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사도의 죽음" - 진실은 신(神)만이 아신다

피안재의 여행갤러리(19)

by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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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Eli, Eli, lama azavtani?)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한복음 19장 30절)


예수는 제자인 가롯 유다에게 배반당하여 산헤드린에 넘겨졌다가 다시 산헤드린의 고발로 로마의 유대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재판을 받았고 그 결과에 따른 명령으로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빌라도의 입장에선 예수가 하나님 왕국을 거듭 언급하는 것을 로마 제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거기에다 권위와 기득권에 심각한 도전을 받았다고 판단한 산헤드린의 야합이 가세하였고, 그들은 빌라도에게 ‘로마위 권위를 부정하는 예수를 엄하게 처벌하지 않는것은 로마에 대한 반역행위’라고 위협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두개인 대제사장들의 입장에서는 예수의 가르침을 종교적 위협으로 보기보다는 정치적 위협으로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특히 예수의 선전 정화 소동은 예루살렘 성전에 기대어 최고의 권위와 무한의 경제적 이득을 마음껏 누려온 그들에겐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모든 기득권이 뿌리째 흔들리는 절체절명의 위기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다.

‘죄 없으신 분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대신 지셨다.’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42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사대 복음서에는 이날의 사건을 대부분 비슷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장례 주역이 아리마대 요셉이었고 어머니 마리아와 여인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적었다. 오로지 요한복음(19장 38절~42절)에서만 특이하게 니고데모의 등장을 적었다. 오늘날의 대중적 해석은 대부분 장례의 절차와 의식으로 볼 때, 아리마대 요셉의 주도하에 니고데모가 합세하여 장례를 치룬 것으로 보는 견해가 보편적이다.

그런데, 어디에도 사도(12 제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유다 경우야 사건 유발자였으니 그 자리에 없을 수밖에 없다고 쳐도, 그렇다면 다른 제자들은 스승이 운명한 시간에 모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물론 제자중에 단 한 사람은 현장에 있었다. 다른 복음 사가들이 예수의 십자가 처형 내내 어머니 마리아와 여인들과 함께 사도 요한이 어머니를 보살폈다고 기록했듯이, 다른 복음사가들과 다르게 니고데모의 참여를 기록한 요한복음의 필자 입장에서 요한이 장례를 목격하고 기록했으나 스스로를 기록으로 남기기를 생략했을 것이다.

그럼 나머지 열 명의 제자들은 당시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했으며 자신들의 처신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 알지 못했을까?

역시나, 출신이 변변치 못하고 배우지 못한 것들의 속물스런 치기라고 폄하해도 되는 것일까?

스승을 만나 배움의 길에 들어선지가 짧아 아직 철이 덜 들었다고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예수는 왜 저런 정도의 무뢰배들을 열두제자(사도)로 선택했던 것일까? 드러나 있는 통설과는 전혀 다르게 이들의 관계가 심히 의심되는 부분은 다음에 짚어보기로 하자.

예수의 공생애 기간동안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배웠는가?

성경에 그럴싸하게 기록된 입바른 소리 몇 번으로 넘어갈 일이 결코 아니며, 주님 앞에서 분란을 벌인 치졸함 또한 몇 번이었던가 말이다.

예수를 향해 ‘당신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했던 그 거룩한 제자님들께서 지금 스승의 장례를 자신들의 손으로 치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산헤드린 제사장 두 명의 손에 의해 치르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세속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주둥아리만 뻔지르르 하고 속내는 온통 시궁창이라는 말이다. 그것을 가리켜 (사도교회의 진면목)이라고 해야겠다.

어느 학자는 ‘예수께서 이런 열두 사람을 직접 골라 선택하심’에는 다분히 어떤 묵시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기독교에서 유독 특별하게 많이 쓰이는 용어가 ‘묵시’ ‘계시’가 아닐까 하고 필자는 생각한다. 생각하기에 다라서는 아주 커다란 의미가 깊이 내재되어 있을 수도 있겠으나, 거기에는 ‘상황에 따라 꼴리는 대로 해석이 가능하다’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기도 한 것이다.

재판정처럼 ‘예스’ 아니면 ‘노’라고만 대답하는 것도 문제는 분명히 있는 것이고, 아니면 ‘그렇게 하면 좋겠다’ ‘모두에게 유익한 방법을 선택하라’ 라던가, ‘그렇게까지는 하지 마라’ ‘다른 방법은 없을까’ 등의 제한선을 두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일은 자기가 벌여놓고 느닷없이 우리에게 ‘내 말뜻 알지?’ 하고 뚝 잘라버리면, ‘알긴 개뿔을 알어?’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예수의 제자들(사도)은 하나같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것을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심지어 유다까지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거기다가 설사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다고 쳐도, 아무도 예수가 십자가에서 그대로 운명하리라고 믿지 않았다.

이미 그간의 공생애를 통해서 여러번 기적을 행하였던 예수가 아니었던가? 그는 새로운 예루살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가 아닌가? 십자가 사건은 보다 더 거룩하고 놀라운 하늘의 영광을 이룩하기 위한 하나의 절차(씨추에이션)일 뿐이라 생각했다.

이제 최후의 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게되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께서 극한의 분노에 찬 함성으로 호통을 치시면서 기적을 행하사 당당하게 지면에 내려서실 것이며, 하늘이 열리면서 미카엘 천사가 이끄는 심판의 하늘나라 군대가 몰려 내려와 순식간에 온 세상을 징벌하고 새로운 예루살렘 왕국을 건설할 것이다. 여호수아의 영도로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축복받은 열두 지파를 대신하여 선발된 열두 제자(사도)들이 새로운 예루살렘 왕국의 지도자가 되어서 영원한 낙원에서의 삶을 자자손손 이어가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하나 같이 그렇게 믿었다.

다만, 자꾸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볼수록 ‘어쩌면 그것이 아닐 수도 있어’ 하면서 의구심을 넘어 속았다는 배신감에 젖은 유다를 빼고 말이다.

(예수의 공생애) 기간을 (사도 교회)라고 하는 학자도 있지만, 필자는 별로 달가운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수의 공생애)는 그저 단순하게 ‘예수가 직접 나섰던, 가르침의 시간’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예수의 부활 사건 이전까지는 어디에서도 ‘교회’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수의 부활 사건에서부터 새롭게 사람들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리스도의 의미)를 가지고 어떤 소속감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교회의 시작이었고, 그것은 다분히 여성들을 중심으로 하는 (가정교회) (가족교회)의 등장을 기독교의 시작으로 필자는 보고 있다.

예수의 공생애를 함께 지내면서도 열두제자(사도)들은 새로운 왕국에서의 지위와 기득권에 대해서 이미 여러 차례 자기를 끼리 반목하고 다투기 시작했다.

제자들은 예수를 잘 알지 못했다.

제자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뜻에 별 관심이 없었다. 진실로 예수를 이해하는 자가 없었다.

장차 펼쳐질 예수의 위대한 왕국에서 자신들이 받게될 기득권에만 관심이 있었다.

예수의 죽음이 그들에겐 커다란 아픔이나 슬픔이 결코 아니었다. 사라진 꿈이었고, 산산히 부서진 손에 쥐었던 기득권에 대한 분노였으며, 닥쳐올 예수의 패거리로 몰려 겪게 될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전부였다. 후회와 공포가 전부였다.

시간이 지나고 사태가 어느정도 안정이 되자 제자(사도)들은 그러했음에도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믿음의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깨달았고, 그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들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따라준다는 것에 놀랐다. 상황은 변했지만, 그 속에서도 나름의 기득권은 존재했던 것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그저 주어지는대로(?) ‘사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가 가르쳐준 길’이 결코 아니었다. 그저 오랜 유대의 율법과 전통 속에서 그저 ‘예수를 알았거나 기억하는 사람들’의 동호회 모임 정도였다. 예수 이전의 시대랑 별반 전혀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때, 새로운 사도로 바울이 등장했다.

그는 이제까지의 (사도)라는 특수한 권위를 앞세운 제자들과 사뭇 달랐다. 결과적으로 이는 당연히 상대에 대한 날 선 비판과 대립 속에서 파뭍혔던 ‘진정한 예수의 가르침’이 서서히 모습을 다시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수는 공생애 기간에 종말론적 의미가 담긴 인물인 (인자)가 곧 영광의 구름을 타고 이 땅에 내려와서 (택함받은 자들)을 모을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자(사람)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렀지만, 제자들은 예수가 하늘의 (인자)를 언급했을 때 그것이 예수 자신을 의미했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사도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극히 일부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인자)가 부활하신 예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깨달음을 얻은 자들과 얻지 못한 자들과 꾸역꾸역 새롭게 모여드는 자들 사이에 분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첮째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는 사도라는 특수한 지위를 앞세우는 갈릴리 출신의 예수 적통자들.

둘째는 바울을 따르는 헬라파 디아스포라를 경험한 사람들이 주장하는 모두에게 열린 교회주의.

셋째는 야고보를 중심으로 새롭게 모여든 유대인 개종자들로 혈통주의를 앞세우는 사람들.


어쨌거나 서구의 역사는 예수 이전(BC)와 예수 이후(AD)로 나누고 있지만, 초기 기독교 역사는 바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이를 가장 적절하게 잘 나타내는 표현이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기에 바울이 있었겠지만,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말이다. 그 사람은 베드로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없었다. 이럴 때 문득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누가 개미이고 누가 베짱이란 말인가?

당시의 속사정은 누구보다 예수와 함께 지냈던 장본인들이 누구보다 더 잘 알지 않았겠는가?

마태복음의 저자 세리 마태는 자신들에 대해서 이렇게 적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서 처음에는 잘 깨닫지 못했지만, 십자가 사건 이후로 잘 깨닫게 되었다’라고 샐프 해명을 했다.

하지만,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예수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예수의 가르침을 진실로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존재들이다’라고 비판했다. 이 평가가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는 사도 회의와 끝까지 대립한 바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면 어느 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지만, 베드로에게 아들이라고 까지 불렸던 애제자이자 비서였던 마가의 입에서 나온 평가라면 그 의미가 사뭇 달라져아만 하는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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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이틀이 지난 예루살렘의 새로운 아침이 다시 밝았다.

언제나 처럼......... 어제와, 그제와 똑같은이 지극히 평범한 그런 아침이었다.

하나님께서 지상에 보내 주신 독생자(구세주)가 참혹하게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고, 초라하게 바위굴에 안장되었음에도 어느것 하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예수의 죽음을 두고 기뻐하는 자들과 숨을 죽이고 곧 닥쳐올 어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로 나뉜 것밖에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십자가에서 걸어 내려온 예수의 입에서 저주의 심판이 내려지고 하늘에서 내려온 미카엘 천사가 이끄는 하늘나라 군대의 무자비한 칼날과 말발굽이 타락한 혼돈의 세상을 일거에 평정해 버릴 거라는 기대는 아무런 낌새조차 보이질 않았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이미 시작되었고, 오늘과 똑같은 내일이 또 당연하게 펼쳐질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한동안 그 난리법석을 떨었던 것이지?

날뛰던 그들은 다 어디 간 거야? 코빼기도 안 보이네?

누구라도 나서서 뭔가 해명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해명조차 하지 못 한다면........ 그럼 이건 말짱 사기였다는 말인데....... 사기는 책임을 져야지?

사기를 쳤으면 의당 거기에 맞는 대가를 치루 게 만들어 줘야지. 그게 정의잖아?

'하늘나라?' '새로운 왕국?' '구원의 약속?' '그게 다 어디 있다는 거야?' '어디 보여줘 봐?'




‘어머니. 루가(Luke) 형제가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떠나겠다고 청하고 있습니다.’

‘내가 크게 신세를 졌는데 며칠 더 편히 쉬다가 떠나시게 해드리지 않고? 밖의 상황이 좀 잠잠해지기를 기다려서 말이다. 마가((Ma가)야. 어디로 가실지는 모르겠지만 일행도 여러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여정에 필요한 것이 있을지 모르니 잘 챙겨드려야 하지 않겠니?’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가 부엌을 나와 마당으로 내려섰다. 십자가 사건 이후로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일단은 은밀한 곳으로 안전하게 쉴 곳을 찾아서, 그리고는 이제부터 예수를 대신해 믿음의 사람들을 이끌어 줄 사람으로 제자들(사도) 중의 누군가라도 나설것으로 기대하고 그들의 마지막 행적이 머물렀던 마가의 집(마리아의 다락방)으로 연실 몰려들고 있었다. 그중에는 결코 떨쳐낼 수 없는 커다란 슬픔에 가득 잠겨 있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성모)와 그를 모시는 여인들이 지금 함께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마가의 어머니는 자신의 방을 그들에게 내어주었고 지극정성으로 그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었던 중으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당에는 마가와 루가가 마리아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이렇듯 서두는 것을 보니 먼 길을 떠나려 하나 봅니다.’

‘수리아 안디옥으로 가서 그간 학업을 해오던 의학서책들을 챙겨서 고향 필립비(마케도니아)로 돌아갈까 합니다. 편하게 쉬다가 떠나게 해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떠나신다니 참으로 안타깝네요. 의학 공부도 마치셨으니 이참에 아예 여기 예루살렘에 터전을 이루고 저의 아들 마가와 더불어 살아가면 참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다시 찾아오세요. 여기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답니다. 혹시 예수의 어머님 되시는 분께는 떠난다는 인사를 드리셨는지요?’

‘문안 여쭈었습니다. 기력이 쇠하셔서 누워계시다기에 문 앞에서 막달라 마리아님께 대신 인사를 부탁드렸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모든 여정에 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가정의 소중함을 어여삐 여기시고 늘 지켜주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언제고 꼭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마가의 어머니는 마치 자신이 낳은 또 다른 아들을 대하듯이 애잔함으로 다가가 루가의 손을 잡았다.

루가는 수리아 안디옥에서 의학을 공부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인재였다. 언어에 관심이 많아 타지방의 언어 공부를 하기도 했고, 그림에도 남다른 자질을 보였다.

그런 루가에게 누군가가 예루살렘에서 예수라는 사람이 나타나 곧 다가올 새로운 하나님 나라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다닌다는 소문을 접했다. 새로운 지식에 갈급하고 유대의 율법과 풍습에 적지 않게 다소 회의적이던 루가에게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루가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과 성향을 가진 젊은 사람들을 모집했다. 그들 대부분이 과거의 디아스포라로 예루살렘을 떠나 온 헬라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먼 예루살렘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예수를 직접 만나서 이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배울 요량이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루가 일행은 한동안 머물면서 예수와 접촉할 수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모색하였으나 이미 타지로 여행을 떠났거나, 은밀하게 움직이는 일정 등으로 만날 수가 없었다. 노력 끝에 루가는 예수의 제자인 빌립(헬라인)을 만났고, 자신들이 먼 예루살렘까지 찾아 온 이유를 설명했다.(요한 복음 12:20`21) 빌립은 루가에게 곧 기회를 보아 그들이 예수를 직접 만날 수 있게 주선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루가 일행은 빌립의 연락을 기다리며 예루살렘에 머물렀다.

그런데 느닷없이 예수가 산헤드린에 의해 신성모독죄로 체포되었고, 빌라도의 법정에서 군중 선동죄로 사형을 언도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머지 모든 진행은 오로지 속전속결이었다. 빌라도의 재판이 끝나던 날, 죄수를 끌어다가 혹독한 고문을 저질렀으며, 그 아침에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매달아 버렸던 것이다.

그날, 루가는 그곳에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매달려 운명하기까지 모든 장면을 그대로 목격했던 것이다.

그리고 루가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마가와 어머니 마리아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들도 똑같이 십자가 사건을 생생하게 목격하였다.

루가는 마가보다 세 살이 어렸다.

백부장의 창에 찔려 예수가 죽은 것이 확인된 후에, 그분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졌을 때, 죽은 아들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절규하는 어머니 마리아(성모)의 모습을 지켜보던 마가의 어머니가 그만 혼절해 쓰러지고 말았다.

마가가 쓰러진 어머니를 둘러업고 골고다 언덕을 내려가 집으로 가려 서두르고 있었지만, 가파른 언덕길에다가 몰려든 인파로 하여 축 늘어진 어머니를 모시기가 영 여의치 않던 중에 이 상황을 목격하고 불쑥 나타나 뒤에서 받치고, 교대로 업기를 반복하여 집까지 모셔오게끔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루가였다.

자신의 처소에 들어서 겨우 의식을 찾은 마가의 어머니가 처음 뱉은 말이 ‘어서 가서 예수의 어머니 일행을 돌봐드려라’였다.

그렇게 루가는 떠나갔다.

'그래. 아리마대 요셉 제사장께서 말씀하셨던 유다 사도의 행적을 찾는 일은 진척이 좀 있었니?'

'그날 이후로 일절 어떤 흔적도 드러난 것이 없습니다.'

'사정이야 어떻든지, 이틀이 지났으면 가타부타 제사장께 사정 말씀을 드려야 하지 않겠니?'

'그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중에 시나고그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그나저나 어머니께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부탁이라니? 야이기 해 보거라.'

'저자거리 안쪽의 과일가게를 기억하시겠습니까? 사무엘 형제의 과일가계 말씀입니다.'

'우리집의 아주 오랜 거래처가 아니더냐? 사무엘 과일가게의 일이라면 나보다 집사 시먼스가 더 훤하게 잘알것이다.'

'시먼스와는 이미 이야기가 되었기에 어머니께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시먼스가 못하는 일을 나에게 부탁한다는 말이냐?'

'큰아들 사무엘이 장성하였더니 죽은 아버지를 따라 열심당(젤롯당)에 가입하여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어서 아주머니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합니다.'

'그랬지. 참으로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지. 그랬던 사람이 열심당원일 줄은 나 역시 꿈에도 몰랐다. 상처투성이의 시체가 되어 돌아왔을 때에야 그런줄 알았다. 그때 아비를 잃은 사무엘 형제를 한동안 내가 데리고 있었지. 어린고마 사무엘이 성장하여 가업을 이어가고 어미를 잘 부양한다기에 기뻤는데, 지금 다시 그가 열심당원이 되려 한다면.......... 어미에 심정이 또 찢어지겠지.'

'그런 사무엘이 성장하기까지 여러모로 그 가족을 후원하며 돌보아 온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 날 사무엘의 아버지와 아주 가깝게 지내던 친구였다고 합니다.'

'다행이었구나. 그래. 그 은인이 누구라 하더냐?'

'유다 사도입니다.'

'누구라고? 유다 사도가 열심당원이라고 하더니....... 그런 인연이 있었구나.'

'이틀 동안 유다 사도를 찾아다녔지만 아직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예수께서 체포당하시던 다음날 새벽에 예루살렘 성전에다가 은전 자루를 집어던진 이후로 아무도 본 사람이 없습니다. 하여 시먼스와 제가 내린 생각은 어디론가 멀리 떠나지 않았을까 하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유다 사도 입장에서 지금 어디로 떠날데가 있을까? 혹시........ 사무엘에게만은 작별 인사를 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예루살렘에 더 이상 미련이 없다고 해도, 그동안 돌봐온 사무엘 가족에 대한 걱정을 넘어서 떠나기 전에 마지막 작별 인사라도 하고 떠나지 않았을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거기에 아무리 시먼스라고 해도 그들 가족에게 대놓고 물어보기에는 정황상 여러모로 여의치가 않으니....... 내가 사무엘의 어머니를 대신 만나봐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채비하거라. 사람들이 북적이기 전에 내가 찾아가 보아야겠구나.'



마가의 집(다락방)에서 언덕을 내려오면 예루살렘 성채의 남쪽 출입구인 시온의 문(Zion Gate)을 들어가 오른쪽으로 꺾어 성벽을 따라가면 저만치 시온 광장이다. 광장의 동쪽 언덕으로 예루살렘의 귀족들과 성직자들과 부자들이 웅장한 저택을 짓고 살아가는 고급지역이다. 여기 시온 광장에서 왼편으로 꺾으면 잘 다듬어진 석재를 깔아 만든 포장도로가 나온다. 이 포장도로의 끝이 바로 예루살렘 성채의 북쪽 출입구이자 가장 중요한 출입구인 세겜의 문(Sha’ar Shechem)이 나온다. 이 포장도로 양쪽으로 예루살렘의 모든 핵심 관청과 군대 주둔지와 고급 상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도로의 중간쯤에서 다시 양편으로 갈라서는데 동쪽으로 향하면 옛 솔로몬 왕궁과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던 성전산 구역이다. 반대편 언덕으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다양한 민족과 종파와 서민들이 혼재해 생활하다 보니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주로 서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이 예루살렘 성 안의 구역을 나누는 기준이 되는 듯한 포장도로는 로마가 정복하면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통해 가운데로 배수시설을 갖춘 로마식 포장도로로 바뀌고, 양쪽으로 길게 돌기둥을 일정 간격으로 설치하여 로마식 신도시의 회랑을 연상시키게 만들어 카르도(cardo)라고 부르게 된다.

처음 가나안을 차지한 다윗은 점령지에 도시를 세우고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담아 예루살렘이라 칭했다. 다윗의 후계자인 솔로몬은 영원한 하나님의 도시를 천명하면서 성전산에 예루살렘 성전(솔로몬 성전)을 건설했다. 하지만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과는 전혀 다르게 예루살렘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는 저주의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혹, 도시의 이름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닐까?

앗시리아와 바빌론에게 연달아 점령당하면서 유대왕국은 멸망 당했다. 예루살렘 성전과 도시도 파괴되었다. 수만 명이 포로로 바빌로니아에게 끌려가 약 70년간 참혹한 노예의 생활을 하였으니 이를 ‘바빌론 유수’라고 불렀다. 독립하였는가 싶었더니 다시 그리스의 알렉산더에게 멸망 당하여 이번엔 많은 사람이 이집트로 끌려가는 수난을 겪게 되었다. 마카베오가 이끄는 독립운동의 성공으로 하스만 왕조가 들어서면서 유대왕국을 건설하였지만, 하지만 이번엔 로마가 쳐들어와 유대왕국을 멸망시키고 로마의 식민지로 삼고 말았다.

십자군 전쟁 당시에는 비잔틴(동로마)에 지배를 받았으며, 이후로 새롭게 급부상한 이슬람의 오랜 지배를 받게 되면서......... 오늘날의 예루살렘 분쟁(팔레스타인 분쟁)의 불씨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평화의 도시’가 허구헌날 죽다가 살아나고, 또 살다가 죽게되고를 수도 없이 반복되다 보니 사실, 하나 하나 따지고 보자면 제자리에 온전하게 제대로 붙어있는 것들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의 예루살렘을 살펴보자면, 도시의 기본 골격은 로마 시대에 구 예루살렘을 완전히 철저하게 파괴해 버린 후에 새롭게 로마 방식으로 재건한 것이 대부분 기반으로 남아있다. 그러니까 현존하는 예루살렘이란 도시의 기본 바탕은 로마식 도시라는 점이다. 그 위에 이슬람 제국이 점령하고 지배하면서 전혀 다른 종교인 이슬람식 도시로 상당히 개조와 개축을 더 했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결과물의 예루살렘이 현대사 속에서 지금의 유대인들이 20세기에 다시 독립을 하였고, 예루살렘을 먼 과거의 영광스럽게 찬란했던 역사적 유대왕국으로 다시 새롭게 재건하려는 과정에서 오랜 역사 속에서 벌어졌던 ‘팔레스타인 문제’가 다시금 전면에 부상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는 새로운 부상이라 할 수도 없겠다. 예루살렘(평화의 도시) 이라는 도시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이미 충분히 예상되었고, 영원히 끝낼 방도가 없는 하늘이 내려주신 저주(?)의 결과일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하여, 지금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보매, 예수 시대와 같거나 비슷한 건축물이나 제도나 생활 풍습들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하여 그런 역사적 고증에는 어느 정도 부족한 점과 한계성을 인정하면서, 더욱 부단히 노력하겠다는 다짐 위에서 계속 이어 내려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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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채의 북쪽 출입문을 세겜의 문(Sha’ar Shechem) 이라고 불렀다. 이 문을 통해 북쪽으로 올라가면 나블루스라는 마을로 이어지는데, 그 나블루스의 다른 히브리식 이름이 세겜이었기 때문이다. 훗날 로마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로마식 성채로 재건하면서 8개의 성문으로 새롭게 개축하면서 이 세겜의 문을 다마스쿠스의 문(Damascus Gate)으로 바꾸어 붙인 것이다. 도로건설 제국인 로마는 이곳까지 내려오면서 레반트 지역에서 가장 풍부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시리아에 다마스쿠스를 건설하였으며,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쿠스로 향해 열려있는 문의 뜻을 담아 이때부터 다마스쿠스의 문으로 불려지게된 것이다. 예루살렘에 건설된 여덟 개의 문중에서 가장 크고 인상적일 만큼 아름다운 문으로 꼽힌다.

대개의 성채 도시들은 같은 높이의 평지로 성의 안과 밖을 연결하거나, 방어의 목적으로 안쪽을 조금 놀게 건설하는 게 대부분이나, 다마스쿠스의 문은 굳이 지형을 다듬는 과정이나 비용이 부족했거나, 기술적 문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성의 외부인 북쪽 지형이 훨씬 높다. 그러니까 성문 앞에 가까이 접근하게 되면 계단을 내려가야 성문을 통과할 수 있고, 안쪽에 들어서서도 서너 단계의 계단을 내려가야 도시 내부로 들어가게 되는 조금은 특이한, 특별히 관심을 가진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런 특이한 점을 가진 문이다. 고대 이래로 수레나 마차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해야만 하거나, 삥 돌아서 다른 문을 이용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마스쿠스의 문이 예루살렘의 가장 중요한 통로이다 보니 성문 밖으로는 임시 노점들이 늘어서 있고, 성문 안으로는 우선 성문을 관리하는 군인들이 머무는 막사 겸 사무실 두 채가 양쪽으로 있고, 이어서 다양한 품목의 상점들이 길게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지금 혼자 시온의 문을 통해 도시 안쪽으로 들어와 중심 포장도로를 지나 다마스쿠스 광장의 재래시장에 막 도착하는 우아한 기품을 가진 한 중년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곧장 시장 안쪽의 한 작은 과일 가게에서 오던 걸음을 멈추고 섰다.

먼저 온 손님에게 올리브 열매를 자루에 담아주던 가게 주인여자는 방금 멈춰선 여인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라 돌아서며 공손하게 예를 갖추는 것이었다.

‘마리아님께서 여기까지 직접 오셨습니까? 사람을 보내시면 될것을요?’

불쑥 이른 시간에 찾아 온 여인은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였고, 가게 주인은 다름 아닌 사무엘의 어머니였다.

‘과일이 필요했기라기 보담은 조용히 이야기를 좀 나누었으면 해서 실례를 무릎 쓰고 이렇게 일찍 불쑥 찾아왔습니다.’

‘저에게요? 그러시더라도 사람을 보내셨으면 제가 찾아 뵈었을 것을요?’

‘잠시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아무렴요. 누추하지만 잠시 안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하고 앞서 안내를 하면서 안쪽에다 대고 큰 소리로 사무엘을 불렀다. 곧바로 안쪽 휘장이 걷어지면서 체격이 늠름해 보이는 건장한 청년이 하나 모습을 나타냈다. 아직 어린 청소년이었지만 죽은 아비를 닮아 체격은 건장한 성인 남자 못지않았다. 사무엘은 마리아를 익히 알아보고는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사무엘. 어느새 어른으로 자랐구나. 부디 엄마의 그간 헌신과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앞으로는 장남인 네가 잘 모셔야 하지 않겠니?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고 마가나 내게 찾아오렴.’

사무엘이 자라 아비의 복수를 꼭 하겠다고 열심당원이 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기에 에둘러서 건네는 진심 어린 당부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무엘이 가게를 맡게되자 사무엘의 어머니는 마리아를 안채 깊숙한 곳으로 안내해 들어갔다.

작은 점포에 덧붙이다시피 한 안채이다 보니 보잘것 없이 협소하고 쌓아놓은 것도 많고 약간 불쾌한 냄새도 났지만, 마가의 어머니는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내 두 어머니는 시선을 마주하고 가까이 다가 앉았다.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크게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 말입니다.’

‘말씀하세요. 평소 어떤분이신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어떤 말씀이라도 소중하게 경청하겠습니다.’



‘그날 유다 사도가 사무엘을 만나러 다녀갔다는구나.’

예루살렘 성내 카르도의 중간 지점에서 성전산으로 갈라서는 교차로에서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던 마가에게 마리아가 처음으로 전한 말이었다. 어머니 마리아가 과일가게로 사무엘의 어머니를 만나고 있는 동안에 멀리 떨어져서 주변을 살피며 마가와 시먼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이라 하시면 어느 시점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마가의 등 뒤에서 마리아가 가져온 소식에 귀를 기울이던 집안의 수석집사 시먼스가 입을 열었다.

‘그분께서 대제사장의 집에서 재판을 받으시고 저들에게 강제로 끌려가신 그 이른 새벽이라 들었습니다. 유다께서 가야바의 집에서 벌어지는 재판정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제지당하였고, 성전 마당에 은화 주머니를 내동댕이치고 오는 길이라고 직접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은화라니요?’

‘한동안 조용한곳에 피신해 있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은화 30 데나리온을 건네주었다고 합니다.’

‘누가 주었는지 들으셨습니까?’

‘은화를 건네 준 사람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으셨다고 합니다.’

‘그럼 유다 사도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들으신 것이 있으십니까?’

‘사무엘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는 작별을 고하면서 빌립 사도를 만나러 힌놈 골짜기(Valley of Ben Hinnom)로 갔다고 합니다.’

‘힌놈 골짜기요? 힌놈 골짜기는 저주받은 죽음의 골짜기라고 해서 평소에도 예루살렘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꺼리는 장소입니다. 가족이나 연고가 없는 사람들을 매장하는 공동묘지 골짜기입니다. 그렇다면 빌립이 힌놈 골짜기에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분의 재판을 보고 우리가 집에 돌아왔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를 비롯한 모든 사도들이 이미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없었습니다. 로마 법정의 재판에도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뿐더러 골고다 언덕의 처형장에도 요한 사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스승이자 구세주이신 예수께서 고난의 죽음을 맞이하셨는데도 말입니까? 유다 사도가 성전에 은화 주머니를 내던지고 사무엘만은 만나보아야겠다고 성내로 들어서다가 사도들이 사람들 틈에 숨듯이 끼어서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았답니다. 그 방향이 힌놈 골짜기 방향이었다고 했습니다. 힘놈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동굴을 오래전부터 열심당원(젤롯당)들은 은거지로 사용해 왔다고 합니다. 사무엘의 아버지와 빌립과 함께 유다 사도도 그곳에서 함께 지낸 적이 있다고 합니다. 하여 단박에 유다 사도는 지금 상황이 위급한지라 나름으로 판단하건데 일단 예루살렘 도성을 빠져나가 사태를 숨어서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였고, 은신처를 알고 있던 빌립이 이들을 힌놈 골짜기로 안내했을 것이라 유다 사도가 판단했답니다. 하여 일단은 사무엘을 먼저 만나고 나서 힌놈 골짜기로 찾아가 빌립 사도에게 따로 갈무리하여야 할 일들이 있다고 직접 말했다 합니다.’

‘그렇다면 유다 사도께서는 지금 다른 사도들과 함께 힌놈 골짜기에 있다고 보아야겠군요?’

‘계시거나, 아니면 떠날생각이셨다니 빌립 사도를 만난 후에 떠나셨겠지요.’

‘힌놈 골짜기에 계실것입니다. 사도들도 모두 그곳에 있을것입니다. 어제를 생각해보십시오. 막달라 마리아께서 해질녁에 찾아오셔서 부탁해 온 것이 음식이었습니다. 해서 빵과 과일을 싸서 보내드렸는데 그 분량이 상당했습니다. 당시 그분들이 몹시 남의 이목을 꺼려하는듯 보여 어린 나단으로 하여금 가시는 곳 인근까지만 짐을 들어다 드리라고 해서 딸려 보냈습니다. 나단이 돌아와서 하는 말이 힌놈 골짜기 입구에 가니 나른 사람들이 더 기다리고 있어서 짐을 전하고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남의 이목을 피하기엔 아무래도 여성들이 수월할 테니 그리했겠지요. 이제 댁으로 돌아가셔서 오늘 저녁이고 내일이고 막달라 마리아님이 다시 찾아오기를 기다리시거나, 아니면 제가 은밀하게 힌놈 골짜기를 들어가 살펴보겠습니다.’

‘쫓겨 숨어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다면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모두가 적으로 보여 숨어서 먼저 공격해올지도 모릅니다. 또한 사도들이 모두 함께 모여있다면 유다 사도를 만나 왜 찾는다고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누군가의 오해를 또 불러일으킬지도 모릅니다.’

‘사람을 한 둘 데리고 들어가 보겠습니다. 마주치면 뭐 도울일이 없을까 해서 찾아왔다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집에가서 막달라 자매를 기다리기로 하지요. 숨어지내려면 필요한 것이 많을 것입니다.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하고, 사무엘이 열심당에 가입하려고 하여 그 어미가 고충이 심하더라면서 유다 사도와 사무엘에 대해 상의를 하고 싶으니 한 번 다녀가셨으면 한다고 일단은 전언을 넣어봐야겠지요. 적어도 사무엘 일이라면 뭐라 답신이라도 오거나 다녀가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마리아의 이야기를 들은 시먼스가 길을 열었고 세사람은 시온문을 향해 함께 걸어갔다.

시온문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순간 성문 밖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어디론가 몰려가는 어수선한 상황이 목격되었다. 이어서 요란한 고함과 함께 한 무리의 성전수비대 군사들이 어디에선가 쏟아져 나와 시온 문밖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시먼스가 마리아와 마가를 양팔로 감싸며 군대의 이동에서 생겨난 혼잡과 위험을 막아냈다.

아무래도 가까운 인근 어디에선가 사단이 나도 단단히 사단이 난것 같았다. 성전수비대까지 출동했으니 말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는데 어느 틈에선지 어디서 나타났는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우르르 몰려간 군대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성밖으로 몰려나가는 사람들 사이을 뚫고 낯익은 청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나단이었다.

‘삼촌. 삼촌 큰일 났어요.’

삼촌은 시먼스가 나단을 데려와 가르치면서 허락한 호칭이었다.

‘어디 불이라도 났느냐?’

‘아닙니다. 유다 사도가 자살을 했답니다. 죽었대요.’

‘유다가? 어디에서?’

‘힌놈 골짜기에서요.’

‘나단. 마리아님을 댁으로 조심해 모시고 돌아가거라.’

이내 시먼스는 좀 전에 군대가 달려간 방향의 힌놈 골짜기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결코 초로에 접어든 노인의 발걸음이 아니었다. 그러자 서둘러 마가도 뒤를 쫓기 시작했다.

‘유다 사도가 죽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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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제법 되는 분량의 새로 작업한 지금 연재하던 (사도 베드로의 죽음) 이야기 글을 옮기는 과정에서 USB 조작 실수로 인해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기억을 더듬어 써 보려고 하였지만........ 그 휴유증과 충격이 좀 크게 느껴지네요.

아주 예전에 <피플 475> 사이트에 (피안에 부는 바람)을 약 3년간 연재하다가 이런 경우를 겪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말입니다. 그때도 서너 달의 공백기를 가졌었는데.......

잠시 쉬었다가 하던 이야기를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메모와 자료들은 그대로 남았으니까요. 전업 작가도 아니면서 또다시 이런 충격을 겪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더랬습니다.

잠시 여행하면서 다른 생각들도 좀 하면서 수양의 시간을 가진 후에 이어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안재.











































































































--- 글 올리는 작업중입니다. 일과 병행하다보니 조금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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