는 어찌 되었든 우리는 ‘현재’의 시간을 겪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에게 있어 겪어야 하는 일련의 여정은 마땅히 맞닥뜨려야 하는 시련이자 고행입니다. 누구에게나 있어 똑같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평생 동안 잊고 살아갈 뿐입니다. 가장 마지막의 결말은 모두가 똑같지만, 그 사이에서 어떤 서사가 펼쳐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떤 목표에 도달하는 데 있어, 최단 경로로 가는 건 쉽지 않다고 이전 글에서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좀 더 넓게 바라보면, 우리가 가는 모든 길은 이미 그 자체로 최단 경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을 너무 단편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좋은 것과 나쁜 것, 성공과 실패, 최고와 최악 같은 어느 한 가지 잣대로만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고는 종종 남들보다 혹은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도착하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에만 집착하곤 합니다. 그러나 제각기 모두가 택한 길은 이미 정해진 단 하나의 결말 앞에서는 의미 없는 방황도, 그저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결과론적으로 그것들은 누군가의 인생의 이야기 속에서 정해진 단 하나의 결말을 위해 존재하는 필연적인 복선이며 미장센입니다.


그래서 다시 인생의 이야기

 삶에 좀 더 집중해서 살면 ‘현재’에 집중하게 됩니다. 과거 중국 전국시대의 제자백가나 고대 그리스와 근대 유럽의 철학자들이나, 그들이 설파한 사상을 들여다보면 결국 지금 살아가는 삶을 치열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소설 속 주인공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당위성을 갖습니다. 여기서는 치열함 보다 기꺼이 수용하고 받아들임에 조금 더 가까운 느낌이지만, 핵심은 ‘현재’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운명을 믿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이 소설처럼 내가 저지른 모든 일들이 마치 총의 방아쇠처럼 어떤 하나의 사건을 구성하는 실마리가 되는 것을 불현듯 느끼는 체험을 종종 하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운명이 이미 정해진 하나의 선로만으로 줄곧 가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얽힌 골목길을 가로질러 도착지에 도달하는 것이라면 한 번 믿어 볼 만하다고 느낍니다. 골목길 사이에서 벌어질 어떤 일들에 대해 기대하는 삶이 곧바로 당신,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인생과도 같겠죠.


처음 던졌던 질문에 돌아가서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운명을 믿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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