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국장 1년차(1) : 복수 노조, 끝없는 사건사고

조직 통폐합과 노조 1년차

by 김E

1년차 이야기 입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사무국장으로 노조 일을 처음 맡았던 그해 일어났던 일들을 나열해볼까요. 우선 조합 집행부가 들어서자 마자 전임 노조 집행부와 관계 있는 사람들이 우수수 탈퇴했습니다. 이어서 노조 설명회 이후 통폐합 당한 저쪽 기관 인원들이 노조를 설립해요. 복수노조 체제가 시작되는 겁니다. 통합 과정에서 전임 경영진이 정한 급여와 직급 체계 변경에 대한 비판이 몇달 동안 이어졌습니다. 전산시스템 통합 과정에서 분란이 있었습니다.


상반기 마지막 폭탄은 새로 생긴 이사장이라는 분이 벌린 갑질 사건이었습니다. 그렇게 상반기가 끝나고 하반기엔 인사사고가 터집니다. 통폐합 후에 특정 기관 출신들이 득세하는 상황을 막지 못했다는 비난이 노조에게 집중됐죠. 한달 내내 직원들에게 시달렸죠. 고등학교때 반장, 부반장에 대학땐 단과대 학생회와 학부 학생회장 등 앞에 서는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책임질 일도 많이 해야했고 비난도 많이 받았죠.


노조를 시작하던 첫 해에 여러 자리에서 받았던 공격이나 비난들과는 궤가 다르고 또 농도가 범위, 양 면에서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어른들의 세계 였습니다.


1. 통폐합의 후유증 : 정치인들이 결정한 기관 통폐합, 갈등과 상처는 조직원들의 몫


통폐합 얘기 부터 해보죠. 기관 통폐합은 정치인들이 정했습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임기 1년 반을 앞두고 광역자치단체장이 연구용역과 언론보도라는 형태로 기관 통폐합을 출발시킵니다. 많은 기관 사람들이 저항 했습니다. 누구는 언론 보도를 냈고 누구는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공무원도 아닌 산하기관의 '민간인'들의 저항은 한계가 있습니다. 여러 요식행위와 행정절차를 지나 결국 정치인의 의지에 따라 통폐합은 이뤄집니다. 어쩌면 그 모든 결과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공기관은 적게는 10년 길게는 30년 이상 은퇴할 때까지 다니는 곳이에요.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나 정체성이 남다릅니다. 게다가 공공분야에 있는 사람들은 행정 관리가 대부분이라 특별한 전문성이 있지도 않아요. 더 중요한 건 얼핏 헤아려 보기에 70% 이상의 사람들은 어렵다고 할 만한 일을 하지도 않습니다. 논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자기네들이 받는 처우가 대접에 민감해지고 회사의 온갖 소문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기관 통폐합은 더욱 충격적인 사건이고 현상이었을 겁니다.


조직이 합쳐진다는 건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엄청난 일입니다. 많은 것들을 바꿔야 하고 합쳐야 하니까요. 일단 제도가 정리돼야 합니다. 그룹웨어나 회계시스템이 단순하고 대표적입니다. 내가 속해 있던 기관은 매년 지출 건수가 수만건이나 됩니다. 우리 ERP는 회계처리 기능이 강한 쪽이었어요. 저쪽은 R&D 과제관리 기능에 강화된 시스템이었습니다. 이미 기관 통폐합 이전 부터 우리 쪽 시스템을 쓰기로 결정을 했음에도 새로 법인이 출범했자 불씨가 일어납니다. 왜 이런 시스템을 써야 하느냐. 충돌이 생깁니다. 누군가 불씨를 쏘아내자 마치 이 시스템이 이 세상에사 가장 비효율적 ERP의 모든 것인것양 비난이 쏟아졌습니. 어느 시스템이 더 효율적이냐 보다는 어느 시스템이 우월하냐라는 방향으로 논쟁이 흐릅니다. 이 논쟁은 사실 어느 조직이 더 우월하냐는 상징 자본에 대한 싸움 입니다. 일종의 헤게모니 다툼입니다. 시스템은 명분이었습니다. 후에 이 시스템은 두 번의 변경을 거쳐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그 과정에서 세명이 중징계를 받게 됩니다.


문화적 충돌도 상당합니다. 이쪽은 제조기업이나 창업기업들을 지원하는 역할이 많아 일에 손이 많이 가는 경향이 있었어요. 한 프로젝트로 100사에 대해 500만원씩을 지원한다거나 하는 식이죠. 이 말은 100개를 선정하기 위해 최소 300개 이상의 기업을 평가해야 한다는 뜻이고 그만큼 많은 서류를 살펴보고 심사위원회를 열어야 한다는 뜻 입니다. 지출 품의도 그만큼 많고 지출 결의서도 그만큼 되겠죠? 반복적이고 지리한 행정 처리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저쪽은 기술기업을 주로 상대하다 보니 행정 처리나 절차 면에서 당시 우리가 보기에 빈 구석이 많았습니다. 1억씩, 3억씩 많아야 10개사 정도에 쏴주는 거라 손이 덜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면서 이 쪽은 자잘하게 쪼개서 체크하자고 하고 저쪽은 중요한 거 아니니까 덮자고 하고요. 업무 방식도 문화의 일부입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 쪽은 기간제법을 근거로 기간제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하지 않는게 관행이었습니다. 저쪽은 동료라는 이유로 여러 법적 우회 경로와 예외를 찾아 5년, 6년씩 고용해 쓰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후 문재인 정부 정규직화 때 모두 정규직이 됩니다. 문화, 업무 처리 방식, 커뮤니케이션 방식 등 거의 모든 차원에서 갈등과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이 갈등들은 모조리 기관의 정체성이나 자존심 싸움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린 내부의 적과도 상대해야 했습니다. 새 집행부 임기가 시작하자 마자 조합 게시판에 조합 탈퇴서가 공지됐습니다. 전임 노조 부위원장이었습니다. 신임 집행부를 인정할 수 없다는거죠. 몇몇이 연이어 탈퇴서를 게시판에 올리거나 메일로 보내 왔습니다. 왜 노조 탈퇴했는데 조합비를 공제하냐면 감정을 섞어 메일을 보내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통합 과정에서 정해진 결정으로 인한 비난도 집행부에게 쏟아졌습니다. 그 결정은 전임 경영진과 집행부가 했죠. 누구는 자기네 직급은 돈이 오르지 않았다며 볼만 소릴 했습니다. 조직 통합으로 급여를 올린다는 것 그자체가 사실은 이론적으로 맞지 않는 얘기입니다. 기존 우리 조직은 승진을 하면 2호봉을 깎는 체계였어요. 그런데 통합 과정에서 호봉표상에서 수평이동 하는 방식으로 변합니다. 또 양 기관의 직급을 맞추기 위해 직급체계를 조정했고 몇몇은 승진을 했습니다. 어느 조합원이 말합니다. 나중에 승진 했다면 더 많이 받을텐데 괜히 직급 조정해서 손해를 봤다. 이기적인 말이거든요. 직급 조정은 본인 승진을 위해 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나는 감정을 못참고 정 그러시면 직급 원상복귀 해드릴까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음날 탈퇴서를 보내왔습니다. 많은 공공기관이 소위 직급 재조정을 통해 급여를 올리는 꼼수를 부린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정치인들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양 기관에 소속돼 있던 거의 300명이나 되는 직원들은 불안과 공포, 불신의 갈등의 장소가 된 일터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꽤 오랜동안 이유도 없이 서로를 향해 출신 기관을 이유로 비난을 쏟아내고 갈등해야 했습니다. 정작 책임을 져야할 정치인들은 사라졌어요. 나는 이걸 상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상처는 오롯이 이름 없는 직원들의 몫이었습니다.


2. 복수 노조체제의 시작


복수 노조 얘길 해보겠습니다. 앞으로 6년간 첨예하게 양 기관 출신 운운하며 인사와 평가, 제도 도입 마다 갈등의 원인이 된 바로 그 복수 노조 말입니다.


저쪽 기관은 노조가 없었어요. 120명 정도 규모의 조직이었음에도 노사협의회만 작동하고 있었죠. 우리는 기관 통폐합에 따라 자연스럽게 노조 가입을 유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습니다. 나는 인사부서의 협조를 얻어 월례조회 자리에서 노조가입 설명회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선출된 지 며칠되지 않은 위원장은 직접 노조의 개념, 목표 등을 설명했습니다. 거기다 우리는 저쪽 출신 직원들과 여러차례 간담회를 조직했어요. 열명 스무명씩 회의실에 모여 얘길 나눴죠. 통합이 무슨 의미고, 급여 제도는 이런 뜻이고. 살펴보니 저쪽은 통폐합 과정 등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지 않았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우린 이 일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거라고 믿었습니다. 조금만 정성을 기울이면 직원들을 하나로 묶는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뒤늦게 첩보를 받았습니다. 저쪽에서 노조를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나와 위원장은 허탈해 했습니다. 우리 조합원들은 왜 같은 조합원도 아닌 저쪽 출신들을 챙기냐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조합원들한테 비난을 들어가면서 까지 내밀었던 손이었습니다. 노조 출범을 본격화 하는 과정에서는 저쪽은 보도자료들이 쏟아졌습니다. 자기네들을 빼놓고 선거를 했다는, 그래서 별도 노조를 설립할 수 밖에 없다. 아마 일요일이었을 겁니다. 지금도 기억해요. 저쪽은 노조도 없고 우린 우리 절차대로 전임자 임기가 끝나서 새 집행부를 선출 했는데 노조에 가입하지도 않은 자기들을 빼고 선거를 했다니요.


우리는 수소문을 해 그들이 노조 결성을 논의하고 있는 회의장 까지 쫓아갔습니다. 저쪽이 명분을 삼은 건 노조 설명회때 기간제는 조합에 가입할 수 없다는 위원장의 답변 이었습니다. 계약기간이 2년 넘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했거나 아니면 법상 정한 전문성으로 인해 계속 기간제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하는 저쪽의 다수의 연구직들이 크게 반발 했다는 겁니다. 나와 위원장은 말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갈등을 해야할 때가 아니다. 이런 갈등은 결국 직원들을 괴롭게 할 뿐이다. 필요하면 우리 조합원을 설명해 선거를 다시 하겠다. 이무렵 나는 아직 공공기관의 생리, 인사 제도 같은 것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나는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습니다. 모든 걸 바로 잡고 싶었습니다. 진심이었습니다. 그럼에도 2노조의 출범은 현실이 되고 있었습니다.


협상이 결렬 되자 우리도 대응을 해야 했습니다. 조합 총회를 열었습니다. 저쪽이 조합비를 내린다니 우리도 내린다, 저쪽이 기간제를 받는 노조를 만든다니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반발이 많은 건 후자쪽이었습니다. 나는 사무국장이 되면서 여러차례 조합원 대상 대화자리에서 기간제를 조합원으로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노조는 약자를 위한 조직이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건 비난이었습니다. 어느 선배는 네가 아직 현실을 몰라서 그런다고 했습니다. 다른 누구는 기간제를 받기 시작하면 그 다음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할거라는 얘기를 호기롭게 꺼내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분은 무려 박사님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를 위한 조직이라는 원칙론과 어쨌든 조합원 싸움에서 지면 안된다는 현실론이 비정규직 조합 가입의 근거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집행부 출범 한달도 안돼 "우리 노조의 목표는 비정규직을 받지 않겠다"는 전임 노조의 건방진 비전을 손쉽게 붕괴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건 두 가지 의미가 있는 진전이었습니다. 첫째로 실질적으로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 인원수 싸움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일단 복수 노조 체제가 시작되면 이어지는 건 필연적인 조합원수 싸움입니다. 다음으로 실제로 비정규직을 보호할 수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우리 조합원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회사에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제도를 요구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저들이 주장하는 '기간제를 받지 않는 노조'라는 도덕적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낸겁니다.


조합비 얘기도 해볼까요? 조합비를 내리면 가장 큰 문제는 당시 민주노총에 소속돼 매달 내야 했던 맹비를 낼 수 없게 됩니다. 당시로는 직급별로 비율로 조합비를 내게 돼 있었지만 모두 공통으로 똑같은 조합비를 내도록 규약을 바꾼 겁니다. 일단 기본이 되는 돈문제에서 밀리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몇년간 결국 민주노총에 맹비를 내지 못합니다. 거기다 우리 집행부는 모두 현업을 다 하면서 활동비 한푼 쓰지 않았어요. 물론 노조비로 밥도 한끼 먹지 않으면서 노조활동을 했습니다. 돈 보다 중한 건 도덕적 명분이었고 그게 이후 까지 이어질 우리의 힘이었습니다.


저들은 노조 설립 과정에서 조합 설립의 기본이 되는 우리 규약을 가져 갔습니다. 우리 기관에 있다가 저쪽으로 넘어가신 분이 계셨죠. 그의 아내는 여전히 우리 기관에 남아있었습니다. 노조 내부의 모든 정보가 새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럴 수록 더 빠르고 정확하게 대응해야 했습니다. 우스꽝스런 첩보전과 정보전이 이어졌어요. 저쪽에서 보도자료를 내서 흠집을 내려 들면 저들이 부담 스러워 할 의사결정을 치고 나갔고 필요하면 의도적으로 내용이 흘러들어가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빠른 결정과 실행은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그땐 이 지리한 싸움이 6년이나 이어질 거란 건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내 손으로 끝장 내게 될 거라는 것도요.


.


이게 노조를 시작하고 불과 서너달 사이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이어서 같은 해에 경영평가 점수 발표를 앞두고 새로 생겨난 이사장이란 제도에 앉은 전임 고위 관료 출신 이사장의 갑질 사태가 있었습니다. 새벽까지 분노와 눈물 섞인 전화로 거의 두달 가까이 잠을 자지 못했던 하반기 인사발령도 이어질 예정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야말로 숨 쉰다는 이유로 까지 비난을 받던 무렵이었습니다. 앞으로 7년간 이어질 긴 투쟁의 전주곡 입니다.



이전 08화2년차(3) : 노조를 시작하던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