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아이가 7살이 되었다.
나는 성악설을 믿는 사람 중의 한 명으로 사람은 절대 착하지 않다. 뭐 그런 통설을 믿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규칙이 존재하고 이 규칙을 지키려고 자신을 속박하다 보니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을 보며 내가 가장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은 바로 순수성이 사라지는 것인데 6살이 되면 아이들은 무리를 이루고 익숙한 것들에 안심을 느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같은 반 아이들의 말투가 닮아가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서로 비슷하면서 나는 개성이 사라지는 건 뭐랄까 자연스럽게 보는 게 그거니까 교육의 문제보단 닮은 서로를 보며 소속감에 들었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사라지고 그 순수함이 때론 삶에 방해가 될 때 나는 아득함을 느꼈다.
아이는 아직 산타의 존재를 믿고 울면 선물을 받지 못할까 눈물을 꾹 참았다.
갖고 싶은 선물이 있으면 하늘을 향해 '산타 할아버지 저는 무슨 선물이 갖고 싶어요!'라며 자신 있게 소리 질렀고 자신은 울지 않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기 때문에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자신했다.
잠들기 전에는 왠지 긴장했고 눈을 마주치면 산타가 도망가버려 다시는 선물을 주지 않는다는 말에 일찍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
아마 내년엔 산타할아버지를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 울면 안 된다는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고 친구들은 무슨 선물을 받는다며 자기도 해달라고 우길지 모른다. 점점 우리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수록 그런 시절은 바보였다는 듯이 잊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아이는 아직까지 손톱이 날아가 쥐가 먹어버리면 또 다른 자기가 복제되어 자기를 위협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손톱이 날아가버릴까 긴장하고 부모가 손톱을 깎고 있으면 다른 곳으로 튀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진짜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암호를 만들었고 오늘 손톱이 멀리 날아가 찾을 수 없자 대성통곡을 하는 아이에게 웃음을 참으며 손톱도 많이 먹어야 가능한 것이니 너무 걱정 말라며 달랬다.
이런 순간은 내가 엄마구나 느끼고 부모의 책임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최고의 순간이다.
아이들은 순수하다.
아이들은 웃음이 많다. 활달하며 울고 싶을 때 운다. 그러나 점점 울음을 참는다.
점점 피로함을 느낀다.
그리고 왜?라는 질문도 줄어든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일까? 억지로 감정을 숨기고 애정을 숨기는 일이 자라면서 당연스러운 것일까?
그렇게 되는 게 나도 모르게 내가 만들어 버린 것일까?
나는 믿지 않는 산타를 믿고 손톱을 먹은 쥐가 나와 나라고 속이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아이.
그렇다면 나는 언제부터 그런 마음을 당연한 듯 잃었던 것일까.
괜스레 지나가는 밤이 아쉬운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