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상태 스타트업 생태계, 활로는 있나?

20250319, 오늘 스타트업

by 김a

돈이 말랐지 뭐. 지금 창업하면 망해. 이쪽 바닥에서 15년 넘게 경력 있는 AC회사 모 대표와 미팅을 했다. 앞쪽 30분 정도 업무 얘길하고 20분가량은 업계 얘길 나눴다. 투자자들이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스타트업에게 쏘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었다. 수익을 내기 어려우니 일단 곳간을 닫아두는 거다. 제일 큰 문제는 정치적 불확실성과 거시경제다.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지난 3~4년간 경제정책 측면에서는 한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러면서 생태계는 왜곡되고 기업들의 가능성은 실패로만 연결된다. 글로벌에서는 AI니 양자컴퓨팅이 부상하는데 허구한 날 쓸모없는 정치질을 하고 있는 사이 가능성들이 기회를 잃고 있는 거다. 정치인들이 나라를 망하게 하고 있는 거다.


리벨리온, 퓨리오사 AI 등 스타트업들 성공했다더니...


지난해 몇 년 만에 진짜로 유니콘기업이 탄생했다. 정부는 몇 년 전 이른바 베이비 유니콘이라는 괴상한 개념을 만들었는데 기업가지 10억 불(한국에선 1조) 이상 기업을 의미하는 유니콘 기업이 지난 2022년 이후 한국에서는 한 군데도 등장하지 않았다. 이를 숨기기 위해 만든 일종에 조어가 베이비유니콘이다. 드디어 등장한 유니콘 기업은 AI 반도체 제조 설계 업체(펩리스)인 리벨리온이라는 기업으로 SKT계열로 역시 AI반도제 제조 업체인 사피온과 합병하면서 밸류에이션 1조를 달성했다. 리벨리온은 이미 창업 초기인 지난 2021년부터 과학고 조기졸업, 카이스트 학사, MIT석사/박사라는 글로벌 초엘리트 스펙에 엘론 머스크와 일했던 경력 가진 84년생 대표가 주목받는 등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특히 리벨리온이 관심을 끈 건 A.I 반도체라는 점이다. 그래픽카드를 만들던 엔비디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이 된 데서 볼 수 있듯이 한동안 전 세계는 A.I 광풍이었다. A.I 시장의 개념을 바꿔놓은 chatGPT와 LLM의 등장으로 상상 속에 있던 AI는 실체화되기 시작했다. chat GPT, Gemini, copilot 등 LLM 모델은 관념이나 개념 속에 존재하던 AI의 개념을 일상 영역으로 데려왔다. 이런 핫한 분야에서 유니콘 기업이 등장했으니 뉴스거리가 될 만하다. 지난해 컴업에서 리벨리온 박성현 대표를 볼 기회가 있었다. 세션의 주제는 사우디에서 어떻게 투자받았는지에 대한 얘기. 소버린 AI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우디고 리벨리온은 사우디의 국영기업인 아람코의 투자를 받았다. 스타트업 후배들에게 용감하게 도전하란 말을 호기롭게 외친 박 대표는 세션이 끝나자 급하게 다음 일정이 있다고 달려 나갔다.


지난해 아직 공공 기관에 남아 있던 나는 판교에 입주시킬 앵커기업 유치를 위해 신사동에 있던 퓨리오사 AI에 방문했다. 역시 AI반도체 팹리스 기업인인 퓨리오사 AI는 시리즈 B레벨 투자를 확보했고 C레벨과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반도체 설계를 위해서 많은 양의 전기가 필요하고 임대료가 비싼데도 강남권에 사무실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이유 등을 설명했다. 또 업계가 좁고 유능한 사람은 찾을 수 없다며 인력난을 호소했는데, 인력 유치 경쟁이 치열하단 얘기에 나는 시장에 솟고 있는 불꽃을 봤다. 그들을 만난 지 1년 여가 지난 오늘, 퓨리오사 AI는 상장과 매각 길 사이에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좋은 사례는 여기까지다.


돈 흘러가는 건 카이스트-서울대 출신들이 만든 회사들 뿐


내가 공공섹터에 들어온 이후, 기업 지원 분야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 지난 10년간 한국의 5년 내 기업 생존율 수준은 30%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3년에 70%가 문을 닫는 소상공인을 통계에서 빼면 조금 더 생존율이 늘긴 하겠지만 쉽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만큼 망하기도 좋은 환경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거기다 실증적으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계속 줄고 있다. 2022년 투자액이 15조 3억 원에서 지난해 2024년 투자액은 6조 수준으로 정확하게 반토막난 2023년 7.5조 보다도 더 줄었다. 어디가 저점인지 알 수 없다. TheVC가 제시한 이 통계에서 그나마 플러스(+)를 보인 지표가 있다면 유일하게 A.I 관련 분야인데 이마저도 기술 분야인지 일부 서비스에 반영하고 있다는 건지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창업기업수도 계속 줄고 있다. 2021년 141만 개였던 창업기업은 이듬해 132만여 개, 2023년 124만여 개로 줄어들다가 지난해 118개로 줄어들었다. 정점은 2020년 150만. 2016년도에 119 민개였던 걸 감안하면 창업기업은 지난 10년래 최소로 줄어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기술기반기업, 흔히 우리가 스타트업이라고 부르는 범주에 가까운 기업수 역시 2021년을 정점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정반대다. 미국의 창업률은 드라마틱하게 늘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코로나 대비 50%나 늘었다. 창업이 늘고 있다는 것은 경제에 대한 전망이 긍정적이거나 사업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 많아 보인다는 믿음이 생겼다는 뜻이다. 코트라가 제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기업의 중소기업 낙관지수도 투자확대 기대 전망도 모두 긍정적이다.


체감적으로도 수치 상으로 한국의 시장은 스타트업 생태계는 말라가고 있다. 돈이 돌지 않으니 버티는 건 더 어려워지고 투자를 해도 수익날 가능성이 낮으니 투자자들 역시 돈을 풀기보단 관망을 택한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세 축 중에 하나인 정책 생태계는 계엄 사태 이후로 사실상 멈춰 버렸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공무원들은 보통 판단하지 않는 판단을 내리고 책임지지 않는 판단을 내린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세 축 모두가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거다.




한국에는 몇 단위의 스타트업 리그가 있다. 1부 리그는 카이스트와 서울대 출신들이다. 전길남 교수가 키운 카이스트 전산학과 동문과 그 제자들, 후배들과 다수의 서울대 출신 등 1세대 창업 히어로 그룸과 관련된다. 다음으로 유학파 그룹이 있다. 미국 명문대 출신으로 컨설팅 펌에서 경력을 쌓고 국내로 들어온 사례들이다. 유학파 그룹의 대표적 성공사례가 쿠팡 김범석 대표다. 다음이 대학생 그룹과 기업 경력자 출신 들이 되겠다. 대학생들은 말 그대로 대학 창업 동아리 등에서 꿈을 키우 사람들. 대기업이나 기술 엔지니어 출신들, 각 계통에서 나름대로 전문성이 있는 경력자들이 또 다른 그룹에 속한다.


AI 분야의 투자가 늘었다는 통계, 투자가 줄었지만 그래도 전년 보다 20% 수준 정도로 축소폭을 멈췄다는 수치를 떠받치는 건 카이스트와 서울대 출신들이 이끄는 스타트업 1부 리그 정도다. 카이스트-서울대 등 극소수에게 돈이 풀리는 것도 끈끈한 선후배 네트워크와 막강한 자본을 갖춘 선배그룹이 포진한 까닭이다. 창업 경험으로 노하우를 전수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투자지주 법인화로 동문들에게 쏴줄 수 있는 총알도 준비했다. 물론 그간 쌓아온 성공의 경험과 실력이 전제다. 얼마 전 만났던 카이스트 동문 기업도 보안 관련 서비스 창업 후 만 2년이 되지 않아 20억 펀딩에 성공했다. 창업자는 카이스트 전산학과 학/석/박 부부였다.


유학파도 예전만 못하다. 창업 분야에서 유학파들이 각광받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에 스타트업 붐이 2번 불었는데 한 번이 IMF 이후, 두 번째가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다. 경제에 큰 쇼크를 맞았으니 공간이 생기고 기회가 열린 거다. 유학파 출신들이 두각을 나타낸 건 2차 스타트업 붐 때였다. 해외여행과 유학이 자유화된 90년대 이후 많은 한국인들이 해외로 나갔고 그 무렵 성장한 이민 1.5세대 또는 유학파들이 학위와 초기 경력을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하던 시점,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미국에서 버티는 게 어려워진 시점. 다수의 유능하고 똑똑한 유학파와 이민자들이 한국으로 돌아왔고 스타트업계에 자리를 잡았다. 그 성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 않다. 영어가 되니 글로벌 진출용 사업계획이 만들어지지만 역시 쉽지 않다. 아예 미국에서 시작하지 않는 경우를 빼곤 눈에 띄는 성과나 투자 사례를 들은 일이 없다.


기업 경력자 출신이나 대학생 창업가들에겐 더더욱 기회가 없어진다. 카이스트나 서울대처럼 학력이 투자가치를 일부 증명하는 것도 아닌데 사업계획도 평가절하된다. 사업계획이란 본래 헛소리인 법이라 투자자들이 믿고 또 속아줄 필요가 있는데 근래 투자자들은 그런 공격성을 보일 수가 없게 된 시점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원금 회수의 공포로 믿을 수 없는 사업계획에는 돈을 풀지 않고 장기적 비전 대신 즉각적인 매출이 발생하는 사업 계획으로 기운다. 창업자들은 사업이 어려워지면 당초의 문제의식이나 세상을 바꾼다는 비전을 잃고 자금 확보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정부 사업이나 지원금, 용역에 매달리게 되고 이들 요구하는 부합하는 사업 모델이 집착하게 된다. 그럴수록 사업의 밀도는 얕아진다. 정치 불안과 거시경제가 만든 환경이 거꾸로 지원이 절실한 창업기업들을 망하게 하는 악순환 고리로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나락으로 가는 한국 경제, 보여주기에 치중하는 정부, 남은 건...


거시지표가 나쁘다는 건 말할 필요가 없다. 2023년 내가 수출 관련 업무를 맡았을 때 가장 신경 쓰던 지표가 무역수지였다. 14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반도체의 부진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을 먹여 살리는 게 삼성, 현대라고 하지만 단일 산업 비중으로 보면 한국을 먹여 살리는 건 반도체다. 삼성전자의 수출 비중이 약 20%, 현대-기아자동차의 수출 비중이 5% 내외라는 걸 보면 썩 틀린 얘기가 아니다. 거꾸로 말하며 반도체가 휘청하면 한국 경제 전체가 휘청일 수 있다. AI관련 산업으로 반도체 전반이 재편되는 사이에 삼성과 하이닉스의 전망은 썩 긍정적이지 않다. 한국을 먹여 살리는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기업의 경쟁력이 저하된다는 건 한국 경제 전반의 경쟁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수출뿐 아니라 거의 모든 지표가 한국 경제의 부정적 전망 아니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IMF는 지난 3월 한국의 2025년 경제 성장률 전망을 1.5%로 낮췄다. 지난해 11월 읽었던 전망에서는 2.4%였으니까 거의 1%가 떨어진 것이다. 그 사이 달라진건 계엄과 엉성한 후속조치 밖에 없다. 명백하게도 정치적 불확실성이 그 원인인 것이다. 최근 발표에 따르면 소상공인 폐업률은 IMF 외환위기 사태 당시 수준까지 증가했다. 한국이 선진국들 가운데 자영업자 비중이 유독 높기는 하지만 폐업 늘고 있다는 뜻은 시장에 대한 현실과 전망 모두가 부정적이라는 얘기다. 100 이상이면 높은 것으로 보는 소비심리지수는 95, 제조업 경기 실사지수는 지난해 4분기 93에서 87로 더 떨어졌다. 다이소를 비롯한 저가 브랜드의 판매 향상도 불경기의 확실한 증거들이다. 시장의 주머니는 잠겼다. 이제 돈을 풀 건 정부 밖에 남지 않았다.


정부와 정책에 대해서 나는 냉소적인 말만 할 수 있다. 민간에 나와 기준점을 바꿔보니 행정부와 기관은 생각보다 거짓과 구리가 많다. 관료들과 공공기관에서 떠들어 대는 인사말들은 정말로 거짓말 투성이라는 게 확실해진다. 부처에 스타트업 행사에 유니콘 기업 대표를 앉혀 놓으면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에 투자를 할까? 어차피 정무직일 뿐이고 정치인일 뿐인 장관 나부랭이, 관료 나부랭이가 그럴싸한 인사말에 사진 몇 장 찍고 보도자료 내면 기업들이 창업을 많이 하고 투자가 유치될까? 실무자들은 어떻게든 윗분들에게 잘 보일 행사 하나를 만들어낼 고민만 하고 보도자료 한 줄 낼 행사만 찾아다닌다. 내가 공공에 있을 때 느꼈던 많은 자괴감들이 거기서 왔다. 기업들 모아 두고 세금 써서 VIP 기분 좋으라는 행사 몇 분하고 건 무슨 의미가 있나. 그 시간에 세제를 보완하거나 집중 지원할 산업군을 검토하거나 글로벌 및 내수 시장 이슈 사항을 점검하거나 그도 아니면 기업을 하나라도 더 만나는 게 필요한 일이라는 걸 그들은 모를까?


한국은 위기다. 경제는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이미 구조개혁의 시기는 늦었고 노동자들의 생산성은 계속 나빠지고 있다. AI와 양자컴퓨팅 등등은 어쩌면 도전하기에 늦은 숙제가 된 지도 모른다. 후속주자 취급하던 중국은 이미 전기차 보급률이 50%에 육박했고 아무도 따라집지 못할 줄 알았던 LLM 판도에 딥시크의 등장시키며 저력과 내공을 증명했다. 한국은 뭘 했나? 초고속 통신망을 전국에 깔자는 의사결정은 매우 용감한 결정이었다. 단 몇 년만 늦었어도 한국이 오늘처럼 콘텐츠 강국이 되는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그전에 중화학공업을 기간 산업정한 더 용감한 결단도 있었다. 위태롭더라도 용감한 결정을 내렸던 정치인들과 정책 당국자들은 어디로 갔나?


창업가들의 동기는 다양하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의 가치와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누군가는 정말로 비전을 위해. 그런데 분명한 것은 지난 IMF 외환 사태와 리먼브라더스 사태에서 한국의 경제와 산업계 새로운 활력과 가능성을 불러온 것도 한국 산업 생태계에 균열을 일으켜 변화를 불러온 주인동 들도 모두 처음엔 스타트업이었단 것이다. 정부의 미진한 구조 개혁과 지체된 정책 속에서 스스로 활로를 찾았던 것도 개인의 동기와 욕망으로 스스로 나아갔던 혁신가들, 스타트업 기업인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도전을 포기하는 순간 한국 경제에 기대할 만한 구석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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