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밀도가 실종된 강의실

by 서현

강의의 질은 강사의 말솜씨가 아니라 정보의 배치에서 결정된다. 특히 머신러닝처럼 거대한 세계관을 다루는 수업에서 청자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지도와 맥락'이다. 지도학습과 비지도학습의 경계, 머신러닝과 딥러닝이 교차하는 지점의 철학 — 그 빅픽처가 먼저 펼쳐져야 이후에 쌓이는 세부 지식들이 제자리를 찾는다. 구조 없는 정보는 소화되지 않는 채 위장을 채우는 식이섬유와 같다. 또다른 배설을 돕는 용도 밖에 없다.


속도보다 밀도가 중요하다.


말이 느린 강사가 나쁜 강사인 건 아니다. 말이 느려도 정보의 밀도가 충분하다면 그 느림은 오히려 축복이다. 청자가 주어지는 개념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귀한 '여백'으로서 작용한다. 반대로 말이 빠르면서 깊이까지 깊다면 — 그건 뇌를 포기하게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이다. 뇌가 가장 활발하게 작동하는 순간은 아는 지식 80%에 새로운 지식 20%가 섞일 때라고 한다. 이 황금 비율을 맞추려면 강사는 청자의 레벨을 읽어야 한다. 경험상 매우 신기하게도 단상에 오르면 청자의 반응과 수준은 꽤 또렷하게 느껴진다. 문제는 그 신호를 받고 나서다. 그 '느낌'을 반영해 강의의 내용과 속도를 조율할 것인가 아니면 준비한 것을 그냥 밀고 나갈 것인가 — 이 갈림길에서 좋은 강사와 거지 강사가 나뉜다. 물론 그 '선택'에는 대전제가 있다.


바꿀 수 있다면

나쁜 강의가 무너지는 방식에는 패턴이 있다. 강사가 자신 있는 부분은 우주의 진리라도 되는 양 장황하게 늘어놓고, 정작 중요하지만 본인이 모호하게 아는 부분은 "다들 아시죠?"라는 비겁한 문장 뒤로 숨어버린다. 정작 몸통은 없이 깃털만 잔뜩 들이마시게 되는 청자에 대한 배려따위- 본인도 인지를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에 -는 없다. 머신러닝의 핵심 개념부터 짚어야 할 귀한 시간에 파일 저장 확장자 설정법을 10분 넘게 읊는 강의. 이것은 지식의 중요도에 따른 배분이 아니라, 오로지 강사의 지식 편식에 맞춘 자기중심적 배설이다.


더 역겨운 것은 그 공백을 메우는 방식이다. 특히 강사가 '강의'라는 것을 할 만큼의 수준이 아닐수록 또는 현장 내공이 얕을수록 '잘난 척'이라는 외피를 두른다. "많이 보셨을 테니 넘어가겠다"는 말은 배려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정리할 수 없는 것을 건너뛰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리고 강의가 흘러가다 청중이 조용해지면 — 서툰 강사는 자신의 밀도를 의심하는 대신 청자의 안색을 살핀다.


졸리신가요?


완전히 동일한 구성원들이 강사만 바뀐 상황에서, 이전 수업에서는 질문도 활발하고 농담도 오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조용해진 것이다. 그 침묵의 원인은 하나인데, 강사는 끝내 자신을 향해 질문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위에 내밀었던 대전제는 그 강사를 위한 마지막 방패에 가깝다. 지식의 깊이가 얕고 실력이 부족하니 청자에게 '맞춰 조절할 수 있는 요소'라는 선택지 자체가 없는 것이다. 청자는 강사의 에고를 채워주기 위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피에로가 아니다.




이 현상은 개인의 무능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다.


플랫폼 강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강사의 자질을 검증하는 기준이 '지식의 깊이'에서 '콘텐츠의 소비 가능성'으로 완전히 이동했다. 엊그제 입문한 '초보'들이 부업삼아 '더 초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개설하고 자극적인 썸네일과 감성적인 후기를 구걸하여 별점을 마련하면... —예전엔 '완강률'이라는 것이라도 표기를 했지만 이젠 대부분의 플랫폼에서 그조차도 하지 않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플랫폼은 학습자가 무언가를 '이해'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조회수'가 높은지를 측정한다. 뿐만 아니다. 깊이가 없을수록 완강하기 쉽고, 완강률이 높을수록 알고리즘은 그 강의를 더 밀어 올린다. 구조적으로 밀도 없는 강의가 살아남도록 설계된 시장이다.


AI의 발달은 이 문제를 더 가속화한다.


이제 강사들은 교안 작성에 LLM을 쓰고, 예제 코드를 자동 생성하고, 설명 스크립트를 뽑아낸다. 그야말로 '딸깍'으로 다른 인간을 가르치는 현실이다. 표면적으로 그럴듯한 구색은 갖춰지겠지만 LLM이 생성한 교안에는 '왜 이 개념이 여기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강사 자신의 주관이 없다(애초에 그런 것이 존재했다면, 프롬프트라도 다르게 썼겠지).


배치의 논리가 없는 정보 더미. 그리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현장에까지 이어진다. (나도 쌩돈 1.5억을 때려 붓고서야 깨닫게 된 현실인데) 실제로 현재 프리랜서 시장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 특히 PM, PMO직군이 '딸깍'을 애용하고 있으며 이걸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올바른 PM이란, PMO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썰'을 푸는 강의를 개설하고 있다. 청자는 그 앞에서 열심히 필기라도 하겠지만 남는 것은 파편화된 지식 쪼가리 뿐이다. 강의가 끝난 자리에는 지도가 아니라 쓰레기만 쌓인다.


반면 좋은 강의는 다르게 작동한다.


빅픽처를 먼저 그리고 그 바탕 그림을 청자의 반응에 맞게 몇 번씩 덧칠한다. 청자의 수준이 높다면 덧칠이 빠르게 반복되며 더 세밀한 부분까지 닿고, 수준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면 비교적 낮은 해상도에서 그날의 수업이 마무리된다. 이 방식의 핵심은 강사가 아니라 청자가 중심이라는 것이다. 강사가 아는 것의 크기가 기준이 아니라, 청자가 오늘 가져가야 할 것의 무게가 기준이 된다.


지식의 나열은 이제 LLM도 한다. 아니 검색엔진도 한다. 강단에 선다는 것은 흩어진 정보들 사이에서 청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지도를 그려주겠다는 선언이어야 한다. 그 선언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 세상에 직업은 많다. 그리고 플랫폼은, 그 선언을 검증할 책임을 더 이상 시장에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결국, 한국의 모 교육 플랫폼이 이뤄냈다는 '흑자 전환'의 실체는 교육적 부가가치의 창출이 아닌 처절한 비용 절감과 구독제의 함정에 기대어 있다. 독창적인 평가 시스템이나 지식 구조화의 혁신으로 얻어낸 승리가 아니라, 결제만 해두고 잊어버리는 '휴면 회원'의 안심감을 담보로 한 숫자 놀음에 가깝다.


그리고 교육의 본질을 외면한 숫자 놀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미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한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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