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비활성화되었을 뿐입니다

사람의 삶과 머신의 생이 교차되는 지점

by 서현

데이터 사이언스를 배우며 가장 먼저 마주했던 짜릿한 명령어는 .drop()이었다. 딥러닝을 포함한 머신러닝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확률적으로 가장 그럴싸한 결론'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보다 정확하게 예측해내기 위해 모델을 가꾸어간다. 흔히들 변수가 많을수록 더 정교한 모델이 나올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데이터를 처음 마주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어떤 피처를 삭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피처가 많아질수록 모델은 오히려 노이즈에 취약해지고 차원의 저주(Curse of Dimensionality)에 빠진다. 본질을 흐리는 변수들을 걷어내야 모델은 비로소 핵심을 학습할 수 있다. 깎고 깎아서 딱 먹기 좋은 살코기만 발라내는 것 — 그것이 피처 엔지니어링의 시작이다.






문득 인생을 돌아보니 나 역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drop() 버튼을 눌러왔음을 깨닫는다. 그때는 정말 팔다리 하나쯤은 잘라내는 심정으로 한쪽 길을 선택했고 당시 유행하던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이 그것을 정당화해주었다. 법학을 선택하며 미대를 포기했고 한 사람과 결혼하며 다른 인연들을 인생의 변수에서 제외했다. 그 당시의 나는 그것이 영원한 소멸이자 비가역적인 선택이라 믿으며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련함과 선택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부채감을 안고 살았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데이터셋은 머신러닝 모델보다 훨씬 더 끈질기고 입체적이었다. 수학이 싫어 도망치듯 선택한 법학이었건만 17년의 기획자 생활을 지나 도착한 자리에서 나는 다시 미분과 회귀라는 망할 수학과 뜨겁게 재회했다. 미술을 포기했다고 생각했지만 새로운 기획자의 툴인 Figma를 다루면서 어느샌가 디자인을 겸하고 있으며 경영을 포기했지만 나만의 회사를 세우기 위해 각종 비즈니스 자료들을 탐닉한다. .drop()했다고 믿었던 피처들은 사실 삭제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필요'라는 이름의 씨앗으로 잠시 비활성화되어 있었을 뿐이다.






머신러닝을 위한 주요 피처선택에는 대표적으로 '라쏘(Lasso)' 와 '릿지(Ridge)'라는 2가지 방법이 사용된다. 전자는 덜 중요한 피처의 가중치를 완전히 0으로 만들어 모델에서 제거한다. 하지만 후자인 '릿지'는 다르다. 가중치를 0에 가깝게 줄일 뿐 결코 완전히 소멸시키지 않는다. 이러한 점이, 어떤 선택이 다른 선택지들에 대한 가중치를 줄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내 삶에서 영구히 지우지는 못한다는 오늘의 깨달음과 일치한다.


4년간의 고시공부는 내 의식 저변에 깔린 리걸 마인드로 내 판단의 골격을 받쳐주고 있음은 물론, 지금 코드를 짜는 방식에도 스며들어 있다. 남들은 다 어려워한다는 객체지향과 추상화 클래스가 그렇게 편안하게 이해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헌법-일반법-규례의 위계질서가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다만 성공적으로 떼버렸다고 생각했던 수학은 여전히 특유의 그 커다란 포옹으로 나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유감스럽다).






우리가 내린 모든 선택은 '나'라는 거대한 모델의 잠재 공간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 서로 앙상블(Ensemble)을 이루며 화려하게 부활한다. 앙상블이 강력한 이유는 단일 모델보다 다양한 관점이 결합될 때 더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인데, 이 또한 인생과 닮았다. 법학과 미술과 기획과 코드가 뒤섞인 사람이 어쩌면 그 어느 하나만 깊이 판 사람보다 더 입체적인 답을 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선택'을 영원한 소멸이 아닌, 잠시 동안의 우선순위 조정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어릴때부터 배워왔다면 삶은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중학생 시절의 나에게 법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존재이유가 흔들리는 재앙이었겠지만 마흔일곱이 된 지금의 나는 안다(이제서야!!). 바이올린 켜는 판사나 이혼을 겪은 목사도 존재할 수 있듯이 세상은 규정된 정답이 없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라는 것을.


어떤 선택을 하든 그 데이터는 나라는 모델을 더 풍요롭게 만들 뿐이다. 그러니 이제는 결과값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지금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에 기꺼이 가중치를 두는 탐색(Exploration)의 과정을 즐기고 싶다.




어떤 버전의 나도, 실패작이었던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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