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마그마 / 출처 : 제네시스
폭스바겐그룹의 고성능 전동화 브랜드인 쿠프라가 향후 신차 디자인에서 색을 대폭 줄이겠다고 밝혔습니다. 강렬한 빨간색 같은 튀는 색상을 배제하고 회색, 검정, 무광 쿠퍼 등 그레이스케일 중심으로 브랜드만의 도회적이고 차가운 프리미엄 이미지를 만들겠다는 전략입니다. 색상을 최소화해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이 유럽 브랜드의 결정은 한국 자동차 시장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합니다. 국내 시장에서는 이미 대부분의 차량이 회색조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쿠프라가 디자인 철학을 바탕으로 회색을 선택했다면, 국내 소비자는 차량 교체 시 손실을 피하기 위해 신중한 판단 끝에 회색을 고른다는 점이 다릅니다.
국내 소비자에게 자동차 색상은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기 전에 잔존가치 계산 수단입니다. 2024년 한국에서 판매된 신차의 76%가 흰색, 검정, 회색, 은색 같은 이른바 무채색 계열에 몰려 있습니다. 흰색이 33%, 회색이 26%를 차지하며 세계 평균보다도 쏠림 현상이 훨씬 심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 특유의 '차는 자산'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파란색을 좋아하지만 나중에 중고로 팔 때를 생각해서 무난한 흰색이나 회색을 선택한다"는 식의 타협이 계약 직전에 이루어집니다. 특히 소유가 아닌 사용 후 반환을 특징으로 하는 리스나 장기렌트, 법인차일수록 잔존가치가 가격에 철저하게 반영되기 때문에 무채색 쏠림은 더욱 심해집니다.
중고차 시장의 실제 데이터를 보면 색상에 따른 판매 속도와 감가율의 차이가 명확합니다. 중고차 플랫폼의 통계를 보면 튀는 색상의 유채색 차량이 무난한 무채색 차량보다 판매에 더 오래 걸리며, 가격도 더 많이 내려갑니다. 제네시스 G80의 경우 무채색 상품은 평균 60일 만에 새 주인을 찾은 반면 유채색 상품은 65일이 필요했습니다. 가격 하락률도 유채색이 1%포인트 더 높았습니다.
더 대중적인 차종인 기아 K5에서는 그 차이가 뚜렷합니다. 무채색 K5가 평균 40일 만에 팔리는 동안 유채색 상품은 51일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가격 하락률도 무채색은 14% 선에서 지켜냈지만, 유채색은 21%까지 내려가는 차이를 보였습니다. 수입차 베스트셀러인 벤츠 E클래스도 무채색이 판매 속도에서 약 5일 정도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기차 보급과 제조사들의 다양한 내외장 색상 시도로 2024년 신차 중 유채색 비중이 과거보다 조금 높아진 24%를 기록하며 변화의 신호는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주류 시장에서 색상은 곧 보험이자 현금입니다. 쿠프라는 무채색으로 엠블럼의 가치를 높이고, 한국 오너들은 무채색으로 자신의 지갑을 지키는 것입니다. 차량 색상 하나가 판매 속도와 통장 잔고를 결정하는 현실 속에서 예비 구매자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싼타페 / 출처 : 현대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