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차(1) : 정치인, 공무원, 무시무시한 현실세계

노조 1년차 vs. 직장인 3년차, 검찰 조사까지. 시작된 고난의 행군

by 김E

0. 노조 1년차, 직장인 3년차, 고난의 직장생활의 시작


다시 실무자 얘기로 돌아와 보죠. 노동조합 사무국장을 하던 무렵 나는 이제 입사한지 만 2년이 넘은 주니어 였습니다. 노동조합을 하면서 회사에서 빠른 평판을 얻기는 했지만 실무란 시간을 축적하면서 배워야 할 게 많거든요. 처음에 조금 잘 할때 짐짓 우쭐하고 건방져진 적도 있지만 여기저기서 얻어 맞으면서 세상을 배우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건방졌고 우쭐댔는지 알게 돼요. 노조를 하면서 직원들과 경영진 사이를 오가며 정치질과 협잡 거짓말을 배웠습니다. 때리기도 했고 맞기도 했죠. 실무자의 세계는 더 구체적으로 내가 누군지 알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실무자의 세계는 조금 더 공식적이거나 조금 더 이해관계가 뚜렷합니다. 공식적인 결재라인 상의 사람들을 설득해야 설명하는 일과 명목과 실질이 뒤섞인 구체적 통치체제(Governance라고 쓰면 맞을까요) 안에서 온갖 종류의 몸부림이 이어집니다. 거기다 명목상으로는 행정기관인 공공기관은 사실상 정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회적 제도입니다. 저 꼭대기에 계신 지사님은 재선이나 대선을 목표로 해요. 정책보다는 정치를 위한 작업들이 더 많이 작동하게 되는 겁니다. 무슨무슨 의원들의 목표는 최소한 재선 입니다. 그들의 KPI는 자기를 공천해줄 의원님이나 당에 잘 보이는 것이거나 최소한 지역에 줄을 대는 겁니다. 공공기관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도구로 소비됩니다.


그 속에서 실무자들은 공공서비스의 제공자로서의 소명의식 보다는 그저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아가는게 목표의 전부가 되는 영혼 없는 직장인이 됩니다. 그 속에서 공공기관에서 직장인 3년차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경찰과 검찰조사, 무수한 감사로 점철된 '고난의 행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1. 소상공인 사업을 맡으면서


전년도 팀이 해산되고 부서를 옮기면서 소상공인 지원사업 이란걸 맡게 됐습니다. 그 중에서도 볼륨이 좀 더 컸던 전통시장 파트가 우리 부서의 업무영역이었습니다. 전통시장은 행정적 지원의 대상이 되기 위해 상인회라는 걸 설립한 뒤 해당 지자체에 등록을 하고 시장으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엄밀히 말하면 이런 상인회를 지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전국에 전통시장은 당시 기준으로 1700개 가량, 내가 속해 있던 광역 자치단체에는 약 180개 가량이 있었습니다. 중앙정부와 광역 및 시군 지자체는 시장의 뚜껑(정확히는 지붕)을 씌운다거나 주차장을 만드는 등 큰 돈이 들어가는 일을 했고 내 기억에 중기부에서 매년 조 단위의 예산을 편성 했습니다. 우리 부서 예산은 연 40억 정도였고 시장 내에 특정 점포의 인증하고 홍보를 하거나 중앙정부 대단위 지원사업으로 넘어가기 전 단계나 지원이 끝난 단계의 종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같은 것들에 돈을 주고 관리했어요.


이 업무를 몇년간 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첫째, 이런 종류의 사업을 위해 예산을 편성하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과연 정책적으로 올바른 걸까. 나는 일을 하면 할 수록 전통시장이나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 사업 자체가 도무지 효과성이 없다는 걸 인지하게 됐습니다. 저들에게 보조금을 준다고 해서 전통시장이 살아나나? 살아나면 그건 무슨 의미가 있나? 주차장이나 지붕이 전통시장을 안 가는 이유가 맞나? 이미 지역내 커뮤니티나 관광 상품으로 작동하고 있는 곳이나 조금 지원이 필요할까 그렇지 않은 곳까지 왜? 둘째로, 어느 시장이고 성과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다 보니 정치인들의 치적 쌓기를 위한 이벤트나 사업으로 전락해 버린다는 것도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마치 큰 성과라도 있다는 듯이 보도 자료를 내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물론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공공분야에 있는 사람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거나 돈을 나눠 먹는게 분명해 보이는 용역사들에게 스스럼 없이 입바른 소릴 하는 내 모습에 박수를 보내준 사람들도 있었죠. 그럼에도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이 들진 않았습니다.


소상공인 지원 정책을 펼치는 건 근거가 있습니다. 한국의 상용노동자가 2500만명쯤 되고 사업장 수가 650만개쯤 됩니다. 650만개 중 600만개사가 5인 이하 사업장, 즉 소상공인입니다. 전체 사업자의 90% 이상이 소상공인 기업이라는 말입니다. 종사자수는 950만명 정도 됩니다. 사업장의 90% 이상은 소상공인인데 종사자수는 전체 상용노동자의 절반 이하 입니다. 이 숫자는 독특한 걸 보여줍니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개인 사업자나 자영업자 위치에 놓여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실제로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25% 내외로 영국이나 일본과 같은 소위 자영업자 천국에 비해서 10% 이상이 높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소벤처기업부 등 기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중앙 부처에서도 소상공인들에 대한 지원이 중요한 영역(portion)을 차지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경험상 소상공인 지원 정책은 실제론 거의 또는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전통시장과 마찬가지예요. 성과가 안납니다. 자영업자 창업자의 3년 폐업률이 70% 가량이 된다는 걸 많은 걸 설명합니다. 거기다 창업이 참 쉽습니다. 세무 홈페이지 가서 사업자 내면 개업이 되는거예요.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창업을 하고 이들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면 정책이 필요한 공간이 생깁니다. 성과가 안나는 건 구조적인 원인이 있기는 한겁니다. 사실 나는 더 큰 이유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 내가 만난 소상공인을 택하게 되는 사람들 다수는 자기네 미래에 대한 별다른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뭔가 바꿔보려 하기 보단 남탓을 하고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죠.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컨설턴트들의 도움으로 창업을 쉽게 하고 연명은 나라 돈으로 합니다. 소상공인 정책은 산업 정책이 아니라 복지 정책 혹은 정치 프로그램이 되는 겁니다.


2. 정치 도구로 소비되는 '공공지원 사업'


나는 차도 없이 출장을 멀리도 다녔어요. 전철을 타고 가방에 노트북을 들 상인회를 찾았습니다. 팀장이 가라면 갔고 가야하니 갔습니다. 가서 전화를 하면 이렇게 말해요. 아? 어디요? 왜요? 아 의원님이 가보라 했다고? 네 어디어디 상인회 사무실이 있으니까 들어오세요. 보통 기업 면담을 가면 커피라도 한잔 내놓는 예의를 후에는 많이 보게 되는 데 이쪽에선 그런 걸 기대하면 안 됩니다. 누구는 무슨 빚 받으러 온 사람 처럼 말합니다. 그래서 뭐 지원해줄건데요? 여러차례 경험하고 나면 익숙해집니다. 저희 지원 사업은 뭐가 있고 뭐가 있습니다. A는 모집기간이 끝났고 B는 이쪽이 대상이 안됩니다. C는 개별점포를 대상으로 하는 거고요, D는 지원금이 적습니다. 등등 열개 남짓하는 우리팀 사업 레퍼토리를 읊어주면 반쯤 실망하는 투가 이거저거를 요구합니다. 모집 서류를 보내주는 걸로 고마워하는 경우는 극소수 였습니다. 누구는 아예 사업계획서 작성을 요구합니다. 의원이 보냈으니까 당연히 해주는 걸로 알고 있는 거죠. 이 생태계의 수퍼 갑은 물론 광역자치단체장 이지만 기관 입장에서는 의원님 한마디가 예산과 기관장 심기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줍니다. 이듬해 면허를 따고 차를 사서 거의 매일 출장을 다녔습니다. 노트북에 서류더미를 잔뜩 들고. 어떤 때는 심사를 돌며 실사 보고서를 썼고 어떤 때는 어느어느 의원들의 보이지 않는 선거 운동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3년차가 됐을 때 행정안전부로부터 파견 왔던 5급 사무관이 본래 있던 중앙부처로 돌아가고 본청 사무관이 저쪽 부서의 새로운 팀장으로 왔습니다. 파트너가 바뀐거죠. 그는 오자마자 우리에게 업무처리에 원칙이 없다는 둥 이렇게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둥 얘길 했다고 합니다. 실장이 주재하는 회의를 하는데 자신에게 이 일을 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며 용비어천가를 불렀다죠. 가슴이 뛴다고 했던가. 그는 감사 파트 출신이었어요. 전통시장이나 소상공인 업무는 자르듯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닙니다. 정치인들의 직간접적인 개입이 워낙 많아서 그렇게 했다가는 징계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의도적으로 회피를 해야하고 필수적으로 어디에는 내 책임이 아닌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필요할땐 있는 발자국을 지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새 파트너는 처음 업무를 맡으면서 원칙 운운 했습니다. 감사실 출신 사무관 옆에는 여자 6급 주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스스럼 없이 국장님(3급)을 읊어 댔습니다. 공무원들은 5급 부터 사무관, 4급 부이사관 등으로 부르고 그 아래는 주무관으로 부릅니다. 통상 도나 특별시 같은 광역자치단체에서는 5급이 팀장, 4급이 과장, 3급이 실장, 2급이 국장을 합니다. 6급 주사가 국장을 읊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고시 출신으로 5급 출신으로 입직한 자기보다 나이 어린 후배를 꼬셔 결혼했다는 거죠. 그녀가 아이 셋을 낳느라 거의 10년간 육아 휴직을 했다는 얘기는 후에 들었습니다.


* (참고) 잠시 설명하자면 한국의 행정공무원 입직 경로는 공채의 경우 9급, 7급, 5급이 있습니다. 5급이 그 유명한 행정고시고 한국의 고위공무원의 90%는 이 5급에서 출발한 공무원들입니다. 출발이 다르니 도착점이 다르겠죠. 중앙정부는 팀장 혹은 계장 직위가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는데 보통 4급 선임이나 3급 부터 과장이 됩니다. 2급이 국장, 1급이 실장입니다. 시군 기초자치단체는 한 단계 낮아서 6급이 팀장, 5급이 과장, 3급이 국장, 2급이 부시장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 역시 인구별로 조금씩 다릅니다.)


나는 저 여자 주무관 때문에 명절을 앞두고 핸드폰을 바꿔야 했습니다. 한 번은 자기네 실장을 모실 예정이니 행사를 준비하라는 거였습니다. 예산이 좀 남아 있어서 1천만원 짜리 용역을 준비했죠. 과업지시서를 쓰고 행사 업체를 섭외하고 보고자료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썼죠. 행사 3일 전인가, 행사가 취소 됐대요. 후에 들었지만 그녀는 실장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았답니다. 윗분한테 잘 보이려고 산제멋대로 하기관을 움직이려고 한 건데 정작 본인이 해야할 일을 안 한거죠. 나는 이런 게 분명히 직권남용이나 최소한 갑질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나는 실무도 퍽 헤비하게 했어요. 지역내 180개 전통시장 중 몇몇개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했고 한 시장당 5장 분량이었습니다. 윗분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날아온 이 보고서가 좋았던 모양입니요. 그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명절을 앞둔 금요일이었던가요. 우리는 그때도 행사를 뛰고 있었죠. 의원 나부랭이들의 지역구 시장에서 장보기를 했어요. 본부장과 팀장이 업추비와 사비로 의원의 온누리상품권을 사주었고 나와 동료들은 지역사랍들의 비난을 들어가며 차량을 통제하거나 길을 막으며 현수막을 들고 사진을 찍었죠. 어디 주차된지도 모르는 의원의 차를 찾아 본부장과 팀장이 준비한 선물과 의원이 구입한 물건들을 트렁크에 넣어주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판에 공무원이 전화해 180개 시장 전체에 대한 페이퍼를 쓰라고 지시한 겁니다. 단순 계산해도 900페이지 입니다. 이건 용역으로 해도 최소 수천만원 짜립니다. 그런데 명절 끝나고 볼 수 있게 하라니. 가뜩이나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이따위 소릴 들으니 신경질이 났습니다. 어렵지 않은 거 같은데 좀 해주면 안 되냐는 투, 말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도 말라고 화를 확 내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화가 치밀어 핸드폰을 집어 던졌습니다.




감사 출신 팀장과 국장 남편을 끼고 있던 그 주무관은 결국 사달을 만듭니다. 아니 정확하게 그런 그들을 고까워하던 나까지 셋이 사달을 만들었죠. 시작해보죠. 내가 전년도에 만든 사업은 반응이 좋았어요. 고작 2억을 지원해주는데 경쟁률이 3:1 이나 됐습니다. 나는 계획에 따라 각 시장 관계자를 만나 사업계획에 관한 설명을 듣고 실사보고서를 작성 했습니다. 실무자가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계획대로 심사위원회 개최를 준비합니다. 전년도에 물론 탈락한 시장의 지역 국회의원이 우리 팀장에게 전화해 거의 30분간 '지랄 염병 쌍욕'을 쏟아내는 꼴을 봤지만 그래도 올해는 아직은 큰 탈이 없었어요. 거기다 나는 노조를 하면서 시야도 더 넓어졌다고 믿었거든요.


후에 이게 전조였단 걸 알았습니다. 위원회를 사흘 앞두고 감사 출신 팀장인가 주무관인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심사위원회 개최를 지연시키라는 겁니다. 그리곤 5월 1일에 회의를 하자는 겁니다. 우린 민간인이라 노동절에 쉬는데. 단체협약에도 노동절에 쉬라고 돼 있어요. 근데 공무원들은 법적 개념상 노동자가 아닌 지위라 노동절에 쉬지 않거든요.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노동절, 감사실 출신 상급기관 팀장, 겨드랑이 털을 밀지 않은 모습이 선했던 주무관 그리고 신경질이 가득차 있었지만 산하기관으로 소속자로써 어쩔 수 없이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 우리 팀장, 그리고 나, 네명이 본부장실에 모였습니다. 나는 본부장님도 안 계신 사무실에 어쨌든 다른 기관인 사람인 공무원들이 제멋대로 들어와 자릴 차지하는 모습도 무척 불쾌했습니다. 참아야죠 어쩌겠습니까.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나는 그들에게 각 시장 상황을 브리핑했습니다. 그들은 내 얘기를 감기 시작 했습니다. 아 그러니까 그럼 그 시장한테 1등을 줘야겠네. 뭐 이런 식이었습니다. 팀장님(사무관) 그들은 이미 중앙정부 지원사업을 다 받았습니다. 사업 취지와 맞지 않는데. 자, 그럼 다음은 여기는 어때. 내 말은 그대로 무시됐습니다. 나는 퇴사하던 날까지 그 사무관이 시장에 관해 작성했던 순번표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두번째 전조가 발생했습니다. 일단 한번 지연이 돼 혹시 몰라 시장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는 오후 시간 동안으로 발표시간을 조정했습니다. 그게 실수였습니다. 심사장 준비를 끝내고 있는데 사무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심사지? 예 그렇습니다. 오늘 심사 취소해. 예? 무슨. 아니 잔말 말고 취소해. 벌써 도착한 시장들이 있습니다. 그건 예의가 아닌데요. OOO(기관명 약자) 탓으로 하고 취소 하란 말이야? 아니 팀장님 저희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저희 책임으로 취소해요? OOO이 준비를 제대로 못해서 지체한다고 말하란 말이야.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전 준비 다 제대로 했습니다. 그 뒤로 무슨 말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납니다. 결국 당일 오후에 준비돼 있던 심사위원회는 취소 됐습니다. 이동 중이던 시장 관계자들에게도 비난을 받았고 이미 와 있던 시장 관계자들에게도 욕을 먹었습니다. 그들은 심사를 위해 다섯명이나 오전 부터 이곳에 와 있었습니다. 나는 비난을 받았다는 것 보다 그들을 불편하게 했다는 게 견딜 수 없었습니다. 수차례 사과를 했고 우리 팀장에게도 좀 전에 겪은 일을 전했습니다.


두번째 지연 이후 나는 그들이 요구하기 전까지 위원회 개최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삼주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팀장이나 본부장님이 의중을 물어보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따른 대통령 선거가 있었을 겁니다. 선거가 끝나고 상급기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왜 위원회 열지 않느냐. 참나. 무슨 저런 사람들이 다 있나 싶었습니다. 자기네들이 취소하고 자기네들이 지연시켜놓고 왜 위원회를 하지 않느냐?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내가 만든 사업입니다. 애정을 갖고 만들었으니 잘 굴러가길 바랐죠. 우리 팀장은 예전부터 여러번 말했어요. 네가 만든 사업이 어느 순간 스스로 서서 걸어간다. 그게 얼마나 큰 보람인지 너도 알게 될거다. 당신 만큼 순수하고 진지한 마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것이었습니다. 내가 만든 사업이었는데 이렇게 무너지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시 마음을 살피며 위원회 준비를 했습니다. 다시 회의장을 예약하고 심사위원을 섭외하고 위원회 시나리오를 정리했습니다. 발표자료를 체크하고 다시 한번 시간을 공지 했습니다. 유도선을 출력하고 심사용지를 위원수 만큼 뽑고 예비 용지 까지 준비했습니다.


세번째 전조는 심사 이틀인가 하루 전날 있었습니다. 명절 무렵 충돌 이후로 나와는 길게 얘기 하지 않던 그 여자 주무관이 내게 심사위원 명단을 요구 했습니다. 상급 기관이라도 공정성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건 나눠주면 안 되는 겁니다. 거기다 공무원들은 이런 문제에 휩쓸리는 걸 굉장히 부담스러워 해요. 애초에 이런걸 요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치만 나는 저들에게 협력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매우 꼼꼼히 각 위원들의 이름, 전화번호, 주요 경력 등을 정리해 전달했습니다. 후에 들었지만 이 자료는 자기네들의 연출을 위한 도구로 쓰였습니다.


3. 드디어 터진 사고, 현실의 맨 얼굴들


이윽고 심사위원회 날이 밝았습니다.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죠. 그래 숙이자. 주무관을 위한 의자와 테이블까지 준비해놨습니다. 심사위원회에서 배석하는 공무원들을 위한 별도의 자리를 만드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명폐까지 준비하지는 않죠.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너희들을 예우할테니 제발 선을 넘지 말아달라는 무언의 요청이었습니다. 그들은 수차례 주문처럼 공정하게 하면 된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돌아보면 이상한 일들이 가득했습니다. 사무관이 심사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석하는 것도 이례적인데 위원장을 지정하는 듯한 모양새였습니다. 저 심사위원들도 내가 어떻게든 좋은 사업을 만들어 보자고 인터넷을 뒤지고 온갖 성공 사업을 운영한 전문가들을 여기저기 전화하고 소개받아 확보한 네트워크들이었습니다. 심사위원장은 모 지자체 사업단장을 맡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사업을 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사람들이 와주길 바라는 마음에 섭외한 사람이었습니다. 지자체 사업단장 전 그의 전직은 교육공무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작 심사위원장은 반복해 사무관의 눈치를 보면서 위원회를 진행했습니다. 이 심사위원회의 실권자가 저 사무관이란 건 다들 잘 알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좀 심해 보이긴 했습니다.


또다른 건 이런 거 였습니다. 통상 전통시장 상인회 회장님들이나 관계자 분들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지역 전문가나 대학 관계자들의 자문을 받아 계획을 만들고 발표할 때도 이를 허용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특정 시장 발표 차례가 되자 심사위원석에 앉은 사무관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시장과 직접 관계되지 않으신 분은 나가야 한다며 쏘아 붙였죠. 당신이 여기 왜 들어오시나. 상인회 회장이 간신히 부탁을 했던가. 발표 내내 사무관은 계속해서 해당 시장에 대해 공격했죠. 그게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냐. 숫자가 틀렸다 뭐 이런거요. 전통시장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무슨 대단한 행정적 전문성을 가졌겠습니까? 무슨 MMB 컨설턴트들도 아니고 어설프고 부족할 수 있죠. 최근 내가 만나는 스타트업들 조차도 심지어 무슨 컨설팅펌 출신이라는 친구들이 만든 IR 자료도 논리적 헛점이나 숫자 추정의 오류를 찾으면 찾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유독 그는 그들에게 공격적이었습니다.




12개 시장의 발표가 끝나자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저 뒤에 배석해 있던 주무관은 종이 쪽지를 나눠줬습니다. 그리고 사무관은 심사위원들에게 이대로 쓰라고 요구했습니다. 통상 심사위원회가 끝나고 위원들간 협의를 하는 경우가 있고 여러차례 그 장면을 봤지만 이건 좀 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쩐지 불안한 기분이 들어 심사위원회가 끝나자마자 핸드폰을 꺼내 녹음 버튼을 누른 차였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별다른 항의 없이 사무관의 요구대로 심사위원회 결과를 작성했습니다. 뭐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됐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말없이 내용을 옮겨 적었습니다. 이제 다음 절차 입니다. 심사결과를 취합하는 최종결과를 작성하는 차례였습니다. 사무관은 나를 불렀습니다. 김대리 이거 타이핑 해오지 그래? 어이가 없었습니다. 왜 내가 이걸 적어야 하지? 내가 그걸 왜 적습니까? 화를 꾹꾹 누르며 답했습니다. 그러자 심사위원장이 눈치를 보다 자기가 적겠다며 결과지를 받아들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자료를 정리하고 자리를 떴습니다.


나는 결과지를 취합했습니다. 통장계좌 번호가 잘 쓰여져 있는지 비밀유지서약서는 썼는지 개인정보활용 동의서에 사인은 했는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각 시장별 점수가 잘 들어가 있는지 같은 것들요. 분을 삭히지 못했지만 일이니까 해야했습니다.


그렇게 결과지를 취합하는데 주무관이 왔습니다. 취합한 결과 좀 보여주세요.

나는 답했습니다. 제가 취합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분기가 가득 했을 겁니다.

그러자 사무관이 내게 왔습니다. 취합한 내용 좀 주지?

제가 정리해서 보내드리겠다고요. 퍽 공격적이었을 겁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김대리 너무 건방져?

3년차 밖에 안 된 주제에 나는 참으로 건방졌습니다. 나는 분을 삭히면서 혼잣말 비슷하게 말했습니다. 아마 이런 말이었을 겁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봤나? 같이 있던 후배도 그런 류의 이야기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무관이 이렇게 받습니다. 너? 너 뭐라고 했어?

나는 답합니다. 지금 너라 그러셨어요? 나는 눈을 똑바로 마주 봤죠. 나보다 스무 살은 많았던 사무관은 나를 훑어보며 비난 했습니다.

야, 너! 너 마음대로 해! 너 마음대로 해! 둘은 급하게 회의장을 떠났습니다.


심사결과를 취합하고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팀장이었어요. 너 어딨어? 저요? 심사장에 있는데요, 거의다 마무리 했습니다. 너 무슨 일 있었냐? O팀장한테 뭐라 그런거야? 그 뒤엔 참 나답게 건방지게 말했을 겁니다. 쓰레기한테 쓰레기라고 한 거 밖에 없는데요. 아마 이런 거 아니었을까요. 같은 시간 사무관의 상급자였던 상급기관 과장도 심사결과를 기다리며 우리 본부장, 팀장과 환담하고 있었답니다. 나는 그 자리에 있던 한동안 인턴으로 날 도와주던 대학 후배와 심사를 마무리 하고 있었고요. 심사를 마치고 내려갔더니 본부에는 사달이 나 있었습니다. 사무관은 본부장실에 들어가 있었던 일들을 일러받쳤답니다. 김대리가 쓰레기라고 했던 일 같은 거요. 나를 예뻐하셨던 본부장님은 나를 불러 여러 직장생활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아니꼽고 더러운 일을 이겨내야 큰 일을 한다는 둥의 이야기를 했고 팀장은 담배를 피며 여름 인사때 다른 팀에 가자. 저런 꼴 그만 보고 이제 제대로된 일을 하자. 같은 얘길 했습니다.


본부장님은 그날 경과를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사업 전체와 관련한 무리한 사항 들을 포함해 내용을 정리 했습니다. 심사가 두차례 지체된 일, 우리에게 책임을 전가한 일, 심사위원 리스트를 받은 일, 그리고 현장에서 있던 일. 나는 술을 마시고 분을 못이기며 새벽에 깨 이 보고서를 썼을 겁니다. 나는 심사결과를 꽤 오래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팀장의 요구해 마지못해 보고서를 쓰면서 나는 심사결과보고서에 이렇게 썼습니다. 본 결과보고는 OOO(상급기관) 요청에 따라 진행한 건임. 그리고 나는 저들이 했던 내용을 경과에 다 포함 시켰습니다. 공공기관 문서에는 발의와 보고라는 기능이 있어요. 노무현 대통령 이후 전국에 모든 공공기관은 동일한 기준에 따라 결재 체제를 갖는데 발의란 말 그대로 이 보고를 책임지고 발의했다는 뜻으로 결재를 받으면 보고 문서상에 담당자 이름 밑에 별표(★)가 남아요. 보고는 말그대로 보고로써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보고로 결재를 받으면 동그라미표(○)가 남습니다. 나는 발의가 아닌 보고 형태로 문서를 만들어 결재를 받고 상급기관으로 보냈습니다. 후에 들었지만 상급기관에서는 이 보고서를 받아보고 경악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로 나는 2년 동안 그들의 본청에 가질 못하게 됩니다.


4. 경찰 소환, 검찰 조사, 수차례 감사, 예산은 깎이고 보직은 잘리고


얼마 후 OO지방경찰청으로 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OO사업 담당자냐는 거였죠. 나는 휴가를 내고 조사를 받으러 갔습니다. 나는 이 사업의 담당자였잖아요. 사업계획과 추진경과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여러차례 조사를 받으며 진실과 거짓을 섞어서 답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부정하게 사업이 진행되는데 가만 있었냐는 추궁을 받았습니다. 조사과정에서 저들 공무원들이 내게 받은 심사위원 명단으로 사전에 접촉한 내용을 듣게 됐습니다. 현장에서 심사위원 몇몇이 과도할 정도로 사무관 눈치를 봤던 것, 순응적 태도를 취한 이유가 선명해진 겁니다. 법률가가 된다고 형법 공부를 하긴 했지만 그 지식을 지방경찰청에서 되새기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거기다 신청한 12개의 모든 시장의 정치인들이 전화를 걸었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모두가 자기 지역구에 있는 시장을 뽑아달라고 상급기관에 전화했다는 겁니다. 너는 도대체 누구의 청탁을 받았냐는 거죠. 결국 나는 내 녹음 파일을 꺼낼 수 밖에 없습니다. 경찰들은 파일의 녹취비를 내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당시 심사위원회 내용을 녹취한 파일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경악했습니다. 불명확한 기억들이 살아났습니다. 업체를 지정하고 금액을 제멋대로 나누는 이야기 등. 나는 담당자로서 몇차례 더 경찰청에 불려 갔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내 연차 대부분을 휴가 보다는 경찰 조사, 검찰 조사, 정치인 면담, 시위 같은 공무에 쓰는 일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경찰조사는 상급기관으로 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검찰의 압수수색을 했다는 얘기도 들려 왔습니다. 경찰 조사는 지역내 언론으로 연결됐고 언론과 말이 닿는 내부 직원들, 상급기관과 소통이 능한 몇몇 직원들 발로 회사내에 소문이 퍼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실장급이 지시했다는 얘기도 들려 왔습니다. 그러니까 상급기관에서 지사와 부지사 등 정무라인을 제외하고 실무라인에서 기조실장에 이은 랭킹 2위인 실장급이 직접 간부 회의에서 해당 사안을 지시했다는 얘기가 들려 왔습니다. 소문은 나와 팀장에게로 향했습니다. O팀장과 사무국장 O대리가 상급기관을 찔렀다는 둥의 얘기요.


경찰조사가 본격화 되자 보복이 시작됐습니다. 사무관과 주무관은 기관장을 직접 만나 이 문제에 대해서 거의 두시간을 억울함을 호소 했답니다. 자기네들은 피해자고 이 기관과 일하는 데에 대해 본질적인 불신이 든다는 둥. 본부장은 저들의 얘기를 전했고 그 얘길 들은 우리 팀장은 기관장이 얼마나 한심하면 고작 5급, 6급 얘길 듣고 있냐고 힐난했죠. 인사파동이 있던 그해 9월, 우리 팀장은 보직을 잃고 다른 부서로 날아갔습니다. 팀장은 이미 경찰조사 얘기가 나오던 무렵 부터 보직을 잃을 거라고 예견했습니다. 나 역시 이 이유를 포함한 여러 이유로 다른 건물에 있는 부서로 발령이 납니다. 물론 인사 파동의 후속조치로 다시 전통시장 업무로 복귀해야 했죠. 한달 사이에 내 업무는 다른 담당자에게 이관된 상태 였습니다.


이어지는 건 감사였습니다. 통합으로 인해 회사가 시끄러운 판에 2년에 한번 하던 종합감사가 다시 이뤄집니다. 상급기관이 감사로 산하기관을 공격하는 건 흔한 일이었습니다. 근태, 출장비 같은 걸로 기관에 모욕을 주고 예산이나 사업 같은 걸로 줄을 세우는 거죠. 심지어 문제가 됐던 내 사업의 이름을 콕 박아 감사대상으로 지정해 공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특별감사라는 건데 참 별일이었습니다. 내 기억으로 상급기관으로 부터만 감사를 세번 내지는 네번을 받았습니다. 누구는 내가 전년도에 제출한 사업결과와 증빙을 문제 삼았습니다. 나는 행정안전부 사업들을 기준으로 지침을 만들었다.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을 보시면 어긴 게 단 하나도 없다. 이렇게 답했습니다. 보통 감사를 받으면 산하기관 직원들은 죄진 사람처럼 고개를 숙여요. 작은 거라도 걸렸다 큰 일이 날 수 있으니까요. 나는 화를 냈습니다. 이게 감사입니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어디 잘못된 게 있으면 찾아서 징계 하십쇼. 상급기관의 감사 절차를 대응하던 우리 기관 감사팀 담당자가 내게 주의를 줬습니다. 나갔더니 회사에 소문이 다 났습니다. 사무국장이 감사반한테 덤비더라.


다음은 예산이었습니다. 상급기관은 더는 너희들과 일을 할 수 없다고 40억 되는 예산을 전부 삭감 했습니다.우리를 신뢰할 수 없어 자기네들이 직접 수행해야겠다는 거였습니다. (이 예산은 고작 1년 만에 다시 그대로 돌아옵니다. 일을 시킬 데가 없었던거죠) 처음 8억으로 시작해 3년 만에 힘들게 예산을 키워놨는데 사건 하나로 즉시 예산이 날아가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당장 팀의 존폐가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나는 이듬해 국비 사업을 받기 위해 한달간 거의 200페이지의 제안서를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매일 같이 통화하고 업무를 협의하던 상급기관에서는 이후 2년여 동안 단 한번도 내 자리로 전화를 걸거나 내 핸드폰으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건 덧붙일 만한 설명입니다.


검찰에도 불려갔습니다. 11시까지 오라더니 한시부터 시작됐습니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시작한 조사는 여섯시 넘어서까지 이어졌습니다. 아마도 수사관인 사람들 앞에 오라를 차고 수의를 입은 채 조사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별도 조사실 비스무레한 곳에서 내 앉은키 만큼 높이 쌓인 서류를 앞에 두고 검사와 마주 했습니다. 검사는 계속 사무실을 오가며 '도장'을 찍었습니다. 형사소송법상 경찰에서 작성한 조서는 보조적인 기능이고 검찰에서 작성한 신문조서는 명백히 증거능력이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조서에 날인을 하는 과정에 나는 몇몇 내용의 수정을 요구했습니다. 증거 능력 있는 조서니까요. 검사는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검사는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답변을 요구 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답변 했습니다. 회유와 협박이 함께 오갔습니다. 목청이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검사가 말합니다. 김OO씨 지금 참고인인데 피의자 될 수 있습니다.

나는 답했습니다. 제가 잘못한게 있다면 벌 받아야죠.

..

그래서 김OO씨가 이 보고서를 쓴 이유는 뭡니까?

제가 해야할 일이니까 하죠.

무슨 권한으로 이걸 쓰냐니까요?

사업계획상 현장실사 보고는 담당자가 쓰게 돼 있습니다.

어디 밀어주고 싶은데 있었죠?

당연히 있죠!

김OO씨가 무슨 권한으로 업체를 밀어 줍니까?

아니, 검사님 저는 공무원은 아니지만 어쨌든 세금으로 월급 받습니다. 현장을 잘 알기 때문에 될만한 곳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한 겁니다.

김OO씨가 무슨 권한으로 그런 걸 쓰냐니까요?

결정은 심사위원회에서 내립니다. 세금으로 월급 받는 입장에서 더 잘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는게 잘못입니까!

...

순수한 마음으로 그랬다고 하죠.


이듬해 1월 실장은 직무대기 발령을 받았습니다. 후에 듣기로 5천만원 가까운 돈을 써 전관 변호사를 썼다고 했습니다. 결국 불기소로 끝났습니다. 지역내 고위 공무원을 잡는 건이라 경찰과 검찰이 열심히 달려 들었다는 후문이었지만 결과는 그랬습니다. 그 후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사무관과 주사는 어떻게 됐을까요? 둘은 이후 영전을 이어 갔습니다. 사무관은 몇년 후 4급 이어 최근 3급 국장이 됐고 주사는 5급 사무관이 됐습니다. 산하기관은 먼저 직원의 목을 쳤지만 더 큰 상급기관은 자기네 직원을 지켰고 심지어 영전 시켰습니다. 자기들은 잘못이 있으면 안 되니까 산하기관을 부정하게 만든 결과였을까요.


사고 몇년 후 4급으로 승진한 팀장을 우연히 행사자리에서 마주칠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못 도전적으로 내게 인사했습니다.

어 김대리 오랜 만이야?

나는 답했습니다.

나랑 당신이랑 지금 인사할 사이인가요? 쓰레기 같은 것들이 정말.






아래에, 그무렵 쓴 일기 비슷한 글을 옮겨 봅니다.


조직과 정의, 조직은 무엇으로 사는가(2017. 5. 27. 8:58)


나는 지금 불법을 마주하고 있다. 그저 관행으로 무시로 일관하던 공무원들이 고작해야 막내 직원 하나 제압하고 설득하지 못해 기어코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목요일엔 심사가 있었다. 8억이나 되는 돈을 뿌려주는 사업이었고 이미 두 차례나 지연돼 언론에서도 이야기가 오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정성을 다해 심사를 준비했다. 잠이 오지 않으니 새벽부터 사무실에 가 다시 한 번 관련 서류들을 검토하고 내용을 또 보고 또 봤다. 혹여나 몇 번이나 나와 다툰 갑들이 마음 상하지 않을까 가능한 수준에서 최대한 몸을 낮췄다. 모든게 잘 정리 되었다는 듯이 공정하게 처리 하라는 공무원의 말을 들었으므로 어쩌면 있을지 모를 저들의 추잡함을 예비하긴 했지만 이정도 일줄은 몰랐다.

공무원들은 하루 종일 이어진 심사의 끝에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발표자들이 모두 심사위원장을 나가고 한 공무원은 심사위원들에게 문서를 돌렸다. 순위와 금액이 전부 책정돼 있는 문서 였다. 애초에 심사위원회가 요식행위임을 증명하는 순간이요 국민이 낸 세금이 저질스런 방식으로 쪼개지는 순간이었다. 도 사무관은 심지어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기 위해 수기 작성이 원칙인 문서, 당일 사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작성하게 된 그 문서 마저 타이핑 해올 것을 요구했다. 물론 나는 거부했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녹음했다. 심사가 종료되고 심사위원들이 자리를 떠났다. 남아 있는 두 공무원이 이제 내게 말을 한다.

"김 대리 너무 건방져" 안경을 벗기고 한대 날려버릴까, 정강이를 부숴버릴까, 목을 잡아챌까 순간 여러 생각이 오고갔다. 이어진 내 사고의 흐름은, 폭력, 현행점 체포, 산하기관이 상급기관 관련 팀장에게 폭력 행위, 조직의 피해.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생각의 끝에서 나는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처음 봤네 진짜"라는 말을 뱉었다. 오십 다 먹은 사무관은 말한다. "너 지금 뭐라 그랬어?" 나는 대답한다 "지금 너라 그러셨어요?" 욕은 참았다. 씨발새끼, 좆같은 개새끼, 내가 씨발 너를. 까지 참았다. 이 아저씨도 속으로 욕설을 삼키는 걸 나는 봤다. 이어 오십이나 먹은 공무원 나부랭이는 "너 하고 싶은대로 해!", "너 마음대로 해" 라는 웃기지도 않는, 무슨 어린애 같은 소릴 하고 심사 위원회장을 빠져 나갔다. 회의장을 정리하고 1층으로 내려 갔더니 이미 이 등신은 사방에 내 욕을 다 해놓았다더라.

본부장과 팀장, 차장에서 사건 개요를 소상히 설명했고 내가 분개한 이유도 말했다. 이건 불법이다. 게다가 나는 증거도 갖고 있다. 개별적 언어가 문제가 아니다. 세금을 어떤 이유에서 제멋대로 유용했다는게 문제다. 정치가 오고간 것이 문제고 그가 가진 법리적 의미를 제멋대로 활용했다는 것도 문제다. 그래도 쓰레기는 좀 너무 했다는게 어른들의 충고다. 내 사수이자 노조위원장님은 차라리 씨팔 좆팔이었으면 실망 했겠다만 그정도로는 차라리 너답다고 했다. 물론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생각한다. 쓰레기를 쓰레기라고 부른 것이다. 돌을 돌이라고 부른 것, 하나에 하나를 더한게 둘이라고 한 데 도대체 어떤 잘못이 있나?

본부장은 전략적으로 사건의 내용을 정리할 것을 요구했다. 서사에 근거하여 내 왜 그에게 쓰레기라는 말을 뱉을 수 밖에 없었는지. 젊은 놈이 정의감에 불타서 얘길 했다. 아마 당신들도 이 건으로 문제 일으키면 같이 살기는 어려우리라는 경고를 포함하여. 나는 술에 덜 깨 새벽에 눈을 떠 문서를 만들고 다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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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이 좀 못돼 사무실에 갔다. 이 핑계로 반차라 내려고 했더니 오전에 회의가 있었다. 그래서 갔다. 본부장님은 밥을 사주시면서 앞으로 할 일이 많다. 커갈 수록 더러운 걸 더 많이 볼텐데 좀 참자며 위로 했다. 한 편에선 고맙지만 여전히 설득되지 않는 어른의 언어, 조직의 언어가 거기 있었다. 오후엔 팀장에게 도 공무원에게 전화가 갔다. 우습지도 않게도 팀장은 그 전화를 그대로 받고 있었다. 벌레 같은 여자는 자신들이 받은 치욕만을 떠들었고 기어 들어와 사과라도 하라고 했던 모양이다. 그 팀의 팀장은, 내게 치욕을 당한 당사자는 휴가를 냈단다. 머저리 같은 새끼가.

팀장은 담배를 태우며 나를 앉혀 놓고 조직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넋두리를 늘어 놨다. 욕먹기 싫고 미안하단 얘기 하기 싫으니까, 니가 말한 그 쓰레기 같은 인간들 한테 머리 조아리기 싫으니까 사과를 해달란다. 내가 공무원한테 욕을 먹고 너한테 푸념을 하는 모양이다. 라고도 했다. 6월 정기 인사 발령 때 다른 팀으로 가자고 너한텐 제일 어려운 업무를 줄 거고 가르칠 게 많다고도 했다. 위원장은 이런 팀장이 안타깝다고 했다. 경험이 없으니 그저 숙이는 것이라도 했다. 한 편에선 맞고 다른 한 편에선 맞지 않다.

팀장은 내게 몇 번이나 말했다. 왜 정의를 다 네가 실현하려고 드느냐, 왜 똥을 네가 치워야 되느냐. 길거리에 나가봐라. 교통 신호 위반하고 막 끼어드는 인간들 있는데 그런 식이라면 운전 중에 차를 세워놓고 죄다 신고하고 문제제기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도 했다. 네가 그러면 너만 다치는게 아니라 내가 사과하고 본부장님이 사과하고 자칫 잘못하면 더 위로, 조직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도 했다. 그게 조직이다. 그게 조직이라고 했다. 본부장도 말했다. 이번 일로 조직이라는게 뭔지 좀 배웠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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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목적은 행복의 실현이다. 행복은 정의를 통해 달성된다. 조직은 책임감의 연대기구이고 그래서 의사 결정은 언제나 병렬이 아닌 직렬로,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확정된다. 이 둘은 어쩌면 배치되는 얘기다. 조직 역시 공동체의 부분집합이지만 한국식 조직이 작동하는 방식과 내가 이념으로 이론으로 배운 공동체의 작동 방식은 철저하게 다르다. 조직은 손 쉽게 한 두사람을 죽일 수 있다. 자긍심에 상처를 입히는 방식으로, 자아를 붕괴시키고 존재감을 무화 시키는 방식으로, 궁극적으로 조직에서 존재의 역할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그래서 책임감의 연대 체계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그러면 결국 공동체는 행복의 총량을 배제할 수 밖에 없다.

나는 팀장의 이야기에 대해 오롯이 반박할 수 있다. 나는 너무 많이 그리고 꽤 여러번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더러우면 좀 피해가자. 왜 굳이 치우고 맞상대를 하려 드냐. 누군가는 할테지. 그간의 일들을 돌이켜 보면 내게 부족한 것은 늘 기술이었다. 마음은 뜨거웠고 내가 배웠던 정의에 관한 관념들과 감각들로 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늘 분노가 차올랐고 무엇이든 부숴야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얼만큼은 조직을 아끼는지 우리 회사의 물건을 때려부수지는 않았다는 것이겠다. 그 누군가, 올바르지 않은 것을 조금 더 올바른 것으로 바꾸는 사람들은 차라리 조금씩 참지 않았던 사람들, 그들에게 차오른 정의의 감각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사람들이다. 그 누군가는 늘 또다른 나 들이었다.

내가 노조 일을 하게 되면서 그리고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이런 부정한 일을 마주하게 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숙명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 나를 다치게 한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기어코 나를 자라게 한 일이었다. 이무렵 내게 자라나고 있다는 또다른 확신은 그런 것이다. 현실을 이유로 올바르지 않은 것을 회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차라리 지금 좀 아파도 올바른 원칙을 앞세우는 게 옳다. 세금이다. 우리가 일을 하고 또 살기 위해 지출한 많은 것들의 금액들이, 사회계약의 대가로 주어지는 그 금액들이 쓰여야 할 곳은 사회계약을 보존하는 방식의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비용 들을 집행하는 방식 역시 사회계약을 온전히 지켜내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간 거기 너무 많은 관행과 현실들이 개입 했었다.

나는 타협적인 사람이었다. 매우 이성적이기 때문에 언제나 현실을 고려 한다. 나는 이 즈음에 내가 본래 갖췄어야 할 또다른 기질을 만나고 있다. 외려 나는 이제 상수와 논리 앞에서 비타협적인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예전엔 어쩌면 내가 가치 있다고 여겼던 것들이 그저 이론 속에만 살아 있었다면 이젠 그것들이 어떻게 현실이 되는지 목격하고 있다. 그래서 지켜야 하는 것들과 포기하면 안 되는 것들이 더 눈에 잘 들어온다. 이제 입장이 선명해진다. 나는 용납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용납하며 살 수 없다. 나는 또 정을 맞고 조직은 나를 향한 책임의 연대를 해제하겠지만, 우리는 누구도 그와 같은 비겁과 부정들에 가담해야 할 어떤 이유가 없다. 우리는 모두 올바른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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