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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이월 Oct 14. 2022

뉴욕에서 한달살이 할 때 가장 많이 들은 질문

- 왜 뉴욕이에요? 뭐가 제일 좋았어요?

뉴욕에서 한 달을 살기로 결심하고 집을 구할 때, 맨해튼을 고집한 이유는 ‘뉴욕’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내 눈앞에 실재하고 있음을 날마다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줄지어 선 고층빌딩,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바쁘게 걷는 사람들, 혼잡한 도로를 누비는 노란색 택시, 비상계단이 딸린 외벽 따위를 매일 보면서 다른 이들의 현재를 훔쳐 내 것처럼 살고 싶었다.


그렇게 한 달을 살면서 만난 동행들에게 빼먹지 않고 듣는 질문은 두 개.


첫 번째 질문.


“왜 뉴욕이에요?”

- 뉴욕은 저를 기다려주지 않는 도시라서요.


뉴욕은 볼 것도, 할 것도 많은 도시다. 느릿하게 둘러보고 떠났다가는 보지 못하고, 하지 못한 것들에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다. 뉴욕에서 한 달을 살기로 결심한 건 뉴욕에 미련을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뉴욕의 매력을 다 느끼려면 부지런히 돌아다닐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한데, 남은 일생 중에 가장 젊은 지금이 적기였다. 안타깝게도 나는 낯선 풍경을 눈앞에 둬야만 하루에 2만 보를 걸을 수 있는 체력이 샘솟았다.



두 번째 질문.


“뭐가 제일 좋았어요?”


무엇이 제일 좋았냐는 질문은 한 가지를 꼽아 답하라는 질문이기에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여는 카페에 가 사람들 틈에서 베이글을 크게 베어 먹고, 볕 좋은 오후에는 센트럴파크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책 페이지를 넘기는 것. 미술관에서 느린 걸음으로 작품을 감상하다가 밤에는 맨해튼의 빌딩숲이 보이는 강변 벤치에 앉아 반짝이는 불빛들을 하염없이 응시하는 것.


모든 것이 기대했던 것만큼 좋았다. 기대한 만큼의 만족감이란 건 위태위태한 만족감이기도 하다. 여행하는 모든 나날이 좋을 순 없고, 모든 순간이 행복할 순 없으니까 불만족스러웠던 순간들이 나쁜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좋았던 순간을 떼어 덮어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기대한 만큼만의 행복은 떼어줄 것이 없다. 언제라도 무너질 것 같은 행복을 부여잡고 있을 때, 뉴욕에 오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고 그러니 기대도 한 적 없는 장소를 가게 됐다.





이곳은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맨해튼에서 한 달을 머물기로 한 것을 후회할 만큼. 다음엔 책을 들고 와야지, 다음엔 여기서 노래를 들어야지, 다음엔 야경을 봐야지. 첫 만남부터 다음을 기약하면서 한달살이 하면서 무엇이 가장 좋으냐는 질문에 대한 온전한 답을 그제야 찾아냈다.


- 마음에  곳을 또 갈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아요.



여태껏 나의 여행은 계획에 억압될 때가 대부분이었다. 떠나고 싶으나 머물러야 했고, 머무르고 싶으나 떠나야만 했다. 그 탓에 정리되지 않은 감상들은 끈적거리고 그 위를 밟는 걸음은 처지고 무거웠다.


일정에 구애받지 않은 걸음이 얼마나 가벼운지 이제는 안다. 마음에  곳에 당장 다음 날 다시 가는 걸음. 한달살이의 이점은 예상치 못한 장소를 발견하는 기쁨에 있었다. 덕분에 나의 여행은 새롭게 옷을 입었다. 앞으로 이어질 여행은 어떤 나라나 도시가 아닌 장소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되겠지. 어떤 풍경을 목도할지, 어떤 행위가 이루어질지 미리 예측할 수 없으니 여행의 수명이 또다시 연장됐다.


뉴욕에 한 달이나 있었으니 뉴욕이란 도시에 미련은 없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미련은 보지 못한 것, 하지 못한 것에 질척대는 감정이 아니었다.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랐던 순간들을 기억하는 감정이었다. 그렇기에 뉴욕에 한 달이나 있었는데도 미련이 남았다는 후기를 전할 수밖에 없다. 뉴욕에 미련이 남아서, 미련이 남는 여행을 해서 아주 좋다.     




+ 뉴욕에서 쓴 메모를 정리해 한국에 와서 뒤늦게 올린다. 여행을 하며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을 존경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장렬히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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