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우정의 언어를 몰랐다

by 말랑


요즘 그녀가 종종 꿈에 나온다. 어떤 날에는 행복한 표정이고, 어떤 날에는 정신이 없이 바빠 보였다. 나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먼발치에서 바라봤다.


아직도 마음에 응어리가 남아 있구나. 심지어 꿈속에서도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다니, 죄책감 때문일 테다. 어쩌다 이런 사이가 되었을까.


전부, 내 잘못이다.




그녀와 나는 꽤 친한 동료였다. 퇴근한 후에도, 주말에도, 휴가 기간에도 카톡 메시지를 수없이 주고받았다. 요가원도 함께 다녔다. 회사는 싫지만, 이 친구를 알게 되었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서히 그녀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그랬는데, 이제야 인식하게 된 걸까? 아니면 그녀가 살짝 변한 걸까? 나도 헷갈렸다. 차라리 치고받고 싸운 거라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이건 답답하기만 했다. 회사에서 봐도 반갑게 인사할 자신이 없었다. 그녀도 나의 태도에 당황한 것 같았다.


우리는 점차 멀어졌다. 아니, 나 혼자 밀어냈다. 제일 비겁한 행동이 잠수라고 했던가. 내가 그 꼴이다. 나는 생각보다 더 찌질한 사람이었다.


집에서 저녁을 지어먹던 그날, 메시지가 왔다. “나를 일부러 피하는 것 같은데, 맞을까? 서운한 게 있으면 말을 해주면 좋겠어. 언제 커피라도 마시자.“ 나는 피하느라 정신없었는데, 상대는 담담히 손을 내밀었다. 역시 멋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독대할 자신이 없었다. 무엇이 불편한 건지 설명하고 싶은데, 납득할 만한 답을 찾지 못했으니까. 한참 고민하다가 겨우 답장을 보냈다. “먼저 이야기 꺼내줘서 고마워. 내가 정리해서 말할 수 있을 때, 그때 연락할게.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


그때는 몰랐다,

이것이 마지막 친근한 대화가 될 줄은.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어느 때처럼 독서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참가자 A 씨가 본인의 속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가 암이라서 너무 괴로워. 가기 싫은데, 안 갈 수도 없어서 마음이 무거운 것 같아. 요즘 가장 큰 고민이야.” 그러자 다른 참가자가 의견을 더했다. “친구가 혹시 잘못되면 그때는 더 괴로울 거야. 갈 수 있을 때 열심히 가는 게 나아. 안부 메시지라도 보내.”


나는 내 마음 상태를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지, 조언을 구한 건 아니야. 어차피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근황을 들어준 걸로 충분히 고마웠어.


참가자 A 씨가 답변했다.


유레카.


갑자기 일 년 전 사건이 불현듯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도 그녀에게 “조언을 구한 건 아니야.” 한 마디만 했으면 충분했을지 모른다. 업무 이야기를 식사 안주처럼 꺼내도, 그녀는 언젠가부터 “여기에서 네가 해야 할 건 첫째, 둘째, 셋째” 식의 반응을 했으니까. 하지만 불편한 이유를 말하고 원래 사이로 돌아가기에는 늦어도 너무 늦어 버렸다. 업무상 협업할 때도 나에게 존대한 지 한참이 되었고, 슬랙 메시지는 확인했는지 안 했는지 답장도 없었다. 내 카톡도 차단한 모양이었다.


우리에게 끈이 있다면, 네이버 계정뿐이었다. 우연히 그녀가 최근에 남긴 포스팅을 읽게 되었는데, 남자 친구와 싸운 이후 그가 연락이 안 되어서 며칠간 노심초사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침묵이라는 사실도 쓰여 있었다.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었지만, 여전히 미안할 뿐이다. 내가 조금 더 빨리 불편한 이유를 알아냈다면, 그랬다면 우리의 관계는 달라졌을까. 어쩌면 내가 필요했던 건 내 안의 불편함을 말로 정리할 시간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거기까지 가기에 너무 긴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에 그녀는 마음을 닫아 버렸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정도 타이밍이었다.




그제야 마음을 정리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불편한 지점이 있으면 나 혼자 정리가 되어야 나아갈 수 있는 나, 치고받고 싸워서라도 바로 해결해 버리고 싶은 그녀. 우리는 처음부터 맞지 않았던 것일까. 신뢰가 쌓이기도 전에 오해가 터져버린 걸까. 내가 다음에 또 이런 상황을 맞이하면, 그때는 잘 이야기할 수 있을까? 또다시 사람을 잃어버리는 결말은 아니면 좋겠는데 말이다.


애정 표현도 다 다르다. 나는 누군가 힘든 상황을 겪을 때마다 말없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녀는 그런 나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언젠가 “덕분에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어” 쪽지를 남기기도 했다. 아마도 주변에 조언하는 사람만 있었나 보다. 주변의 방식이 다 그러했다면, 그녀 입장에서는 참견이 애정이었겠네. 친구의 문제를 발 벗고 나서서 해결해 주는 것, 혹시 그녀만의 애정 방식이었던 걸까.


우리는 서로의 우정의 언어를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