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론 정말 못 살겠다.
남들이 좋다는 스타트업 이직에 성공했지만, 강남 출퇴근이 이렇게 고역일 줄이야. 고속터미널에서 신논현까지 가든, 교대에서 강남까지 가든, 고통스러운 건 매한가지였다. 왜 ‘지옥철’이라고 하는지 알겠다.
이번 역은 강남역입니다
안내 방송과 함께 문이 열리는 순간, 수십 명이 내 앞을 뚫고 나간다. 그 사이 중심을 잡느라 애쓴다. 모두 내린 뒤 천천히 나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여유는 없다. 문이 닫히기 전에 빠져나가야 하니까. 아, 벌써 지친다. 아마 다 똑같은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전투는 지상에서도 이어진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는 것. 환승역에서는 몸을 부딪혀도 어쩔 수 없겠지만, 지상에서는 눈치껏 피해 다녀야 한다. 10여분 정도만 내 몸을 최대한 접어본다. 오늘도 출근하느라 수고했다.
안 되겠다, 매일 이 고통을 겪을 순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은 이사뿐이다. 회사 가까이에 살면서 버스 출퇴근하면 숨통이 트일 것 같다. 생전 처음으로 부동산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내 눈에 들어왔던 집은 대로변에 있는 신축 오피스텔. 10여 평 남짓한 작은 방이었지만, 있을 건 다 있다. 갓 설치한 드럼 세탁기, 회색빛 냉장고, 널찍한 샤워실. 경비도 24시간 상주한다. 엄마도 이 정도면 혼자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겠다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북한산 근처에 살다가 강남 산다고? 괜찮겠어? 그건 더 나쁜 방향인데. “ 친구는 축하보다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어차피 사람이 사는 동네인데, 뭐가 그렇게 다르겠어.
그녀의 말이 찜찜하긴 했지만, 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해 버렸다.
오랜만의 독립이었다. 필요한 순서대로 하나씩 채워 나갔다. 몇 달이 지나니 더 이상 부족한 게 없어 보였다.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 이 설렘도 잠시,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아쉬운 점도 보이기 시작했다. 출퇴근이 고통스러워서 독립했는데, 회사까지 가는 길에도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재택 근무하기. 그때는 몰랐다, 이 선택이 나를 가라앉게 할 줄.
혼자 있으니 식사를 챙기기 귀찮았다. 배가 고플 때까지 기다렸다가 막판에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 이사 올 때만 해도 주변에 먹을 데 많아서 좋아 보였는데, 나가기도 싫다. 점심시간에 운영하는 식당은 몇 군데뿐이고, 저녁에는 만취한 사람이 많았으니까. 대학생이 취한 건 귀여울 텐데, 나이 먹을 대로 다 먹은 사람이 취한 것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아프다. 인생에 낙이 없어서 그런 걸까. 어느 순간부터는 집 근처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주변에 산책할 공간도 마땅치 않으니, 방 안에서만 지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모니터 세상만이 유일한 소통 창구가 되면서, 현실과의 연결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강남에 이사하는 것이 괜찮냐고 재차 물었던 친구가 떠올랐다.
갈수록 말라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텐션이 낮아진 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를 오랫동안 본 친구는 “낯빛이 바래가는 것 같아” 란다.
‘나 혹시 우울증인가?’
그 단어가 생각난 순간,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언제 이렇게 내려왔지. 속으론 알았다, 강남만 벗어나도 살 만할 텐데. 하지만 전세 계약을 파기할 순 없는 노릇이다.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선에서 나를 돌봐야지.
친구에게 심리상담센터 몇 군데를 추천받았다. 문제는 전부 다 강북에 있다는 것이다. 한순간에 갈 마음이 사라졌다. 어쩌지? 문득 이 돈을 다른 데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틀어진 체형을 교정해 본다면? 땀 흘리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일까? 어쩌면 마음만 건강해지는 심리상담보다 훨씬 이득일 수도 있겠다. 운동이 나를 구원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이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했다. 건너편에 있는 여성 전용 피티 전문점에 갔다. 상담 선생님은 나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헬스에 식단 관리도 안 한 사람은 처음이라나. 운동을 해본 적 없어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겠단다. 그 말에 홀린 듯 30회 패키지를 구매했다.
선생님은 약속한 그대로였다. 내가 아무리 못해도 비난하지 않았다. 내가 체화할 때까지 몇 번이고 설명해 주었다. 실력이 느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래도 무게라도 치는 날에는 죽을 맛이었다. 열 번 채우기로 했는데, 여덟만 되어도 온몸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아홉을 건너뛰고 십을 세었다. 포기하지 않고, 해낸 사람을 만들었다. 덕분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빠르진 않아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나, 제법 멋있어 보였다.
나의 상태도 조금씩 나아졌다. 나 혼자라면 술에 찌든 거리를 피해서 집에 있겠지만, 피티 예약에 안 갈 수는 없었다. 이렇게라도 집 밖에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운동이 만만한 건 아니다. 하지만 집중하다 보면 잡생각이 싹 사라졌다. 잠시나마 우울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선생님과의 관계도 적당했다. 친하지 않지만, 모르는 것도 아닌 상태. 무미건조한 거리에서 주기적인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렇게 큰 위안이 될지 몰랐다. 헬스는 나에게 심리상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간 나를 쭉 보아왔던 실장은 예전보다 내가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나 정말, 괜찮아지는 중인가 봐. 그 사이 회사에도 변화가 있었다. 팀장이 뽑힌 것이다. 그간 나 홀로 좌충우돌하느라 고생이 이만 저만 아니었는데, 함께 고민할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분이 회사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출근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다. 함께 식사 메뉴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어떤 날에는 저녁까지 먹고 들어갔다. 길에서 주정뱅이 마주칠 바에야 아예 느지막이 가는 게 더 나으니까. 어느새 강남살이에 적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최선일까. 더 이상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마음 한 구석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 남아 있는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강남구를 떠나야 하나보다. 갑자기 경복궁이 거기에 있는 건 이유가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도 에너지가 좋은 동네로 가야겠어. 어쩌면 사람은 집보다 동네의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받을 수도 있겠다. 이번에는 송파구에 전셋집을 구했다. 내가 꿈꾸었던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집 앞 건널목만 건너면 회사까지 가는 버스가 5분마다 다니고, 석촌호수에 10분이면 걸어간다. 방도 더 넓었다.
이사 이후에는 거의 매일이 평온했다. 회사에서 지친 상태로 돌아오더라도 집에서 포근하게 쉴 수 있었다. 강남구 살 때는 밤에 나가지 않았는데, 잠실에서는 심심할 때마다 산책한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는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하루를 돌아보는 여유까지 생겼다. 롯데백화점은 사람이 많지만, 거기까지 가는 구간이 붐빈 적이 없다. 10분 정도만 버스를 타도 방이동 골목을 구경할 수 있다. 가까이 나가기 싫으면 건물 지하에 있는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낸다. 입주민을 위한 무료 목욕탕도 종종 이용한다. 밀도가 낮은 동네에 살아서 그런 걸까, 마음에도 틈이 생겼다.
드디어 알았다,
나에게는
공간적 여유가 감정적 여유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일상(日常). 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살고 있냐고 물어보면 ‘회사, 집, 회사를 반복하면서 살고 있지’라고 대답했던 시절이 있었다. 강남구에서 인생의 암흑기를 보내고 송파구로 넘어온 지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좋아하는 일상이 되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함께 하는 곳. 나의 내면이 머무는 곳. 동네가 마음에 쏙 드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좋아지고, 집에서 충분히 충전하게 되니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알아낸 행복의 비밀은 집과 동네였다.
송파구 전세 만기일이 곧이다. 계약을 연장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또다시 더 좋은 동네를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북한산 근처에 살 때는 여행 욕구가 없었는데, 잠실에서는 두 달에 한 번씩 여행을 떠났기 때문이다. 내 안에 아직 풀리지 않은 퍼즐이 있나 보다.
오랫동안 살 만한 동네를 찾는 건,
연애 상대를 찾는 것처럼 어려울 수 있겠다.
가능하긴 할까.
어쩌면 완벽한 동네는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어딘가에 잘 맞는 동네가 있을 테니까,
오늘도 나는 서울을 탐색한다.