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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Oct 31. 2021

살아온 시대가 다르면 바라보는 곳도 다르다.

4060이 살던 시대     


 지금의 4060 기성세대는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다 청산하지 못한 상태에서 군부독재와 산업화를 겪으며 높은 출산율과 고도의 경제 성장기를 보낸 치열한 경쟁의 시대를 보냈다. 일명 베이비붐 세대(6·25 이후 출산율이 급증한 1955년부터 산아제한정책으로 출산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1963년에 출생한 5060세대)이다. 그들은 권위주의적인 아버지(가부장)와 희생적인 어머니(또는 누나)의 모습에 익숙하다. 또한 당시 사회제도는 경쟁을 선호하지는 않았음에도 높은 인구밀도 덕에 불가피한 과열 경쟁을 경험해 왔다. 그들은 오늘날 가정과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속해 있다. 그리고 현재 4050세대이자 사회 활동이 가장 왕성한 X세대(1964~70년대 세대) 역시 부모 세대의 영향과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지금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아왔다. 


 그들의 시대는 경쟁의 시대였다. 1970년대 경쟁 과열을 이유로 초, 중·고등학교 평준화가 되기 전까지 베이비붐 세대는 중학교 입학시험부터 경쟁을 반복해야 했다. X세대 역시 고입선발고사(연합고사) 점수로 고등학교를 선택 입학하던 세대이다.(인문계·공고·상고·농고·야간고등학교의 입학 가능 점수가 달랐다.) 그래서 소위 명문고들이 존재했고 학교 간에 서열이 생겼다. 출산율이 높았기에 모든 분야에서 경쟁률이 뜨거웠다. 과열 경쟁은 그저 익숙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는 지금보다 풍요로웠다. 빈부 격차와 계층 간 격차가 크지 않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차도 적었으며, 비정규직도 없었고, 별일이 없는 한 직장은 평생을 보장했으며, 외벌이만 해도 일가족 건사와 집 장만까지 가능했다. 예금이자는 20%에 육박했고, 부동산은 사는 족족 올랐으며, 증시도 연일 호황이었다. 경쟁은 심했지만 출발선이 비슷했고 기회는 열려 있었기에 어느 정도 공정하게 노력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2030이 사는 시대     


 하지만 지금 시대는 ‘경쟁을 위한 경쟁’의 시대다. 경제는 성장하고 자본은 풍요로워졌지만 빈부 격차와 계층 격차는 더욱 심해졌고 모든 차이는 보다 심하게 벌어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물론 원청과 하청, 같은 회사 내에서도 직군과 직급에 따라 아예 다른 신분처럼 취급되곤 한다. 대입은 차치하고 공공 기관에서 단기 인턴 한 명 뽑는데도 경쟁률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다 보니 근면한 부모들은 자녀의 일에 더욱 두 팔을 걷게 되었다. 

 지금 시대는 부모 찬스가 필수가 되어 부모의 계급이 곧 자녀의 계층과 신분을 만든다. 또한 경쟁 역시 공평하지 않다. 극심한 부익부 빈익빈과 계층 격차는 간극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벌어졌고, 계층 간 사다리는 치워진 지 오래다. 부모의 후광 없이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때문에 평등을 지향한다는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계층 간 출발선 및 자본력·영향력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며 현실과 제도에 괴리감을 느낀다.

 게다가 사회 관념 역시 많이 달라졌다. 기성세대는 권위주의와 서열화 및 남녀 차별이 일상적인 시대를 살아왔다. 남성은 태어나 세 번만 울고(① 태어날 때 ②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③ 나라가 망했을 때), 여성은 헌신적이고 늘 순종해야 한다고 배워 왔다. 때문에 작은 권력이라도 가지면 권위적으로 아랫사람을 부리고 뒤풀이로 단란주점이나 노래방 등에서 여자 시중을 받으려는 남성과, 회의 시 커피를 타고 다과를 준비하며 평생 말단직에 머무는 여직원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온갖 종류의 미투(Me Too)가 터져 나오는 것은 기성세대가 가진 이러한 낡은 관념 때문이다.           


사회문제화되는 젊은 세대의 분노  

   

 하지만 이러한 차이와 모순을 감당하는 것은 고스란히 젊은 세대의 몫이다. 권위주의가 익숙한 기성세대에게 배움과 변화란 아랫사람의 몫일 뿐이다. 본래 가진 것이 많아 지킬 것도 많은 자는 안전과 보수를 지향하며 기존 방식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때문에 아직 가진 것이 적고 힘도 부족한 세대가 참고 맞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4060의 관념과 관습을 20대에게 요구하면서 세상의 변화에서 오는 괴리와 갈등은 20대의 인내로 무마시키려 한다. 그것은 주로 ‘나 때에는 더 열심히 살았다느니, 나 때에는 어땠느니’ 하는 언어로 드러나기에 보통 ‘라떼-꼰대’라 돌려 말하기도 한다. 결국 온갖 괴리와 불합리에 분노하면서도 그냥 참거나 변화를 위한 도전을 하는 등의 노력은 젊은 세대에게 짐 지워진다.

  때문에 계층·계급·성별 간 경쟁에서 그 어느 세대보다 불리한 위치에 처한 2030세대의 분노가 극심하다. 그 어느 세대보다 고(高)스펙을 갖췄지만, 경력자 선호 현상에 오히려 최고의 실업률을 기록하는 세대가 되었다. 부동산과 경제 환경은 매우 열악해져서 아무리 노력해도 내 집 장만은 멀기만 하며, 눈 씻고 방법을 찾아봐도 계층 간 이동은 요원하다. 결혼·출산·취업·주택 구매 등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도 많아서 소위 ‘N포 세대’라 불리기도 한다. 

 그중 심상치 않은 20대 남성의 분노는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한다. 가뜩이나 계층 간, 남성 간의 경쟁도 치열한데 그나마 독점하던 파이(고위임원직)의 3~5%는 여성들이 가져가 버린다. 심지어 교육·보험·돌봄 서비스·금융 등 자주 접하는 몇몇 분야는 여초 현상으로 남성은 낄 자리도 없어 보인다. 예전이라면 당연하게 성취했을 것들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게 되었고, 모든 분야에서 터무니없을 정도로 뜨거워진 경쟁률은 버겁기만 하다. 이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산업화 시대에 좋은 성과를 내던 과열 경쟁 시스템은 이제 적정선을 넘어서 자식 세대의 분노와 절망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편, 2030여성이라고 분노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미 현실은 국제화 시대이며 4차 산업혁명을 완성해 가는 최첨단 시대지만, 사회구조의 밑바탕에 깔린 관념과 제도는 세상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헌법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 및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며 이미 성 평등적이지만, 풍속의 변화는 ‘아직’이다. 농경시대의 대가족 중심 가족 이데올로기, 주자학적 남성·시댁 중심 가문문화, 일제강점기의 연공서열 조직 문화와 상명하복 호주제의 잔재, 산업화 시대의 분업적 성 역할 가부장제 등이 뒤얽혀 현실과의 괴리를 만들어낸다. 특히 인구밀도가 높던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과도한 경쟁 시스템은 5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오늘날의 현실과 더 큰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방향을 잃은 분노가 향하는 곳     

 

 문제는 이러한 불안과 피로 속에 방향을 잃은 분노가 엉뚱한 공격성으로 번져간다는 것이다. 계층·세대·성별·지역·기타 특성 등 자신과 다른 기준에 속한 이들을 가르고 비교하면서 분노와 증오를 쏟아낸다. 하지만 이렇게 계층·세대·성별 등을 기준으로 사람을 나누다 보면 상대를 인격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모호한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런 대상화가 깊어질수록 증오의 방향은 더욱더 모호해진다. 수많은 오해와 편견이 쌓이고 뭉쳐 거대한 개념 덩어리가 되고, 그곳에 생각이 묶일 때 이유 없는 혐오와 증오의 감정이 발산된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점점 더 ‘곤충 전시관’이 되어 간다. 아기엄마는 맘충, 남자는 한남충, 노인은 틀딱충, 미성년자는 급식충, 보수는 일베충, 진보 여성은 메갈충, 대학생은 학식충, 진지한 사람은 진지충….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이자 정신을 조각하는 언어는 온통 혐오 표현이 잠식해 가며 혐오 문화 또한 나날이 거세져 간다. 그중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습관화된 여혐 문화는 특히나 도를 넘어 살인까지 일으킬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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