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이라는 이름의 족쇄, 책임감이라는 허상

by 서현

1. 기대라는 이름의 가스라이팅


대한민국의 맏이로 태어난다는 것은 태생적으로 부모의 기대를 업고 끝이 보이지 않는 트랙을 달리는 마라토너가 되는 것과 같다. 명문대 진학 실패나 사법고시 불합격 같은 과거의 지점들은 어느새 부모의 실망을 나의 과오로 치환하는 서글픈 습관을 만들어냈고, 그 부채감은 내 영혼에 문신처럼 새겨졌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된 엄마의 이 '은밀한 가스라이팅'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엄마와의 관계를 비정상적으로 왜곡시키며, 40대 후반의 꽤 괜찮은 사회인이 된 나를 여전히 죄인으로 머물게 한다. 매사에 미치도록 죄송하고 더 해야 할 것만 같아 엄마의 작은 불평에도 전전긍긍하며 애써 맞추려고 드는 나의 모습은, 마치 목숨줄을 타인에게 맡긴 사람이 그 타인에 대해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처절한 복종과 닮아 있다. 문제는 이 왜곡된 효심이 단순한 가족 관계에 머물지 않고, 타인과의 모든 관계와 사회적 태도까지 강박적으로 결정짓는 거대한 프레임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2. 일터로 전이된 '죄인의 태도'


지난 1년, 잘못 선택한 개발사와 엮인 프로젝트는 단순한 업무적 실패를 넘어 나의 생존권을 스스로 난도질하며 밑바닥까지 추락시킨 시간이었다. 상대의 과실로 인해 프로젝트가 어그러지는 순간에도 나는 분노하기보다 습관처럼 '나의 부족함'을 먼저 골라내어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그 대가는 악성 빈혈과 10kg의 급격한 체중 감소라는 육체적 파멸로 돌아왔다. 내 일상은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리며 매일 아침 저녁으로 정신과 약봉지를 털어 넣어야 겨우 일상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망가졌지만, 그 이 지옥 같은 굴레를 멈추지 못했다. 밤낮은 물론 24시간 대기상태로 주말을 송두리째 반납하고 나를 갈아 넣는 것만이 내가 짊어진 '원죄'를 씻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기에, 나는 질식해가는 순간에도 그 자학적인 성실함에서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못했다.


3. 기생하는 가짜들, 그리고 무너진 책임감의 실체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 거액의 사비를 들여 고용한 전문 PM조차 AI의 도움 없이는 단 한 장의 문서도 작성하지 못하는 무능한 기생충에 불과했다. PM이 문서를 작성하지 못한다니... 그녀의 경력기술서에 따르면 삼성이나 엘지 등 이름만 대면 대한민국의 누구나가 알 법한 대기업들과 협업을 넘어 교육까지 담당했었다고 한다. 그 후광에 내 눈이 멀었던 걸까. 그녀가 '주둥이 워리어'에 불과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 것은 석달 후 프로젝트의 마무리단계에서 내 놓은 소위 'PM산출물'이라는 것을 손에 들고 나서였다.


직접 LLM을 구축해 볼 정도로 기술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내 눈에는 그가 내놓은 산출물이 제미나이인지 클로드인지 혹은 퍼플렉시티의 흔적인지조차 투명하게 보였다. 최소한의 편집조차 하지 않은 채 들이민 그 문서의 퀄리티를 따졌을 때도 그는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말종이었다. 기여도 90%를 운운하며 견적서를 내밀면서도 뒤로는 새로운 먹잇감을 찾는 그 '사기 행각'을 직접 목도하며, 나는 AI 자동화를 떠드는 유튜버들까지도 같잖게 느껴지는 깊은 환멸에 빠졌다.


무엇보다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던 것은, 이처럼 파렴치한 자들에게 내 1년의 수익과 영혼을 통째로 헌납하면서까지 내가 지키려 했던 것이 프로젝트의 성공이 아니었으며, 사실은 '실패한 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공포가 만들어낸 비참한 '책임감의 허상'이었고, 어린시절부터 훈련되어 온 죄책감'프레임'의 발동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4. 죄책감이라는 족쇄를 끊을 수 있을까?


이제야 비로소 선명히 보인다. 내가 고결한 직업윤리라 믿었던 '책임감'은 사실 나를 파괴해서라도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려 했던 병적인 '죄책감'의 가면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이다. 책임감은 내 삶을 지탱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단단한 뼈대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죄책감은 그 뼈마디를 갉아먹고 나를 타인의 노예로 만드는 독성 강한 족쇄일 뿐이다. 마흔 후반의 나이에 이른 지금, 나는 이제 타인의 실망을 견뎌내고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법을 악으로라도 깡으로라도 익혀야만 한다.


나를 죽여서라도 타인을 만족시키려 했던 이 비정상적인 '충성'의 고리를 끊어내지 않는다면, 나는 평생 내가 주인인 삶에서조차 영원한 이방인이자 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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