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연합뉴스
서울 한강공원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치킨 한 마리를 주문하려다 결제 오류로 포기하는 일은 낯설지 않다. 언어 장벽도, 앱 사용 미숙도 아니다.
단순히 결제가 되지 않는다. 카드가 인식되지 않고, 시스템은 멈춰 선다. 화려한 ‘K-관광 100조 원’의 구호가 현실 앞에서 무너지는 순간이다.
정부는 매년 ‘관광소비 100조 원’, ‘방한 관광객 3000만 명’을 외치지만,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불편하다고 꼽은 건 교통(19.7%)과 결제였다.
한류 콘텐츠와 음식, 문화가 세계를 사로잡았지만, 정작 한국 안에서는 외국인의 지갑이 쉽게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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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중심에는 결제 인프라가 있다. 세계 주요국의 오프라인 결제 70% 이상이 비접촉식(EMV) 방식으로 이뤄지지만, 한국은 10%에 그친다. 애플페이나 구글페이 같은 글로벌 결제 서비스는 매장에서 인식되지 않거나 오류가 잦다.
이유는 구조적이다. NFC 단말기 보급률이 낮고, 교체 비용을 두고 가맹점과 카드사가 오랫동안 책임 공방을 이어왔다.
여기에 삼성페이의 MST(마그네틱) 방식이 구형 단말기에서도 문제없이 작동해, 업주들은 굳이 새 기기를 들일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교통은 상황이 더 답답하다. 서울 지하철과 버스는 해외의 EMV 오픈루프 방식이 아닌 국내 독자 규격을 사용해 외국인이 비자나 마스터카드로 탑승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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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티머니 카드를 사야 하지만 해외 신용카드로는 충전도 불가능하다. 아이폰 이용자는 모바일 티머니조차 쓸 수 없다. 런던과 뉴욕이 이미 10년 전 해외 카드 한 장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한 것과 대조적이다.
수수료와 규제 문제도 발목을 잡는다. 애플페이 도입 과정에서 카드사와 당국은 수수료 부담을 두고 대립했고, 교통 결제는 정산과 보안 등 기술적 제약으로 전환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변화는 시작됐다. 서울시는 EMV 오픈루프 결제 도입을 공식화했고, 일부 지하철역에는 해외 카드 결제가 가능한 시범 단말기가 설치됐다.
카드사들도 비접촉 단말기 교체를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관광객이 체감하기에는 여전히 먼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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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는 국경을 넘어 세계를 뒤흔들지만, ‘K-서비스’는 여전히 국경 안에 머물러 있다. 관광객이 “보고 가는 나라”를 넘어 “돈을 쓰고 싶은 나라”로 한국을 기억하게 하려면, 화려한 홍보보다 결제와 교통 같은 기본부터 바뀌어야 한다.
외국인이 한강에서 치킨을 주문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관광소비 100조 원’의 약속이 현실이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낡은 시스템을 바꾸려는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