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원리의 해악을 막기 위한 제안들에 대해서
현상에 대한 파악을 마친 맬서스는 본격적으로 스스로의 주장을 펼치기 전에 인구원리를 전제로 한 각종 사회제도를 분석합니다. 맬서스가 이 책을 쓴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구빈법 철폐였습니다. 인구는 급증하는데 실제로 빈민 구제 효과도 없고 악덕을 낳는 구빈법은 철폐돼야 한다는 것이죠. 맬서스는 구빈법을 비롯해 다양한 의제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합니다. 맬서스가 던진 이 주제들은 이후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기까지 거의 200년간 좌파-우파의 대립, 시장경제와 복지주의 사이의 논쟁 등은 물론 오늘날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단락에서 변주돼 반복됩니다.
책을 처음 읽던 15년 전쯤 나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나 경쟁의 원리와는 먼 곳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직 사회 경험도 적었고 오늘날 실질적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의 언어와 작동방식도 잘 알지 못했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경제의 언어를 조금은 더 익혔고 정책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배웠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나태하고 무례한지 존재인지, 인간이 때로 얼마큼 비생산적인 존재인지도 잘 알게 됐습니다. 책이 주는 울림은 그때보다 더 크고 무겁습니다. 두 번째 본문 속으로 들어가 보죠.
맬서스는 기하급수적인 인구증가와 산술급수적인 식량생산량 증가를 전제로 각 사회정책이나 지향을 비평합니다. 가장 먼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평등제도입니다. 맬서스는 당대 프랑스의 사회철학자인 콩도세르의 빈민 구제정책을 기금을 통해 보조금을 지원하는 형태로 정의하면서 구빈법의 범위를 늘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합니다. 맬서스가 보기에 콩도세르의 견해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인간상과 가정을 바탕합니다.
더 중요한 건 콩도세르가 주장하는 인간의 수명 증가나 건강 확대에 대해서 당대 과학기술의 관점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가정이라는 비판입니다. 15년 전 나라면 맬서스의 이와 같은 비판에 격렬하게 반응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맬서스가 살았던 19세기 보다 오늘날의 인구는 훨씬 더 건강하게 오래 살고 있고, 맬서스 시대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과학 기술이 그야말로 비약적으로 발전했거든요. 흔히들 현실 그 자체에 집중하는 사람들, 미래의 가능성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비판의 형태입니다. 무척 신랄해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오류이자 인류가 나아지지 못할 거라는 비관주의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로버트 오웬의 평등론은 토지에 대한 낮은 이해가 문제입니다. 인류를 사랑하는 박애의 정신은 잘 알겠으나 그 모든 것들은 현실과 유리된 견해라는 비판. 이런 말도 덧붙입니다.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하자는 파격적인 주장에 노동자들이 현혹되는 것을 비난하지 말라. 본래 노동자들은 내용의 실체를 모르고 잘 빠져드니 이런 사람들에게는 천천히 교화해야 된다는 설명입니다.
평등제도에 대한 반대논리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경험상 또는 이론상으로 보더라도 평등제도는 인간이 나태한 본성을 극복하고 식량과 생활의 편리 및 안락을 돕는, 행복에 필수적인 물건의 생산에 더욱더 매진하도록 유도하는 동인으로 적합지 않다. 둘째, 사유재산제도 및 신의 명령에 따라 만인에게 부과된 자식 부양이라는 도덕적 의무 이상으로 훨씬 더 전면적이고 강압적인 수단이 아니고서는 막을 수 없는 인구증가의 경향, 즉 생존자원의 한계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인구의 속성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될 빈곤과 불행으로 인해 평등제도는 단기간에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 (같은 책, P. 329.)
결론적으로 평등제도에 대한 맬서스의 비판은 간단합니다. 결핍이 가져다주는 성실의 덕성들이 발휘되지 않고 식량생산보다 빠른 인구 증가를 막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인구가 생존자원 이상으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대영제국의 거의 모든 지방교구의 호적부에 나타나고 있는 사실이며, 따라서 이와 같은 인구증가의 경향이 어떠한 방법을 통해 저지되지 않는다면, 결국 사회구성원 모두가 결핍과 곤궁에 처하게 되리라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따라서 평등사회에 있어서는 부자연스럽고 부도덕하며 가혹한 규칙에 의하지 않고서는 인구증가율을 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야 말로 곧 일체의 평등제도에 대한 결정적인 반론이 되는 것이다. (같은 책, PP. 331.~332.)
덧붙여 곧 이어질 식민지 개척 시대의 이주 정책도 효과성이 크지 않다고 비판합니다. 일단 이주를 해도 해당 지역에 윤리와 관습 때문에 서구 사회의 질서가 자리 잡기 어렵고, 여전히 인구가 식량보다 빨리 늘기 때문에 인구 이전의 효과가 적다는 거죠. 그렇다고 해당 식민지의 식량 생산이 본국에 썩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식민지의 인구가 늘어나니까요.
맬서스의 이런 주장들은 후에 자유주의 경제이론을 뒷받침하는 윤리적 공격으로 쓰입니다. 개인이 성실하고 책임감이 넘칠수록 인간 사회에 가득한 나태를 들여다보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게 됩니다. 그리고 구태여 저런 나태한 사람들을 위해 내가 낸 세금이 이른바 복지라는 명분으로 집행되는 게 타당한가 하는 생각도 불행하지만 들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맬서스는 평등제도가 나태를 강화하고 전 사회의 궁핍을 불러온다고 말합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죠?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하향평준화가 바로 맬서스의 평등주의를 향한 공격에서 등장한 겁니다.
이어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내용 중에 하나인 구빈법에 대한 공격을 살펴봅시다. 맬서스는 구빈법이 효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나쁘다고 말합니다.
해마다 빈민구제를 위해 막대한 세금을 걷어가는 데도, 빈민층의 삶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언제나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논란거리이다. (같은 책, P. 341.)
맬서스가 구빈법을 공격하는 건 계급주의적이거나 인종주의적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엘리자베스조에 도입한 이 제도가 효과가 없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가 정책을 공부할 때 통상 정책목표나 목적이라는 걸 설정합니다. 왜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겁니다. 구빈법은 말 그대로 빈민을 구하는 제도입니다. 맬서스는 구빈법이 빈민을 구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빈민을 더욱 불행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거기다 구빈법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삶이 더 나빠진다고 말해요. 빈민을 구제하겠다고 시설을 제공하고 공짜 밥을 주고 돈을 주면 오히려 저축 의지를 무디게 만들거나 성실하게 살아야 할 동인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보는 겁니다. 기초수급생활자들이 나라의 각종 지원과 보조금 혜택으로 연명하면서 그 상태에 머물러 있으려 드는모습이 떠오릅니다.
영국의 구빈법은 식량가격의 상승과 노동의 실질가격 하락에 일조해왔다. 결국 구빈법은 자기의 노동력 이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계층의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드는데 이바지했던 것이다. 또한 그것이 소상인과 소농장주들의 일반적인 성격과 상반되는, 흔히 빈민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인 불성실과 낭비의 습관을 조장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빈민노동자들은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그날그날을 하루살이처럼 연명해간다. 그들은 현재 눈앞에 닥친 궁핍에만 사로잡혀 미래를 개의치 않으며, 저축할 기회가 생겨도 실행에 옮기는 법이 없다. 생활의 필요를 충족하고도 돈이 남으면 술 마시는 데다 몽땅 허비해버리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구빈법은 일반인들의 저축의지와 능력을 무디게 만듦으로써 절제와 근면, 나아가 행복의 주요동인 중 하나를 약화시킨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책, p. 352.)
게다가 구빈법은 어차피 미래 계획을 세우고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일구어 가는 대신 나태와 게으름에 젖어 그저 하루만을 살아가는 별로 생산성이 없는 빈민들을 죽지도 못하게 합니다. 심지어 죽지도 않는 이들에게 자원이 배분되다 보니 더욱 성실한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 할 몫을 빼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오늘날 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에서 보면 차갑기 그지 없는 견해로 보입니다. 맬서스는 앞서 등장한 마키아벨리류의 기술적 정치철학들과 후에 등장할 또다른 차갑고 냉혹한 정치 이론들의 연속선 상에 서 있습니다. 그가 이런 주장은 모든 인간이 동일하게 존엄하다는 현대적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는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런 주장에 동의합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나태하고 게으르고 심지어 타인에게 해를 미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구빈법에 의해서 생겨난 과잉인구의 대부분은 이 법률 자체의 적용에 의해서 또는 적어도 그 운용이 잘 되지 못했기 때문에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살아남은 과잉인구의 존재로 인해 노동유지기금은 본래의 적정 인원수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에게 분배되어야 하고, 그 결과 근면하고 신중한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 게으르고 무지한 빈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같은 책, p. 357.)
구빈법 부분에서 다뤄야할 내용이 또 있네요. 맬서스는 구빈법으로 인해 곡물가가 오르면 임금이 오르게 되는데 그로 인해 증가한 노동자의 인건비 상승 역시 결과적으로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말합니다. 요즘 경제학적인 단어로 설명하면 명목임금은 오르지만 실질임금은 오르지 않는 것이죠. 더불어 인건비가 오르면 일자리가 사라집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 당시 최저임금 1만원을 놓고 붙었던 논쟁에서 보았던 내용입니다. 일부는 분명히 사실입니다. 후에 다루겠지만 각별히 산업구조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한국 상황에서는 더욱 치명적일 수 있는 이야기 였습니다.
인건비 상승은 필연적으로 더 많은 실업자를 낳게 할 뿐 아니라 그가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다소의 곡물 부족 상태로부터 생기는 긍정적인 효과, 즉 하층민으로 하여금 좀 더 많이 일하게 하고 좀 더 신중하고 근면해지도록 만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 (같은 책, P. 349.)
평등제도와 구빈법에 대한 날선 비판에 이어지는 것은 산업구조에 대한 분석입니다.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배우는 중농주의와 중상주의의 갈등이 바로 이 국면입니다. 맬서스는 대표적인 중농주의 경제학자 였습니다. 아마 맬서스는 오늘날 같은 첨단의 금융시장이나 AI가 세계를 지배하고 그 자체로 일련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대는 상상조차 못했을 겁니다. 그가 농업을 중시하는 것은 인류의 생존과 즉각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입니다. 인구 증가로 전인류가 궁핍과 기아에 시달릴 것이 빤한 미래를 그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명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식량 생산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찌보면 명백한 귀결입니다. 그가 해외 곡물 수입을 줄이고 국내 곡물 수출을 위한 보조를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곡물법을 지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맬서스는 기본적으로 자유무역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국가 단위의 자유 무역이 갖고 있는 불확실성에 대해서 위협을 느낍니다. 인구 증가와 즉각적으로 연결되는 식량 생산에 있어 내수 확대를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지난 30년 넘게 이어진 자유무역의 번영기에 맬서스의 이야기는 새삼스럽고 철지난 구닥다리로 평가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관세로 무역 장벽을 세우고 매일매일 새로운 의제들로 글로벌 주가 지수들이 3%씩 휘청거리는 요즘 정세로 보면 국제무역이라는 건 역시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이 있는 성격이라고 보는게 맞겠습니다.
맬서스가 곡물법을 지지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국내의 식량생산을 촉진할 동기를 주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간접적인 정책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고 보면 맞겠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제조업이나 상업제도 중심 산업 체계는 나름의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위험합니다. 물론 농업 중심 산업체계도 안전하기만 한 건 아닙니다. 국가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이죠. 땅이 넓고 비옥하고 인구가 적은 경우라면 모를까 본질적인 생산력 한계를 배제할 수 없습니다. 맬서스가 상업과 농업이 결합된 형태의 산업 체제를 지지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떤 나라가 과연 현재보다 생산을 증가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무제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와 보조를 맞추어 나갈 수 있도록 충분한 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없는가이다. 이를테면 중국의 경우, 문제가 된 것은 향상된 농업을 통해 생산증가를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그 증가량이 향후 25년간 증가될 3억에 달하는 인구를 먹여살릴 수 있는 정도의 양이 되는가이다. 그리고 영국의 경우, 남아 있는 공유지를 모두 경작지로 개발함으로써 현재보다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 증가량이 향후 25년간 새로이 생겨날 2천만 명의 인구, 그리고 그 이후 50년간 늘어날 4천만 명의 인구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가의 문제이다. (같은 책, p. 443.)
맬서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호하고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인구 증가의 속도는 빠른데 각 국가제도들은 이를 억제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경제-사회제도들은 이 위협에 부응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물론 맬서스트랩이라는 그의 주장은 상당 부분 극복 됐거나 부정됐습니다. 또한 복지주의는 국가의 안전망이 사회와 경제제도를 거꾸로 튼튼하게 만든다는 걸 어느정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맬서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있습니다. 그가 주장했던 것들의 설득력를 검토하고 또 반박을 제시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일궈온 것들의 가치를 보다 정확하게 보호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편에는 그의 사회제도 제안을 살펴볼 차례 입니다. 나는 지난 15년 전에 읽었던 비평과 경합해보면서 맬서스의 주장을 다시 한번 살펴볼 겁니다. 그리고 그 중 오늘도 유효한 것과 오늘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을 주는 말들을 살펴볼 겁니다. 인간은 참 변하지 않습니다. 맬서스의 시대와 지금 시대 다르지만 같은 것들이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 다음 편을 보면 조금 더 명확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