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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원 Jul 17. 2023

육아. 진 빠지는 아침

5살이 떼를 부리면 생기는 일

눈만 떠도 힘든 월요일, 아침부터 한 시간을 딸과 진 빠지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되도록 딸을 유치원에 보낼 때 기분 좋게 보내려고 애쓰는 편이다.


학창 시절, 부모님께 꾸중을 듣고 등교했을 때 오전 내내 시무룩하고 짜증 났던 기억이 많아서 그런지 내 딸은 그런 마음으로 가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딸이 5살이 되고 자기주장이 더욱 강해졌다.


딸이 화가 나는 일이 생기고 내가 그 화를 받아줄 수 없을 때 힘든 훈육의 시간이 시작된다.


딸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남편이 출근하는 것이 싫어 울음을 보였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이나 회사를 가야 하는 아빠와 주말 단 이틀만 놀아줄 수 있는 아빠의 상황을 이해할만한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래야만 하는 자신의 입장을 딸한테 이야기한다.


그래도 대견한 딸은 아빠의 품에 안겨 마음을 진정시킨다.


남편이 출근하고 딸의 머리를 묶어주며 책을 보는데딸이 책에 붙여놓은 스티커를 떼는 순간 종이까지 같이 떼어져 버렸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책을 펴지 말았어야 했나? 아니면 스티커를 못 때게 했어야 했나? 부질없다.


딸은 책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라며 소리를 높였고 울음보가 터졌다.  


테이프로 다시 붙여주겠다고도 했지만 소용없고, 새로운 스티커로 예쁘게 꾸며보자고 해도 소용이 없단다.


결론은 책을 버리고 새로 사야 한다는 게 5살 딸의 결론이다.

하츄핑의 머리...

난 그 결론을 수용할 수 없었다.


훈육을 시작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아침부터 진 빠지는 시간을 보내고 유치원을 보내야 한다는 게 걸렸다.


난 후자보단 전자가 딸에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고민을 한다.


30분이 지났지만 딸은 들을 준비도 되지 않았고 떼는 더 격해졌다.


나는 거실을 벗어나 안방 침대에 몸을 눕혔다.


딸은 더욱 분노했고 나는 대화할 준비가 될 때 얘기를 할 거라고 말하고 기다렸다.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울었고 헛구역질까지 하며 우는 딸이 안쓰러웠다.


딸은 안방으로 들어와 나의 얼굴을 보고는 또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이때쯤 되면 진정이 됐겠지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2차전이다.


훈육은 어떤 순간에도 쉽지 않다.


하지만 독한 엄마와 딱한 아이라고 느껴질 만큼 훈육하는 부모는 단호해져야 한다.


책은 아무리 울어도 아무리 떼를 써도 새로 사줄 수 없다고 다시 한번 말했고


딸이 지금 해야 할 것은 옷을 입는 일이라고 얘기했다.


그 시간이 또다시 10분, 1시간을 채웠다.


내가 할 것은 기다리는 거다.


딸이 분노를 터트리던 울음을 터트리던 버텨야 한다.


결국 아이는 스스로 진정을 하고 나한테 제안을 한다.


"엄마가 바지 벗겨주면 내가 위에 옷 벗을 거야!"


"그래 그러자."


아이가 스스로 진정을 하고 훈육 논외 사항으로 나에게 제안을 했을 때는 기꺼이 받아준다.


눈물을 꾹꾹 눌러내며 옷을 다 입고 "너무 예쁘네 00 이가 입이니까 옷이 더 예뻐 보이는데, 이리 와 안아줄게. 많이 속상했지?" 하며 딸을 꽉 안아주며 머리부터 등까지 천천히 쓰다듬어준다.


딸은 나에게 푹 안겨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훌쩍거린다.


딸이 이렇게 힘든 싸움을 끝내고 안겨올 때면 나도 마음이 약해져 눈물을 꾹 누른다.


"맞아 속상한 게 당연한 거야. 엄마여도 속상했을 거야. 주말 동안 아빠랑 같이 있다가 월요일 돼서 회사 가야 한다고 하니까 싫었지?"


"응 싫어. 그리고 책도 새로 사고 싶었어."


"맞아 싫지. 책을 새로 사고 싶은 00이 마음도 알지. 기특해 00아 스스로 진정하고 엄마한테 와줘서."


딸은 마음이 풀리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 손을 꽉 잡고 언제 울었냐는 듯 예쁜 웃음을 보인다.


차 안에서 난 딸에게 훈육의 마무리를 한다.


"오늘 집에 와서 찢어진 책 부분은 어떻게 꾸미면 좋을지 생각해 보자. 스티커로 다시 꾸밀 수도 있고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어."


"응, 그런데 엄마 버니(애착인형)가 책을 새로 사고 싶은 마음이래."


"그래? 버니가 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음... 버니가 책을 좋아해서 그런 거야. 그런데 지금 버니가 우리가 유치원 가는 길 알려달래"


"그렇구나 버니도 00 이처럼 책을 좋아하는구나. 유치원 가는 길 알려주자."


마무리는 이렇듯 교과서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순간순간 혼란스럽기도 하다. 내가 배운 것이 내가 공부한 것이 과연 맞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안쓰러운 마음을 누르지 못해 내가 아이의 서운함에 타협해 주면 어떻게 될까?


확실한 건 딸이 울고 떼써서 안 되는 일을 되게 만드는 일을 거듭하게 될 거란 걸 안다.


그렇게 자란 딸이 살아갈 세상은 딸의 서운함이 아니라 딸의 행동을 지적하고 판단하게 될 거다.


한 시간이 아니라 두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가 타협하지 않고 버티는 게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는 그럴 것이다. '아니 책이 찢어져서 속상할 나이지, 똑같은 책 하나 더 사주는 게 어렵나? 안쓰럽지도 않나 봐 애를 저렇게 울리고'


그렇다면 되묻고 싶다. '그럼 똑같은 책을 사주면 어떻게 될까요? 아니 어떤 사람으로 클까요?'


뭐 답은 아주 형편없을 거다. 형편없는 질문 한 사람한테 형편 있는 답이 나올 리가 있을까?


각자의 양육관이 있고 그 양육관이 남편이나 시부모님, 친정부모님과 일치하지 않을 때 엄마의 훈육은 실패로 돌아갈 때가 많다는 걸 안다.


하지만 자신의 훈육이 틀리지 않다는 걸 또 스스로가 잘했다는 걸 다시금 믿길 바란다.


아이에게 어떤 걸 가르쳐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버텨내는 게 훈육이라고 생각한다.


옳고 그른 걸 가르치는 게 훈육의 정의인데, 그 과정을 알려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교과서적으로 아이가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훈육과정을 지켜보는 게 힘들다면 훈육을 담당하지 않는 부모는 잠시 자리를 피해 줘야 한다.


엄마든지 아빠든지 훈육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훈육과정에서 버텨내는 건 시작한 사람의 몫이다.


이 나라의 엄마와 아빠 모두 오늘 하루 잘 버텨내고 스스로를 칭찬해 줬음 한다.


나는 꾀나 괜찮은 엄마이자 아빠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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