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봐. 눈앞만 보지 말고.

# 인생 짧지만 길어

by 이월

인생이 너무 아득해서 한걸음 앞도 내다보기 힘든 순간이 있었다. 한걸음 앞이 아니라 지금 이 걸음을 끝으로 주저앉아 버릴지 고민하는 그런 순간이.


고개를 들어 저만치 앞을 보는 것이 마치 사치처럼 느껴지는 그런 순간이 있었다. 그냥 두 눈을 꾹 감아버리고 싶은 그런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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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버텨냈다. 겨우 겨우 버텨냈다. 삶을 놔버리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괴로웠다.


꽃을 볼 때 기뻤지만 괴로웠고,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할 때 즐거웠지만 괴로웠고, 연인과 함께 길을 걸을 때 행복했지만 괴로웠다.


모든 감정의 끝은 괴로움이었다.




눈이 떠진 탓에 그냥 하루를 살았다. 차라리 눈이 떠지지 않는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 일어나고 싶지 않았던 순간도 많았고, 눈만 뜬 채 울고 있던 날들도 많았다.


내게 미래를 그려가는 것은 너무 큰 사치였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내가 너무 눈 앞만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오늘, 당장 이번 달, 당장 올해. 뭐든 당장 이루어 내고 싶었고 빨리 결과를 얻고 싶었다.




그런 조급함이 계속해서 나를 늪에 빠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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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적 댈수록 늪에 빨리 빠지고 헤어날 수 없듯, 내 마음에 빠져 헤어날 수 없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었던 걸까? 나아가려는 방향은 있었을까?


차근차근 한 발을 내디뎠어도 되었을 날들을 나는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제자리걸음을 했다. 조금 멀리 봤더라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눈앞 눈앞 눈앞만 보니 눈앞에 놓인 작은 돌멩이 하나 눈앞에 보이는 작은 웅덩이 하나가 너무 두려워 나는 다음 걸음을 뗄 수 없었다.


어느 쪽으로도 나아갈 수 없었다. 세상 속에서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은 오직 그곳, 절망이었다.



결국 나는 모든 것을 내던지기로 마음먹었다. 아등바등하는 나를 놓아주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삶이 나아가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잠시 앉아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비로소 내가 서 있었던 곳이 그리고 내가 지금 앉아 있는 곳이 어디인지 선명하게 보였다. 고개를 들어 저만치 앞을 보았을 때, 사방팔방을 빙 둘러 보고서야 어디로 가야 할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눈 앞에 놓인 작은 돌멩이나 웅덩이가 아니라 저만치 나있는 길이 눈에 들어왔다. 내 느린 걸음으로 저 길을 걸어가려면 아주 긴 시간이 걸릴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단숨에 그 길을 내달릴 수 없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데, 천리길을 순식간에 지나가려 했기 때문에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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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느린 걸음을 시작하고자 한다. 언젠가 돌아보면 지금이 첫걸음을 내딛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길을 걸어가다 보면 또 주저앉고 싶은 날이 올 테고, 너무 힘들어 돌아가고 싶은 날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날도 있을 테고, 후회와 아쉬음으로 고개 숙이게 될 날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눈 앞만 보고 조급해하지 않을 것이다. 눈앞이 아니라 긴 길의 끝에 내가 이르고 싶은 곳을 보며 나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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