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그린타키온
넌 안 그래도 되잖아.
레드플라이
(멈춰서 돌아보며) 뭐가?
그린타키온
넌 왜 그 선배들 편에 서 있냐고.
레드플라이
그 선배들 편에 서 있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이 그 선배들과 같은 것뿐이야.
그린타키온
아니, 넌 달라. 넌 진짜 힘들어서 그만두는 거고 선배들은 날 시기하고 질투해서 그런 거야.
레드플라이
그게 무슨 소리야?
그린타키온
내가 인기가 제일 많잖아.
잠시 말문이 막힌 레드플라이. 당황스럽다.
레드플라이
말도 안 돼. 그래서 그 선배들이 히어로를 관두는 거라고? 네가 인기 많은 게 꼴 보기 싫어서?
그린타키온
응. 확실해.
레드플라이
초딩이니? 너 나이가 몇인데 지금….
그린타키온
감마선 히어로 인기 순위, 결과 알아?
레드플라이
갑자기 그건 왜?
그린타키온
아냐고.
레드플라이
알아. 작년 연말에 발표한 거.
그린타키온
여론조사 전문 리서치 분야의 선두주자, 묻고 따지고 갤럽에서 우리나라 국민 78만 3천 명한테 물어봤잖아. 오차범위 플러스마이너스 100명. 내가 47%로 1위를 차지했고 2위가 43%로였어. 그게 누군지 알지?
레드플라이
지금 그게 중요해?
그린타키온
말해봐. 알아? 몰라.
레드플라이
알아. 나잖아.
그린타키온
그래, 맞아. 너랑 나랑 합치면 90%에 육박하지. 47%와 43%.
레드플라이
근소한 차이였어.
그린타키온
좋아. 인정해. 아무튼 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해?
레드플라이
(잠시 고민하다가) 외모?
그린타키온
그렇지! 바로 그거야. 생각해봐, 너랑 나랑은 얼굴이 좀 되잖아. 그런데 그 두 사람은 인기가 너무 없어. 정말 끔찍할 정도지.
레드플라이
얼굴이?
그린타키온
아니, 인기 말이야.
레드플라이
그래.
그린타키온
마치 재앙 수준이야.
레드플라이
얼굴이?
그린타키온
아니, 인기. 지금 인기 말하고 있는 거야.
레드플라이
미안. 3등이 블루씨스루였나?
그린타키온
맞아. 6.8 %였어. 스컹크맨이 3.2 %.
레드플라이
소수점까지 다 기억해?
그린타키온
어떻게 생각해?
레드플라이
뭘?
그린타키온
같은 히어로 멤버라고 하기엔 겸상하기도 민망한 수치 아냐?
레드플라이
겸상이라… 그래도 그런 걸로 밥도 같이 안 먹는 건, 좀 쩨쩨하다고 생각해.
그린타키온
쩨쩨한 게 누군데? 너 꼬드겨서 자기편 만들고! 나 따, 시킨 게 누군데!
레드플라이
좋아. 인정해. 그랬지. 그래서 뭐 어쩌자고?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린타키온,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건넨다.
그린타키온
읽어 봐.
레드플라이
뭔데? (핸드폰 화면 읽어보며) 씨비씨엔택? 이 회사는….
그린타키온
응. 한국대학교 분자생물학과의 진병철 박사가 GMR과 손잡고 설립한 제약회사, 들어봤지? 희귀유전질환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설립된….
레드플라이
(말 자르고) 그래서?
그린타키온
GMR은 항암치료 분야의 선두 주자인 미국의 제약회사 이름이야. 약자는 Great Medicine Rare… 뭐더라? Rare disease….
레드플라이
TMI 여전하네. 내가 좀 급한데 본론만 말해주면 안 될까?
그린타키온
그래. 희귀병을 치료하는 의학제조회사 뭐 이런 뜻이야. 이번에 씨비씨엔택이랑 GMR이 손을 잡으면서 소아조로증, 루게릭병, 늑대인간증후군 등의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실험이 거의 완성단계라는 정보를 입수했지. 그리고 소아조로증 치료제 개발을 위한 마지막 단계의 실험대상자를 구한다는데 내가 네 아들을 추천해줄게.
레드플라이
네가 추천하면? 우리 명석이가 치료받을 수 있어?
그린타키온
놀라지 마. 이미 진병철 박사님한테 내가 말했고 박사님도 승낙하시고 날짜 잡자고 하셨어.
레드플라이
어떻게….
그린타키온
내가 박사님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냐고? 진병철 박사님은 나의 5촌 당숙 어른이셔. 피는 못 속인다는 말 알지? 그 속담의 유래에 대해 알아? 사실 나도 유래는 몰라. 하하하.
레드플라이
….
그린타키온
아무튼 가능한 일정 나한테 알려주면 내가 박사님한테….
레드플라이
(말 자르고) 원하는 게 뭐야?
그린타키온
뭐?
레드플라이
네가 그냥 이럴 리 없잖아.
그린타키온
알잖아.
레드플라이
설마 너… 나 좋아하니?
그린타키온
여전하네. 공주병.
레드플라이
맞지? 너 그런 거지?
그린타키온
히어로 관두지 말고 나랑 같이 계속하자고.
레드플라이
맞네! 언제부터야?
그린타키온
그런 거 아니라고.
레드플라이
아니야?
그린타키온
고혜정! 잘 들어. 난 지금 사랑, 혹은 연애 따위 관심 없어. 난 오로지 이 지구를 위협하는 악의 무리를 물리치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 싸우겠다는 마음뿐이야. 우리가 아니면… 누가 지구를 지킬 수 있겠어? 네 도움이 필요해. 넌 그럴만한 능력이 있으니까. 우리가 힘을 합치면 가능하다고. 그러니까 그 선배들이 관두건 말건 넌 계속해야 해. 네가 결정만 내리면 명석이의 병은 고칠 수 있어. 명석이를 위한 선택이 뭔지, 어떤 선택이 현명한 선택인지 잘 생각해봐.
레드플라이
(시무룩하게) 늦었어.
그린타키온
왜? 뭐가?
레드플라이
나 이제 날개 없잖아.
그린타키온
쇼하지 마. 너 날개, 다시 생기는 거 알아.
레드플라이
(깜짝) 어떻게 알았어?
그린타키온
네 날개, 제거 수술해주신 분이 내 숙부님 둘째 며느리의 사촌 오빠랑 친구야. 너 정부랑 국정원 속이려고 그런 거라고 다 들었어. 두 달 후면 다시 원래대로 돋아난다며? (툭 치며) 쫄기는. 걱정 마. 나 입 무거워.
레드플라이
숙부님 둘째 며느리의 사촌 오빠랑 친구면 거의 남… 아니야?
그린타키온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아까 저녁을 성신여대 쪽에 있는 마포숯불갈비에서 대충 때웠더니 벌써 출출해진 것 같아. 사장님이 날 알아보시고 2인분이나 더 줬지 뭐야.
레드플라이
그럼 대충 때운 건 아니네.
그린타키온
근데 참 궁금하지 않아? 성신여대는 성북동 쪽인데 왜 숯불갈비 이름은 마포숯불갈비일까? 세상은 정말 알 수 없는 일투성이야. 그런 생각 해봤니?
레드플라이
안 해봤어.
그린타키온
세상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우리가 히어로가 된 걸까?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신에게 선택받은 건 아닐까? 너와 나의 연결고리처럼?
레드플라이
너 이 새끼, 나 좋아하네!
그린타키온
아니라고. 착각은 끝물이야.
레드플라이
끝물 아니고 금물.
그린타키온
나 그런 생각도 한다? 먼 훗날… 사람들은 날 어떻게 기억할까? 뭐 대단한 걸 바라진 않고… 단지 이 정도면 어떨까 싶어.
레드플라이
궁금하네.
그린타키온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이름 없는 한 영웅이 살았다네. 그 영웅의 이름은 그린타키온.
레드플라이
이름이 없다메.
그린타키온
(씩 웃으며) 갈게.
그린타키온, 바로 전봇대에 꽝 부딪힌다.
그린타키온
(이마 붙잡고) 아야. 썅! 누가 전봇대를 길에다 박아놨어!
레드플라이
전봇대는 원래 길에 있어.
그린타키온
하하. 내가 너무 빨라서 가끔 발생하는 일이야. 놀랄 것 없어.
레드플라이
안 놀랐어.
그린타키온
(가려다가) 그런데 말이야.
레드플라이
또 뭘까?
그린타키온
아무리 생각해도… 넌 고혜정보다 레드플라이가 더 어울려.
나름 빨리 사라지는 그린타키온.
레드플라이
저거… 진짜 뭐 하는 새끼지?
이어지는 나레이션. “시즌 1이 끝났습니다. 감마선에 노출되어 슈퍼히어로가 된 세 명의 박사는 왜 지구를 지키려 하지 않는가! 시즌 2를 기대해주십시오. 그럼 잠시 예고편을 보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