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국장 1년차(3) : 9월 인사파동

by 김E


1. 공공기관에서의 조직과 인사제도


통폐합으로 인한 연초의 혼란이 간신히 잦아들고 있었습니다. ERP냐 MIS를 놓고 진행하던 용역은 MIS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면서도 우리쪽의 불만을 비교적 수용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었고 급여나 직급 체계 용역도 마무리단계 였습니다. 거기다 연초 8시 뉴스까지 났던 어린이집 사건과 6월 있었던 이사장 갑질 사건으로 경영진이 상처를 크게 입었습니다. 그 결과 경영진은 노조나 직원들을 자극하지 않거나 최소한 소통을 하려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게 됐습니다. 대기업 실무에서 컨설턴트 출신으로 경영자가 됐던 그무렵 기관장은 자신이 접했던 중견급 기업들과 비교해 노조가 강하게 저항하는 걸 처음 경험했을 겁니다. 거기다 민간과 달리 사용처의 범위와 금액, 심지어 시간대 까지 통제하는 법인카드며 지침까지 정해져 있는 공용차량 사용 룰 등 '공공 부분' 특유의 규범 체계들도 간신히 이해하기 시작한거 같았습니다. 우리는 짐짓 안심했던 거 같습니다.


하반기에 되면서 본격적으로 조직개편과 인사발령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많이 늦었죠. 보통 기관장들이 와서 하는 일이 조직개편이며 인사발령입니다. 빠르게 진행해도 짧아도 석달은 걸려요. 경험이나 실력이 없거나 허들이 많으면 거의 1년을 끌기도 합니다. 무려 '조직'을 개편하는 일이고 비록 대부분 거수기기는 하지만 열 댓명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통과해 기관의 가장 중요한 규범인 조직관련 규정을 바꾸는 작업이거든요. 그 과정에서 상급기관과 대화도 무수히 나눠야 합니다. 상급기관은 왜 이런 조직을 만드느냐 자기네 조직과 맞지 않는다는 의견 내며 어깃장을 놓기도 해요. 산하기관이란 상급기관이 시키는 걸 하는 조직인데 왜 네들 마음대로 이런 조직을 만드냐는 겁니다. 기관장 힘이 약하면 어깃장은 양도 깊이도 강해지죠. 안으로도 복잡하긴 마찬가지 입니다 기획실 조직 담당자가 초안을 만들어 자기네 결재라인에 있는 사람들 한테 보고를 다해야 해요. 팀장과 담당자가 잘 설계해도 본부장이, 이사가, 기관장이 계속 브레이크를 겁니다. 노조랑도 협의해야 하는 건이예요. 대부분 거기 사심이 들어갑니다. 챙겨줘야 할 사람은 물론 자기 잇속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노조는 나름대로 조직에 관해 여러 의견을 냈습니다. 그땐 사실 사측이 노조와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잘 몰랐던 거 같습니다. 우리도 사측과 대화를 나누는 방법이 충분히 훈련돼 있지 않았죠. 한참때야 받은 자료를 일자별로 정리해서 관리 했지만 당시엔 구두로 얘기를 나눴고 대화 파트너의 눈높이도 맞지 않았어요. 그 무렵 조직 얘길 나눌때 가장 신경 썼던 건 특정 조직 출신간이 유리해보이거나 불리해보이는 모양을 만들지 않는가였습니다. 한쪽은 우리가 사업자등록자번호가 살아 있어 흡수 합병한거다, 다른 쪽은 법인명이 변경됐으니 통폐합이 아니라 통합이다 등등. 대표는 나름대로 양쪽의 균형을 맞추려고 했지만 출범한지 20년이 넘고 경력이 더 많은 우리 쪽에선 우리 쪽에 대한 배려가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저쪽은 자기네들이 불이익을 받은 입장이니 더 보호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웃기지도 않는 얘기입니다. 그까짓 조직. 사실 부서명이나 바뀌고 정관상 조직 기능과 사무관리 지침에 업무분장 범위가 좀 바뀌는 문제, 사실 직원들은 별 관심도 없고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녜요. 그런데 그걸 놓고 박터지게 싸웠죠.


조직이 끝인가요? 조직보다 중요한 건 인사입니다. 어제 3층에서 일하던 사람이 1층으로 가는 거야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사에 있던 사람이 지소로 옮기고 출근 거리가 3km에서 80km로 멀어지는 일도 벌어집니다. 단순 계산해도 15분이면 갈 거리에 버스비 1500원이면 되던 출근이 차로 이동해도 90분에 기름값으로 환산하면 연비 15km 짜리 차라도 8000원이 넘게 들게 됩니다. 길에서 버리는 시간과 비용을 다 환산이 안 되죠. 삶의 질도 달라지고요. 거기다 마음에 안 맞거나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과 파트너가 되면 더더욱 지옥입니다. 공공 분야에서 인사는 정말 절대적인 사건입니다. 공공기관은 대부분은 15년 이상 장기근속해요. 서로를 속속들이 다 알고 평판에 민감하죠. 이들은 기본적으로 안정을 지향해요. 어쩌면 안정을 지향하니까 공공기관에 오는 걸 수도 있죠. 변화를 받아들이는 걸 부담스러워 해요. 이동거리, 사무환경 뿐이 아니예요. 공공기관은 일부 직군을 제외하곤 순환 근무가 기본입니다. 원치 않는 종류의 일을 해야 하는 부서로 갈 수 있다는 얘깁니다. 사람들을 상대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보고서를 쓰고 업체를 관리하는 일을 할 수도 있고 보고서 전문가가 신규사업을 맡는 경우도 많아요. 뒤에 다시 밝히겠지만 공공기관은 절대 개인의 특별함(Speciality이랄까요)을 존중하지도 그것들이 성장하는 걸 바라지도 않습니다. 공공기관의 인사는 열에 아홉은 사람들 순치 시키고 상처 입힙니다. 초심자 시즌을 지나 단 몇년만 지나도 이걸 직접, 간접적으로 접하고 한두번 인사의 상처를 입으면 사람의 태도가 변합니다.


뜬 소문들이 마구 돕니다. 누가 새로 팀장이 된다더라. 누가 원장 직속라인이라더라. 누가 줄을 섰다더라. 누가 누구한테 청탁을 했다더라. 별별 얘기가 다 나와요. 누구는 무슨무슨 의원이 전화를 했고 누구는 누구 아들이고. 정말 구차하고 구질구질 합니다. 시간이 갈 수록 점입가경입니다. 인사파트가 결재를 올렸는데 말이 안 되는 내용이 있더라. 경영본부장이 내용을 수정 했다더라. 새삼 참 할일 들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대개는 말이 많은 사람들은 일이 없어요. 보통 자기 인생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남에 삶에 말들이 많잖아요? 후에 더 깊숙히 인사와 조직에 관여하게 되고 나서는 이런 말들이 심지어 연구대상이 됩니다. 도대체 어떻게 사실이 아닌 말들이 돌고 돌아서 거짓말들로 생산되는 걸까. 저들은 도대체 뭘 위해서 저토록 쓸모 없는 말들을 곳곳에 흘리고 있는 걸까.


2. 그해 9월, 우리쪽 출신들을 '학살'한 '인사 파동'


게시판에 인사가 발표되자 수십명의 직원들이 로비로 밀려 나왔습니다. 수십명이었습니다. 밖에는 아저씨들이 몰려가 담배를 폈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이게 무슨 일이냐. 두시간 넘게 아수라장이었어요. 본부장 후보로 거론 되던 부장이 팀장 보직을 떼고 실무자로, 기관 합병 전 '업무 협의 과정'에서 본인이 일을 가르쳤다던 10살은 어린 까마득한 후배급을 팀장으로 모시게 된 건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양쪽 비율을 맞춘다고 했는데 절대수 기준으로 저쪽이 더 많은 보직을 가져간 건 눈에 띄는 숫자 문제였죠. 예를 들면 팀장 보직이 40개가 있다면 5개는 연구직이라 저쪽이 당연히 가져가는 거라, 이쪽 17개, 저쪽 18개로 밸런스를 맞췄다는 인사팀의 설명. 우리쪽 직원들이 보기엔 이쪽이 150명 조직, 저쪽이 120명 조직인데다 이쪽이 22개팀, 저쪽이 18개팀인데 이쪽이 보직을 17개 가져가고 저쪽이 보직을 23개를 가져 가면 명백하게 저쪽이 이긴 인사가 아니냐는 겁니다. 경력으로 봐도 우리쪽은 최소 15년에서 20년이상 경력자들이 간신히 팀장을 하는데 저쪽은 그래봐야 15년 밖에 안된 사람이 팀장보다 높은 본부장급까지 올라갔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원인을 찾았습니다. 우리 쪽이 맡고 있는 인사 파트가 저쪽 출신 실무자한테 휘둘렸다는 건 손쉬운 설명이었습니다. 저쪽 출신들이 기관장의 눈과 귀를 막았다더라. 우리 출신들은 만날 옳은 소리해서 미움 받는데 저쪽 출신은 온갖 감언이설로 기관장을 구워 삶는다. 누구는 기관장에게 옳은 소리를 해서 밉보였고 누구는 간부회의에서 흠씻 욕을 얻어 먹었음에도 그쪽 출신 직원들이 극구 사수한 덕분에 본부장 보직을 지켰다더라. 왜 우리는 서로를 까대기만 하느냐. 기획실 차석이 본인이 팀장으로 갈 걸 예상하고 조직 설계 단계 부터 예산, 업무를 의도적으로 조정해 알짜 사업을 챙겼다더라. 사실은 10년 전 오래된 원한이 인사 파트에 전달 됐다더라. 우리쪽 출신인 인사 파트가 자기네들 감정을 섞은 탓에 멍청하게 저쪽 출신들한테 흔들렸다더라.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설명력을 가진 의견과 감정들이 마구 폭발 했습니다. 나는 그 기획실 차석으로 이번에 보직을 달게된 차장과 함께 일을 하게 됐어요.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사무국장이 노조 일을 다 하니까 본사로 부터 뗴어놓을려고 일부러 먼 건물로 보내버린거다. 일부러 저쪽 에이스 본부장, 팀장이 널 관리하려고 한다다 등등. 별별 해석이 다 나왔습니다.


그날 밤에 집에서 얼마나 많은 전화를 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새벽 까지 뜬 눈으로 울며불며 어떻게 이럴 수 있냐는 직원들의 원망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우리 기관이 '흡수 합병' 했는데 저들한테 이렇게 밀릴 수가 있거냐. 이게 말이 되는거냐. 노조는 뭘 했냐. 만날 쓸데 없이 보고서나 쓰고 필요없는 정보 공유하지 말고 인사나 막았어야 하는거 아니냐. 인사에 개입 안하긴 뭘 안 하냐. 차라리 개입을 하지 그랬냐. 그날 나도 술을 마셨지만 지금도 그무렵 방 침대에 앉아 받았던 기억은 선명합니다. 술에 덜 깨 몽롱한 상태였지만 끝도 없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사무국장 넌 뭘했냐, 너 열심히 하는 거 아는데 이건 아니지 않느냐. 맞아요. 나는 그무렵 입사한지 만 2년 반 밖에 안 된 주니어급이었습니다. 사무국장이란 걸 하기에 조직이나 인사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죠. 공조직 특유의 역학 관계, 정치 같은 것들은 잘 몰랐습니다. 어쩌면 그때 나는 이제 공공조직의 정치라고 하는 세계에 본격적인 발을 들이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집행부는 긴급 회의를 열었습니다. 사실 저쪽 직원들도 많은 직원들이 실망해서 휴가를 내버린 이들이 있었어요. 지금 와서 보면 인사 싸움이란 건 그저 수뇌부들, 파벌들의 싸움이었습니다. 자기네들 나름의 집단과 파벌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만든 패거리요. 그보다 더 많은 보통 직원들은 여전히 인사의 피해자가 됐죠.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 군말 없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사람들은 또 인사의 희생양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했죠. 권역은 왜 우리만 가냐. 통합했다면서 권역은 왜 우리만 가느냐. 저쪽은 그래봐야 사무공간을 옮기거나 기존에 하던 업무에서 변경되는 것 뿐이다. 이해하자면 할 수 있는 저들 직원들의 들의 상처에 대해서 우리 집행부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려고 했어요. 한발 더 물러나 보면 저들 역시 패거리나 라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죄다 형식 논리에 의해 상처 입는 인사 발령을 받은건 맞았거든요. 그럼에도 우리가 피해자여야 했습니다. 그래야 행동을 정당화 할 수 있으니까요. 집행부는 탄생한지 8개월 만에 조합원에게 재신임을 묻는 긴급 총회 개최를 결정했습니다.


3. 전례없는 원상복귀 인사가 이뤄지기 까지


총회 분위기는 무거웠습니다. 다른 집행부는 모두 뒤로 무르고 저와 위원장이 책상을 놓고 앞에 나섰습니다. 이후 수십차례 반복되는 '청문회' 스타일의 회의를 처음 경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권역에서 까지 조합원들이 날아왔습니다. 누구는 눈물을 쏟으며 말했습니다. 어떻게 저 팀장님에게 저런 굴욕을 줄 수 있느냐, 우리 팀장님한테 너무하는 거 아니냐, 저쪽은 왜 권역으로 가지 않느냐 이게 공평한 인사냐. 우리쪽 보직자를 뺐겼다. 이게 말이 되느냐. 노조가 인사 개인 안 한다고 천명한 건 좋지만 이럴 거면 차라리 인사에 의견을 제시하는게 필요하다. 온갖 말들을 날아들었습니다. 조합원을 지킨다고 시작한 노조였는데. 정작 조합원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 겁니다.


예전에 쓴 일기를 보니 그 자리에서 위원장은 울었어요. 내가 거기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울컥하는 걸 보여준 게 노조 마감할 때 단 한번이 다 였습니다. 위원장은 그 이후로 잘 우는 위원장이 되는데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었고 진심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퇴와 재신임을 물었습니다. 지금 이순간 부터 노동조합의 모든 직원을 내려놓겠다. 조합원들은 오히려 우리를 위로 했습니다. 너희 말곤 없다. 너희가 앞서 다오. 나는 문제가 생겼을 때 숨기보다는 소상히 사실을 전하고 사과해야 한다면 선명하게 사과하는 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방법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개인의 삶에서 그건 쉽지 않아요.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고 반성하는거요. 하지만 집단을 대할 때 그건 기술 측면에서라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분개하는 게 일시적일 수도 있습니다. '뭉개고' 지나다면 끝날지 몰라요. 그렇다고 해도 그들은 우리를 뽑아준 조합원들이었고 우리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투표에 따라 이 책임을 떠맡은 겁니다.


재신임을 받은 우리는 이제 은밀하게 해야할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갔습니다. 어느 게 정확한 기억인지는 불분명합니다. 당시 만났던 여자친구는 서초에 살았어요. 서초에서 밥을 먹고 데이트를 했어요.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노트북으로 긴 글을 썼습니다. 나는 그녀와 이제 한달 정도 후면 헤어질 예정이었습니다. 아마 그무렵 그녀는 내 행동들에 지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사 일과 더불어 노조 일까지. 매일매일 지쳐있는 내 모습을 보는게 너무 괴롭다는 얘길 그녀는 곧잘 하곤 했죠. 나는 그녀와 데이트를 하는 와중에 썼던 문구를 수정하고 또 수정했습니다. 페덱스 킨코스에서 전지 4장을 출력하자면 20만원쯤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위원장은 조합비로 하자고 했지만 이걸 조합비로 집행하면 그건 조합의 행동이 됩니다. 이건 사무국장이 아니라 사인으로서 한걸로 할게요. 문제가 생기면 노조가 아니라 제가 책임 지는 걸로 하겠습니다.


다음날 새벽 나는 어제 쓴 글을 대자보로 만들어 이른 시간에 회사 곳곳에 붙였습니다. 기관장실 바로 앞 엘레베이터에도 붙였죠. 대부분은 내가 한 일인 걸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경영진을 대자보를 떼지 못했죠. 다음날 아침에는 대자보 사진과 함께 언론에 보도가 나갔습니다. 법률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내용들은 철저하게 회피성 문구나 의견으로 일관했고 고유명사를 쓰지 않는 대신 감정을 담아야 하는 곳에는 직설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대자보의 공격 대상은 저쪽 출신들과 기관장이었고 제멋대로 통합을 결정한 정치인들이었습니다. 전날 잠잠했던 경영진은 언론 보도가 나간 후 인사 파트를 통해 대화를 요구해 왔습니다. 아마도 상급기관으로 부터 압력이 발생했을 겁니다. 너네들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냐 뭐 그런 것들이었겠죠. 노동조합은 협상 테이블을 열때 곧잘 외부 힘을 사용 합니다. 조합 자체는 사측이 인정하지 않은 한 아무런 힘이 없거든요. 그놈에 '연대'라는 것도 결국 본질은 정치적 영향력과 여론 입니다. 인간은 나약합니다. 특히 공부를 잘하고 늘 칭찬만 받아왔던 사람들은 이런 공격들에 극도로 취약 합니다. 함께 근무했던 척척석사 P는 내게 게임이론 이란 걸로 이런 상황을 설명 했죠.


인사팀은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나는 이때 거의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협상이란 걸 해보게 됐습니다. 원하는 걸 묻지 말고 해줄 수 있는 걸 갖고 오시라. 대자보를 떼주면 안 되느냐. 모르는 일이다. 노조에서 붙인 게 아니다. (노조 돈을 쓴 게 아니니까 노조에서 붙인 건 아니죠) 나는 언론학 전공생입니다. 학부에 입학 후 거의 첫 수업 아니면 두번째 수업때 그런 걸 배웠어요. 선전과 광고의 차이가 뭔지 아느냐. 광고는 광고주가 있다. 선전은 광고주가 없다. 누가 말하는지를 쓰지 않는다. 미군이, 독일군이 소련군이, 북한군이 한 걸 다 알지만 어디에도 자신을 표기하지 않는게 선전의 기본이다. 우리도 그랬습니다. 우리가 써 붙인 대자보에는 발신인이 없었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떼세요 대자보 저희가 붙인 거 아닙니다. 뻔뻔스럽죠. 그렇지만 나는 주어를 '저희'라고 했습니다. 주어를 '나'라고 했으면 거짓말이었겠지만 명시적으로 우리 노조가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난 거짓말을 한 게 아니죠.


인사팀의 협상 요청에 따라 우리는 내부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찾아낸 근거는 단체협약에서 노동조합 집행부의 인사발령에 대해서는 사전협의를 해야 한다는 조항이었습니다. 사측은 단협을 위반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원상복귀를 해야 한다. 이것은 일종에 상징 싸움이었습니다. 공공기관에서 인사를 노조의 요구로 원상 복귀 하는 법은 없습니다. 인사 명령은 가장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경영진의 의지 표시 입니다. 인사 명령을 뒤집는다는 건 말 그대로 경영자보다 힘이 세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정직하게 말해서 나는 그무렵 우리 요구가 그정도의 의미를 갖는다는 걸 몰랐어요. 의미를 몰랐기 때문에 요구도 쉬웠습니다. 사측은 난색을 표했죠. 내가 협상 결과를 가져갈때 마다 위원장은 불편해했습니다. 이걸로는 안 된다. 이걸로는 조합원을 설득할 수 없다. 나는 번번히 인사담당자를 속인 꼴이 됐습니다. 이제 위로 올라갑니다. 경영본부장을 공격하고 기관장을 공격 합니다. 위원장이 경영본부장과 기관장을 만납니다. 본래는 사무국장이 경영본부장을 공격하고 위원장이 기관장을 만나는 게 위계상은 맞죠. 하지만 난 아직 2년 반 밖에 안 된 주니어였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경력 20년차 사측 팀장과 실무자를 상대하는 것도 만만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위로위로 올라간 협박과 협상들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원하는대로 다 해주겠다. 이제 우리는 세부 사항을 조율 했습니다. 단체 협상을 위반하고 사전 협의 없이 발령을 낸 집행부는 원상복귀, 이후 인사 관련 사측의 소명의견 제시 마지막으로 12월 정기 인사에서 정상적인 인사 처리. 정상적 인사 처리란 인사에 있어서 기관장이 복수노조 양측 위원장에게 사실상의 사전 협의를 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측에서는 우리 쪽이 피해를 본 인사인데 어째서 저쪽 노조(이하 2노조) 까지 기관장 협의 대상이 되느냐는 불만이 있었습니다. 거기다 인사발령 대상이 된 집행부 중 한 명은 원상복귀를 하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그는 좋은 부서에 가서 빛나는 업무를 해서 보직을 받고 싶어했거든요. 그는 마지못해 집행부의 결정을 따랐습니다. 마지막 남은 것은 일정이었습니다. 언제 인사발령을 다시 낼 것이냐, 후속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 인사부서는 부담을 느끼며 시간을 끌었습니다. 대자보를 먼저 떼라, 인사가 먼저다. 그런 옥신각신. 다시 칼을 꺼낼 시늉을 하자 인사부서로 부터 문서가 날아왔습니다. 후속 조치와 일정을 확정하는 문서요. 이제 우리는 '내'가 했지만 '우리'가 한 건 아닌 대자보를 떼냈습니다. 그리고 인사가 났습니다.


4. 노동조합 첫 실패이자 가장 큰 실패의 후일담


그때 나는 아침 여섯시에 사무실에 나와 아홉시까지 일을 했어요. 업무상 회신해야 하는 메일을 보내고 결재를 올리고 기업들이 제출한 서류를 살폈죠. 그리고 본사 건물까지 약 400m의 언덕길을 올라가 아홉시부터 열한시 반까지 두세개의 회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실로 내려와 팀원들과 점심을 먹고 또 오후 두세시까지 일을 처리 했어요. 새벽에 올려놓은 결재를 확인하고 후속 결재 사항을 올렸죠. 지출결의 품의 같은 거요. 다시 서너시쯤 본사 건물에 올라가 또 서너개 회의를 하고 다섯시 전에 내려왔습니다. 팀장과 본부장이 퇴근하는 걸 보고 또 일했죠. 일곱시 넘어서 까지 일을 하곡 술을 마셨습니다. 아홉시 쯤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열시에 와 잠들었죠. 그리고 네시반에 일어나 새벽에 처리할 걸 살피고 다시 회사에 나갔어요.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그해 9월 인사였습니다. 나는 인사팀장과 실무자와 매일 두세번씩 협상을 했죠. 협상 내용을 가져갈 때 집행부에서는 이를 받을지 말지 매일 회의를 했죠. 나는 그때 사람들이 생각보다 조직이라고 하는 제도에 깊게 자신을 동일시 하고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나는 수차례 말했습니다. 나는 구기관에 고작 만 2년도 있지 않았다. 그 정체성 같은 것은 없다. 사람들은, 우리 조합원 저쪽 조합원 할 것 없이 자신이 속해 있는 구기관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구성 했습니다. 왜 자기네 기관이 더 선진적이고 자기네 기관의 제도들이 유지돼야 하는지 같은 거요.


학부때 들었던 정치외교학과 교양수업에서 교수는 말했습니다. 자본주의는 결국 부의 거의 무한에 가까운 증식을 통해서 체제 경쟁에서 승리 했다. 양측 제제는 말하자면 그와 같은 끝없는 체제 경쟁 상태였습니다. ERP나 MIS 같은 시스템을 둔 경쟁은 일종에 헤게모니 다툼이었습니다. 누가 우주에 먼저 보내느냐 같은거요. 인사 경쟁은 그 모든 경쟁이 완전히 표면화된 결과물이었습니다. 민간과 달리 공공기관은 엄밀하게 말하면 정밀한 평가가 불가능 해요. 매출을 비롯해 다양한 지표로 성과를 비교/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민간과 달리 공공의 성과는 대부분 가상적이고 심지어 가짜입니다. 그러니 기관장에게 아부하고 줄 잘 서는게 일의 전부로 보이기도 해요. 정말로 공적 가치를 실현하고 몸을 바치거나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점점 더 바보 취급을 받거나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됩니다. 유능한 사람 보다는 줄 잘 서는 사람들, 기관장이 좋아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환경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교수는 이 말도 했습니다. 다르니까 싸운게 아니라 같으니까 싸운다. 우리는 자기네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서로를 상처 입히는 사실은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싸움을 벌였습니다.


인사 파동은 노조를 시작하면서 겪은 첫 실패이자 가장 큰 실패였습니다. 상식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전임 집행부를 비난했지만 정작 우리야 말로 무능한 사람들이 됐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그들 보다 못하고 말만 앞서는 한심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기도 했죠. 내 입으로 조직원을 지키겠다고 노조를 시작한다고 했는데 정작 한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느꼈어요. '원칙'은 공허 했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미친듯이 일했지만 과연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나는 역시 세상에 나오면 안 됐던 것이었나. 개인의 삶도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3년째를 만나고 있던 애인, 내 사람 구실의 시작을 지켜본 그 애인과의 관계가 파국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일도, 연애도 그리고 어쩌면 세상도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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