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 한증막의 태반주사
쇼핑몰에서 일하는 순애 언니는 남다른 갱년기 증상을 호소한다. 밤낮으로 등에서 열이 나고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거리며 땀이 난다고 했다. 땀으로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하며 오한으로 밤새 잠을 설치면, 다음날 극심한 피로와 근육통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런 순애 언니 삶의 유일한 오아시스는 같은 쇼핑몰 동료들과 출근 전에 사우나를 즐기는 일이다. 여자들의 우정은 사우나 뜨거운 한증막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사우나 가운을 두르고 앉아 땀으로 몸속 노폐물을 배출하듯, 속상하고 화나는 맘속 노폐물을 한증막 안에서 거친 호흡과 수다로 맘껏 배출하는 것이다. 옷을 걸치지 않은 한증막에선 나이와 직업에 상관없이 모두가 언니이고 친구가 된다.
오랜만에 사우나에 온 순애 언니는 배에 시퍼런 멍이 들어왔다. 순간 ‘언니가 지방 분해 주사를 맞았나?’ 생각도 했었지만. 언니의 배는 여전히 임신 6개월이었다. 궁금증을 참다못한 영순 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언니, 배에 왜 그렇게 멍이 들었어요?” 그러자 순애 언니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거 산부인과에서 태반주사 맞아서 그래! 나 갱년기 증상으로 등에 열나서, 잠도 못 자고 피곤하다고 했었잖아? 근데 괜찮아졌어! 이제 등에 열도 안 나고 피곤함도 덜해서 살 것 같아!” 한증막의 갑갑함과 뜨거움을 다들 잊은 듯 사람들의 모든 눈과 귀가 순애 언니를 향해 있었다. 언니는 시원한 사우나 냉커피를 한잔 들이켠 후 태반주사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태반주사는 식약청(KFDA)으로부터 다양한 갱년기 장애 증상의 개선에 효능을 인정받은 치료법이었다. 무엇보다 요즘은 실비처리가 돼서 가격 측면의 부담 없이, 10회를 미리 끊어서 주 1회씩 맞으러 가면 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태반주사를 맞고 나서 열나고 아프던 등이 괜찮아지고, 불면증과 피로감도 많이 좋아졌다며 멍이 시퍼렇게 든 배를 어루만지며 자기만의 갱년기 극복 비법을 털어놨다. 그때부터였다. 태반주사로 갱년기에 효과를 봤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증막 언니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태반주사를 맞으러 산부인과를 찾기 시작했다.
한증막 언니들의 단합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사우나 멤버들의 기본 준비물이 있는데, 사우나 마스크, 방석, 가운, 개인 물병은 필수이고, 스페셜 한 사우나를 즐기기 위한 VIP 멤버들의 준비물인 뱃살 잡는 핑크색 실리콘 물 부항기와. 옥 주걱, 국자가 있다. 열탕에서 반신욕을 하며 승모근 뭉침과 혈액순환에 좋다는 물 부항기로 배와 등에 시퍼런 부항 자국을 남기고, 경락 도구인 옥 주걱과 국자로 배를 세게 문지를 때면, 비싼 전신 마사지와 고급 호텔 스파가 부럽지 않다고 한다. ‘목욕용품 뭐가 좋다더라 하면 단체 공구를 하고, 누구네 시골에서 농사지은 양파랑 사과가 맛있더라 하면 단체 주문이 들어간다. 어디 마트가 오늘 오픈한다더라 정보가 뜨면 다들 바구니를 받으러 마트 앞에 집합이다. MZ세대들이 유튜브로 광고를 하고 소식을 접한다면, 5060 언니들의 알짜배기 광고와 소식은 사우나 한증막에서 시작된다. 그뿐인가 지금이야 코로나로 인해 할 수 없지만, 집안에 경사가 생기면 떡을 해서 돌리거나, 흰 우유 하나씩을 돌리는 일은 사우나의 관례가 돼버렸다. 요즘 트렌드는 우유 대신에 다이어트와 피로 회복에 좋은 비타 500이나 야채 주스를 돌린다고도 한다.
보통 한증막의 멤버들은 새벽 팀과 오전 팀으로 나뉜다. 새벽 팀은 일을 다니는 언니들이 아침 일찍 와서 가벼운 샤워와 땀 빼기 후 출근하고, 오전 팀은 일을 안 하는 언니들이 아침드라마를 보거나 아침 운동을 한 후 땀을 빼러 온다. 10시쯤 와서 사우나를 한 후 12시쯤 삼삼오오 어울려 점심을 먹고 저녁 준비를 위한 장을 보고 귀가한다. 순애 언니와 그녀의 직장 멤버들은 그들만의 휴가를 한증막에서 보낸다. 일주일에 한 번 쉬는 날을 같이 맞춰 밀렸던 집안일을 서둘러 끝내고 사우나 한증막으로 향한다. 일주일의 피로를 사우나의 한증막과 찬물을 오가면 혈액순환으로 풀어내고, 깨끗이 단장한 후 평소에 일한다고 먹지 못했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이어지는 휴가의 하이라이트는 단체로 ‘태반주사’를 맞으러 가는 것이다. 몸이 힘들어도 하소연할 겨를 없이 갱년기를 견뎌야 하는 쇼핑몰 언니들의 유일한 힐링 방법은 사우나 한증막과 태반주사였다.
“언니 갱년기 때 힘들지 않으셨어요?”
“일하고 돈을 번다고 정신이 없어서 갱년기가 온 건지, 스트레스받고 피곤해서 몸이 아픈 건지 구분도 안 되더라고, 갱년기도 다 팔자 편한 사람이 누리는 특권 아니겠어,”
갱년기 우울증이 와도 고객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야 하고, 아무리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생계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도 없다는 쇼핑몰 언니들은 ‘사우나 한증막의 땀 빼기와 1주일에 한 번 태반주사’로 그들만의 갱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실 요즘은 갱년기보다 코로나가 더 아프고 무섭다고…. 갱년기 증상으로 몸에 열이 나거나 몸살기가 있으면 혹시 코로나가 아닌가 검사를 해봐야 하고, 쇼핑몰 안에서 직원이 한 명만 확진이 되어도 매일같이 단체로 PCR 검사가 갱년기보다 더 아프고 힘들다며 자가 진단 테스트기로 매일 아침 코를 찌르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 되었다며 하도 코를 찔러서 코에 고속도로가 난 것 같다는 농담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