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국장 1년차(2) : 이사장 갑질, 인사 사고 등

노조 1년차, 4월부터 9월까지

by 김E


1. 도입 : 익숙해지는 노조 업무, 두번의 성과와 한 번의 큰 실패


노조를 시작하고 정말이지 매일 같이 사건 사고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매일 같이 조합원 간담회를 조직하고 매일 같이 민원 이슈를 접했죠. 통폐합 전 우리 쪽 시스템으로 확정돼 있던 ERP 시스템에 대해서 전면 재검토가 있었고 직급 조정과 승진 제도 역시 다시 용역을 시작 했습니다. ERP 시스템 관련 용역 회의가 이뤄지면 회의 내용을 요약해 우리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만들어진 조합원 단톡방에 공유 했습니다. 우리는 노조를 시작할 때부터 조합원과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약속 했거든요. 게다가 나는 언론학과 출신이니까요. 직급 조정 및 승진 제도를 놓고 용역을 진행할 때도 마찬가지였죠. 노무사와 경영 컨설턴트와 인터뷰를 수차례했고 별도 미팅을 잡아 조직 통폐합과 양쪽 조직에 관한 이야기들을 전달 하고 수시로 내용을 정리해 조합원들에게 공유 했습니다. 그렇게 노조의 업무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이어지는 두번째 이야기는 노조 첫해 있었던 작은 성과와 큰 실패에 관한 기억입니다. 첫 성과는 아직 직장내 괴롭힘 관련된 내용이 근로기준법상 관련 내용으로 들어오기 전 전직 장관 출신 이사장의 갑질 사건을 고발해 회사를 그만 두게 만든 일이었습니다. 다음으로 기존 기관의 구 '기득권 세력'을 회사의 변방으로 밀어버린 일이었습니다. 회사내 역학 구도라는 걸 처음으로 배운 시간이었고 지역 언론이 어떻게 지역 정치와 유착하는지 배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성과라는 단어를 고르는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돌이켜 보면 내 행동으로 달라지게 한 것은 적었고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어야 했거든요.


성과보다 중요한 건 실패였습니다. 처음으로 인사 파동을 겪었습니다. 통폐합 후 처음 이뤄진 인사에서 우리쪽 출신들이 그야말로 '학살'을 당했다는 평가였습니다. 조합원들은 인사발령이 뜨던 날 모두 회사 로비로 몰려 나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셨고 저는 새벽 세시까지 전화를 받아야 했습니다. 누구는 술해 취해 있었고 누구는 울고 누구는 화를 냈습니다. 인사 파동이 수습되는 데는 거의 한달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조합원을 지킨다며 시작한 노조였는데 정작 조합원들의 마음을 다치게 한 일이었어요. 조직내 정치나 파벌 싸움 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었죠. 조금의 성공으로 자만하던 때 찾아온 큰 실패였고 가장 큰 실패였습니다.


2. 이사장 갑질 : 지역 정치, 지역 언론이라는 생태계와의 첫 만남


통합후 회사는 안팍으로 뒤숭숭했어요. 통합으로 인한 조직내 혼란이 내부 혼란이었다면 어린이집과 관련한 언론 보도가 바깥의 혼란이었어요. 우리 노조가 직접 관여한 일이 아니라서 기억 속에 잊혀져 있었지만 SBS 뉴스에까지 보도될 만큼 큰 사건이었어요. 지역의원이 어린이집 운영사를 특정 업체로 하라는 압력을 가했다는 보도. 학부모들이 기자회견을 했고 뉴스 꺼리가 됐죠. 나는 학부모도 아니고 어린이집등 육아와 관련된 생태계는 잘 몰랐습니다. 청탁을 한 지역의원에게는 왜 이런 얘길 들어야 하냐며 비난을 받고 학부모들에게는 어떻게 이런 청탁을 받을 수 있냐는 욕설을 들어야 했던 경영본부장은 두달 반에 퇴사를 결정 했습니다. 후에 듣기론 상급기관 공무원 출신이던 그가 새로 온 기관장의 비난성 발언에 모멸감을 참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사장이라는 지위는 통폐합이 되는 과정에 생겨났어요. 후에 들었지만 역시나 정치권의 요구가 있었다고 하죠. 누구는 저쪽 기관에 이사장 제도가 있으니 기관장 위에 옥상옥을 세우기 위한 정치적 술수라는 얘기를 하기도 했죠. 나는 아직 조직이나 인사제도에 대해 지금 처럼 깊이 있는 지식이나 경험을 갖고 있지 않았어요. 내 장점이 다른 사람 얘길 퍽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거예요. 그런 얘길 하는 구나 정도로만 들었죠. 5월이었던가. 기관장의 갑질에 관한 이야기가 들려 왔습니다. 기관제도 아닌 파견직 용역 직원이 비서로 와 있는데 폭언을 듣는다는 거 였습니다. 폭언이나 갑질의 내용은 퍽 믿을 수 없는 거였습니다.


여든이 넘은 전직 장관 출신 어르신은 텔레비전을 켜라거나 끄거라거나 채널을 돌리는 작은 지적 부터 코를 풀거나 가래침을 뱉은 휴지를 줍게 하는 일들을 시켰습니다. 주말에는 회사 차량을 사적으로 쓰는 건 물론이거니와 비서에게 개인 일정인 사우나나 개인 약속 시간에 대기를 요구 했죠. 이야기는 점점 커집니다. 세미나나 포럼에서 업무추진비(법인카드)를 쓰는 일이 밝혀졌습니다. 불씨는 회사로 옮겨 붙습니다. 있지도 않은 이사장 제도를 만들어 이사장실을 꾸미는데 수천만원을 쓰고 업추비로 예산을 새로 배정 했다더라 등등의 내부 문서가 외부로 흘러 나갑니다. 회사는 내부 문서를 잠가 버립니다. 언론은 이를 놓치지 않습니다. 기관에서 이 문제를 축소하기 위해 내부 문서함을 잠갔다더라는 이야기가 흘러나갑니다.


이렇게 언론에 보도가 나가면 이제 정치인들이 이 불을 활활 키웁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 기자들이 역할을 합니다. 이런 사건이 있는데 그냥 두실거냐. 이 기회에 발을 옮기고 싶은 지역 정치인들은 5분발언 같은 의회제도를 이용하고 당은 제도 밖에 있는 성명서 발표라는 방법들을 사용 합니다. 이사장 개인의 갑질이나 부도덕한 행위가 사실은 통폐합된 기관이 불필요하게 이사장 제도란 걸 만들었기 때문이었고, 결과적으로 상급기관이 그걸 최소 방치 했거나 관여한게 아니냐는 겁니다. 얘기가 여기까지 흐르면 이제 누군가는 불을 끄기 위해 움직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바로 사직 입니다.


이슈가 불거진지 고작 2주도 되지 않아 이사장은 사퇴합니다. 이 사건을 다루면서 집행부 내부에서는 격론이 일었습니다. 우리 조합원도 아닌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노조가 나서는 게 맞냐는 의견, 경영평가결과 발표를 앞두고 기관에 어떤 해악이 미칠 지 모르는데 이런 일이 엮이는 게 맞느냐는 의견이 주로 반대 의견이었습니다. 경영평가는 즉각적으로 전직원 인센티브에 영향을 주니 작은 위협이 아니었죠. 다른 쪽 의견은 이런 시점에 우리 조합의 역량과 선명성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라는 정치적 의견과 누군가는 기댈데 없는 파견직 직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느냔 명분론이었습니다.


비서는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어요. 조합원도 아니었고 당시 우리 노조는 그렇게 대단한 존재감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게다가 파견직 입니다. 대다수 한국 노동자들 처럼 노동조합이 뭘하는 조직인지 사람인지 알지 못했을 겁니다. 그때 위원장이 피해자와 대화를 나눴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분명한 건 피해자의 피해내용이 구두 또는 문서 형태로 전달 됐다는 겁니다. 논쟁 끝에 위원장과 나는 전선에 참여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위원장의 논리는 이랬습니다. 첫째 경영평가를 겁내하느라 우리가 내야할 목소리를 못낸건 아니냐. 중요한 건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다. 둘째로 어쨌든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누구라도 나서 직원을 보호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리. 이후 정확하게 우리 집행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추측에 맡기겠습니다. 기자와 접촉 했다는 이야기만 남겨놓는 것으로 하죠.


이사장 사퇴는 일사천리로 이뤄졌고 다음번 이사회때 상근직이던 이사장 직위는 비상근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사장 급여가 예산표에서 사라졌고 파견직 비서의 일자리 사라지면서 예산표에서 그들 분의 급여도 사라졌습니다. 이사장을 위해 렌트한 공용차는 다른 임원을 위한 차로 바뀌게 됐습니다. 이사장 기사의 기사분은 행정직이 돼 본사로 왔고 파견 비서는 떠났습니다. 이후로 비상근 이사에게는 이사회 개최시 회의 참여 수당 정도만이 주여졌고 사실상 명예직이 됐습니다. 이 이사장 자리는 전직 정치인들이나 정치를 꿈꾸는 정치 꿈나무들이 이력서에 한줄을 넣기 위해 잠시 들러가는 자리가 됐습니다. 경영평가 등급은 다행스럽게 A가 나왔어요.


모든 게 끝나고 뭔가 씁쓸한 기분이었습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걸까. 내가 한 것은 정의를 구현한 걸까. 이사장 자리 신설은 광역자치단체장의 요청이었다고 합니다. 한국계 일본인 기업가인 손정의와 광역자치단체장과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전직 장관이 필요해 만든 자리라는 얘기 였습니다. 그 당시 그야말로 정말 박터지게 싸웠던 이제는 너무 친한 형님 동생이 된 당시 기획실장은 몇년이 지나 모든 일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됐을 때 한 얘기 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 했죠. 그때 진짜 나 죽는 줄 알았다. 내가 내구력이 데 그때 진짜 살면서 제일 힘들었다. 돌아보니 떠나간 비서에 대해서 살피지 못한 것도 후회 였습니다. 높으신 분들의 정치 공학은 예나지금이나 관심이 없습니다. 어르신이 느꼈을 모멸감도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주제 입니다. 그럼에도 그때 내가 느낀 불편, 씁쓸함은 어쩌면 나도 모르게 내가 한 행동들이 누군가를 다치게 했다는 느낌 때문이었을 겁니다.


또 있습니다. 우리가 소위 정의를 구현한답시고 한 행동이 사실은 지역 정치인들이나 지역 언론인들의 정치놀이를 위한 장난감이 됐다는 느낌 말입니다. 그땐 애써 모른체 했지만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기사를 쓴 모 기자는 이사장의 사퇴선언이 공식화 되기도 전에 사퇴 기자를 단독 속보로 냈습니다.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이래도 괜찮아요? 안 그만 두면 그만 두게 하면 되지 뭐. 라고 했던가요. 누가 그러대요. 기자들은 높은 사람들 날려 보는게 실적이라나. 나랑 동년배였던 그는 그 사건보도로 기자상을 받았고 지역 기자 협회장까지 됩니다. 중앙지로 옮겼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정확치는 않습니다.


3. 협잡의 역사 : A대학 출신들의 구심점을 밀어내고


협잡 맞습니다. 맞아요. 이후 7년 동안 나는 매일 정치와 협잡의 세계에 있었습니다. 협잡과 공작의 시대에 본격적으로 발디디기 시작한 게 이무렵입니다. 이사장 사건은 정치인들과 언론인들과 함께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는 채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A대학 얘기는 전략과 전술이 결합된 목적이자 의도와 감정이 담긴 작전이었습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오며 나는 지역언론이 어떻게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목격했습니다. 공공기관은 구조적으로 그 파급이 정치적 사건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책임성과 공포감 때문에 민원과 언론에 매우 취약합니다. 그땐 구조나 매커니즘, 엔지니어링 이런 걸 알았던 건 아녜요. 그저 투입과 산출, 작용과 반작용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난 처음으로 그걸 이용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역 언론을 이용해 통합전 실세였던 A대학 출신들은 변방으로 밀어버린 사건이었습니다.


통합 전 A대학 출신이 기획실장, 홍보실장을 비롯해 전체 조직의 중요 포스트를 다 잡고 있다는 이야기가 파다 했습니다. 게다가 그 기획실장 뒤에 다들 줄을 서고 파벌을 만들었다고도 했습니다. 이 사람들에 대해 들은 얘기는 정말 다양했습니다. 술자리에 불렀는데 오지 않으면 먼 권역으로 단박에 인사발령을 내버렸다더라, 매년 수천만원 어치씩 업무추진비로, 그러니까 세금으로 술을 먹고 접대를 받는다는 얘기, 심지어 여직원들을 끼고 술을 먹는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나쁜 소문은 쉽게 그리고 곳곳에 퍼지는 법입니다. 후에 일부는 사실이란 걸 확인 했습니다. 같은 부서에 근무해본 적도 없고 깊은 대화 한번 나눠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나에겐 나쁜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기관장에 관한 부정적 언론보도였습니다. 이미 이사장 사직으로 인해 기관에 대한 불신이 곳곳에서 일고 있었죠. 건물 오폐수 장비 문제가 시작이었습니다. 다음은 상급기관이었습니다. 기관장의 해외출장까지 문제 삼았습니다. 공문 까지 보냈죠. 기관장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해외 출장을 가면 바로 문제를 삼겠다는 내용이었어요. 나름대로 300명이 넘는 인원에 예산 규모가 3000억이 되는 기관의 기관장의 해외 출장 까지 문제 삼는 경우는 없어요. 기관 입장에서는 굴욕적인 내용이었죠. 내가 속해 있던 본부장이 저와 위원장을 불렀어요. 아무리 봐도 저쪽 애들 작업인거 같다. 당시 그 본부장은 여성에다 무엇보다 경력직으로 입사해 '저쪽 애들'로 부터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요는 이런거 였습니다. 감사실로 자리를 옮긴 전 기획실장, 그러니까 통합전 몇년간 회사의 실세 노릇을 하던 그가 감사실에서 회사의 중요정보를 빼내고 있고 같은 학교 출신인 홍보팀장을 통해 언론에 뿌리고 있다. 심지어 조금 있으면 더욱 파워풀 한게 나올 거라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통합 과정에서 급여를 과도하게 조정했다는 내용이었고, 언론에 나가면 기관장이 큰 타격을 입을 거라는 거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수년 전 당시 삼성 출신이던 기관장 비리를 언론에 터트려 사임하게 만든 적이 있습니다. 당시 민간 출신이던 해당 기관장은 지역 정치인들로 부터 미움을 받은 상태였고공공 특유의 보수적 비용 집행 방법에 익숙하지 않았던 게 원인이 돼 그만둘 수 밖에 없게 된 겁니다.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었습니다. 지난 이사장 사직 과정에서 알게된 기자들을 통해 확인해 보니 이 가설은 일정 부분 사실에 가까운 얘기 였습니다.


그들의 입장은 이제는 이해합니다. 그들의 입장에는 기관을 위해 무능한 사람을 내쫓아야 한다는 논리였던 거 같습니다. 기관장 치고 경력도 역량도 심지어 네트워크도 부족해 기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겁니다. 큰 기관은 아니었지만 중앙부처 차관 출신이 기관장을 하는 등 기관이었는데, 한심한 사람이 와서 기관 전체의 얼굴을 먹칠하고 있다는게 불만이었을 겁니다. 오죽하면 상급기관 과장 나부랭이가 기관장실을 마음대로 박차고 들어가냐는 얘기도 있었죠. 반면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새로 온 기관장이 기존 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관장을 흔들어 힘을 보여주고 싶어한다는 거죠.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통합 과정에서 자기네들이 급여 조정 등에 손해를 본 문제로, 이 기회에 감사를 통해 기관장을 흔들고 자기네들에게 손해를 미친 사람들을 전부 '되치기' 하겠다는 거요. 여러 관점, 이해, 해석이 한 사건 안에서 충돌했습니다.


기관장과 기자 둘, 본부장 그리고 위원장과 내가 기자들과 만났습니다. 일요일이었어요. 그날 애인을 만났는지 만나지 않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부정확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기자들은 기관장에게 말했습니다. 시리즈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당신을 날릴 준비는 거의 끝났다. 기관장과 본부장은 기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사실이 아니다. 보도를 멈춰달라. 기관에 대한 부정 보도를 막는 건 홍보 파트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홍보 파트를 비롯해 경영진의 중요 포스트가 기관장에게 칼을 겨눈 상태였습니다. 기관장이 스무살 가까이 어린 기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약속장소가 언론사 사무실 앞이었던 걸 보면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이었는지는 분명했습니다.


주말이 지나고 기관장은 여름 휴가를 냈습니다. 월요일이었던가요. 점심시간을 앞두고 기관장 공용차가 회사로 들어왔어요. 어 기관장은 휴가를 냈는데. 곧이어 기관장의 공용차가 다시 단지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게시판에 인사발령이 떴습니다. 홍보실에 정보를 흘렸다는 혐의를 받은 구 기획실장, 현 감사실 실무자는 본사와 먼 북부로 발령납니다. 회사는 혼란에 빠졌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이후로도 많은 사람들이 당시 인사발령을 궁금해 했습니다. 민간 출신이라 칼을 갈았다더라, A대학교 세력은 이제 끝났다더라 등등. 많은 사람들에게 얘길 들었지만 이 이야기의 실체를 아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지 않아요. 심지어 우리끼리도 그당시 얘긴 잘 하지 않아습니다. 그만큼 비밀스럽고 은밀한 일이었으니까요.


내가 저지른 일로 누군가는 갑작스럽게 좌천성 인사 발령의 대상이 됐습니다. 기존 기득권세력의 구심점에 확실하고 큰 상처를 입혔습니다. 이게 잘 한 일이었을까요. 나는 소문만 들었지 그들의 실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인사나 경영 조직 같은 게 정확하게 뭔지 알지 못했습니다. 정무적으로도, 실무적으로도 그들의 일이 뭔지 정확히 알지 못했던 겁니다. 난 고작 당시 3년차 밖에 되지 않는 아직 신입 떼를 벗지 못한 초심자에 가까웠습니다. 조직과 집단에 대해 정확히 안다고 말하기 어려웠어요. 그럼에도 뭔가 크나큰 변화를 일으켰잖아요?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몇년간 회사를 좌지우지했던 실세를 내쫓았다. 이제 뭔가 바뀌겠구나. 묘한 감정이 일었습니다. 자부심이랄지 자만심이랄지 그런 것들이었던거 같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자만심은 비극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증거입니다. 이 자만심은 곧 더 큰 실패로 이어질 예정이었습니다.



* 인사파동 얘긴 너무 길어져서 다음 편에 한 편으로 적도록 하죠. 그만큼 큰 사건이었고 그만큼 쇼킹한 이벤트 기도 했으니까요.



아래는 그 썼던 일기 비슷한 글입니다. 우상의 황혼은 니체의 후기작 제목이기도 합니다.



우상의 황혼


신화의 시간은 불꽃과 함께 점멸된다. 모든 것은 우연스럽게 혹은 너무도 확고하게 추락으로 향한다. 하나의 종말은 기어코 완만하고도 완벽하게 추락을 예비한다. 예전에 나는 추락의 노래가 고작 내게서만 흘러나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추락하고 있었다. 내가 들었던 노래는 내 추락으로 인한 바람의 소리고 내 추락으로 부터 들려온 신체기관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한 시대의 몰락, 한 조직 속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한 사람의 몰락은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한다. 나는 무슨 거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이 작은 이야기 속에 몰락에 관한 진실이 있을지 모른다. 하물며 전임 대통령 역시 그랬다. 그녀는 완벽하게 추락을 위한 서사를 채웠다. 권력을 휘둘렀고 절차를 위반했다. 기어코 자신에겐 어떠한 잘못이 없으며 책임을 전가했다. 완만하던 추락의 속도는 언제나 그렇듯 파열음이 강해질 수록 더 큰 법.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칠 수록 바닥으로 수렁으로 "밑으로 밑으로" 떨어진다. 사방에 팔을 휘둘러 봐야 초라해지는 것은 자신이다. 우상은 자신이 점멸될 불꽃임을 모른다. 그들은 그저 자신에게서 새어나오는 빛, 어둠 속이라 더 환한 그 빛에 취해 끝없이 불꽃을 휘두른다. 새벽은 저 멀리 오고 있었다. 어쩔 때는 유성우의 환호로 어쩔 땐 노동의 소음들로, 시간은 차츰 우리 앞으로 달려 왔다.


Amor fati! 그대의 추락을 사랑하라! 그대의 추락은 또다른 이카루스를 부활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또다시 시지프스가 될 것이다. 코카서스에 몸에 묶여 끝없이 되살아 나는 간을 쪼이리라. 다른 사람의 추락으로 부터, 몰락을 예비하는 그 모든 한심스런 몸짓으로 부터 나는 몰락과 추락의 한 단상을 본다. 한 시대가 끝나고 다시 한 시대가 새로운 악마를 예비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악마를 길러낸다. 그것은 권력이고 그것은 힘이다. 힘을 추구할 수록 우리는 더욱 더 자신의 내면을 외면한다. 성찰, 고민, 반성 그 모든 멋들어진 단어들은 악마를 위한 것이 아니다. 나와 나의 거리가 멀어질 수록 악마의 길은 가깝다. 힘을 내놓아라. 이제 나는 더 강하고 더 높은 곳을 좇겠다! 그리고 그렇게 내 몸짓이 더 커지고 더 높아질 수록 나는 새로운 나락에 가까워질 것이다.


시대는 나를 기다린다. 나는 추락을 기다린다. 더 큰 힘을 내놓아라. 나는 더욱 더 높이 가겠다. 더 높이 올라설 수록 추락의 고통은 더 깊은 통증으로 상처로 내 뼈와 살을 부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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