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한수희 지음을 읽고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기 위해 무리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일이 끝나면 칼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TV를 보든 책을 읽든 멍하니 있는 시간을 가진다.
새벽에 일어나 30분 산책을 하고 돌아와 커피를 내려 마시고 일을 시작한다.
그것도 내가 바라는 거실의 창 너머에는 푸른 나무가 보이고 큰 테이블에 앉아 작업을 하는 모습.
마흔을 넘긴 저자는 아이 둘을 키우고 글을 쓰고 집안일을 한다.
거실의 큰 테이블에서 글을 쓰다 빨래를 돌리고 글을 쓰다 빨래를 개키고 그래서 집에서 일하는 게 편하고 좋다고 하지만 나는 그 문장에서 저자의 내공을 느꼈다.
그렇게 되려면 주부 9단의 시간과 어느 정도의 집안에 있으면서 무심함도 필요하다.
집에 있으면 뭐랄까 먼지도, 아이의 장난감에 정신이 없다.
저자는 오랫동안 글을 쓰고 아이들 밥을 챙기고 재우고 밤에 드라마를 본다.
혼자만의 멍한 시간이 없다면... 상상만 해도 싫다.
모두에겐 중요하지 않지만 필요한 시간이 있다.
6살 아이는 언제쯤 스스로 책을 읽다 혼자 잠이 들까. 내가 없이도 집에 혼자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중요하지 않지만 필요한 시간'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 필요한 시간마저 애써서 시간을 내야 하는 게 육아니까. 지금도 글을 쓰는 내 옆엔 유튜브의 소음에 열렬히 돌아가고 아이의 기침소리가 심해진다.
걱정이 되면서도 온갖 소음과 책방에는 원치 않는 큰 노랫소리에 머리가 빙빙 돌아 결국 남편에게도 소리 지르고 만다.
'제발 둘 다 어디 멀리 놀러 갈 생각 없니?' 그렇다 나는 꾸역꾸역 육아를 하고 있다.
이것도 우습다. 내가 챙겨서 조용한 곳으로 가면 되는데 하여간 참 성질 더러운 엄마다.
1박으로 기분 좋게 놀러 가서 아끼는 가방에 아이가 머스터드 소스를 묻혔다.
울분이 터져 견딜 수 없었다. 남편이 손빨래를 해주겠다 했지만 온전한 내 물건이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정신적으로 많이 약해진 걸까.
하도 지랄을 하니 결국 같은 걸로 하나 더 사주겠다 라고 했지만 더 화가 났다.
좋아하는 옷, 좋아하는 가방 내것은 모두 아이가 묻힌 소스나 볼펜이 묻어 볼 때마다 기분이 나빠졌다.
왜 내 물건은 내 손으로 아닌 항상 아이의 손에 의해 끝장을 봐야 하나.
화를 내면 옹졸한 엄마가 되었다. '네 자식인데 네가 화내면 되겠니?' 사람들 반응은 이런 식이다.
늘 내 기분이 좋다가도 아이의 컨디션과 상황에 덩달아 내 기분도 망쳐버릴 때 나는 혼자의 삶을 생각한다.
선생님한텐 죄송하지만 유치원은 주말이 없었으면 좋겠다.
오후까지 잠시 떨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환해지니까. 작업하는데도 너무 편하니까.
이상하게 집안일을 할 때 일이 하고 싶고 머릿속엔 쓰고 싶은 단어가 한가득이다.
머릿속에 단어와 문장이 가득 차서 막상 자리에 앉으면 한숨 돌리느라 아무 말도 쓰기 싫어진다.
지금 내 옆에는 유튜브에서 나오는 노랫소리가 한창이다.
글을 써야 하는데 항상 이렇게 옆에 아이가 있는 것도 자유롭지 못한 것도 화가 난다.
집에서 일을 할 수 있기에 나는 어디든 아이를 데리고 일을 한다.
그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 눈물이 날만큼 정신적으로 힘이 든다.
내가 유별나다는 생각에 더 괴롭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은데 빨래를 돌리고 널고 행주를 삶고 아침을 만들고 치우고 밀린 작업을 생각하니
모든 상황이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한동안 명상을 하지 않아서 일까.
세 명이서 갈아입은 속옷은 왜 이리 많은지.
아니다.
생각해보니 오전에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커피를 반 잔만 마셔도 심장이 두근거려 잠 못 자던 그 시절은 이미 없다. 이제는 마시지 않으면 머릿속이 멍할 정도로 졸리고 산만하고 다음날 아침에도 몽롱하다.
한동안 욕심내서 밤에는 좋아하는 다큐를 틀어놓거나 밀린 영화를 봤다.
방에서 아이가 나를 불렀다. 옆에 아빠나 엄마가 없으면 잠을 자지 않는 아이는 내 욕심에 늦게 잠들었고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 유치원에 가기 전에 울었다.
어느 순간 마음에 드는 옷은 무조건 망가질 거란 생각에 옷도 사지 않고 좋아하는 곳은 아이가 더 크면 가야지 하고 꾹 참았다. 결국 아이와 함께 누워 졸음을 참다 잠들어버린다.
나는 저자의 말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영화에서도 책에서도 밥을 해 먹고 과일 열매를 따고 소풍을 가고 책을 읽다 잠이 드는 생활의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나만의 것이 아니다. 늘 아이가 등장한다.
사랑스러우면서도 슬프다.
아이가 클수록 주변에선 더 노골적으로 둘째 이야기를 꺼낸다. 특히 지나가는 할머니들은 '둘은 돼야지'라며
앵무새처럼 말한다. 애매하게 에헤헤 하고 웃으면 '엇 정말 만만하다. 더 시 부려야지'라고 생각하는 듯 나에게 함부로 말한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것들이 쌓여서 풀 곳이 필요했나 보다.
글쓰기는 필요한 시간이다. 쓰다 보니 이상하게 마무리되었지만 머릿속을 정리하는 시간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