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라는 거울

철인의 복제와 멍청함의 방어선

by 서현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언제나 화려한 미래의 수식어로 가득하다. 하지만 내가 현장에서 체감하는 인공지능의 본질은 훨씬 단순하다. 그것은 결국, 합리적 사고를 수행할 수 있는 철인(Expert)의 뇌를 복제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회사에서 인수인계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인류의 다수는 사고를 도구로 쓰기보다 그냥 달려 있는 장식물처럼 취급한다는 사실을. 생각은 귀찮고 판단은 위험하며 책임은 되도록 회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 글은 그런 현실에 너무나도 뻔뻔하게 편승하고 있는 타인 앞에서 내가 느끼는 분노를 정리하기 위한 것이다. LLM이 내놓는 결과물을 무비판적으로 신뢰하며 그것을 곧바로 자신의 사고로 착각하는 인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생겨나는 그 감정들을 더 이상 내부에 쌓아두지 않기 위해서다.


인공지능은
유능한 선임이 가졌던 최소한의 노하우와 결과물의 퀄리티를
어제 갓 학원을 졸업한 햇병아리 후임에게
강제로 이식하기 위한 수단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헬스장에 가서 몸을 쓰며 근육을 단련할 의지는 없고, 대신 수천만 원을 들여 '다이어트 센터'를 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주파로 근육을 강제로 꿈틀거리게 만들면 체중계 숫자는 내려가겠지만 근육을 사용하는 법을 잊은 육체는 결국 빛의 속도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간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고작 기계가 확률적으로 뽑아낸 문서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결과물이 갖는 '공적인 효력' 때문에 한 글자 한 글자 정독해야 하는 순간이다. 사고의 근육이 전무한 자가 기계의 힘을 빌려 번지르르한 문서를 뽑아놓고 그것을 '내 생각'이라 주장하는 장면. 그 안에는 조금의 죄책감도 부끄러움도 없다는 천박함을 참아내기가 도무지 힘들다. 지능의 존엄성을 아직 포기하지 않은 이들에게 이것은 매우 효과적인 고문이다.


오늘 머신러닝 강의를 들으며 인공지능의 역사를 복기하다가 열불이 터진 이유도 그 연장선에 있다. 강사들은 과거 기호주의 AI가 가능했던 이유를 "세상이 단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나는 그 진단에 정면으로 반론을 제기한다.


글로벌리제이션이 가속화된 지금, 인간 사회의 목표와 행동 양식은 이전보다 훨씬 규격화되었다. 물론 규격화가 곧 단순화는 아니다. 시스템의 층위는 더 복잡해졌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복잡한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인간 개개인에게 요구되는 사고의 폭은 오히려 좁아졌다. 전체 공정을 이해하지 않아도 자기 파트의 매뉴얼만 따르면 되도록 설계된 세계에서, 사고는 더 이상 생존 조건이 아니다.


문제는 세상의 복잡도가 아니라 그 복잡함을 감당하던 인간 사고 능력의 퇴화다. 수십 년간 유지되어온 팍스 아메리카나 속에서 풍요에 절여진 현대인의 뇌는 질 나쁜 지방과 합성 화합물처럼 단순한 자극에만 반응하도록 길들여졌다. 풍요가 반드시 사고의 퇴화를 낳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풍요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만들어줄 때, 대부분의 인간은 기꺼이 그 면죄부를 수락한다. 현재의 인류에게 복잡한 인과관계를 스스로 도출해낼 체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역시 함께 마모되었다.


이 지점에서 인공지능은 퇴화한 인류의 뇌를 대신하는 외장형 전두엽으로 등장한다. 스스로 사고할 힘을 잃은 인간들은 기계가 뱉어내는 확률적 결과물에 판단을 전적으로 외주화한다. 지능이 빠져나간 자리를 규격화된 '가공 지식'이 채우고 개별 인간의 사유는 거세된다. 남는 것은 시스템이 요구하는 표준화된 결과물뿐이다.


이는 지극히 자본친화적인 결과다. 예측할 수 없는 호황보다 예측할 수 있는 불황을 선호하는 자본과 산업은 더 이상 인간의 불완전한 영감에 기대지 않는다.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사고와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기계가 보장하는 매끄러운 무능을 선택한 것이다. 컨베이어 벨트를 움직이는 손가락이 필요했던 기존 산업계는 주입식 교육으로 사고를 통제해왔고, 지금은 그 규격화된 사고에 따른 결과의 품질조차 규격화하려는 것이다.


결국 인공지능은 인류가 똑똑해졌다는 증거가 아니라 인간의 자율적 사고만으로는 더 이상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다는 비극적인 고백이다. 산업혁명 이후 부품화된 인간이 양산되었듯 인공지능 혁명 이후에는 사고마저 정지된 '완벽한 부품'이 대량 생산될 것이다.


더 섬짓한 것은 사고를 멈춘 인간형은 '예외'가 아닌 세상이 왔다는 것. 사고하지 않는 인간은 오히려 이 시스템이 가장 선호하는 '주류'가 될 존재다. 다이어트클럽을 전전하는 그들은 AI라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각하는 척'을 유지할 것이고 인류의 지적 추락은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추락을 매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목격하고 있으며 그 피해를 고스란히 온몸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끊임없이 인지하고 꼼지락거리는 내 뇌세포를 초음파로 지져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